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추적취재] 복마전 해운대관광리조트(LCT) 사업, 판도라 상자 열리나 

또 하나의 ‘비선실세’ 게이트? 정·관계 관계자들도 ‘안절부절’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 사진 송봉근 기자 song.bonggeun@joongang.co.kr
11월 12일 시행사 엘시티 PFV 실질적 사주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 구속… 허가과정에서의 수많은 특혜 의혹, 실체규명 때까지 정·관계 촉각 곤두서

▎해운대해수욕장 코앞인 부산시 해운대구 중1동에 건립 중인 엘시티 관광리조트 현장. 지난해 10월 착공돼 현재 전체공정률 5%를 보이고 있으며, 2019년 11월 말 완공 예정이다.
부산의 정관계·금융권·법조계 등이 떨고 있다. 폭풍전야와 같다.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에 추진되는 해운대관광리조트(LCT·엘시티) 사업 때문이다. 이 사업의 시행사인 엘시티PFV의 실질적 사주인 이영복(66) 청안건설 회장이 11월 10일 검찰에 검거되면서부터다. 이틀 뒤인 12일 구속된 이씨는 사업과정에서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상적으로는 사업이 불가능한 곳에 101층 호텔과 85층짜리 2개 동 주상복합 아파트 등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서다.

엘시티의 대주주는 청안건설로, 과거 동방주택을 운영한 이씨가 실질 사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공식적으론 시행사에서 아무런 직함이 없다. 단지 오너(owner)로 엘시티 사업 전반을 진두지휘했다. 엘시티의 한 관계자는 “시행사에서 청안건설과 이 회장의 지분은 없다”며 “비공식적으로 지분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회장이 시행사를 만들어 경영에 관여해왔다”고 밝혔다. 이른바 ‘그림자 경영(surrogate management)’이다.

엘시티 사태를 두고 부산 지역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말이 나온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 이씨의 개인 비리는 물론 이 비자금의 최종 사용처를 캐고 있다. 이씨가 500억원이 넘는 비자금 조성을 주도해 로비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비자금 규모가 1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씨가 혹시 남겼을지 모를 로비장부(리스트)와 검찰 수사결과에 정·관계 등이 촉각을 세우는 이유다. ‘이영복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엘시티 사업을 둘러싼 의혹은 전방위적으로 널려 있다.

의혹 1. 주거시설 허용과 건물 높이 제한 해제


▎시행사 엘시티의 실소유주인 이영복 청안건설 회장이 11월 12일 구속된 뒤 부산지검에서 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부산시는 2006년 11월 관광특구인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온천센터 예정지를 도시개발구역으로 고시했다. 이어 2007년 6월 호텔·콘도 같은 상업시설을 짓는 조건으로 민간사업자를 모집했다. 민자를 유치해 관광리조트를 조성키로 한 것이다. 이씨가 회장으로 있는 청안건설 등 20여 곳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따냈다.

공모조건은 주거시설과 오피스텔을 제외한 건축물은 높이 60m로 제한한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상업시설만으론 돈이 되지 않아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요구가 컨소시엄 측에서 나왔다. 부산시는 이를 받아들여 2009년 12월 도시계획 위원회를 열어 엘시티 터의 중심미관지구(부지면적의 52%)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일반미관지구로 바꿔줬다. 사업부지에 건물 높이를 60m로 제한한 해안경관 개선지침이 적용된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또 해안경관 개선지침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다. 현재의 높이 400m 이상의 건물을 허용한 것이다. 주거시설 불가능 지역에 분양이 가능한 아파트(43.9%)와 레지던스(주거형 호텔)를 넣어 엘시티가 전체 시설의 72%를 분양할 수 있게 했다. 특혜 의혹이 불거지기에 충분하다.

의혹 2. 환경영향평가 받지 않고 부지는 헐값 매각


초고층 건물을 짓기로 했지만 환경영향평가는 없었다. 부산시가 환경영향평가 기준을 건축물 연면적이 아닌 사업면적(12만5000㎡이상) 기준으로 조례에 정해놨기 때문이다. 엘시티 사업면적은 6만5934㎡. 반면 당시 서울시는 건축물 연면적으로 10만㎡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해놓았다. 부산시는 환경영향평가 미이행이 문제되자 2012년 1월 건축물 연면적 10만㎡, 50층 이상과 높이 200m이상 건물이 환경 영향평가 대상이 되도록 조례를 바꿨다.

