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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중국은 공포의 ‘쌍규처분’으로 부패공무원에게 철퇴 

최순실 전방위 국정농단에 감사원은 뭘 했나 

강효백 경희대학교 국제법무대학원 교수(중국법 전공)
중국은 당내 조직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감사기관 하나가 군작전과도 같은 ‘부패와의 전쟁’ 총지휘…준사법권과 국무총리에 준하는 권한 부여하는 등 감사원 활성화해 권력형 비리척결의 최전선에 세워야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국가를 패망으로까지 인도한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와 맞물릴 때는 더 위험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초대형 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검찰을 바라본다. 그러나 부패 방지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국가기관이 있다. 바로 감사원이다. 감사원 기능을 제대로 살려야 대형비리를 사전 예방할 수 있다.


▎2016년 10월 10일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진태(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간사(왼쪽)와 대화하고 있다.
만리장성은 만리장벽이다. 성을 쌓은 주된 목적이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벽이었다면 만리장성은 사실상 만리장벽이 아니겠는가. 만리장성의 제1의 존재의의는 국방이었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단 한 차례도 제구실을 한 적이 없었다. 진시황, 한무제, 수양제, 명태조 등 역대 황제의 심혈과 기대에 조금도 부응하지 못하고 번번이 뚫리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기실 성 밖의 외적들은 고생스럽게 높은 장벽을 타고 넘을 필요도 없었다. 화살에다 성 안의 지휘관에게 보내는 서찰과 금은보화를 매달아 장벽 안으로 한두 번 쏘아주면 성문은 십중팔구 열리게 되었다. 그게 아니면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지도 않았는데 성문은 21세기 첨단 자동문처럼 스르르 저절로 열리곤 하였다. 이런 귀신도 곡할 신비현상은 자연과학적이 아닌 사회과학적 미스터리에 해당되겠다.

고위층의 부정부패로 군대가 사기를 잃고 정부가 민심을 잃었을 때는 아무리 튼튼한 천혜의 요새라도, 아무리 굳건한 만리장성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진리를 역사가 누누이 증언해주고 있다. 그렇다. 반만년 중국사의 강물 굽이굽이에는 부정부패라는 이름의 폭포가 있다. 기원전 3000년경 하(夏)나라 시대부터 기원후 20세기 전반기 국민당의 중화민국까지의 시대별, 왕조별 마감 근처에는 반드시 부정부패의 거센 물살에 겨워 깊게 급전직하하는 폭포가 있다. 그게 제국이든 공화국이든 예외가 없다. 부패삼매경에 빠진 권력층은 백성이 초근목피도 없어 마침내 자기 자식까지 바꿔 잡아먹든 말든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지, 머저리들” 식으로 응대하다가 자신도 국가도 모두 파멸의 천길 폭포수 아래로 떨어져갔다.

청나라 건륭제 시대의 태감(太監: 환관의 우두머리) 화신(和珅)은 매일 은 1만 냥짜리 환약을 복용했다. 당시 지방의 한 탐관오리가 낙타의 육봉요리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 10마리의 낙타를 잡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지 100년도 못 되어 대청제국은 망했다. 공산당에 비해 월등한 군사력을 지녔던 중화민국이 대륙의 250분의 1도 안 되는 대만 섬으로 패퇴한 원인도 군 작전능력 저하가 아니라 고위층의 부패였다.

“부패만이 중국을 망국의 길로 이르게 할 수 있다”


▎2012년 6월 6일 중국 공산당의 군기반장 격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장이 상하이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99% 민초들 때문에 망한 나라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망국의 공통분모는 1% 고위층의 부정부패였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고위층의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작동상태에 따라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정부패국가 1위는 뇌물공여지수(BPI) 10점 만점에 3.1점을 기록한 중국이, 2위는 3.4점을 얻은 한국이 차지했다. 이듬해 3월 한국의 감사원장 격인 중국의 웨이젠싱(尉健行)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약칭, 중기위) 서기(총리급)는 당 중앙에 이렇게 보고했다.

“부패만이 중국을 망국의 길로 이르게 할 수 있다. 부패로 망한 국민당 패망의 교훈이 우리와 떨어져 있지 않다. 세계최강의 부정부패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2002년 3월 중국은 중기위의 지휘감독 아래 중앙과 지방의 모든 당·정·군 조직뿐만 아니라 공안·검찰·법원 등 사법기관, 언론기관, 대형국유기업체에 반부패공작협조소조(反腐敗工作協調小組)를 설치하여 부패와의 무자비한 전쟁에 돌입했다.

