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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의 파스텔 인생⑦]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류 원조’ 손일형 IMX 대표 

‘욘사마’ 한류 드라마 원조, ‘아이돌 마스터’로 돌아왔다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
30살, 3무(無)(한류·경쟁자·멀티플랫폼)에서 일궈낸 ‘욘사마’ 신화... 최정점에서 떨어진 나락에서 한국 드라마 최초 아마존 오리지널 시리즈 들고 귀환

▎8월 25일 서울 청담동에서 열린 ‘아이돌 마스터’ 미디어 데이에 참석한 손일형 대표. 그는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감동할 때,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공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힘들면서도 이 분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나 사람을 가리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 말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해나가는 사람이다. 반면에 시장에 새로운 것이 뜨면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이들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 부른다. 지금까지 한국은 주로 후자의 전략을 취했다.

강한 것은 중독성이 있다. 지금 K-드라마가 그렇고, K-POP이 그렇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에도 가끔 중국 유학생들이 수강하는데,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유학을 결심한 진짜 이유는 한국 드라마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별에서 온 그대>를 보고 유학 결심을 했어요. 그 속에 비친 서울의 이미지가 너무도 아름답고, 특히 한국 남자들이 멋있어서 오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습니다. <태양의 후예>는 더한 것 같아요. 김수현도 물론 멋있지만 송중기는 최고예요. 최고!”

지금이야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누가 이런 현상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까? 한류 콘텐트 사업의 거대한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낸 선도자, 즉 퍼스트 무버는 누구였나? K-POP에서 SM의 이수만 회장이 퍼스트 무버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한류 드라마에서는?

한류라는 이름의 K-드라마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 양대 기둥은 <겨울연가>와 <대장금>이다. <대장금>을 만든 이병훈 감독이 한류 사극의 새로운 포맷과 장르를 창조해낸 퍼스트 무버였다면 <겨울연가>는 어떤가? 방송의 원작이 물론 훌륭하고 배우들도 매력적이었지만, 이 드라마가 일본에서 ‘욘사마 피버(fever)’로 탄생하기까지는 한 명의 탁월한 기획력을 가진 콘텐트 사업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다양한 경험이 새로운 콘텐트 유통 모델 발굴 원천


▎2005년 일본 아사히TV의 최장수 토크쇼인 <테츠코노 헤야>에 출연 당시 배용준(왼쪽)과 손 대표(가운데). 오른쪽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쿠로야나기 테츠코(くろやなぎてつこ).
“그때는 3무(無)였습니다. 일본 내에서 한류라는 단어조차 없었고, 당연히 경쟁자도 없었으며, 그런 사업의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류 콘텐트 사업의 퍼스트 무버라 할 수 있는 손일형 IMX 대표의 말이다. 지금은 40대 중반이지만, 이미 그의 이름 속에는 ‘욘사마’, 세계적인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 미국 아마존, 세계적인 게임·애니메이션 회사인 반다이 남코(BANDAI NAMCO), ‘신의 물방울’ 같은 이름들이 함께한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그에 못지않은 좌절을 겪었으며, 또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년 전, 그의 나이 불과 서른 살 때, 그는 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했다.

“2001년 11월이군요. 제 친동생이 마침 가수 서태지의 매니저로 도쿄에서 활동 중일 때였습니다. 제 동생은 오사카 예술대학에 유학 중이었는데 일본어가 가능하고 음악이나 공연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서태지의 일본 내 공연과 활동을 전담하는 매니저가 되었지요. 저는 동생 아파트에 함께 살면서 거실에다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동생 손근형 씨는 지금도 K-POP가수들의 일본과 동남아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손일형 대표가 남들보다 일찍 콘텐트와 멀티 플랫폼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은 남다른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성균관대를 다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했다. 중간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의 명문 USC 대학에 1년 체류하는 기간 동안 가까운 할리우드를 세밀히 관찰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요코하마에 위치한 ‘오프사이드’라는 이름의 이벤트와 컨벤션 기획회사에서 2년 정도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NHK 서울지국의 기자로 옮겼다가 독립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런 경험들이 합쳐져 새로운 콘텐트 유통 모델에 눈을 뜨게 된다.