부지를 조성한 부산도시공사가 2009년 부지를 헐값에 매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원가 2330억원인 부지 5만 3000㎡를 겨우 2333억원에 엘시티 측에 매각한 것이다. 관광리조트 조성이 공공사업이라는 게 이유였다.

주변도로 확장도 문제다. 보통 민자사업의 경우 사업자가 주변도로의 신설과 확장 뒤 자치단체에 기부채납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해운대구는 엘시티 일대의 도로 확장에 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온천4거리~미포6거리의 도로 614m를 너비 15m에서 20m(3차로→4차로)로 확장하고, 달맞이 62번길(미포 6거리~철도건널목까지 125m)을 15m에서 20m(2차로→4차로)로 확장해주기로 한 것이다. 해운대 일대는 그동안 땅값이 크게 올라 지금은 1000억원가량의 혈세가 투입돼야 확장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현직 부산시장의 연루설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10월 11일 부산지검 등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이용주(국민의당·전남 여수갑) 의원은 “헐값 매각에 난개발 등 인허가 과정에 전·현직 부산시장의 이름이 나돌고 있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고, 김한수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은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의혹 3. 은행권 거액 대출약정과 시공사 책임시공

엘시티는 2013년 10월 중국의 건축회사 CSCEC와 시공계약을 했다. 하지만 1년 6개월 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CSCEC가 공사자금 10억달러(한화 1조원) 조달에 실패한 탓이다.

국내 16개 금융기관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분양대금(사업성)을 담보로 1조7800억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결정한 것이다. PF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별다른 보증 없이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하는 기법이다.

특히 대주단 간사인 BNK금융그룹의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등 산하 금융기관은 여신위원회를 열어 1조원이 넘는 PF대출을 승인했다. 부산은행의 대출은 분양률이 좋으면 상환하는 구조였다. 부산은행은 엘시티PFV 설립당시 재무투자(18억원)를 한 주주(전체지분율 6%)다. 이에 대해 부산은행 관계자는 “사업성을 최우선으로 판단했고, 대출과 관련한 특혜나 외압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분양이 잘돼 더 이상 대출은 나가지 않는다. 엘시티 측의 대출금 횡령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시중은행은 통상 PF대출을 하기 전 시행사에 시공사의 책임준공 약정을 요구한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일방적으로 공사를 중단할 수 없는 계약방식이다. 리스크(위험)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다. 거꾸로 시공사 입장에서는 부담감을 안고 공사를 해야 한다.

엘시티는 지난 4월 20일 포스코건설과 책임준공 약정을 했다.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3위인 포스코로선 공사비 1조4000억원을 모두 BNK금융에서 대출하기로 약속해 사업 성패에 관계없이 공사만 하면 됐다.

엘시티와 대주단의 PF, 포스코건설 간 시공계약은 모두 지난해 7~8월 이뤄졌다. 두 가지가 맞물려 돌아간 모양새다. 배경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의혹 4. 외국인 투자가 가능한 투자이민제 지정


▎2019년 11월말 완공 예정인 엘시티 조감도.
엘시티는 2013년 5월 법무부의 부동산 투자이민제 지정을 받았다. 투자이민제는 엘시티가 레지던스 호텔에 중국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의혹은 10월 1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본격 제기됐다. 당시 박지원 의원(국민의당·전남 목포)은 “법무부가 엘시티의 건물 3동을 투자이민제 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엄청난 특혜”라고 주장하며 “지금까지 사례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투자이민제는 지역에 따라 5억원이나 7억원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자격(F-2)을 주는 제도다. 이어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고 5년간 유지하면 영주권(F-5)을 준다. 법무부 장관이 승인권자다. 법무부는 이어 2018년 5월 끝나는 투자 이민제 시효를 2023년까지 지난 7월 연장해줬다.

