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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20대 국회 ‘1호 법안’ 천태만상 

국민 생활법안 ‘봇물’ 경제민주화-경제활성화 법안은 여야 ‘편중’ 

김성탁·안효성 기자 sunty@joongang.co.kr
경제민주화 더민주 26건, 새누리당 3건 vs 경제활성화 새누리당 14건, 더민주 0건 ... 김광림 ‘규제개혁특별법’, 김종인 ‘상법’ 개정안, 안철수 ‘공정성장 3법’, 심상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눈길 끌어

▎5월 30일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의원들의 ‘1호 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6월 1일부터 7월 8일까지 발의된 175개 1호 법안을 분석한 결과, 국민생활과 관련한 법안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이종명(비례·초선) 의원은 2000년 6월 서부 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작전 중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당시 대대장(중령)이었던 이 의원은 후임 대대장으로 온 설동섭 중령이 지뢰를 밟자 부하 19명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한 뒤 설 중령을 구하러 나섰다가 그 역시 지뢰를 밟았다. 두 사람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이 의원은 설 중령을 독려해 소총과 철모를 갖고 함께 기어 나왔다. 이 의원은 두 다리를 잃었지만 교관으로 군 생활을 계속하다 지난해 9월 전역했다. 새누리당에 영입돼 국회의원이 된 이 의원이 처음 만들고 싶어한 법안은 무엇일까.

그는 ‘1호 법안’으로 6월 21일 군인연금법 개정안을 발의 했다. 전투나 수색작업 등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얻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전역한 군인이 받는 보상금을 인상하는 내용이다. 군에서 일반 직무를 수행하다 다쳐 제대하는 군인들보다 더 많이 받도록 했고, 보상금도 계급에 따라 차이가 있던 것을 없애고 공무원 평균임금에 따라 산정해 지급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작전 중 장애를 갖게 된 군인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당연히 발의해야 할 법”이라며 “임무수행 중 부상당한 군인들의 명예와 처우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8월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김정헌 하사처럼 작전 중 부상을 당한 군인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줘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며 “작전 중 부상당한 군인들이 병원비를 지원받지 못해 자비로 치료받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20대 국회의원들이 1호 법안을 속속 발의하고 있다. 의원 300명 중 초선이 132명으로 44%를 차지하는데, 이들이 제출하는 1호 법안에는 국회의원이 되면 우선적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입법 목표와 관련이 있는 것이 많다. 소속 정당이나 의원별 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 1호 법안은 향후 20대 국회에서 어떤 사안이 쟁점이 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야의 주된 관심사도 이들 1호 법안의 분석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경북 의성에서 한우를 키웠던 더불어민주당 김현권(비례·초선) 의원이 처음 낸 법안에는 농촌에서의 삶을 통해 갖게 된 소신이 담겨 있다. 김 의원의 1호 법안은 식품위생법 개정안이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원료로 만든 식품의 경우 의무적으로 표기를 하도록 하고, GMO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무유전자변형식품이라고 알릴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현행 식품위생법에는 GMO를 원료로 쓰더라도 제조·가공 후 유전자가 변형된 DNA가 검출이 되지 않으면 GMO 사용 여부를 표기할 필요가 없다. 김 의원은 “GMO 농산물을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국민의 우려가 있으니 정확히 알리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에 수입된 GMO는 1024만t이다. 옥수수가 전체 수입량의 88%로 가장 많고, 대두도 수입량의 10%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식용류, 고추장, 된장, 간장, 카놀라유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GMO가 들어간다고 본다.

