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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추적] 돈스코이호 사기 사건 顚末 

150조원 보물선 소동에 역사의 진실은 묻혔다 

고성표 중앙일보 탐사팀장
보물선 의혹 주범은 7년 전 해외 도피한 기소중지자 가족·감방 동기들과 함께 벌인 사기극 가능성 높아…고종 황제와 돈스코이호의 역사적 만남 복원해야

100여 년 전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가 2018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 해외 도피범이 막후에서 돈스코이호 관련 사업을 주도하면서 주가 조작, 가상화폐 투자 사기 등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대박의 꿈을 좇아 이 사업에 투자했다. 이러는 사이 돈스코이호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돈스코이호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현재적 메시지를 추적했다.


▎러시아 함선 돈스코이호는 1905년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이 배 속에 150조원 상당의 금괴가 들어있는지에 관한 역사적 증거는 없지만 적잖은 사람은 보물선이라는 환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 사진:신일그룹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를 둘러싼 보물선 논란이 주가 조작, 가상화폐 사기 의혹 등으로 번지며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150조원 상당의 금괴를 싣고 있는 돈스코이호를 인양만 하면 대박을 안겨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박의 꿈은커녕 한 편의 영화 같은 거대한 사기극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돈스코이호 자체가 문제였을까? 바다 밑 돈스코이호의 존재는 지난 20년 동안 수차례 탐사를 통해 전설이 아닌 실존하는 군함으로 이미 확인됐다. 허상이 아닌 실체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열광한 이유일 게다. 실제로 막대한 금괴가 실려 있을지 아닐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돈스코이호에서 보물이 발견되더라도 그 가치는 150조원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또 다른 쪽에서는 돈스코이호 자체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군함이기 때문에 인양을 시도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둬야 한다고도 한다.

문제는 돈스코이호가 아니라 인간의 과도한 욕망에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을 교묘히 이용한 사람들이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은 얼마 전까지 싱가포르 신일그룹의 회장이던 류승진(43)씨다. 류씨의 행보를 살펴보기 전에 이번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돈스코이호 사업과 관련해 등장하는 업체들의 역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모두 ‘신일’이라는 이름을 쓴 탓에 처음부터 이 사건을 눈여겨 보아 왔던 이가 아니라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신일그룹,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싱가포르 신일그룹이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회사들이다. 이 세 회사는 신일그룹이라는 명칭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설립 일자가 조금씩 다르고 회사의 등기이사와 대표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회사에 관계된 인물들을 추적해 보면 가족과 지인 등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리고 이 세 회사를 막후에서 움직인 한 인물이 바로 앞서 언급한 류승진씨다. 류씨는 유지범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싱가포르 신일그룹의 회장으로 활동해왔다. 이 세 회사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돈스코이호 탐사와 인양을 추진해 온 회사는 서울 여의도에 본사가 있는 신일그룹이다. 불과 석 달여 전인 지난 6월 1일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신생회사다. 이 회사의 대표는 류상미(48)씨다.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7월 26일 대표를 최용석이라는 인물로 교체하고 회사 이름도 신일해양기술로 바꿨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래의 이름인 신일그룹으로 언급하기로 한다. 신일그룹은 외국인 탐사 전문가들과 유인잠수정을 동원해 울릉도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 탐사를 진행해 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회사 대표였던 류상미씨가 바로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류승진씨의 친누나라는 사실이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이하 국제거래소)는 지난 4월 9일 자본금 6억원으로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설립된 회사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신일골드코인이라는 가상화폐 투자자를 모집하는 역할을 해왔다. 신일골드코인은 어떤 기술을 담고 있는지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 등 가상화폐라면 당연히 공개돼야 할 백서조차 없는 가상화폐다. 투자자들은 오직 150조원 상당의 보물을 싣고 있다는 돈스코이호를 인양한 뒤 100배 이상의 이익을 볼 수 있다는 회사 측의 설명만 믿고 코인을 구입했다. 회사 대표는 A씨다. A씨는 돈스코이호와는 관련이 없는 또 다른 사기 사건에 연루돼 지난 7월 6일 재판을 받고 법정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회사는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 회사인 싱가포르 신일그룹이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현지에 주소를 두고 설립됐다. 등기부등본상으로는 납입 자본금이 불과 1싱가포르달러(820원) 정도다. 이 회사 등기이사는 유지범(류승진의 가명)을 비롯한 세 명이다. 류씨 외에 나머지 두 명은 싱가포르 영주권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 두 사람은 법인 설립을 대행한 업체가 형식적으로 지정한 이들로 실제로는 회사 사업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다. 한마디로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류승진씨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셈이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이 신일골드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회사고 국내에서 투자자를 모집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공항동에 설립된 국제거래소다.