한국에서는 그저 드라마 시청률이 높아서 광고만 잘 들어오면 최고로 아는 때였고, ‘인터랙티브’ 혹은 ‘멀티 플랫폼’이라는 말조차 생소했을 때였다. 그가 당시 기획하고 만들었던 한류 콘텐트 미디어, 플랫폼 전략이 지금은 대부분의 방송사와 엔터테인먼트 회사, 콘텐트 사업자들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들로 받아들인다.

잠시 그의 회사 ‘IMX’라는 이름부터 주목해보자. I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 즉 쌍방향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MX는 일본어로 미디어 믹스(メディアミックス, Media Mix)를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의 콘텐트 소스를 여러 미디어의 형태로 확장하여 서비스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일컫는 일본식 영어 표현이다. 한국에서는 OSMU(One Source Multi Use)라는 말을 쓴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CD, 영화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해나간다는 뜻이다. MD(Merchandising)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굿즈(Goods)라 부르는 캐릭터 상품개발 개념이 한국에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회사가 있었더라면 취직했을 겁니다. 그런 회사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제 스스로 창업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텔레비전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 주목했다. 인터넷, 특히 양방향 vod 소비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로드밴드, 광대역 통신망이 깔리면서 손쉽게 동영상 시청이 가능할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일본의 방송사가 아닌 통신회사들에 한국 드라마를 공급하는 일이었다.

“회사 설립한 지 석 달 만인 2002년 2월이군요. 재팬 텔레콤 브로드밴드 동영상 테스트 서비스에 <이브의 모든 것>을 VOD로 공급했습니다. 한국 드라마 최초였습니다. 판권 계약, 자막번역, 인코딩, 이 모든 것을 모두 혼자서 해결했습니다. 인터넷은 편성이 필요 없고 영상의 질도 훌륭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에 가장 좋은 창구라고 봤습니다.”

그는 2002년 상반기에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의 일본 내 인터넷 판권을 계약해 NTT 그룹의 브로드밴드 사이트에 동영상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것을 계기로 NHK의 <경제 최 전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시아의 청년 IT벤처 사업가로 그를 밀착 취재해 방영하기에 이르렀다. 이때까지도 그의 회사는 1인 기업에 불과했다. 손일형 대표가 마침내 배용준과 운명의 만남이 이뤄진 것은 드라마 <호텔리어> 동영상 서비스를 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팬미팅을 기획했다.

“2003년 10월에 <호텔리어> 촬영지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일본인 1000여 명을 초대해 배용준과 팬미팅 행사를 가졌습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 최초의 한국배우 팬미팅이었습니다. 원래는 도쿄에서 하려고 했는데, 배용준이 일본에 이처럼 열정적인 자신의 팬들이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던 시점이라 6개월을 협의하다가 결국 서울에서 먼저 하게 된 거였죠.”

‘욘사마 피버’로 성공가도, 손정의 150억 투자 받아내기도


▎2008년 3월 배우 배용준 씨가 직접 손 대표의 사진을 찍어줬다.
손일형 대표로서는 수개월 전인 2003년 상반기에 일본인 팬들을 대상으로 ‘가을동화 투어’를 실시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이는 일본과 한국 최초로 이뤄진 드라마 촬영지 투어였고, 일본의 NHK와 한국의 KBS에서 관심 있게 보도했다. 지금 각 자치단체마다 드라마 세트를 짓고 해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의 효시였다.

그리고 <겨울연가>.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된 것은 2002년이었고 일본 NHK에서 시청자들과 만난 것은 2004년이었지만, 손일형 대표는 인터넷 VOD로 시청자들에게 먼저 욘사마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배용준의 일본 첫 방문이 시작된다. 물론 손 대표가 기획한 행사였다.

“2004년 4월, 도쿄의 시부야 공회당에서 저희 IMX가 무료로 욘사마 팬미팅을 개최했습니다. 약 2000명이 참석한 일본 내 최초의 한국배우 팬미팅이었죠. 일본 전국에서 6만여 통의 응모엽서가 왔고요. 하네다 공항에 입국하는 장면부터 다양한 배용준의 사진이 일본 내 모든 지상파 방송과 일간지의 톱뉴스를 장식했습니다. 일본에서 한류가 시작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용준을 열정적으로 그리워하다 열병으로 쓰러진다는 ‘욘사마 피버(fever)’ 현상으로 이어졌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욘사마(ようん[勇]さま)’란 배우 배용준의 이름 중 ‘∼용∼’을 따서 그를 높여 부르는 말인데, 일본인들에게 ‘용’이란 발음이 쉽지 않아 ‘욘’으로 발음하기에 생긴 호칭이다. 1만4700엔 정가에 20만 권이 넘게 판매된 배용준 사진집 전시회를 위해 배용준이 도쿄에 왔을 때다.