그때로부터 2016년 10월 말 현재까지 약 15년간 중국은 차관급 이상 비리고위공직자 91명(장군 10명 포함)을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했다. 안 그랬으면 중국은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부패와의 전쟁 잔혹사를 지켜보는 국내 언·관·학계의 일부 시각은 파벌 간 권력암투나 정치보복, 권력자의 친소관계 및 그 변동에만 몰입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처지가 이런 ‘사돈 남 말 하고’ 있을 처지인가? 또한 오늘 우리가 쓰고 있는 자(尺)의 원산지는 어디인가? 그 자의 눈금은 영원히 정확한 것인가? ‘태자당’, ‘상하이방’, ‘공청단’ 등 일본 언론에서 비롯된 파당 구분이 중국에 과연 실재하기라도 하는가? 대한민국 헌정사 70년을 통틀어 부패혐의로 사형, 무기징역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이상 실형을 산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자유민주국가이자 청렴국가이자 인권중시국가라서 그럴까.

“영웅은 천하를 제패하고, 제도는 강산을 안정시킨다”


▎2015년 수뢰·직권남용·고의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저우용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영도하는 헌법상 영구집권당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는 독립된 입법권과 사법권도 없다. 현대국가라면 장착돼 있고 실제 작동이 원활한 권력통제 및 부패 제어장치는커녕 독립된 언론기관도, 시민단체도 없다. 중국대륙에는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 대만의 특별정사조(特別偵伺組), 싱가포르의 부패조사청(CPIP) 등 중화권에서 설치,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의 범행에 대한 기소권과 수사권을 지닌 독립기관마저도 없다. 오로지 딱 하나, 그것도 국가기관이 아닌 당내 조직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약칭 중기위)’라는 게 있는데, 그 중기위 감사기관 하나가 저 뿌리 깊은 중국의 부패와의 전쟁을 총지휘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권력구조는 소련과 동구권은 물론 북한, 쿠바 등 지구상에 존재했거나 잔존하고 있는 공산국가에도 없는 독특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법기관 및 정보기관 대비 감찰기관 권력의 압도적 우위체제다. 이게 바로 공산당 일당독재국가 중국이 망하지 않고 G2로 부상하고 있는 비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중국공산당이 국가의 오너인 중국의 통치권력 조직체계는 ‘기획-집행-감사’ 회사 지배구조와 흡사하다. 회사의 주주총회가 이사회와 감사를 선출하듯 중국공산대표대회가 5년 임기의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약칭 중기위)를 선출한다. 이사장이 회사의 총수로 직권을 행사하듯 당 총서기가 중국공산당의 최고권력을 행사한다. 회사의 감사가 경영진에 재무감사를 하듯 중기위가 당정관료의 당기위반과 부정부패를 감찰한다. 이러한 감찰권 우위체제와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기원은 구조적 부패를 넘어 문화적 부패의 경지에 이른 중국 특유의 부패 역사만큼 유구하다.

“영웅은 천하를 제패하고 제도는 강산을 안정시킨다.”(英雄打天下, 制度定江山)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권력자들은 법제를 부국강병과 체제안정의 가장 유효한 도구로 간주했다. 그들은 이공계의 발명품이나 예술계의 창작품처럼 법제를 창조해내길 즐겼다. 이를테면 서양보다 1200년이나 앞선 공무원 공개 경쟁시험 제도인 과거제나 서양보다 400~500년 앞선 지폐와 수표·어음제도가 있다. 감찰기관의 수장이 총리급인 감찰제도 역시 중국이 세계 최초로 창립했다. 진시황은 BC 221년 천하를 통일하자, 행정은 승상(丞相), 감찰은 어사대부(御使大夫), 군부는 태위(太衛, 비상설기관)에게 분담 통치하는 3정승제를 만들어냈다. 당·송·원·명·청나라까지 명칭과 형식은 조금씩 변화했지만 이후 한·수도 대체로 진나라의 정승급 감찰기관 제도를 존속시켜왔다.

이념과 체제를 떠나 세계 15억 중국인이 국부(國父)로 떠받드는 쑨원(孫文)도 서양 각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의 3권분립의 장점을 채택하되 결점을 보완해, 감찰권과 고시권을 독립하는 5권 분립의 권력체계를 창조했다. 지금도 대만에서는 총리급을 수장으로 하는 감찰원이 공공부문에 대한 감사 및 규찰, 탄핵, 징계를 담당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창업하자 자신의 필생의 롤모델이자 역사적 멘토, 진시황을 벤치마킹했다. 마오는 진시황처럼 당권과 군권은 자신이 직접 장악하고, 자신의 양팔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주더(朱德)를 각각 승상격인 총리로, 어사대부격인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기검위’로 약칭) 서기로 임명했다.