의정부교도소 감방 동기들의 사기극?


▎침몰 후 100년이 흐른 2018년 여름, 해저에 잠겨 있던 돈스코이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살펴본 이 세 회사는 모두 류승진씨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취재 결과 류씨는 국내에서 10여 건의 각종 사기 사건 등에 연루돼 수년 전 해외로 도피한 인물로 드러났다. 해외에 있으면서 가족과 지인들을 앞세워 막후에서 돈스코이호 관련 사업을 총괄 기획하고 주도해 온 것이다. 류씨는 국내에 있을 당시 주로 부동산 투자, 재건축조합 관련 사업 등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돈을 갈취했고 10년 전쯤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다고 한다. 출소 후에도 비슷한 일들에 연루되면서 그는 7년 전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한국을 떠났다.

류씨를 잘 아는 한 인사에 따르면 그가 유지범이라는 가명을 써 온 것은 자신이 연루된 사기 사건의 공범이 구속된 후부터였다고 한다. 이 인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난해 류씨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 그가 연루된 사건이 하나둘이 아니라 ‘이제 이상한 일 좀 그만하고 제대로 살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이름을 왜 바꿨느냐’고 물었더니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큰 거 한탕 할 것이어서 이름을 유지범으로 했다’고 말하더라. 너무 어이가 없었다. 보물선 사업으로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할 줄은 몰랐다.”

류씨의 또 다른 지인은 “과거 의정부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알게 된 동료 수감자들을 이번 보물선 사업에 끌어들인 것으로 안다”며 “과거 전력을 문제 삼아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보물선 사업 진행 과정을 보면 전형적인 사기꾼들의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류씨는 현재 베트남 호찌민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취재진은 베트남에서 류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한 측근으로부터 흥미로운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류씨와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그의 증언이다.

“류씨는 기소중지자 신분이기 때문에 수년 전부터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젊은 여성과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류씨는 자신의 여권 기한이 만료돼 상당히 곤혹스러워 했다. 자신의 측근 두 명을 베트남으로 각각 불러 위임장을 써 주고 여권 기한 연장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했는데 잘 안된 것으로 안다. 류씨가 싱가포르에 있다느니 라오스에 있다느니 얘기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베트남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류씨는 베트남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일’을 도모했다고 한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바로 가상화폐였다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류씨는 평소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관심이 많았다. 돈스코이라는 보물선 테마와 가상화폐를 결합시킨 게 바로 신일골드코인인 셈이다. 기소중지자로 해외 도피 중인 류씨 자신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내세워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세운 사람이 자신의 친누나, 의정부교도소 감방 동기, 과거 여러 투자 사업에 함께 참여했던 지인들인 것이다.”