이혼·방산비리·의약품 등 관심사 다양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첫날인 5월 30일 ‘청년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 등 9개 법안을 ‘새누리당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김 의원은 “우리 농산물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고품질 농산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길밖에 없다”며 “내가 먹는 가공식품이 GMO를 사용한 것이라는 걸 국민에게 알려주면 좀 비싸더라도 GMO가 아닌 국산 농산물을 사용해 만든 것을 구매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김 의원은 이 법이 장기적으로 농업 구조변화도 이끌 수 있다고 본다. 된장, 간장 등 가공식품을 만드는데 국산콩이 많이 사용되면 쌀농사를 짓는 농가도 콩농사로 옮겨갈 것이란 얘기다. 김 의원은 “쌀 소비가 줄면서 매년 쌀값 하락과 많은 재고에 시달리는 한국 농업의 구조적인 문제도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며 “WTO 등 국제무역협정에 위배되지 않고 한국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며 고문을 받은 후유증을 겪었던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더민주 인재근 의원은 고문 방지와 고문 피해자 지원을 위한 패키지 법안을 1호 법안으로 냈다. 고문에 대한 형량을 5년에서 7년으로 올리고, 고문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고문 피해자와 그 유족에 대한 재활프로그램 운영 등 지원책도 관련 법안에 담도록 했다. 이 의원은 “고문은 현재진행형으로, 고문 범죄의 추악한 역사를 정리하고 피해자와 가족의 상처와 함께 사회에 넘겨진 오명을 씻어낼 때까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고문방지법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성중(서초을·초선) 의원은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형법에 구조 불이행죄를 도입해 재난 또는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 외면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본인이나 제3자가 위험에 처했을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박 의원은 구조에 나섰다가 부상을 입는 등의 피해를 본 이들을 지원하는 절차를 담은 의사 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패키지로 내놓았다. 의사상자 지정 전에 의료급여를 미리 지원해주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 서초을이 지역구인 박 의원은 이 법을 4·13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보통 지역구 발전을 앞세우는 후보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박 의원은 “지역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이웃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옆에서 강력 범죄를 당해도 외면하는 경우를 봤다”며 “공동체의식을 만들기 위해 법의 힘이라도 빌려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강남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사건’도 계기가 됐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박 의원의 지역구다. 박 의원은 “이 법이 통과되면 공동체의식이 살아나 묻지마 범죄 피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입법을 할 때 논란이 컸는데, 이후 효과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훨씬 많았다”며 “수사에 협조할 때 번거롭거나 구조하다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초래했을 경우 책임을 줄여주는 등의 보완책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생활밀착형 법안 58건으로 가장 많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1호 법안을 선택한 의원들도 있다. 이혼 전문변호사였던 국민의당 김삼화(비례·초선) 의원은 이혼 관련 법안을 냈다. 공무원연금법과 사립학교교직원 연금 법을 바꿔 이혼한 배우자가 연금에 대한 재산분할을 쉽게 받도록 하는 취지다. 김 의원은 “변론을 하다 보니 부부가 나눌 재산이 퇴직금이나 연금 밖에 없는데, 배우자가 이 돈을 연금으로 안 받고 몰래 일시금으로 받아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며 “돈의 소재를 알 수 없는 등 법원에서 재산 분할을 선고하더라도 이를 받아내는 게 너무 힘들어 이혼 후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봤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중로(비례·초선) 의원은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과 보병70사단장 등을 지낸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김 의원은 6월 27일 방위산업비리 관련 패키지법안을 냈다. 방위사업청 출신 전관은 취업제한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방산업체가 단가 부풀리기 등을 통해 국가에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수뢰액이 5000만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받도록 가중처벌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김 의원은 “방산비리는 안보의 첫걸음으로 국회의원이 되면 가장 먼저 근절시켜야겠다고 생각해왔다”며 “방산비리를 근절해야겠지만 방위 산업은 또 육성해야 하는 미래먹거리 산업인 만큼 이런 부분도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지낸 새누리당 김승희(비례·초선) 의원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결핵치료제 등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지만 수요가 적어 제약회사에서 생산이나 수입을 꺼리는 약품을 ‘국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담았다. 국가가 나서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인데, 현재 식약처에서 임시로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 것을 법제화하는 게 목표다. 김 의원은 “의약품은 급할 때 누구나 차별 없이 쓸 수 있는 공공재이므로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 총선 공약을 이어받아 파격적인 법안을 내놓기도 한다.


정의당 윤소하(비례·초선) 의원은 ‘국민건강보호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만 16세 미만 아이들의 입원진료비 전액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내용이다. 윤 의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0~15세 아동이 지출한 입원진료비, 약값 등 진료비 총액은 6조3937억원이었다. 이 중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5215억원 정도였다. 아이들이 희귀병 등을 앓으면 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가 연간 1000만원 이상인 아동이 1만7000여 명이고, 이 중 1억원 이상도 1000여 명에 달했다. 윤 의원은 “노인이 된 후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이 어린 시기의 건강은 ‘밑돌’이라 할 수 있다”며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아동의 건강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정의당이 4·13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20대 국회의원들이 7월 8일까지 발의한 ‘1호 입법’을 분석한 결과 법안제출 의원은 총 175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발의한 대표 법안을 성격에 따라 나눠보니 국민의 일상 생활과 관련성이 높은 생활 입법이 58건(33.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35건(20%), 지역 현안 관련 법안 29건(16.6%), 19대 국회 때부터 이어진 여야 쟁점 관련 법안 16건(9.1%),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 14건(8.0%), 정치개혁 법안 12건(6.9%) 등의 순이었다.

