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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安風(안희정 바람)의 4대 필요충분조건 

문재인 불안감이 안희정을 불렀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한도형 인턴기자
지지율 상승, 탄핵 인용, 문재인 캠프의 실책 등 3박자에 지사직 사퇴(?)까지…단순 지지율 상승보다 민주당 내부 지지층 이동 여부가 관건

2월의 정치권은 다이내믹했다.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추락했고, 안희정 충남지사는 ‘빅2’로 솟구쳤다. 민주당 경선과 대선 판도까지 출렁인다. ‘태풍의 눈’ 안 지사의 파괴력은 어디까지일까?


▎안희정 충남지사는 “나라를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사진·중앙포토
# “줄곧 내가 이야기했어요. 그는 주로 경청하는 자리였지요.”

지난해 하반기 한국을 찾은 미국인 A씨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만남을 이렇게 돌이켰다. 동아시아문제에 해박한 외교·안보 전문가인 그에게 안 지사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안보전략, 북핵 해법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것. 당시는 오마바 행정부가 북한과 직·간접 접촉을 본격화하던 시점이다.

“처음엔 안 지사의 논리가 탄탄하고 판단이 분명하다기에 자기주장도 강하리라 여겼다. 두세 시간 이야기했나? 하다 보니 주로 내가 말하는 입장이고, 그는 듣기만 하더라.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진지하게 듣고 새기려는 열의도 느껴졌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A씨는 지난해 만난 한국의 대선 주자로는 안 지사가 유일했다고 덧붙였다.

# 보수정부에서 국정원 고위직을 지낸 B씨는 뼛속까지 보수주의자다.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만나 대화를 나눈 모양이다. 지금도 권력의 핵심부와 연이 닿는 B씨는 “안 지사 만나보니 그쪽 사람 같지 않은 게 괜찮아 보였다”고 평했다.

“친노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지사임에도 특정 정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현실에 입각한 균형감각도 있고. 상식과 원칙에서 통하는 듯도 했다.”

B씨는 “안희정 그 사람 계속 눈여겨봐야 할 것 같아”라며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내비쳤다.

안희정 충남지사를 접해본 보수성향 인사들은 놀라움이랄까 의외성을 먼저 발견한다. 물론 안 지사도 작심하고 나간 자리였으니 자신의 상품성을 극대화하고자 애썼을 법하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양뿐 아니라 내면의 세계까지 꿰뚫어보게 마련이다. 숨기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뭔가가 이들의 눈에 선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보수주의 관점에서 안보와 외교를 다루는 A, B씨에게 운동권 출신인 안 지사는 대화가 되고 호감을 주는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그런 안 지사가 국내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다. 한국갤럽이 2월 10일 발표한 2월 둘째 주(7~9일)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29%, 안 지사는 19%,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은 11%를 기록했다. 1주일 전과 견줘 문 전 대표는 3%포인트 떨어진 데 반해 안 지사는 9%포인트 올랐다. 정당별 지지도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안 지사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문 전 대표(57%)에게 크게 뒤진 20%를 얻는 데 그쳤지만, 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문 전 대표를 앞질렀다.

인터넷 언론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2월 셋째 주 실시한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흐름은 이어졌다. 안 지사는 일주일 전보다 3.8%포인트 오른 19.2%를 기록했다. 문 전 대표는 0.7%포인트 하락한 36.2%에 머물렀다.

반기문 반사이익 개인기의 합작품


▎안희정 지사(가운데)가 2월 6일 충남도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셀카를 찍고 있다. / 사진제공·충남도청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의 대결에서 민주당에서는 밀리고 민주당 밖에서는 크게 밀리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와 중도층에서 문 전 대표가 아닌 안 지사에게 지지를 보낸 덕분이다. 여세를 몰아 안 지사는 민주당 경선, 나아가 대선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민심, 즉 지지율의 향배에 따라 판가름나게 된다.

안 지사가 먼저 거쳐야 할 관문은 일반인 상대로 한 여론조사다. 20% 선을 넘어 문 전 대표를 압박하느냐가 분수령이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민주당이 대선 후보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들어간 2월15일 이후에도 안 지사의 지지율 확장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본다. 최근 안 지사 지지율 상승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낙마 등 외부의 반사이익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고 했다.