“배용준이 투숙한 호텔 앞에 욘사마를 보기 위해 3000여 명의 팬이 몰리는 바람에 경찰기동대가 출동하고 결국 10여 명의 팬이 구급차에 실려 갔어요. 이 모습이 일본의 NTV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됐지요. 영화 <외출>은 유니버설 재팬과 공동 배급해 240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습니다. 사이타마 수퍼 아리나에서 열린 <외출> 이벤트 행사에는 3만여 명의 팬이 몰렸습니다. 너무 많은 팬이 하네다 공항 앞에 몰리는 바람에 일본 경찰은 안전을 이유로 하네다 공항 입국을 불허했습니다. 때문에 출국할 때는 헬리콥터로 센다이 공항까지 이동했고, 나중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임대해 한국과 중국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손일형 대표의 기획력은 금방 세계적인 재일동포 사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눈에 들어온다. 손정의 회장과 손일형 사장, 두 명의 손씨는 처음 만난 지 1주일 만에 함께 서울에 온다. 방송 3사 사장을 만나고 소프트뱅크로부터 150억원을 투자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최고의 정점이 곧 최고 위기의 시작이었다. 조직폭력배 김태촌으로부터 배용준 상품을 만들 권리를 달라는 협박에 시달린 것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또 다른 폭력배 출신 사업자에게도 협박이 이어지자 그는 한동안 경호원을 데리고 다녀야 했다. 한편 배용준 측은 직접 일본에 자신의 활동을 지원할 회사를 설립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그였지만 <신의 물방울>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한 병에 200만~300만원이나 하는 명품 와인 500병을 사들여 공부하던 것도 물거품이 돼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소프트뱅크도 보다폰을 인수해 거대한 통신회사로 전략을 대폭 수정하면서 계획했던 사업전략이 백지화되었다. 미국에 설립한 지사에서 일본과 비슷한 모델로 한국 드라마 동영상 서비스와 DVD 제작 판매를 시작했지만, 불법 복제가 판을 쳐서 결국 큰 손해만 보고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그래도 박신양, 소지섭, 안재욱 등 한류 스타들의 일본 내 팬미팅과 매니지먼트를 진행하다가 이민호와 연결된다. 이민호가 <꽃보다 남자>의 주연 배우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일본 내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고 지금까지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아시아 공연의 행사 제작을 담당해왔다.

악재는 악재를 불러온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었다. 일본 내의 아베 정권의 반한 감정까지 겹치면서 일본 내의 한류 열풍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게다가 ‘엔저(円低)’ 현상까지 가속화되면서 회사의 수익은 급전직하했다. 한때 도쿄 시부야의 최고급 건물 300평에, 직원 수 80여 명에 이르렀던 일본 본사는 점차 줄어들어 지금은 20명 남짓 남았다. 서울에도 회사가 있지만 예전의 모습은 아니다.

“일본은 후지 텔레비전이 싼 가격에 한국 드라마를 구입해 높은 시청률로 재미를 보다가 극우파 데모에 밀려 한파가 시작된 것이죠. 한때 한류 거리로 유명했던 신오쿠보 거리는 지금 한산하다 못해 싸늘합니다. 많은 한국인이 업종을 전환하거나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그 자리를 중국인들이 하나둘 사들이고 있다는 소식만 들립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거죠.”

성공의 최정점에서 벼랑끝 추락… 싸늘해진 日 한류


▎소프트뱅크의 150억 투자가 백지화되고 배용준과도 결별한 벼랑끝 상황에서 만난 이민호가 <꽃보다 남자>의 주연 배우로 발탁되면서 손 대표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편으로 ‘모에츠키 증후군’이라는 말도 나왔다. 일본어로 모에(もえ)는 ‘불이 붙다’, ‘불타다’라는 뜻이고 ‘쯔기’(つく)는 ‘소진하다’란 의미인데, 한류 스타들이 단기수익에 집착해 에너지와 능력을 남김없이 모두 태워버려 이제 남은 것이 없게 된 게 아니냐는 우려였다. 장기적 안목 없는 ‘한탕주의’를 지적하는 표현이다.