이 측근의 설명이 맞다면 이번 돈스코이호 관련 여러 의혹 사건은 한마디로 기소중지 자인 해외도피사범이 가족과 지인을 앞세워 진행한 한 편의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사업 과정을 따져보면 그의 설명이 설득력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찰 역시 류씨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으며 계좌 추적을 통해 자금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우선 돈스코이호 탐사를 주도해 온 신일그룹의 류상미 전 대표는 ‘바지사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즉, 류씨가 자신을 대신해 친누나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것이다. 류씨는 또 류상미 씨를 앞세워 상장사인 제일제강의 지분을 인수하도록 했다. 보물선 탐사를 진행하는 신일그룹의 대표가 제일제강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돌자 제일제강의 주가는 치솟게 된다. 경찰은 류씨가 적당한 상장사를 물색해 지분 인수를 하도록 하고, 동시에 신일그룹이 진행하는 보물선 탐사 테마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만들어 우회상장의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꾸민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류씨의 한 측근은 “류상미씨는 인천에 거주하는 주부이자 부업으로 보험설계업을 하는 인물로 동생인 류승진의 부탁으로 자신의 명의를 빌려준 것”이라며 “돈스코이호 관련 사업과 회사 경영 등을 위해 류상미씨가 회사에 출근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일제강 지분 인수도 류씨가 누나를 시킨 것”이라며 “계약금만 납입한 뒤 의혹이 불거지자 중도금 납입은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사실 류씨 측 입장에서는 제일제강을 실제로 인수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미 보물선 테마로 제일제강 주가를 띄운 뒤 시세차익을 본 후라면 굳이 제일제강을 인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제일제강 인수와 관련해 한 내부 제보자는 “류씨 측 인사들이 5~6월경 제일제강공업㈜의 주식을 저가(1500~2000원)에 매집한 뒤 7월 중순 보물선 발견 뉴스로 장중 5400원까지 주가가 폭등할 즈음 상당한 시세차익을 보고 주식을 판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폭로했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는 금융당국이 이미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1인 2역, 3역까지 하며 정체 감춘 회장님


▎영화 [마스터]에서 이병헌은 개미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등장한다. 돈스코이호 사건의 기획자로 드러나는 류승진 전 싱가포르 신일그룹 회장도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 사진:CJ엔터테인먼트
류상미씨와 관련해 신일그룹 측은 이미 언론을 상대로 공공연히 거짓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7월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신일그룹은 언론을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회사 측 관계자는 류상미씨가 제일제강 지분인수에 나서게 된 것과 관련해 “류상미씨가 건설업에 투자하고 싶다며 관련 업계에 컨설팅을 의뢰해 제일제강을 소개받았다”며 “신일그룹과는 상관없이 류상미씨 개인이 투자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류상미씨는 경찰에 자신은 내용을 잘 모르고 있으며 동생(류승진)이 부탁해 와 시킨 대로 한 거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류씨가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철저히 자신의 과거와 신분을 속였다는 사실도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류씨가 가명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과거 자신이 알던 지인들의 이름을 빌려 1인 2역, 3역까지 하며 언론과 투자자들을 속여 왔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한때 류씨와 동업자 관계였다는 C씨의 얘기다.

“류승진은 상황에 따라 이름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스스로가 그룹의 홍보담당자, 법무팀장의 역할도 해왔다. 신일골드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발행해 투자자들을 모집하면서 내세운 홍보팀장 ‘박성진’은 실제로는 류씨 본인이었다. 박성진이라는 사람은 류씨가 오래전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던 사람의 이름과 동일하다. 류씨는 박성진 팀장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사 기자나 PD, 일반 투자자들과 통화하며 사업 홍보와 투자자 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오랫동안 해외 도피 생활을 하고 있어 류씨의 측근과 극소수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를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이런 속임수가 통했다”

