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정밀취재] 정치논리에 놀아난 국책사업 2題 | 선거 단골메뉴 ‘신공항 약속’ 남긴 건 ‘민심 공황’뿐 

큰 선거 때마다 공약-파기 반복하며 민심 분열 야기… 국책사업위원회 만들어 사업추진 여부 판단 맡겨야 

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김해공항 확장안 발표에 대구지역 민심이 반발하고 있다. 6월 25일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에 항의하는 ‘남부권 신공항 백지화 진상규명 촉구대회’가 열렸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시민 등 2000여 명이 참가했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교통부가 인천 영종도 신공항을 추진하면서 실시한 ‘부산권 신국제공항 타당성 조사’에서 김해공항의 대안입지로 경남 일대 18개소를 검토한 게 처음이다. 하지만 당시 교통부는 인천공항 건설만 추진했다.

1992년 부산도시기본계획 수립(목표연도 2011년) 때는 포화가 예상되고 안전성이 우려되는 김해공항의 이전이 검토됐다. 부산시가 교통부의 대안입지 가운데 강서구 명지동 남측 해상을 매립해서 해상공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1995년에는 건설교통부와 부산시·경남도가 참여한 ‘부산·경남권 광역개발계획’ 때도 신공항 논의가 있었다. 부산시는 1995년 ‘부산경제종합발전대책’을 마련하면서 신공항 입지로 밀양 대산, 명지 해안매립지, 가덕도 동쪽 해안 등을 재평가한 결과 가덕도 해안을 최적지로 결론 냈다. 가덕도는 부산~거제 연결도로 건설, 부산신항 인접 등 장점이 많다고 본 것이다. 부산시가 가덕 신공항에 매달린 것은 사실상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공항 첫 약속


이를 바탕으로 부산시는 2000년 신공항 건설 필요성을 정부에 제기했다. 하지만 후보지를 부산·경남에 한정하지는 않고 울산·경남·대구·경북을 포함해 공간적으로 약 150㎞ 권역을 포함하는 ‘남부권 허브공항’을 요구했다. 2000년 정부의 제2차 공항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안) 논의 때 부산권 외에 경북권·호남권에서도 신공항 건설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타협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부산시는 결국 ‘부산시교통정비기본계획’ 변경(2000~2001년)과 2002년 부산권 광역도시계획(2020년)을 수립하면서 정부로부터 신공항 건설 필요성을 인정받았다. 1992년 이후 줄기차게 신공항 필요성을 제기해온 결과다.

2002년 이후로는 동남권 거점공항으로 김해공항 확장이 필요하지만, 350만 평의 부지가 필요하고 주변토지의 취득 곤란, 소음발생, 지형적 제약 등으로 김해공항 이전문제가 제기됐다. 물론 이때도 90년에 검토된 창원시 대산면 등 18개 후보지와 기타 후보지가 거론됐다.

이런 가운데 2002년 4월 15일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던 중국민항기가 인근 돗대산에 충돌해 129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부산시의 신공항 요구가 거세졌다. 부산시는 한국교통연구원에 ‘부산권 신공항 개발의 타당성과 입지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김해공항의 영향권을 기존 부산·경남에서 동남권으로 확대하되 입지는 20개 후보지 가운데 가덕도가 최적이라고 결론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6년 ‘제3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 계획’과 같은 해 12월 27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부산 북항 재개발종합계획 보고 때 노무현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 차원의 검토가 공식화됐다. 이날 오찬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신정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의 건의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비공식적으로 여러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못 냈다”며 “이용섭 건교부 장관에게 이 자리에서 바로 하명해 지금부터 공식 검토, 가급적 신속하게 어느 방향이든 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공항이 현직 대통령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국가사업’이 되는 순간이었다. 노 대통령의 검토지시로 2007년 11월 나온 건교부의 1단계 용역결과에서 남부권 신공항 건설 필요성(적극 검토)이 인정됐다. 이어 2008년 3월 입지와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국토연구원의 2단계 용역이 착수됐다.

