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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지독한 상흔을 희망으로 바꾸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전쟁 고아의 목소리에 깃든 ‘고귀함과 슬픔’… 최고의 다큐멘터리 작가가 그린 전장의 트라우마, 그 후의 이야기

▎마지막 목격자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연진희 옮김┃글항아리┃1만6000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다큐멘터리 작가 중 하나다. 2015년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졌을 때, 올해 밥 딜런의 수상은 예고되었는지 모른다.

노르웨이 한림원이 흙수저의 인문정신에 주목했으리란 생각이다. 그만큼 이 세계에서의 대중의 삶이 척박해졌고, 문학을 통해 그들의 구원이 갈구되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영명한 스웨덴 한림원이 아마도 그 격한 흐름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밥 딜런 두 사람 모두 전쟁을 고발했고, 평화를 희구했으며, 인간의 자유를 겁박하는 모든 시스템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표시했다. 한 사람은 문장으로, 또 한 사람은 멜로디와 노랫말로 말이다. 다이너마이트(당대에는 핵무기나 다름없는 위력으로 평가됐던)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반성이 진실한 것이었다면, 바로 그 진실함이 반영된 수상자가 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녀는 지방신문의 기자로 출발해 단편소설, 에세이, 르포 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섭렵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삶을 묘사하는’ 자신만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독자들은 2015년 10월 출간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그의 충격적인 작법과 세계인식을 접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전투원, 당원, 공무원으로 참전했던 소련 여군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전쟁 전후의 운명을 연구한 다큐멘터리다. 알렉시예비치는 출간 전 2년 동안이나 소련 당국의 검열과 투쟁했다. 결국 전쟁은 누구에게나, 특히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를 만천하에 까발리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아무리 숭고하게 덧칠된 전쟁이라도, 전쟁은 결국 야만에 이르게 된다는 고발이다.

알렉시예비치의 두 번째 작품 <마지막 목격자들>도 소위 ‘이념적 가치의 부재’라는 이유로 출판이 미뤄지다 1985년에서야 빛을 보았다. 구소련 벨라루스의 ‘전쟁고아클럽’과 ‘고아원 출신 모임’ 101명(0~14세)을 인터뷰해 당시의 역사를 복원했다. 전쟁을 겪은 아이들은 이미 자라기도 전에 늙어버렸고, 삶의 날개는 꺾여버렸다. 육체적 강탈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정신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아무도 자신을 딸, 아들로 불러주지 않았으니 어두운 표정의 어른으로 성장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알렉시예비치는 그들의 정신에 깃든 ‘이지러진 고귀함과 슬픔’을 열정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나 그 기억들을 되살려내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녹취된 목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글로 담아냈다. 지금 장년이 된 이들은 노동자로, 음악가로, 또 건축기사나 연금생활자로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의 기억이 잿빛 일색이었다면, 이후 이들의 인생 경로는 저마다 다채로웠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독한 상흔마저 희망으로 바꾸는 인간의 저력 말이다.

한국 현대사 역시 다큐멘터리 문학 소재의 보고다. 분단이 해소되는 날까지 보물창고의 크기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창조력이 고갈되었을 때, 현실을 돌아보란 조언에 우리 작가들이 귀 기울이면 어떨까. 부도덕한 정권의 몰락이 시작되었고, 여기에 깃든 드라마는 걸출한 다큐멘터리 작가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그토록 흥미진진하고 거대한 광맥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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