류씨의 이 같은 대담한 사기 행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에 대한 언론의 의혹 제기가 계속되자 류씨는 회장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룹의 회장으로 내세운 인물은 ‘송명호’라는 사람이다. 최근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투자자들을 안심시킨다는 명목으로 송명호 회장 명의의 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다. “언론의 의혹 제기는 사실무근이며 가상화폐 사업은 정상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 환불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절차에 따라 환불 신청을 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또 지금은 폐쇄된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8월 말 싱가포르에서 투자 설명회와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9월 중순 국제거래소에 신일골드코인을 상장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경찰이 관련자들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한 이후에도 싱가포르 신일그룹의 이러한 해명은 계속되고 있다.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지난 8월 9일 송명호 회장 명의로 투자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돈스코이호 인양은 앞으로 싱가포르 신일그룹에서 직접 진행하며, 관계 당사국에 공동인양 공식 요청 등을 통해 소유권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며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양 허가 신청을 접수할 계획이며, 관계 당사국 학자, 교수와 관련자 분들도 초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 회장의 메시지에는 또 암호화폐인 신일골드코인과 관련해 “해외 서버 이전 및 새로운 홈페이지·거래시스템·백서 등을 15일 이후 순차적으로 공개하겠다“며 “자체 상장 및 해외 상장은 9월 초중순까지 차질 없이 진행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면서 “사업을 함께 추진할 해외법인과 한국법인도 추가로 설립하겠다”고 덧붙였다. 언론의 의혹 제기와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지만 상당수 투자자들은 여전히 이러한 회사 측 설명을 믿고 있다. 송명호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취재진은 류씨의 측근 인사로부터 송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류씨가 자신의 후임 회장으로 내세운 송명호라는 사람은 미국에 사는 교포로 알고 있다. 송씨는 가상화폐 등 돈스코이호 관련 사업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류씨가 무단으로 송씨의 이름을 빌려 새 회장이라고 한 것이다. 한마디로 송명호 회장은 가짜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송씨는 류씨와 오히려 악연으로 얽혀 있는 사이다. 2016년 류씨가 측근을 시켜 동아건설 인수에 나선 적이 있다. 이때 정보이용료(수수료)로 필요한 돈 1600만원을 송씨로부터 빌린 것으로 안다. 나중에 류씨 일당에게 속은 사실을 안 송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는데 일부만 돌려받고 대부분은 날렸다. 송씨가 류씨 등을 경찰에 사기로 고소했는데 류씨의 측근만 처벌받고 베트남에 있는 류씨는 기소중지가 됐을 뿐 처벌을 피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류씨가 왜 송명호라는 이름을 내세웠는지 황당할 뿐이다.”

보물선 가상화폐 투자금 유흥비로 탕진?


▎류승진은 돈스코이호를 이용해 신일골드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통한 부의 축적을 시도했다. / 사진:신일그룹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류씨는 자신으로부터 금전적 피해를 입은 사람을 자신의 후임 회장으로 내세우는 엽기적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류씨의 과거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류씨는 인감과 도장 위조에 상당히 능한 인물이라고 한다. 또 IT와 컴퓨터그래픽 분야에도 전문가적 실력을 지녀 맘만 먹으면 디지털 위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가 국내에 있을 때 주로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행세해 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10년 전 류씨는 해외 부동산 투자 명목 등으로 투자자들로부터 1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아 가로챘다. 이 사건으로 류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런 사기 행각이 가능했던 것은 평소 류씨가 자신을 해당 전문가로 치밀하게 포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2004년 해외 부동산 투자 관련 책을 펴낸 적이 있다. ‘(혼자만 알고 싶었던) 해외 부동산 투자법’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해외에서 다양한 건설사업을 한 경험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해외 사업 과정에서 조사한 자료와 현지 방문에서 느낀 점 그리고 투자 진행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 등을 토대로 베트남·중국·미국 등에 성공적으로 투자하는 비법을 책에 담았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류씨의 한 지인은 “해외 건설사업을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비슷한 다른 책과 자료들을 보고 짜깁기한 뒤 책으로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인은 “류씨의 인생 전체가 사기 인생이라고 말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돈스코이호 사업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해온 여러 인물들도 류씨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비슷한 사기 경력을 가졌다. 앞서 언급한 국제거래소 대표 A씨는 2014년 중동 지역 투자를 목적으로 1억5000만원을 받았다가 사기 혐의로 고소당해 지난 7월 6일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류씨는 국내에서 암호화폐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책임자 역할을 A씨에게 맡겼다고 한다. 신일그룹의 등기이사 중 일부도 사기 등 각종 범죄에 연루돼 처벌받은 바 있다. 이 회사 등기이사이자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김모(51)씨는 과거 사기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다. 이때 류씨와 감방 동료로 만나 알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이번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류씨에게 신일그룹(신일해양기술)의 현재 대표인 최모씨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 역시 과거 사기 등에 연루돼 대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된 사건만 최소 3건인 것으로 확인된다. 경찰은 교도소 수감 전력이 있는 이들이 류씨를 중심으로 돈스코이호 관련 사업을 주도하며 한탕 크게 해먹으려 공모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경찰은 가상화폐 투자 규모와 투자금의 사용처 등을 계좌 추적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투자자는 10만이 넘었고 500억~600억원의 투자금이 국제거래소 법인 통장, 이 회사 대표 A씨의 개인 통장 등에 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투자금 중 일부를 류씨 일당들이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도 나온다.