한국의 청와대민정수석이라고 할까. 중국공산당 중앙 정법위원회(약칭 정법위)는 ①공안부(경찰청), ②최고인민법원, ③최고인민검찰원, ④사법부(법무부), ⑤국가안전부(이상 당서열순) 등 5대 국가사법기관을 영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초강력 권력기관 정법위도 기검위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된다. 기검위가 정법위에 대한 감찰, 감독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직 왕치산(王岐山)을 비롯 역대 중앙기검위 서기는 모두 중국 최고핵심권력층인 정치국상무위원(총리급)이 맡아왔다. 반면에 역대 중앙정법위서기는 무기징역형을 복역 중인 저우용캉(周永康)을 제외하고는 정치국위원(부총리급)이 맡아왔다.

지금 베이징 북역 인근 대로상에 위치한 백색 고층 대형빌딩은 중국의 탐관오리에게는 이승의 염왕전이다. 거기에는 1000여 명의 중앙 기검위 요원이 근무하고 있다.(여성요원 약 250명) 기검위는 중앙과 지방의 모든 당·정·군 조직뿐만 아니라 언론기관, 대형국유기업체에 심어놓은 수십만 명의 저승사자가 종적·횡적, 정시·수시 감독 감찰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무원 내각 실제권력 서열 1위는 감찰부, 꼴찌 국가안전부


▎암흑우주 이론에 비유한 중국 기율검사위원회. 한국 감사원과 중국 기검위를 비교해 작성한 도표다.
중국 국무원을 구성하는 25개 부위(部委: 부와 위원회) 중 최고 실세 기관은 어딜까? 단연 감찰부(minister of supervision)다. 감찰부는 이름만 국무원에 걸어놓았을 뿐, 국무원 총리의 지휘를 받지 않고 중기위에 편제되어 중기위 서기의 지휘를 받는다. 중기위 부서기를 겸하는 감찰 부장은 국무원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감찰부 청사도 중기위와 같은 건물을 쓰고 감찰부의 영문명칭 역시 ‘회계심사(audit)’는 물론 ‘조사(inspection)’보다 강력한 의미의 ‘감독(supervision)’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국무원 25개 부위 수장 중 당 직급이 가장 낮은 자는 누구일까? 놀랍게도 한국의 국가정보원장격인 국가안전부장이다. 역대 국가안전부장의 당 직급은 중앙후보위원으로 국무원 내각 25개 각부·위원회의 수장 중 제일 낮다. 현 국가안전부장 겅훼이창(耿惠昌)도 전 중앙위원으로서 현재 당직조차 없는 평당원에 불과하다.

감찰권력 제2인자 감찰부장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중국의 정보기관(한국의 국가정보원 격, 특무기관, 비선조직체, 비밀경찰)인 국가안전부의 지위와 권력은 의외로 낮다. 국가안전부는 중국의 오너격인 공산당 소속이 아니라 청지기격인 국무원 소속이다.

이처럼 중국의 국가 최고정보기관, 국가안전부는 구소련의 KGB, 나치독일의 게슈타포, ‘대일본제국’의 특별고등경찰, 동독의 슈타지,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등 공산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의 그것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다. 한국의 국정원, 미국의 CIA나 NSA(미국가안보국), 영국의 M16, 이스라엘의 모사드에 비해서도 그렇다. 실제로 국가안전부는 대타이완업무와 반체제인사, 분리주의자 관련 정보수집과 단속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뼈아픈 ‘통사(痛史)’ 가 있다. 씻을 수 없는 다음과 같은 트라우마가 있다.

명나라의 숨통 끊은 환관 비선조직체


▎2015년 3월 15일 전인대 폐막식 직후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퇴장하고 있다. 당시 전인대에서는 강력한 중국 공산당의 반(反)부패 방침이 천명됐다.
환관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관(비선조직)의 권력은 명나라 때(1368∼1644)에 절정에 달했다. 명 조정은 관민의 동정을 몰래 살피기 위하여 황제 직속의 정보기관(비선 특무 조직)을 창위(廠衛), 금의위(錦衣衛), 동창(東廠), 서창(西廠), 내행창(內行廠) 등을 두었다. 비선특무조직의 조직원은 전원 황제의 문고리 권력인 환관들로 구성되었다. 성조 18년에 창설한 동창은 성조 18년(1420)에 창설하여 1644년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존속했다. 동창의 소재지는 베이징 동안문 밖, 지금의 베이징 미술관 건너편 동창후퉁(골목길)이다. 이들 동창의 권력은 재상을 추월했으며 역대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렸다. 조정의 모든 공식기관을 파괴했다.