기업 불균형 해소 담은 야당 법안들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를 계기로 제조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때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이 전가되는 걸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정당별로 생활입법은 새누리당 의원 25명과 더민주 의원 24명이 발의해 비슷한 규모를 보였다. 반면 총선을 앞두고 주로 야당이 관련 공약을 활발하게 내놓았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더민주가 26건으로, 새누리당(3건)에 비해 8배 이상 많았다. 반대로 박근혜 정부가 지속적으로 국회통과를 요구했던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은 새누리당 의원 14명만 1호 법안으로 발의했을 뿐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권에선 한 건도 없었다. 향후 20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과 이에 맞선 여권의 경제 활성화 법안이 충돌 사안으로 부각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원회 대표는 비례대표로 5선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경제민주화 취지를 살린 상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해 자회사 경영진의 부정행위가 있을 때 모회사 발행 주식의 1% 이상을 가진 주주들이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또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는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이사들과는 분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토록 하고, 전자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소액주주들이 주주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원격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담고 있는데, 주주총회 이사 선임시 1주당 1표를 주는 게 아니라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김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포용적 성장이 필요한데도 제도적 개선이 미흡하다”며 “개정안을 통해 근로자와 소액주주의 경영감시와 감독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액주주 권리를 보호한다는 집중투표제는 외국계 투기 펀드 등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상장사 지분을 가진 글로벌 경쟁사나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악용할 경우 국내 기업이 골탕 먹을 가능성이 크다”며 “선진국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유일하게 도입한 일본도 100%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원회 대표는 경제민주화 취지를 살린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 2.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공정성장 3법’을 1호 법안으로 선보였다.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로 영입한 더민주 최운열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담은 법안 5개를 발의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이 법률에 맞춰 개정되는 대리점거래·가맹사업거래·하도급거래·대규모유통업 등에서의 공정화법이다.

최 의원은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를 지냈고 한국증권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주류 경제학자 출신이다. 최 의원은 “공정위 출신을 영입한 재벌·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선 전속고발권 전면폐지라는 강력한 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꼽히는 더민주 김경수(경남 김해을·초선) 의원은 초과이익공유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자신의 첫 법안으로 발의했다.

김 의원은 “대기업이 목표이익을 초과 달성한 데에는 협력 업체들의 기여가 있었다고 할 수 있고, 기여에 대한 이익을 공유하는 것은 협력업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작용해 동반성장의 포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에는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합의한 목표를 초과한 이익이 생겼을 때 사전에 합의한 배분 규칙에 따라 공유하는 초과이익공유제의 개념을 명시하고, 정부가 추진본부를 설치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지방공기업 등이 입찰참가자의 자격 제한과 수의계약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당에선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공정성장 3법’을 1호 법안으로 선보였다. 독과점 기업에 대한 계열분리 명령권 등 공정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독점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내년에 만기가 되는 현행 특별법을 10년 연장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2차 납세 의무를 면제함으로써 실패한 벤처기업들의 재기를 돕는 조세특례제한법·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다.

이들 법안을 발의하기 전, 안 전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 나서 “불평등한 고용구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확대됐고 불균형한 기업 생태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격차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야당에선 대기업의 법인세를 올려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더민주 윤호중(경기 구리) 의원과 국민의당 김동철(광주 광산갑) 의원은 법인세 인상법안을 제출했다. 더민주 박병석(대전 서갑) 의원은 채용시 지원자 가족의 학력이나 재산 사항을 파악하지 않도록 하는 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 밖에 더민주 제윤경(비례·초선) 의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은 추심을 금지하는 내용의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 개정안을 1호로 추진했다.

새누리 규제개혁 법안, 여소야대(與小野大) 벽 극복할까


▎박성중 새누리당 의원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계기로 ‘선한 사마리아인법’을 발의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하철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안전 분야에서 외주화를 금지케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진은 강남역(왼)과 구의역의 추모현장.
새누리당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낸 의원은 3명으로 나타났다. 비박계로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가 친박계의 반발로 사퇴한 김용태(양천을) 의원은 해외계열사 주주 현황 등을 공시하도록 해 대기업의 상호출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발의했다. 총선 전 더민주를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한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은 대규모 점포의 골목상권 진출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1호 법안으로 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당 의원과는 달리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19대 국회 때 처리하지 못한 경제 활성화 관련법안 발의에 집중했다.