엘시티의 투자이민제 상품은 호텔(101층 1개 동) 가운데 롯데호텔이 운영할 6성급 호텔과 전망대를 제외한 22~94층(561실)의 레지던스 호텔에 유일하게 적용된다. 레지던스는 이름은 호텔이지만 분양되면서 주거가 가능한 호텔이다. 엘시티는 지금까지 이 호텔에 중국인 4명 등 외국인 7명이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는 민간이 짓는 건축물을 투자이민제 대상으로 지정한 이례적 사례다. 이와 달리 제주도, 강원도 평창, 인천 영종지구, 여수 경도지구, 부산 동부산관광단지처럼 이전까지 지정된 전국의 5곳 대상지는 모두 공공개발 성격이 강하다.

법무부는 10월 18일 보도자료에서 “투자이민 대상지역에 엘시티 건물만이 들어서는 것은 맞지만 지정과정에 어떠한 특혜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부산시가 해당 지역에 투자이민제 지정 신청을 해 현장점검과 검토, 기획재정부등 6개 관계부처 의견조회 등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쳤다는 설명이다. 투자이민제 연장조치에 대해서는 “일몰제 도입으로 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을 우려하는 부산시 등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라고 밝혔다. “엘시티뿐만 아니라 2018년 5월에 시행이 만료되는 5개 지역을 모두 조기에 연장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마디로 부산시 건의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당시 부산시는 외국인 투자유치가 필요하다는 엘시티 측 요구에 따라 국회·법무부를 대상으로 투자이민제 지정을 추진했다. 당시 엘시티 한 곳만 지정하는 게 무리가 있어 동부산관광단지를 끼워 넣었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어딘가 석연찮은 투자이민제 지정이 된 셈이다.

엘시티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2010년 이전에도 있었다. 부산참여자치연대가 주거시설로의 용도변경, 고도제한 해제 등을 놓고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감사원 감사, 행정심판 등이 있었으나 역시 문제 없다고 결론났다.

“공공개발이 아닌 공적자산 약탈한 부동산개발”


▎엘시티가 지난해 10월 공사현장에 마련한 분양사무소 문을 열자 많은 시민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양미숙(46)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당시 부산시 도시계획·건축위원회 등 전문가 집단이 무지막지한 특혜를 준 사업”이라며 “다른 지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먹구구식, 엉망진창식 사업이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20년 전 다대·만덕 택지개발 사건처럼 검찰이 제대로 비리를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일성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2년 ‘해운대 관광리조트의 도시정치학’이란 논문에서 엘시티를 ‘탐욕과 불의의 도시개발’이라고 단정했다. 공적 자산인 해운대해수욕장이 파괴될 것이라며 부동산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개발업자의 탐욕, 부산시의 불의(不義)한 도시행정, 도시계획과 건축분야 전문가들의 공모 혹은 무비판성,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와 건축위원회의 비시민성과 비공공성의 결과라고 비판한 것이다. 윤 교수는 “탐욕과 불의, 그리고 공모가 결탁한 대표적인 도시개발사업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부산시는 “2007년 당시 미개발지로 방치된 슬럼화한 지역을 관광·휴양·레저 등 사계절 체류형 관광시설로 개발해 관광산업을 견인하고 랜드마크적 상징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 시행한 사업”이라며 “도시계획위원회 개최 등 적법 절차를 거쳐 추진해 위법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의 수사는 지난 1월 김한수 동부지청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10월 11일 부산 지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엘시티에 대한 내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느냐”는 질문에 김 지청장이 “부임직후 착수했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동부지청은 7월 21일 내사 6개월 만에 서울·부산에 있는 엘시티 시행사와 이씨가 실소유주인 청안건설, 분양 대행업체와 시행사 고위인사들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엘시티의 비자금 조성 수사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압수수색 당시 시행사의 주요 직원이 출처불명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고 출근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이를 두고 부산지역 정·관계 인사와 부산을 거쳐간 판·검사 접대장부(리스트)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10월 11일, 법제사법위원회의 부산고검과 부산지검 국정감사에서 이용주 의원은 “판·검사 이름이 들어 있는 접대장부 때문에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의지를 질타했다. 이에 김한수 동부지청장은 “그런 장부는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대검 감찰부에서 장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사실관계 확인까지 하지 않았느냐”는 이 의원의 추가질문에 “그런 사실이 있다”고 지청장은 인정했다. 이 의원이 “근거도 없이 대검에서 사실관계 확인을 했겠느냐”고 묻자 김 지청장은 “실체는 확인된 게 없다”고 다시 맞섰다.