동창은 국법과 율령격식의 구속도 받지 않았다. 동창에 끌려온 고관대작들은 두 발로 걸어 나가지 못했다. 환관이 변태 심리의 발동 때문인가. 동창에 끌려온 고관대작들은 수염과 음모를 조금씩 뽑히는 고문을 당한다. 특히 생식기에 고문을 당하는 치욕을 당하며 시나브로 시체가 되어 관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1477년, 명 헌종이 설립한 서창도 문고리 권력 환관들로서 조직돼 동창과 함께 누가 악행을 잘하나 시합이라도 하듯 이들의 국가기강 문란행태는 극에 달했다. 급기야 명 무종 시절 태감(太監: 환관의 수장) 유근(劉瑾)은 내행창이라는 매우 특이한 비선조직체를 설립했다.

내행창은 금의위와 동창, 서창을 감시하는 비선조직 중의 비선조직체였다. 그러나 내행창은 환관 유근이 능지처참을 당하자 5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동창은 명나라가 망하는 1644년 때까지 무려 225년까지 존속하여 명나라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놓는 암적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환관 비선조직체의 국기문란행위가 모처럼 주류민족 한(漢)족이 건국한 명나라를 뿌리째 썩게 만들어 망국에 이르게 한 핵심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이름만 명(明)나라, 실제는 ‘암(暗)나라고나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후세 사가들은 명나라는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국호와는 정 반대로 가장 어두운 왕조로 혹평되고 있다.

또한 1635년 청태종이 ‘후금’의 국호를 1635년 ‘대청(大淸)’으로 개명한 까닭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그 가운데 유력한 설은 혼탁한 한족의 명나라 대신 청렴한 만주족의 나라가 중원을 다스린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것이다.

환관 비선조직체의 전횡과 고위층의 부정부패로 나라를 잃은 4억 인구의 한족은 불과 400만 인구의 만주족으로부터 무려 270년 동안 갖은 수모와 압제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한족들이 270년간 울면서 후회하고 다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측근 중심의 비선조직체(정보기관)에 두 번 다시 과도한 권력을 주지 않는 것이리라.

따라서 현재 중국이 세계에서 유례를 보기 드문 감찰기관 우위체계를 작동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도 정보기관에게 고위공직자의 사찰을 맡기면 부패가 근절되기는커녕 오히려 부패를 조장하는 등 국기문란의 엄청난 폐단만 초래한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배운 교훈 덕분으로 분석된다.

기검위 쌍규(雙規)가 무서운 이유

고속철은 고속철도에서, 일반기차는 일반철도에서 달린다. 그렇듯 중국도 부패혐의 피의자의 신분에 따라 별도의 기관에서 처리하는 투트랙(two-track) 시스템을 운행한다. 부패 사건에 연루된 자가 공산당 당원일 경우는 기검위가, 일반인일 경우에는 공안(경찰)과 검찰에서 맡는다. 부패당원은 괴로울 고(苦), 묶을 속(束), 쇠 철(鐵)의 합성신조어 ‘고속철(苦束鐵)’에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오래 맛보아야 한다. 기검위는 출발역인 ①사건접수부터 ②초동조사 ③입건 ④사건조사 ⑤검찰송치 ⑥검찰의 공소, 이윽고 종착역인 ⑦법원의 판결에 이르는 죽음의 여정을 진두지휘한다.

중국 탐관오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옥 구간은 세 번째 역 ‘입건’과 다섯 번째 역 ‘검찰송치’사이에 자리한 ‘쌍규(雙規)’다. 쌍규는 기검위가 “피의자에 대해 규정한 시간에, 규정한 공간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기검위가 쌍규처분을 내리는 그 순간부터 피의자의 모든 직무가 정지되고 인신자유가 박탈된다. 압수, 압류, 계좌추적과 동시에 피의자의 모든 재산이 동결조치된다. 쌍규 기간에는 일반인은 물론 가족과 변호사의 접견조차 제한된다. 쌍규 기간은 3~4개월이나 사안이 중대한 경우 2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일반인에 적용되는 형사소송법상의 구속기간은 일반사건 최장 14일, 특수사건 최장 37일이다)