그런 손일형 대표가 절치부심 끝에 최근 새로운 야심작을 들고 다시 서울을 방문했다. 전혀 뜻밖의 콘텐트 전략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게임 회사인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BANDAI NAMCO Entertainment)에서 개발한 인기 게임 ‘아이돌 마스터’를 K-POP과 결합한 ‘The IDOLM@ STER.KR’(아이돌 마스터)이라는 이름의 드라마 제작 소식이었다. 이 드라마는 아이돌을 꿈꾸는 10명의 출연자를 발탁, 드라마를 통해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걸그룹으로 성장시키는, 리얼과 픽션이 융합된 콘텐트다. 이 작품은 45분, 24부작으로 제작돼 내년 4월, 전 세계에서 동시 방영될 예정이다. 한국, 일본, 미국 3개국이 결합된 새로운 콜라보레이션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K-POP日 애니아마존 플랫폼’ 결합 드라마로 재기


▎손 대표(가운데)와 함께 ‘아이돌 마스터’ 미디어 데이에 참석한 아마존 그룹의 아시아 퍼시픽 총괄 책임자 제임스 패럴 (왼쪽)과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사카가미 요우조(오른쪽).
“이미 하나의 장르로 확고히 자리 잡은 K-POP과 한국드라마, 그리고 세계적인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여기에 저희 아마존의 플랫폼을 결합한 최고의 조합입니다.”

기자회견에서 아마존 그룹의 아시아 퍼시픽 총괄 책임자인 제임스 패럴은 이렇게 말했다. 이 발표는 즉각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 알려졌다.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는 2005년 아케이드 게임으로 론칭된 이후 X-BOX,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콘솔게임, 스마트폰 게임 나아가 애니메이션과 만화로 진화했다. 게임을 하는 유저가 프로듀서가 되어 아이돌과 소통을 하면서 육성하는 방식의 특이한 게임이다. 손 대표는 6개월 동안 반다이 남코 측과 협상한 끝에 ‘IP(지적재산권)’라 부르는 오리지널 콘텐트 사용권을 계약했다고 한다. 물론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일본 드라마가 아닌 한국 드라마다. <태양의 후예>처럼 100% 사전제작 방식이다.

“일본에서 ‘아이돌마스터’의 성우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애니메이션에 목소리로 나오는 성우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했는데, 공연 몇 시간 전부터 장사진이 펼쳐지고 좌석이 매진될 정도였어요. 한국에서도 ‘라이브 뷰잉’으로 현장이 생중계되었고, 열성 팬들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까지 온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게임, 애니메이션, 드라마, 라이브 공연까지 엄청난 확장성이 있는 콘텐트입니다. 시즌 2, 3으로 넓혀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꼭 한국의 K-POP과 결합한 한국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확장성’은 현대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특히 콘텐트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드라마는 보통 TV에서 보고 끝나지만 이 드라마는 TV에서 시작하기 전에 이미 시작되어 있고 TV가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라는 손 대표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 드라마는 과연 어느 나라 콘텐트인가? 원작은 일본이지만, 그러나 한국의 K-POP이 가미된 K-드라마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아마존을 통해 방영된다. 서로 다른 것들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콘텐트라 할 만하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다. 드라마 출연자를 선발하기 위한 과정부터 국제적이었다.