‘로비 귀재’이씨, ‘비선실세’ 최순실과 끈 닿았나?


▎부산지검 수사관들이 10월 27일 엘시티 분양사무소를 압수수색한 뒤 물품을 옮기고 있다.
이씨의 신병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것도 논란이 됐다. 검찰은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핵심인물을 차례로 불러 조사하고 나서 지난 8월 초에 소환했지만 이씨는 불응한 채 다대·만덕 사건의 17년 전처럼 잠적해버렸다. 수사정보가 샜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검찰은 이씨의 출국을 금지하고 검거전담반까지 꾸려 두 달 넘게 행방을 쫓았지만 검거하지 못했다. 국정감사에서 조응천 의원(더불어 민주당·경기 남양주갑)은 “이 회장은 다대·만덕 사건 때 2년간 도피했다. 김이 빠진 뒤 자수했다”며 “부산지검은 같은 사람에게 당하느냐”고 꾸짖었다. 노회찬 의원(정의당·창원성산)은 “이 회장이 국내에 있다면서 왜 두 달째 지명수배만 하고 있냐”고 지적했다. 이러한 질타 때문인지 검찰은 뒤늦게 10월말 수사인력을 기존 동부지청 수사팀 검사 3명 외에 부산지검 특수부 검사 4명, 수사관 등 모두 30여 명으로 확대개편하고, 이 씨를 공개수배했다.

검찰은 지난 8월 허위용역과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5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사기·횡령 등)로 시행사 자금담당 임원 박모(53) 씨를 구속기소했다. 이씨의 충복으로 알려진 박씨는 2006년부터 올 2월까지 엘시티 사업을 하면서 건축설계 등을 했다며 금융기관을 속여 PF자금 320억원을 대출받고, 직원으로 근무한 것처럼 조작해 회사자금 200억원을 빼돌리는 등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의 공소장에는 박씨와 이씨가 공모해 사기·횡령 등 불법적으로 취득한 금액만 530억원에 이른다고 돼 있다. 검찰은 이씨가 비자금 조성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 9월, 엘시티 설계비 125억원을 빼돌린 혐의(사기)로 설계회사 대표 손모(64) 씨를 구속기소하고, 손씨와 공모한 설계회사 전 대표 김모(61) 씨를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은 전체 설계비 480억원 가운데 125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을 받고 있다.

11월에는 이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 경리담당 전모(40) 씨를 구속했다. 지난 10월, 이 회장에게 대포폰 10여 대를 제공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억대의 돈을 차명계좌에 넣었다가 빼는 수법으로 자금세탁을 해제공한 혐의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유흥주점 사장 이모(45) 씨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뒤쫓고 있다. 문제의 유흥주점은 이씨와 정·관계 인사가 자주 출입했다고 종업원이 증언한 곳이다.

검찰은 사기와 횡령, 주택법 위반 혐의로 엘시티 분양대행사 대표 최모(50) 씨도 구속했다. 최씨는 엘시티 분양과정에서 소위 ‘작전’이라고 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분양률이나 프리미엄을 조작하고,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동안 검찰 주변에서는 부산지역 국회의원, 자치단체 고위인사, 청와대 관계자, 검찰 간부의 이름 등이 거론돼왔다. 이번 수사의 성패가 이씨가 정·관계 인사 등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밝히느냐 여부에 달렸다는 뜻이다.