보시라이와 저우용캉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고관대작은 쌍규를 견뎌내지 못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으로 본죄와 여죄를 자백하게 된다. 있는 죄, 없는 죄, 평생의 모든 죄상을 털어놓게 된다. 사형당하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미쳐버린 자가 부지기수다. 쌍규는 중국 탐관오리들의 정치생명 사망선고서와 동의어다. 대부분 파면되거나 사법조치 되어 중형을 선고받게 된다. 일단 기검위에서 쌍규가 이루어진 이상, 각급 검찰기관에서의 공소 제기, 법원의 재판, 형의 선고와 집행 등은 요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G2시대 중국 질주 비결은 캠페인이나 미봉책에 그치지 않고 정책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해 강력히 실행한 데 있다. 특히 고위 비리공직자 척결에 대한 중국의 법제와 그 실천은 권력형 부정부패의 임계점에 다다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5%를 기록했다.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국민의 제1공복 중 최악의 지지율이다. 역대 최고 기록은 제15대 대통령 김영삼, 1993년 2, 3분기 YS의 지지율인 83%다. 평소에 ‘인사가 만사다’를 외쳐온 YS의 집권 1년차 인사는 절묘했다. 그 중에서 대쪽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묘수 중의 묘수였다. 이때 이회장 감사원장을 주축으로 비리공직자척결, 금융실명제, 역사바로세우기,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등 쾌도난마의 반부패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한민국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감사원은 브레이크라고 할 수 있다. 감사원은 국가가 전복되는 사고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고성능 ABS브레이크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감사원은 이회창 원장 이후 제 기능을 하지 않음에 따라 대한민국은 23년 넘게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가 된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 최악의 직무유기 헌법기관은 감사원이다. 검찰을 최악의 직권남용 법률기관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원흉은 감사원의 지독한 직무유기 때문이다.

꿩(부패) 잡는 매(독립감찰기관)가 필요하다

조선시대(司憲府), 고려시대(御史臺), 신라시대(司正府)적에도 일반인과 고위공직자에 대한 형벌은 투트랙 시스템이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1% 상층부에 대한 범죄를 일반 검찰, 특별검찰, 특별수사관, 특수부 등 본질은 ‘셀프감찰’에 더 이상 맡기면 안 된다. 감사원이 직무유기에서 벗어나 본연의 기능을 할 때 고위층의 부정부패 척결도 가능하다.

검찰과 법원 등 권력기관의 고위공직자들의 부패가 임계점에 달했는데도 관계당국은 평균 5년에 한 차례씩 대법원장 또는 검찰총장의 사과문을 발표하며 셀프감찰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공직자비리수사처(약칭 ‘공수처’) 대신에 법률을 제정하여 이를 근거로 특별감찰관실을 설치했음에도 최근 청와대는 특별감찰관과 감찰담당관을 전원 해임하여 제도 자체를 파괴해버렸다.

수백 명에서 수만 명의 부하직원을 거느린 장관이 휘하 직원 9명의 국회의원을 부러워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4년 임기가 헌법에 보장되어 권력자의 눈치를 장관만큼 볼 필요가 없고, 또 하나는 식물국감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20일간 국가권력기관을 감사하는 국정감사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1년 365일 감사권을 누릴 수 있고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행정부소속 공직자로서 헌법에 유일하게 임기가 보장된 감사원장과 감사위원들(4년, 1차한 중임가능)은 요즘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헌법에 단 한 조문, 한 글자도 없는 ‘청와대 민정수석’은 저토록 눈부신 존재감을 펼치고 있는데.

꿩이 꿩을 잡을 수 없듯 조직 내 감찰부서가 같은 조직의 부패를 척결할 수 없다. 꿩(부패) 잡는 매(독립감찰기관)가 필요하다. 비리고위공직자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지닌 공수처 설치 추진과 병행하여 현행 헌법상 국가감찰기관 감사원을 깊은 잠에서 깨워야 한다. 즉 헌법정신에 걸맞게 준사법권과 국무총리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감사원을 활성화하여 권력형 비리 척결의 최전선에 서게 할 것을 제안한다.

강효배 - 경희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타이완 국립정치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타이완 대표부와 주 상하이 총영사관을 거쳐 주 중국대사관 외교관을 12년간 역임했다. 지금은 경희대학 법무대학원 중국법학과 주임교수 및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중국의 슈퍼리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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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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