내부 제보자에 따르면 투자금은 주가 조작에 이용된 것으로 알려진 제일제강 지분 인수 계약금과 돈스코이호 탐사 비용 외에도 관련자들이 무단으로 돈을 인출해 여기저기 써 왔다고 한다. 한 내부 제보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투자금이 회사의 법인 통장 외에 특정 개인 통장으로 관리돼 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정상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투자금을 자신들이 관련된 사건의 변호사 비용, 알고 지내는 여성의 생활비, 유흥비, 활동 자금 등의 명목으로 마구 써댔다는 점이다. 이렇게 개인들이 사적으로 쓴 돈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5억~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들었다. 모든 자금의 집행은 베트남에 있는 류씨가 최종 승인을 해준 것으로 안다.”

제보자에 따르면 류씨는 베트남에 있는 자신의 친형 계좌를 통해 투자금의 일부를 이체 받아 온 의혹도 있다고 했다. 류씨의 친형 역시 베트남 호찌민에서 수년 전부터 유흥업소를 운영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류씨의 친형은 한달 전쯤 기존에 운영하던 유흥업소 외에 거액을 들여 가라오케를 하나 더 열었다고 한다. 이 가라오케를 여는 데 들어간 돈이 가상화폐 투자금의 일부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류씨의 한 측근은 “류씨가 해외에서 거액의 돈을 한꺼번에 인출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금의 상당부분은 국제거래소 법인 계좌에 묶여 있는 상태일 것”이라면서도 “매일 조금씩 자신의 친형 계좌로 투자금을 이체해 모은 돈으로 가라오케 오픈 비용을 댔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돈스코이호 관련 사업에 직접 가담한 인사들뿐 아니라 류씨 가족들의 금융계좌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류씨의 신병 확보를 위해 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령을 내린 상태다. 경찰에 소환된 관련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들은 류씨와 상관이 없으며 정상적으로 돈스코이호 탐사와 인양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씨가 붙잡혀 국내에 압송돼야 이번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돈스코이호는 2003년에 이미 발견됐다”


▎2003년 돈스코이호를 이미 발굴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해양기술원의 유해수 박사.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 탐사 작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신도 류씨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입장을 전해 왔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신일그룹과 정상적인 용역 계약을 맺고 돈스코이호 탐사에 나섰다”며 “하지만 주가 조작과 가상화폐 투자 사기 의혹으로 불똥이 튀면서 사업이 중단돼 탐사에 참여한 기술진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초 용역 계약 금액을 다 받지도 못해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도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 이번 돈스코이호 탐사가 이루어진 초기 과정도 경찰 수사를 통해 면밀히 밝혀야 할 부분이다. 신일그룹 측은 과거 2003년 한국해양기술원의 유해수 박사팀이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한 것은 진짜 돈스코이호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 자신들이 발견한 배가 진짜이므로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게 되면 그 소유권은 신일그룹 측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해양기술원 측은 신일그룹 측 인사들이 과거 탐사 자료와 정보 일부를 무단으로 빼돌린 뒤 이를 바탕으로 단시간 내에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신일그룹 측은 돈스코이호 발견 경위와 관련해 “러시아와 일본 측의 전사기록 등을 바탕으로 돈스코이호 침몰 위치를 특정하게 됐고, 유인잠수정을 내려 보낸 지불과 얼마 되지 않아 운 좋게 돈스코이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양 전문가들은 신일그룹 측의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과거 한국해양기술원이 공개한 사진과 동영상을 신일그룹 측의 탐사 동영상 등과 비교했을 때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발견된 배는 동일한 돈스코이호가 맞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번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돈스코이호 탐사와 인양이 진행돼야 한다. 그것은 돈스코이호에 막대한 금괴가 실려 있어서가 아니다. 돈스코이호는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의 입장에서도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러시아 역시 전쟁에서 잃은 군함은 군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신성한 보물이다.”