핵심 피의자인 이씨의 혐의에 대해 검찰은 수백억 원의 자금 횡령과 대출사기로 밝혔다. 이씨는 건설업계 등에서는 ‘씀씀이가 큰 마당발’로 통한다. ‘로비 귀재’로도 알려져 있다. 왜소한 체구에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부산경제를 쥐고 흔들었다는 뜻에서 ‘작은 거인’이란 별명도 얻었다. 때문에 “이씨에게서 대접을 받지 못하면 부산에서 잘나가는 인사가 아니다”라는 웃지 못할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건설업계의 한 60대 관계자는 “노는 물이 다르다. 소위 큰 손, 마이다스”라고 했다. 그는 “그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 없다. 만나서 손해볼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초 이씨에게 사업제안을 했던 한 50대는 “사업설명이 끝나고 집에 가려니까 자기 차로 집까지 태워주더라. 엘시티의 한 임원은 이씨를 ‘디벨로퍼(개발사업자)로는 이찌방(최고)이라 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밑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씨가 청와대 ‘비선실세’ 최순실(60)과 끈이 닿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더불어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11월 4일 당 회의에서 “엘시티 시행사의 500억원대 비자금 조성에 최순실 씨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개입한 의혹이 있다”면서 “이 사건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알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최순실 씨와 언니 최순득(64)씨, 유력 재벌인사와 사업가 등 20여 명과 친목계를 해왔다는 보도(조선일보 10월 2일자)도 있다. 신문은 “한 계원이 ‘수배 중인 이영복 회장도 곗돈을 냈다’고 덧붙였다”고 전했다. 계원들이 매달 붓는 곗돈은 1000만~3000만원대였다고도 했다. 연합뉴스는 11월 2일자에서 부산의 한 건설업자 말을 빌려 “강남 재력가들이 주축이 된 계모임에 가입했다는 얘기를 이영복 회장 본인에게서 들은 바 있다”는 보도를 했다.

이러한 의혹 때문에 이씨가 최씨를 통해 분양률을 높이고 구명운동을 벌였을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11월 10일 체포된 뒤 기자들에게 최순실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검찰도 이씨 검거 뒤 “확인된 바 없지만 조사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산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의혹 사건’의 장본인

검찰에 검거된 이 회장은 1998년 ‘부산판 수서사건’으로 불리는 부산 다대·만덕지구 택지전환 사건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추미애 의원(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수많은 정·관계 인사가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됐다.

당시 동방주택 대표이던 이씨가 1993년부터 96년 2월까지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임야(자연녹지) 42만2000여㎡를 사들여 자연녹지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일반주거용지(대지)로 용도변경 받은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당초 임야를 보존하기로 했던 다대지구를 부산시가 ‘택지난 해소’ 명분으로 용도를 바꿔준 것이다. 1997년 부산시는 이 지구에 아파트 사업을 승인하면서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고 고도제한 규정도 어겨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로비설과 함께 정관계 유력인사의 압력설이 난무했다. 당시 부산시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특혜의혹과 로비설이 지적됐다. 그러던 중 1999년 11월 수배령이 떨어지자 이씨는 도피했고, 2년여 만에 자수했다.

이씨가 자수하면서 “부정한 돈을 받은 인사들이 떨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씨는 끝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씨는 배임·횡령 등 9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벌금 20억원을 선고 받았지만 2002년 10월 있었던 항소심에서 상당수 혐의가 무죄판결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정치권 로비 혐의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지역에서는 “이 회장은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돈을 받아도 뒤탈이 없다”, “형을 다 살고 나오면 다시 사업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지난해 10월 분양을 시작한 엘시티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6가구 중 2가구(320㎡, 97평형)는 분양가가 67억6000만원으로 평당 7000만원을 넘었다. 당시까지 역대 분양 아파트의 최고가나 다름없었다. 아파트는 가구당 분양금액이 총 17억~63억원으로 초고가였지만 평균 경쟁률 17.8대 1, 최고경쟁률 68.5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청약경쟁이 치열했다. 펜트하우스 2가구(244.61㎡형)의 경쟁률은 무려 68.5대 1을 기록했다. 엘시티 레지던스(주거형 호텔, 561실 113~205㎡)도 3.3㎡당 평균 분양가 3107만원으로, 전체 분양금액이 14억 3000만원부터 33억3400만원이나 됐다. 이 레지던스에는 중국인 4명 등 외국인 7명이 투자했다고 엘시티 측은 최근 밝혔다.

엘시티의 한 이사는 최근 “11월 중순까지 분양률은 아파트가 87%, 레지던스가 48%수준”이라며 “검찰 수사가 아니었으면 레지던스는 60~70% 분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하고 있으며, 계약해지는 거의 없고 분양자 피해도 없다”고 덧붙였다. 엘시티의 건물 공사는 현재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상복합 아파트인 B동은 20층, A동은 10여 층, 호텔이 있는 랜드마크 건물도 10여 층까지 올라갔다. 엘시티는 오는 2019년 11월말 완공될 예정이다.

-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 사진 송봉근 기자 song.bonggeun@joongang.co.kr

201612호 (2016.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