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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본 3당의 집권전략 

야권 호남 쟁탈전 여권은 틈새 노린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친박’ 이정현과 ‘친문’ 추미애, 주류 측 대표의 연설 키워드는 ‘호남’과 ‘경제’… 박지원은 박 대통령 공략해 ‘선명성’ 부각, ‘플랫폼 정당’으로 제3정당 역할 모색

▎(왼쪽부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추미애 더민주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9월 정기국회의 막이 올랐다. 총선을 전후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였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정식 지도부 체제로 들어선 이후 처음 열린 국회다. 특히 이번 국회의 신호탄 격인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지난 8월 새로 선출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추미애 더민주 대표의 국회 공식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총선 이후 과도기 체제 하에서 진행됐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3당 체제 하에서 사실상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대표연설이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여야 수장이 각 당 주류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정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친박 핵심 인사로 꼽힌다. 추미애 대표는 당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당 대표로 나선 박지원 비상대책 위원장 역시 당내 최대 세력인 호남의 대표격이자 사실상 당 창업주인 안철수 전 대표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 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게다가 이 대표와 추 대표는 내년에 치러질 대선을 직접 관리하게 되고, 박 위원장 역시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자임한다. 이번 대표연설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이 구사할 전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9월 5일부터 7일까지 이어진 교섭단체 대표 3인의 연설을 정치전문가 10명이 분석해봤다. 이를 종합해보면 3인 연설의 키워드는 각각 ‘호남’(이정현), ‘경제’(추미애), ‘플랫폼’(박지원)으로 정리된다.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는 “연설 내용과 스타일이 나름대로 독특한, 3인 3색이 뚜렷했던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연설 내용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각 당의 평가도 눈에 띈다. 여야(與野) 간 대결보다는 야야(野野) 대결이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마치 대선 전초전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사실상 무주공산인 호남을 두고 두 야당이 경쟁하고, 여당이 그 틈새를 공략하는 모양새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각 당에서 주류들이 처한 위상과 입장,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이번 연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총평했다.

1. 이정현 “호남과 새누리당 연합정치 가능”


▎9월 5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처음으로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 사진·중앙포토
DJ·盧에 사과하며 朴 대통령 지키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메시지는 ‘호남’으로 압축된다. 이 대표는 9월 5일 대표연설에서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 대표가 취임 후 처음으로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것도 호남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가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스스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호남표를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라며 “‘호남=야권 텃밭’이라는 공식을 흔드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전문가들의 평가도 비슷하다. “호남에서 20% 이상 득표하겠다는 대권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최창렬 교수)거나 “야당이 갈라진 틈을 타서 자신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전략 같다”(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내용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호남은 지난 총선에서 전남과 전북에서 각각 새누리당에 1석씩 내준 반면 문재인에 대해선 아예 돌아섰다. 무주공산이 된 호남을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파고들어갈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호남연합론’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이다. 친박 진영에서 대선주자로 밀고 있는 반 총장은 충청 출신이다. 새누리당의 기반인 대구·경북(TK)에 충청, 호남까지 망라한 지역연대론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나경원 의원을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발탁한 이유도 반 총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윤태곤 실장은 “호남연대론은 결국 반기문 총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고,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새누리당은 이미 ‘충청+TK’로 방향을 잡았지만 이걸로는 미흡하니까 호남에서 최소한 두 자릿수의 지지율만 만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호남연대론은 어떻게 구체화될까? 채 교수는 “이 대표가 기존의 영남 지분은 철저히 지키면서 야권의 최대 격전지인 호남의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국책사업과 같은 막강한 물량공세를 통해 야권분열을 가속화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지난 총선에서 ‘예산폭탄’ 발언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었던 자신의 경험을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상병 평론가는 “지역연대는 ‘TK+충청+호남’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연대의 틀은 사드 등 안보로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지역연합 차원을 넘어 후보연대 가능성까지 시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여당발 정계개편’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반기문 총장이 연착륙에 실패할 경우 그 대체재로 중도층을 끌어오기 위해 유승민이나 안철수와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했다. “호남은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안철수를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그럴 경우 안철수가 결국 기댈 곳은 새누리당 성향의 중도층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 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호남연대론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한오섭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호남연대론의 전제는 박근혜 대통령과 호남이 연대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호남연대론은 단기적으로는 내년 대선에서 이정현 프리미엄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미이고, 장기적으로는 호남에 맹주가 없는 상황에서 호남의 리더로서 이정현을 봐달라는 장기적 포석도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도 “호남연대론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대권을 주도적으로 헤쳐나갈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 대표도 그런 문제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설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대목은 대선 불복 문제다. 이 대표는 “이제 대선 불복의 나쁜 관행을 멈추자”고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정부조직법 개정 발목잡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사실상 대선 불복 형태의 국정 반대, 국가 원수에 대한 막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다. 또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에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국민이 뽑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것 역시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여전히 청와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윤태곤 실장)는 평가가 나온다. 최영일 평론가는 “당청 관계가 거론되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현안인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나 사법개혁 등 현재 기득권층에서 터져나오는 각종 문제에 대한 정권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며 “아직도 청와대 홍보수석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채진원 교수도 “당이 중심이 돼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청와대의 지시와 명령을 잘 따르겠다는 것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국회개혁을 가장 먼저 언급한 점도 이 같은 차원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국회를 비판한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의원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황제특권”이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국회 청문회의 무더기 증인채택 문제나 이미지 정치 등을 언급하며 “많은 국민은 국회야말로 나라를 해롭게 하는 국해(國害)의원이라고 힐난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본인이 국회의원이라면 빨리 후속조치를 취해야지, 스스로 국회의원이 아닌 것처럼 말했다”고 비판했고, 최창렬 교수도 “박 대통령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박 대통령과 같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집권당 대표라면 총선에서 여소야대로 새누리당이 심판받은 데 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앞으로 정책 방향의 큰 틀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연설을 마친 뒤 추미애 더민주 대표의 자리로 찾아가 악수를 청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2. 수권정당 면모 부각에 올인한 추미애