“드라마의 주연인 아이돌로 출연할 가수 겸 배우를 뽑기 위해 국제적인 오디션을 진행했습니다. 11개 국어로 공고를 했는데, 전제는 한국어 대사 소화 가능자였습니다. 18개 나라에서 지원했어요.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순이었는데, 브라질에서는 무려 30명이나 신청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루마니아와 헝가리에서도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한국인 이외에 일본, 태국, 미국 국적자가 선발됐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아마존이 수십억 원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스트리밍 서비스권을 사전에 계약한, 한국 드라마 최초의 아마존 오리지널 시리즈라는 점이다. 아마존은 미국 내에만 8000만 명에 달하는 회원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를 전 세계로 확장할 계획이다. 아마존이 어떤 회사인가. IT업계 최고의 아이콘 가운데 한 명인 제프 베조스가 창업한 회사로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해 워싱턴 포스트 신문을 인수했고 지금은 콘텐트 유통과 제작, 그리고 동영상 플랫폼 회사로 다각화하고 있다. 아마존은 넷플릭스에 맞설 가장 강력한 동영상 플랫폼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더 이상 상품을 배송하는 회사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돌 마스터’의 아이돌역 10명으로 구성된 걸그룹 ‘리얼걸스 프로젝트’ 멤버들. ‘한국어 대사 소화 가능자’를 대상으로 11개 국어로 공고한 오디션에는 18개 나라에서 지원했다. 한국인 이외에 일본, 태국, 미국 국적자가 최종 선발됐다.
손일형 대표는 중국의 유력 동영상 플랫폼 회사들과 판권 협상을 하고 있다. 다만 최근 정치·외교 문제로 중국 내의 악화된 한류 상황이 관건이지만, 이미 이 드라마의 중국판 리메이크는 중국 최대 규모의 영화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제안을 받은 상태다.

“웃음과 꿈 주는 엔터테인먼트 제작에 보람”


▎손 대표가 서울에서 반려동물로 함께 지내는 고양이 ‘투투’의 생일을 맞아 둘만의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손일형 대표는 일본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특이한 존재다. IMX가 운영하는 사이트 내의 커뮤니티에 그를 좋아하는 일본인 1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었다.

“원래 기획했던 연예인의 스케줄에 사정이 생기면서, 예약해두었던 호텔, 항공좌석을 그냥 날려버릴 수도 없어서 기획했던 게 발단이었습니다. ‘손과 함께하는 서울 투어’라는 제목으로 회원들에게 고궁, 삼계탕 집 등을 안내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다녀온 분들이 너무도 큰 감동을 받았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겁니다.”

이쯤 되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다. 지금은 활동이 잠잠하지만, 그래도 1년에 두 번, 7월 7일과 9월 24일에는 개인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7월 7일은 칠월 칠석 날, 일본인들은 양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이날 팬들과 만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9월 24일은 제 생일입니다. 아, 쑥스럽네요.”

그는 홀로 산다. 일본의 집에서는 벌써 8년째 같이 사는 ‘비비’라는 이름의 썬 코뉴어 새, 그리고 서울에 있을 때는 사무실에서 키우는 ‘투투’라는 이름의 이그조틱 고양이와 함께 지낸다. 새와 고양이가 반려자인 셈이다. ‘오타쿠’ 문화의 발생지 일본에 있기 때문일까. 그 누구 못지 않게 좋은 의미의 오타쿠 기질도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유행 따라 하기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유행에서 조금 빗나가 있는 편이 제 취향인 듯싶습니다. 한국에서는 남들이 뭔가 잘된다 싶으면 따라 하는 게 많잖아요? 노래방, 치킨집, 마스크팩 같은 것들이죠. 원래부터 남들이 한 것을 따라 하는 게 체질에 맞지 않았습니다. 한류 드라마가 한창 인기 있을 때에도 저는 남들과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 제작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사업가이면서도 예술가 같은 고집이다. “세상에는 3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연예인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우스개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다. 그만큼 연예인은 일반인들과는 너무도 다른 존재, 생활방식뿐 아니라 의식구조도 상이한 부류라는 뜻이다. 스타 의식이 누구보다도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런 만큼 무대 위와 영상 속에서 만나는 그들과 실제의 얼굴은 너무도 다를 때가 많다. 부침이 심한, 그리고 하루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콘텐트와 엔터테인먼트 사업, 그는 왜 여전히 여기에 몰두하고 있는 걸까?

“엔터테인먼트는 우리의 생필품은 아닙니다. 의식주의 기본 3대 요건은 아니죠. 하지만 우리는 공연을 보고 감동합니다.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공감을 표시합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의식주 못지않게 필수적인 제4의 요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힘들면서도 이 분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보람을 느끼니까요.”

그렇다. 힘든 사람들에게 눈물이 되고, 웃음과 꿈을 주는 일이다. 콘텐트란 ‘공감 비즈니스’다. 남과 다르게 살겠다는 그의 인생이기도 하다.

손관승 - 세한대학교 교수. MBC 기자와 베를린특파원, 국제 부장 등을 거쳐, iM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앙대학교에서도 미디어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ceonomad@gmail.com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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