안 지사 지지율은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하고 나서도 꾸준히 올랐다. 이에 대해 허 이사는 안 지사의 개인기가 먹혀든 결과로 돌렸다. 허 이사는 “유권자 대중을 상대로 발산하는 안 지사의 메시지가 나름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당파나 이념을 떠나 큰 틀에서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얘기하는 등 스스로 흡수하는 표가 있다. 바른정당 지지층에서도 안 지사의 지지율이 높다는 것은 보수층에서 호감을 갖는다는 뜻이다.”

안 지사의 이런 면모가 인구에 회자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다면 우호세력 확장에도 이롭게 작용한다. 허 이사는 “안 지사의 상승세가 2월 하순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단기간에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보수진영에 강력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거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는 경우 정권교체 가능성이 더 커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문 전 대표의 지지층 결집력은 떨어지고 안 지사의 지지세 확장의 기회는 넓어진다.”

이 대표는 “안 지사는 2월 6~10일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에서 수도권과 충청에서 강세를 보였다”면서 “정권교체 지수가 높아질수록 진보 유권자들은 후보를 고를 때 여유를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즉, ‘탄핵이 확실해진다’ ‘누가 해도 이긴다’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안 지사에게도 기회의 문은 열린다고 하겠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문 전 대표 캠프는 집권 시 무엇이 좋아질 것 같다, 어떤 어젠다를 힘차게 밀 것 같다는 전망이 명확하지 않은 게 내부의 고민일 것”이라면서 “대조적으로 안 지사는 불완전하나마 그런 포지티브한 전망을 구체화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안 지사가 국민에게 다가서는 모습은 다른 야권 주자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보인다. 탄핵정국에서 돌출된 각종 현안 대처에서 분열보다 통합,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사례들을 모아보면 그가 왜 탄핵국면에서 부상하는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정리된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제시


▎지난해 12월 고(故) 김근태 전 의원 5주기 추도식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 / 사진·전민규
안보·국방분야에서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통해 보수층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발휘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의 국내 배치 문제와 관련해서다. 문 전 대표가 “재검토와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이 안 지사는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한·미 합의가 이뤄진 것을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한반도 위기관리와 안보 현안 접근방식에서도 안 지사는 “미국 중심의 국제적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며 안정감을 불어넣었다.

문 전 대표가 대담집을 통해 1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밝힌 군복무기간에 대해서도 안 지사는 “우리가 튼튼한 안보를 제대로 가질 것이냐를 먼저 두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접근방식을 달리했다. 그는 “민주주의 선거에서 표를 전제하고 공약을 내는 것은 나라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각을 세웠다. 나중에 JTBC <썰전>에 출연한 문 전 대표가 참여정부 시절의 국방개혁안을 언급하며 “대통령 임기 후에나, 그것도 장기적으로 12개월도 가능하다”고 보완설명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했다.

잠룡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전 대표는 천지사방으로부터 공격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미 내놓은 발언을 매번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정책 포지셔닝이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비친다”고 정한울 교수는 지적했다.

“사드 문제나 대연정 같은 사안에서도 안 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은 명확했다. 문 전 대표는 우유부단하다고 할까? 자기 소신을 못 보여주는 게 불안요인이 된다.”

반면 안 지사는 단번에 정리된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1차 영장 청구가 기각됐을 때도 그랬다. 확실한 심증만큼이나 실망이 컸던 야권은 법원의 결정을 비판하며 흥분해 마지않았다. 안 지사는 이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구속영장의 기각이 정당했느냐, 또 그것이 정의로운가에 대해 국민은 정서적으로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늘 존중하는 입장을 갖는 것이 법치의 엄격성과 법치의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회·경제분야에서도 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재산과 소득에 무관하게 국가가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도입 여부를 놓고 여야가 논란을 빚을 때 그는 “국민은 공짜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당내 경쟁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연간 1인당 1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세금을 누구에게 더 나눠주는 정치는 답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면) 아동·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복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치의제 설정에서도 안 지사는 앞서나갔다. 국가 운용을 실효적으로 보장하는 대연정 구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주주의정치, 의회정치의 대화와 타협 구조를 정상화시켜 시대의 개혁과제를 완성하겠다”며 협치를 가능케 하는 대연정을 제안했다. 차기 정부를 누가 이끌든, 의회와 협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 제안했으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배격한 대연정의 연장선상에 섰다.