▎9월 6일,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경제민주화로 낡은 경제구조를 혁신하고, 소득주도 성장으로 민생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는 김종인 전 대표를, 소득주도 성장은 문재인 전 대표를 각각 연상케 했다. / 사진·중앙포토
‘문재인 굳히기’로 본선 전략 직행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번 대표연설은 ‘경제’로 정리된다. 경제에서 시작해 경제에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설의 대부분을 경제 문제를 언급하는데 할애했다. 추 대표는 “경제민주화로 낡은 경제구조를 혁신하고, 소득주도 성장으로 민생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민주화’와 문재인 전 대표가 주창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한꺼번에 언급한 것이다. 전당대회 기간 중 김 전 대표와 각을 세웠던 추 대표가 “앞으로는 김종인과 함께 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최근 논란이 됐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해선 “외교적으로 패착”이라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 등 민감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선 거의 언급이 없었다.

대여 공세보다는 콘텐트를 앞세워 중도층 끌어안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서양호 소장은 “친문 주류의 스타일을 반영해 강경하게 밀고 나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외연 확장이란 고민 때문에 당을 오히려 합리적이고 중도적으로 운영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최영일 평론가는 “추 대표가 친문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론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이라며 “수권을 위해 반정부 메시지보다는 국민들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경제와 민생 영역을 선점하려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 같은 수권정당 전략은 결국 “당내 경선보다는 본선 전략에 더 집중하겠다는 것”(한오섭 전 행정관)으로 받아들여진다. “추 대표는 문재인 대세론을 관리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양승함 전 교수)는 평가와도 통한다. 한 전 행정관은 “현재 문재인에게 유리한 정치환경과 여론을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둘 건 수권능력”이라며 “민생과 경제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가급적 외교·안보 부분에서 불안하거나 부담감을 느낄 수 있는 현안은 비켜가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박상병 평론가 역시 “청와대에 해야 할 이야기는 하지 않고, 국민이 제1야당으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는 뺀 채 경제문제에 집중해 큰 탈을 만들지 않고 대선주자를 문재인으로 굳히겠다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추 대표가 최근 대선 경선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그는 당헌·당규를 강조하며 “대선 후보가 내년 6월 말까지는 정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경선 시기가 빨라질수록 ‘본업’이 따로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희정 충남지사 같은 대권주자들보다는 ‘자유인’인 문재인 전 대표에게 더 유리하다. 서 소장은 “문재인 지지율이 현재로선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억지로 경선을 흥행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신속하게 경선을 마치고 본선으로 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84.0%를 얻으면서 김문수 후보 등과의 경선을 일찌감치 끝내고 김종인 전 대표와 이상돈 의원을 영입해 중도층을 포섭하며 외연 확장에 나섰고, 1997년 5월 19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77.5%)는 정대철 후보(22.5%)를 거뜬히 제치고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승부를 냈다. 서 소장은 “문재인도 신속하게 경선을 끝내고 후보 중심의 외연확장을 위해서 부산·경남(PK)의 지지를 확고히 하려고 할 것”이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장이나 남경필·원희룡 같은 새누리당 소장파와도 연대하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8월 29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을 예방했다. 악수를 마친 두 사람이 각자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수권정당만을 내세우기에는 현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정부의 실정을 제대로 짚어주는 제1야당 본연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설에서는 너무 수권정당 부각에만 치우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태곤 실장은 “수권 정당과 정통 야당의 모습을 7대 3 비율로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거의 9대 1 정도로 치우치면서 중심을 잘못 잡았다”고 지적했다. 최창렬 교수도 “중도층을 의식하고 외연확장을 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야당으로서 잘못된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너무 수권정당을 의식하다 보니 수권정당과 제1야당으로서 정체성 확립 문제 사이에서 더민주가 처한 딜레마가 보였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최 평론가는 “경제에 방점을 찍은 건 좋았지만 시스템을 갖춰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수회담 제안에 대한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추 대표는 “국회가 민생 경제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민생 경제 전반에 대한 ‘비상 민생경제 영수회담’ 즉각 개최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형준 교수는 “영수회담은 군사정권이나 권위주의 정부에서나 효과가 있는 일”이라며 “3당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당이 함께 모여 개혁 의제를 정리해서 공통의 과제는 빨리 입법화 하고 차이에 대해서는 소통을 통해 풀어가는 협치”라고 지적했다.