보물선 관련 논란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기자가 접촉한 주한러시아대사관 측이 내놓은 답변이다. 대사관 측이 언급한 ‘전쟁에서 잃은 군함’은 다름 아닌 울릉도 저동 앞바다 수심 400여m 아래에 잠들어 있는 돈스코이호를 지칭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돈스코이호에 150조원 상당의 금괴가 진짜 실려 있는지 여부에 온통 대중의 관심이 쏠렸지만, 러시아 정부와 국민들에게 돈스코이호는 자국 해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돈스코이호를 ‘러시아의 거북선’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돈스코이호는 러일전쟁 당시 해전에 참전한 사실 외에도 100여 년 전 열강에 둘러싸여 우여곡절을 겪던 우리 역사의 한 장면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시각이다.

“한국과 러시아 정부가 인양 덮었다” 주장도


▎1. 돈스코이호의 역사는 곧 고종 황제의 아관파천 등 구한말 쇠락의 역사와 중첩돼 있다. / 2.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돈스코이호 인양에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2015년 나온 [러시아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와 고종]이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을 보면 돈스코이호는 단순히 전쟁에 참여한 일개 러시아 군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국립해군성문서’에는 러일전쟁 발발(1905년) 17년 전인 1888년 첫 극동항해에 나선 돈스코이호는 함장 등이 고종을 알현한 기록이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1888년 4월 4일 오후 2시 돈스코이호 함장 일행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극동함대 사령관 슈미트 중장 등과 함께 경복궁으로 가서 고종을 만났다. 이때 슈미트 중장은 고종의 윤허를 얻어 돈스코이호 함장 일행을 소개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고종과 돈스코이호의 인연은 다시 8년이 흘러 1896년 아관파천으로까지 이어졌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이어 명성황후를 시해(1895년 을미사변)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고종은 일본과 조정 내 친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인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뤄진 것이 아관파천이었다. 당시 제물포항에 정박해 있던 돈스코이호는 역시 러시아 군함인 아드미랄 코르닐로프호 등과 함께 소속 수병들이 고종을 호위했다고 한다. 일본은 즉각 러시아공관 앞으로 병력을 파견해 러시아 측 수비병과 대치하며 고종의 환궁을 요구했지만 고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돈스코이호의 병력이 포함된 러시아 수병들이 고종이 머무는 러시아공관의 수비를 책임졌다는 것이 이 논문의 연구 결과다. 이 논문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소속 이호윤, 유해수 연구원이 공동으로 집필해 서울대 러시아연구소의 2015년 논문집에 실렸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돈스코이호는 1905년 5월 27일 일본 함대와 결전을 벌이다 이틀 후인 29일 울릉도 앞바다에 스스로 침몰했다.

과연 일각의 주장처럼 돈스코이호가 침몰하기 전 러시아 함대 소속으로 회계함 역할을 하던 나히모프호에서 막대한 금괴와 금화를 옮겨 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한 명확한 사료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증언과 추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실제로 돈스코이호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사실 여부를 알 수 있겠지만 설사 돈스코이호에서 금괴가 발견되지 않는다 해도 앞서 살펴본 격동의 구한말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돈스코이호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군함임에 틀림없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정치권 인사는 이번 돈스코이호 사건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얘기를 들려줬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 한국을 찾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돈스코이호 인양에 큰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당시 동아건설이 진행하던 이 사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세간에는 동아건설이 자금난에 시달려 탐사를 끝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한국과 러시아 정부 간 비공식적 조율을 통해 돈스코이호 탐사와 인양 사업을 접기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이제 남북 관계 개선과 새로운 동북아 시대의 전환기를 맞아 돈스코이호는 러시아 정부와 우리 정부가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 소재다. 150조원 금괴의 존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양국이 협력해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재평가하는 과정 속에서 남·북·러 3국은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될 수 있다.”

과연 돈스코이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인간의 탐욕에 가려져 보물선으로만 그려져 온 돈스코이호가 새롭게 평가받는 날은 올 수 있을까. 아직 돈스코이호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 고성표 중앙일보 탐사팀장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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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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