이 발언은 야권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민주당의 정청래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막판에 자신의 대연정 제안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며 “안 지사의 대연정 제안은 촛불민심을 읽지 못한 시대착오적 판단”이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특히 안 지사가 자유한국당(새누리당)까지 연정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바람에 야권의 드센 반발을 샀다. 과거의 적폐를 덮고 자유한국당도 용서하자는 것이냐는 공격이 야권으로부터 쏟아졌다. 안 지사는 “대연정은 박근혜·최순실을 용서하자는 뜻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도 “경선국면에서 내게 불리하지만 당장 2~3개월 뒤에는 차기 정부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연정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안 지사 대연정 구상


▎안희정 지사(오른쪽)가 2월 12일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처럼 논란을 마다하지 않는 안 지사의 현실주의 행보가 중도·보수층의 표심을 껴안는 확장성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반기문 전 총장의 퇴장으로 갈 곳을 잃은 보수와 중도 성향, 50대 이상의 표심 일부가 황교안 총리에게 갔고 나머지 일부는 안 지사에게 갔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이를 일러 안 지사가 ‘우클릭(보수화)’한다고 비판하지만, 안 지사는 “평소 소신에 입각한 행보일 뿐 우클릭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그는 “진보의 가치를 준수하며 인간, 사회적연대, 공동체, 평화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놓쳐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진보진영, 민주당에 권력과 나라살림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 신뢰를 얻어내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행보를 설명하기도 했다.


▎1월 31일 충남 홍성 지사공관에서 대국 중인 안희정 지사(왼쪽)와 이세돌 9단. 이 9단은 안 지사의 후원회장으로 영입됐다. / 사진제공·안희정 충남지사
안 지사의 오랜 측근인 김종민 의원은 안 지사에 대한 지지율 상승을 ‘우클릭’의 산물로 보는 항간의 시선을 배격한다. 김 의원은 “기존의 정치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국민의 호응을 얻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보수와 진보, 여와 야, 좌우 등 나름의 진영 흐름과 패턴에 갇혀 있었다. 안 지사는 이를 벗어나 국민의 상식과 원칙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국민이 소신 있는 정치인, 못 보던 정치인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다.”

대연정 제안도 외연 확장용 중도화 전략이라는 야권 일각의 비판과 달리 오랜 세월 숙성돼온 국가 운용 철학이라고 안 지사 주변에서는 강조한다. 안 지사의 대연정 구상은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고려대 83학번 동기로 30년 동안 안 지사의 벗으로 지내온 정재호 의원(민주당)은 말한다. 정 의원에 따르면 민선 5기 충남지사(2010~2014년) 중반에 들 즈음 안 지사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처음으로 주변에 개진했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로 사람을 나누는 세상은 아닌 것 같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거버넌스를 세우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시대별로 지식인, 지도층이 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있다. 이건 역사적 책무다. 그걸 해야 한다.”

지금의 대연정, 대통합 구상이 대략 5년 전부터 안 지사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정 의원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부터 마음에 다듬어온 협치, 대연정 구상이 지금은 휘발성 강한 정치권의 이슈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충남도정이 연정을 위한 워밍업이었다는 말도 들린다. 정 의원에 따르면 안 지사는 2010년 충남 도백에 오른 이래 줄곧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충남도의회를 상대해왔다. 의회와 폭넓은 소통과 끈질긴 설득으로 도정을 이끌며 협치를 시도했다는 것. 국정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된다면 다년간의 도정경험을 발판삼아 의회와 생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리라는 희망이다.

정 의원은 “문 전 대표는 행정집행의 매개고리로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고, 국회의원도 지냈지만 협치를 체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면서 “바로 이 점에서 안 지사가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힘줘 말했다. “안 지사는 국정을 책임감 있게 안정적으로 이끌 준비를 마쳤다.”

안 지사가 품은 꿈을 이루자면 1차 관문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통과해야 한다. 민주당 경선엔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도 참여할 수 있다.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든 미리 ‘신청’하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여론조사가 국민 전체를 경선 선거인단으로 한다면, 국민참여경선제는 자발적으로 미리 ‘신청’한 사람들만이 경선 선거인단에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패권구조에서는 문재인이 후보가 된다?