3. 박지원, “당의 문턱을 확 낮추겠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9월 7일 ‘문제는 대통령의 정치’라는 제목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제를 만들어내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그렇게 하려면 정치의 중심인 대통령께서 먼저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뉴시스
선명성 부각,‘ 플랫폼 정당’으로 역할 모색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표연설은 사실상 대통령에서 시작해 대통령으로 끝났다. 연설문 제목도 ‘문제는 대통령의 정치’였다. 연설문에는 ‘국회’라는 단어가 60번, ‘대통령’은 37번, ‘정치’는 35번 등장했다. ‘경제’는 67번, ‘정치’는 15번을 언급한 추미애 대표의 연설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박 위원장은 “문제를 만들어내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그렇게 하려면 정치의 중심인 대통령께서 먼저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우병우 뇌관을 제거해야 대통령도 성공하고 국정운영도, 국회도, 검찰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며 우병우 민정수석 해임을 촉구하는가 하면,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전기요금 인하, 대북지원 재개,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당면 현안을 일일이 거론했다. 이 때문에 “의식적으로 선명성을 강조했다”(최창렬 교수)거나 “야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미”(서양호 소장)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노력은 대북정책을 언급한 대목에서 두드러진다. 박 위원장은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를 주도해야 한다”며 “중단된 대북 쌀지원을 제주도 감귤과 함께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박상병 평론가는 “호남을 발판으로 하는 대북정책 기조를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가장 선명하게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다만 박 위원장이 “국민의당은 사드배치를 단호하게 반대한다”면서도 “사드배치 찬성 의견도 존중한다”고 밝힌 점은 향후 외연 확장에 있어서의 걸림돌을 선제적으로 피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목에서 국민의당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떠오른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표방한 안철수 전 대표의 정책 기조와의 간격을 줄이는 문제다. 윤태곤 실장은 “이번 연설에서 박 위원장이 주장한 햇볕정책, 남북화해와 ‘안보는 보수’라는 안철수의 정책 기조에 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게 과제”라며 “야당이 ‘남북화해=안보’ 프레임을 끊임없이 주장했지만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채진원 교수는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계의 노선과 전통적인 야당 노선을 표방하는 호남계 사이에서 오는 차이가 봉합되지 않은 것 같다. 내부 분열과 역량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라고 했다.