이학재(인천 서갑) 의원은 규제프리존을 지정해 지역별로 경제 활성화를 모색하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을 발의했고, 이완영(경북 고령-성주-칠곡) 의원은 고령자와 뿌리산업 등에 파견근무를 확대하는 ‘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규제개혁을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개혁특별법도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1호 법안으로 냈다.

새누리당과 정부, 청와대는 7월 7일 20대 국회 개원 이후 첫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열고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19대 국회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노동개혁 관련 4법 및 규제프리존특별법 등의 처리를 9월 정기국회 이전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전력을 쏟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여서 해당 법안들이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1호 법안에 이어 당정청이 처리 추진에 나선 만큼 경제민주화 법안에 무게를 싣고 있는 야당 측과 공방이 예상된다.

1호 법안 분석에서 20대 국회의원들은 국민 생활과 관련이 깊은 법안을 집중 발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출산과 고령화, 일자리 감소 등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개선하는 제도적 보완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한 불편까지 바로잡는 조치를 담은 법안들이 속출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세연(부산 금정) 의원은 남성의 출산휴가를 최대 14일까지로 연장하고 유급휴가 기간도 3일에서 7일로 늘리는 법안 개정안을 자신의 첫 번째 법안으로 제출했다. 출산과 육아에 남성이 참여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같은 당의 신보라(비례·초선) 의원은 청년층에 대한 지원을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토록 하는 ‘청년기본법’을 발의했다.

지하철 구의역에서 20대 청년이 안전 조치조차 없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과 관련해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안전 분야에서는 외주화를 금지하도록 하는 ‘산업 안전보건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를 계기로 제조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이 전가되는 것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의 이동섭(비례·초선) 의원은 민방위통지서를 지정하는 제3자가 대리수령할 수 있게 해 통지서를 못 받아서 훈련을 받지 못하는 것을 막자는 ‘민방위기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더민주 기동민(성북을) 의원은 응급차의 출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반 차량이 도로 양측으로 길을 터주도록 하는 규정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첫 번째 법안으로 발의했다.

퇴근 후 모바일 업무지시 금지 법안도 발의


▎2000년 비무장지대에서 수색작전 중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던 새누리당 이종명 의원은 지난해 8월 목함지뢰 도발 사건과 관련해, 작전 중 부상당한 군인이 받는 보상금을 인상하는 ‘군인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민주 이찬열(경기 수원갑) 의원은 근로자의 업무 개시와 종료시간을 의무적으로 측정해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더민주 신경민(영등포을) 의원은 근무 시간이 지나면 모바일 채팅을 통해 업무 지시를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같은 당의 설훈(부천원미을) 의원은 7월 2일 학교에서 생리대를 마련해 비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학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깔창 생리대’ 논란은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인상 계획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대용품으로 사용했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학교를 일주일 동안 결석했다”는 사연이 등장했다. 설 의원은 “정치권이 간과해온 생활정치 과제인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설 의원은 학교에 생리대를 비치하는 데 매년 300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국민의당 장병완(광주 동남 갑) 의원은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해 청년층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더민주 조정식(경기 시흥을) 의원은 신용·체크카드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의 일몰기한을 오는 2021년까지 5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 밖에 복지 혜택을 늘리는 1호 법안도 많았다. 더민주 안민석(경기 오산) 의원은 셋째 이후 자녀에 대학등록금을 감면해주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같은 당의 양승조(충남 천안) 의원은 6세 미만 아동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을 자신의 첫 번째 법안으로 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은 의원 시절인 2003년 11월 15일, 1호 법안으로 ‘전기통신사업법중개정법률안’을 낸 바 있다. 전기 통신사업자의 부당한 가격 책정이나 미성년자와의 계약체결로 피해를 보는 이용자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부당한 가격결정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했다. 하지만 상임위 소위심사까지 갔던 해당 법안은 다른 법안들과 함께 폐기됐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19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과 ‘부담금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매년 3% 이상씩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고, 300명 이상 민간기업에도 이를 적용하자는 내용이었다. 공공기관 3% 의무고용은 이후 실제 정책으로 도입됐지만 민간기업에는 아직 도입되지 못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민간기업에까지 청년의무고용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 김성탁·안효성 기자 sunty@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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