17대 대선에 출마한 이명박 후보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대구를 찾은 이 후보는 “2020년까지 신공항을 건설하는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영남 표심을 노린 공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08년 5월 영남권 5개 시·도지사는 동남권 신공항 조기 건설을 위한 공동건의문을 채택했다. 영남 5개 시·도 국장과 정부는 실무회의를 열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늘길이 열려야 한다”고 신공항 필요성을 인정했다. 2009년 10월에는 “수도권에 대응하는 제2경제권을 위해 신공항 건설이 필수적”이라며 “철저하게 경제논리로 가겠다.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무조건 실패한다”고 말했다.

MB, 백지화 사과… 박 대통령 “공약 파기 아니다”


▎6월 21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회에서 프랑스 파리공항 공단엔지니어링 (ADPi) 장 마리 슈발리에 수석 엔지니어가 연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2009년 12월 국토해양부 산하 국토연구원의 2단계 용역(‘동남권 신공항 개발의 타당성 및 입지조사연구’) 결과 부산 가덕도와 밀양 하남이 후보지로 압축됐다. 5개 시·도의 신청을 받은 결과 35곳에서 5곳, 다시 2곳으로 압축된 결과다. 후보지 압축은 영남권 5개 시·도의 최대의 현안이 되면서 유치전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이어 정부는 2010년 입지선정 위원회를 구성해 회의를 거듭하고 현장답사 등을 진행했다. 입지평가위원회도 구성해 현장답사, 지자체 의견수렴 등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과 나머지 4개 시·도는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정부는 2011년 3월 발표 때 “두 곳 모두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송구하다”며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듬해인 2012년 대선에서 후보들은 다시 신공항을 공약했다. ‘무덤’에서 신공항을 되살린 셈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2012년 11월 9일 “제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정치적 고려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 국제적인 항공 관련 전문가를 통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에 맞춰 입지 문제를 공정하게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11월 30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서 한 유세에서는 “신공항은 애초 김해공항이 2016년 포화하기 때문에 그 확장 문제로 시작된 것”이라며 “부산시민 여러분이 바라고 계신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부산시민들은 “당시 가덕 신공항 건설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발언은 TK(대구·경북)에 비해 지지세가 약한 PK(부산·경남)를 의식한 발언이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당시 박 후보의 발언 동영상은 최근 김해공항 확장 결정을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없이 떠돌았다. 이처럼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모두 선거나 재임기간에 신공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공항 유치운동이 일고 지역 갈등이 심해지자 현 정부는 지난해 6월에 1년 일정으로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에 용역을 맡겼다. 그리고 지난 6월 21일에 김해공항 확장을 결정·발표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2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기존 정부와 다른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부산시와 정부는 그동안 6차례의 검토 결과 김해공항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당장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김해공항 확장이 신공항 건설 수준이어서 공약 파기는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부산·대구로 대표되는 두 지역의 비판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정치권은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도 지역의 이해관계를 이용해 갈등을 부추겼다. 박 대통령 측근인 조원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3월 29일 대구시당 선대위 발대식에서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았다”며 ‘대구 선물보따리’ 발언을 했다. 마치 박 대통령이 신공항 입지로 밀양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부산 언론·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이다.

이날 새누리당 부산시당은 “가덕 신공항 건설로 부산을 도약시키겠다”며 조 의원 발언과 상반된 공약을 내놓았다. 같은 당에서 선거구에 따라 다른 공약을 내놓은 것이다.

야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3월 31일 부산선대위 출범식에서 “부산시민께서 더민주 국회의원 5명만 뽑아주면 박근혜 정부 임기 중에 신공항 착공을 반드시 이루겠다”며 가덕 신공항 지지발언을 했다. 문 전 대표는 6월 9일 신공항 후보지인 가덕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누리당의 비판을 받았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문 전 의원이 가덕도를 방문해 여권 갈라치기에 나선 것을 보고 그는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우린 명백히 보았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이 신공항을 놓고 여·야 구분이 PK·TK로 나뉘거나 PK 중에서도 P(부산)와 K(경남)로 다시 나뉘는 행태를 보였다.