“선명성은 오히려 대안이 없을 때 강조할 수 있다”는 채 교수의 주장처럼, 박 위원장이 이같이 선명성을 내세운 배경에는 국민의당 내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서 소장은 “이정현 대표가 호남연대론을 내세우면서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두고 있는 국민의당으로서는 자칫 여권 2중대로 비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며 “본질적으로는 야당 경쟁에서도 더민주에 밀린다는 위기감에서 선명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위원장의 이번 대표연설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플랫폼 정당’이다. 박 위원장은 실용주의 정당을 표방하면서 “우리 당의 문턱을 확 낮추겠다. 누구나 들어와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선 플랫폼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이 최근 끊임없이 주창해온 ‘제3지대론’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운찬 전 총리 등과 연쇄 회동을 하고 있는 박 위원장의 행보나 “우리의 미래도 양극단을 제외한 합리적인 개혁, 동참하는 모든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가야만 한다”는 안철수 전 대표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는 “조직 기반이 전혀 없는 미니 정당으로써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당을 공고화하는 것보다는 범야권을 통합하는 기반 조직으로 자리매김해보겠다는 전략”(최영일 평론가)으로 풀이된다. 한오섭 전 행정관도 “국민의당은 정권교체라는 목표는 똑같지만 옛날 방식으로 더민주에 흡수될 수는 없으니 제3지대에서 새판을 짜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논의는 궁극적으로 당 운명과 직결되는 셈이지만 그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최영일 평론가는 “이미 당내에서 더민주와 함께 양당을 아예 해산하고 빅텐트를 구축해야 한다는 해체론도 나오고, 국민의당은 이대로 갈 수 없으니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인수합병론이 나오고 있다”며 “박 위원장의 노련한 정치감각으로 정치에 방점을 찍었지만 거대 여야를 이끌고 캐스팅보터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국민의당으로선 안철수만으로 대선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했고, 양승함 전 교수는 “문제는 결국 제3당 쪽으로 다른 잠룡들이 들어오느냐에 있다. 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이번 국회에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끝내고 정식 지도부를 갖추고 나섰다. / 사진·중앙포토
4. ‘경제’ vs ‘정치’ 야야(野野) 대결구도

새누리당 2野 감싸고, 2野는 서로 난타전


▎이정현 대표(뒷줄 왼쪽)가 호남연대론을 주창한 대표연설을 마치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뒷줄 오른쪽)을 찾아가 인사하자 박 위원장이 이 대표를 때리는 시늉을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이번 대표연설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각 당의 논평을 통해 드러난 정당간 대결구도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대표연설이 끝난 뒤 나온 각 당의 논평은 여야가 뒤바뀐 듯한 모양새였다. 새누리당은 추 대표의 연설에 대해 “민생경제에 집중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추 대표는) 통합의 정치를 외치면서 이미 집권여당이 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대통령과 정부, 집권여당을 포함한 남탓만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어떤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은 추상적인 언급에 그쳐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당 대표로서 거시적인 비전이나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정치권의 반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의 제시 역시 부족하다”고도 했다.

국민의당 대표연설도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은 긍정적이었지만, 더민주는 박한 평가를 내놨다. 새누리당은 “20년 만에 탄생한 제3원내교섭단체의 당찬 힘을 넘어 ‘거대한 민심’을 듣는 자리였다”고 호평했다. “박 대표의 높은 경륜과 혜안이 배어났다”, “품격이 있는 연설”이라는 극찬도 이어졌다. 이에 반해 더민주는 전날 국민의당 평가에 반박이라도 하듯 “백화점식 나열에 그친 점은 아쉽다. 화려한 상차림에도 불구하고 정작 메인요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경제가 비상상황인 만큼 보다 긴급한 민생문제부터 해결해나가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 “비상경제상황을 타개할 정확하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이에 대해 최영일 평론가는 “새누리당은 두 야당에 대해 각을 세우기보다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로 두 야당을 오히려 띄우는 모습이었다”며 “두 야당이 호남에서 격돌하는 상황을 어부지리로 가져오려는 전략이 노골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오섭 전 행정관은 “야당은 모든 문제의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면서 대통령 책임을 부각한 반면 새누리당은 이런 야당에 대해 포용력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여 공세와 대청와대 공세를 약화시키겠다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했다”고 했다.

이 같은 모습은 내년 대선의 관전 포인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야권 내부의 권력 다툼에 따라 대선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에선 친박 주류 세력이 새누리당을 장악한 상황에서 잠룡들이 선뜻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에선 ‘문재인 1강 체제’에서 후발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어 판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 평론가는 “야당끼리의 대결에서 더민주는 경제에, 국민의당은 정치에 각각 방점을 찍었다”며 “과연 어느 부분이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을 것인지는 추석 민심을 기점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했다.

-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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