“정부가 후보지 간 경쟁 불붙여”


신공항 입지발표가 임박했을 때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친박계로 알려진 서병수 부산시장이 밀양의 단점인 고정장애물이 평가항목에서 빠진 것을 두고 ‘보이지 않는 손’을 거론해 파장을 일으켰다. 서 시장은 앞서 2014년 2월 가덕도에서 시장출마를 선언하면서 “가덕 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경쟁후보를 꺾을 고육책으로 신공항 카드를 꺼냈다. 서 시장은 그러나 가덕 신공항 유치에 실패했는데도 사퇴하지 않았다. 약속을 어긴 셈이다.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인들의 구태로 정치·지역적 대립과 갈등은 극에 달했다. 오죽했으면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 평가 항목 중에 ‘정치 리스크’를 포함시켰을까. 이 업체의 장 마리 슈발리에 수석엔지니어는 기자회견에서 “신공항 입지선정 과정에서 정치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 없었다. 정치적인 문제는 마지막 평가항목 중 하나였고, 약 7% 비중으로 감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발언은 오히려 용역의 불공정성 제기와 불복종운동의 빌미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되돌아볼 때 이번 김해공항 확장 결정으로 정치권의 사탕발림에 민심이 놀아난 꼴이 됐다. 대통령이나 대선후보,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정치인이 앞다퉈 신공항 공약을 내걸었는데 결국 신공항보다는 기존 공항 확장이 낫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정권에 따라 대형 국책사업 결정이 번복되고 김해공항 확장이 불가하다는 정부의 용역결과가 부정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대형 국책사업의 후보지 등을 결정할 때 국익보다 표를 의식하는 포퓰리즘(Populism·인기영합주의)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포퓰리즘의 사례로는 국내 14개 지방공항이 꼽힌다. 대부분 공항수요의 적정성이나 경제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민원을 등에 업은 정치권의 결정으로 건설돼 운영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정치권의 ‘실패한 행정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시의 한 공무원은 “신공항 갈등은 이명박 정부시절 5개 시·도에 신공항 후보지 의견을 내도록 하고 경쟁을 붙인 것이 시발점이었다”며 “국책사업인 공항 후보지를 결정하면서 자치단체의 신청을 받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게 포퓰리즘 아니고 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인천공항을 결정할 때는 정부가 적지를 정한 뒤 추진해 갈등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갈등이 심한 신공항은 공항의 필요·기능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논의, 즉 합의가 먼저 이뤄지고 난 다음에 적합한 후보지를 찾는 식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김해공항 확장 결정과정에서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없어 갈등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용역을 두고 ‘깜깜이 용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부산대 엄위섭(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누구나 이해할 만한 정량적 판단근거, 즉 평가기준을 정해 명확히 공개하고 그 기준에 맞는 후보지를 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앞두고 미리 김해공항 확장 로드맵 제시해야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 신공항 유치에 실패할 경우 시장직을 사퇴한다고 약속했지만 정부 발표 이후 약속을 철회했다. 서 시장이 둘러싼 시민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치인의 국책사업 공약을 아예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국책사업감시 단장은 “비전문가인 선출직 의원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공약이 문제”라며 “선출직의 개발공약을 법으로 금지하고 법적으로 독립된 최종의결기구인 국책사업위원회(또는 공공사업위원회)가 사업 추진여부와 후보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갈등관리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대형 국책사업 유치를 놓고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지 않고 정부가 방치했다는 주장이다. 동의대 박영남(행정학과) 교수는 “영남권 5개 시·도의 합의가 있었지만 어떤 성격의 공항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고, 용역 과정에서 어떤 공항을 지을 것인지 주문하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맡기다 보니 제대로 된 용역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어렵더라도 정책 목표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숙의(熟議)민주주의를 도입해 갈등을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대선이 있다. 때문에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 발표에 따른 후속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김해공항 확장 로드맵을 제시하고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지키지 못할 신공항 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하고 사회적 갈등에 불을 지르는 정객이 활개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 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