▎2012년 9월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현장. 문재인·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 등이 각축을 벌였다. / 사진·중앙포토
탄핵의 여파로 현저하게 야당 쪽으로 기운 대선 운동장임을 고려하면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의 대선’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경선 후보 진영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지지층을 선거인단에 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캠프에 속한 국회의원,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지역구별로 선거인단 모집에 두 팔을 걷어붙이는 게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2002년 노무현 후보의 극적 역전승을 낳은 민주당 경선 당시 모 후보는 50만 명 이상을 선거인단에 끌어들였다는 전언도 있다. 조직력이 강한 후보일수록 더 많은 지지자들을 참여하게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문 전 대표가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당 경선은 어떤 성향의 인사들이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당락을 가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경선에 당 외부에 있는 일반국민의 참여가 저조하면 당내 여론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그렇게 되면 문 전 대표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민주당에서 문 전 대표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금은 많이 올라온다고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패권구조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가 후보가 된다”고 예상했다. 지지층의 결속력에서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안 지사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또 일부 민주당 지지자도 호감을 표하고 있지만 민주당 경선에서도 이런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견해도 있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현 정국이나 국가 비전, 주요 쟁점에 대한 태도나 발언이 안 지사의 개인 지지도를 올리는 데는 유효했지만 당내 경선에서는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봤듯이 안 지사 스스로도 대연정 구상이 경선국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여타 논쟁을 일으킨 안보·경제 어젠다에 중도·보수층이 호응하는 정도에 비례해 전통 민주당 지지층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 외에 중도·보수층 참여가 증가하면 안 지사가 선전할 공간이 넓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2012년 대선 경선 때는 108만 명이 선거인단 참여를 신청했고, 그 가운데 57%가 투표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민주당 소속 대선 주자들의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 등을 감안해볼 때 대략 15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민주당은 점친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200만 명까지 선거인단이 불어난다면 일반인의 참여도가 높다는 점에서 안 지사가 후보 자리를 거머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황태순 평론가는 말했다. 황 평론가는 “올 민주당 경선은 기존 당원이나 대의원에게 가중치를 주지 않고 모든 선거인단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했다”면서 “경선 룰만 따진다면 역대 민주당 경선에 견줘 올해 경선에서 이변 가능성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보수진영에서는 민주당 경선에 적극 참여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안 후보를 밀어주자는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김용태 바른정당 의원이 전했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이 물건너갔다고 보는 보수 지지층 중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안 지사를 밀어 문 전 대표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더러 한다.”

안 지사 측은 다른 각도에서 명승부를 자신한다. 바닥민심은 벌써 넘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재호 의원은 “계량화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방을 두루 다녀본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든다”고 했다. 심지어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조직력에 앞서는 문 전 대표가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리라고 보도한다. 그렇게 쏟아지는 보도가 우리는 고맙다. 첫 권역별 경선이 열리는 호남의 투표함을 열었을 때 여론조사상의 갭보다 표차가 더 좁혀진다면 대세론이 일거에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충청-영남-수도권으로 이어지는 경선에서 안 지사가 뒤집기를 노릴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안 지사의 지지율이 탄력을 받아 문 전 대표와 대등한 수준까지 오른다면? 예컨대 안 지사가 지지율 25% 대 25% 정도로 문 전 대표와 호각을 이루는 상황이 온다면? 이때도 경선 표심의 향배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다고 허 이사는 말한다. 안 지사의 지지도 상승이 민주당에서 온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14년 도지사 재선 후 대선을 구상


▎2월 2일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대선 예비 후보로 등록한 안희정 지사가 기자회견 전 생각에 잠겨 있다. / 사진·전민규
“만약 안 지사가 민주당 내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표를 확보해 추격에 성공했다면 민주당 경선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게 아니고 중도 또는 보수층의 표를 끌어와 지지율을 올렸다면 반드시 역전된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 지지층은 민주당 가치에 충실한 후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나 진보층은 안 지사 쪽보다 문 후보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단순 지지율 상승보다 민주당 내부 지지층 이동 여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내부 지지층 이동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당내 경선에서 이변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댔다.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당내 지지자들은 기본적으로 상대 후보에게도 호감을 갖고 있다. 이는 서로 적대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갑자기 문 전 대표를 등지고 안 지사 쪽으로 몰려가는 일은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발생하기 어렵다.”

이처럼 실물정치를 해본 민주당 관계자들은 현 상황을 문 전 대표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는 변수가 생겼다는 정도로는 인정하지만 이변까진 기대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의 경선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그치리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안 지사 측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마이웨이’하겠다는 각오다. 정재호 민주당 의원은 안 지사의 대선 출마 결심은 쉽게 내려진 게 아니라면서 이렇게 전했다.

“2014년 민선 6기 충남지사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다. 안 지사는 선거에서 고생한 측근 인사들을 충남지사 관저에 초청해 소주를 곁들인 자축의 자리를 가졌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국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구상과 확신이 선다면 대권에 도전하겠다.’ 지난 2년 동안 그 결심을 굳혔다고 본다. 시대적 과제라 할 대통합 정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기에 대선에 나선 것이다.”

안 지사 주변엔 지사직 사퇴를 통해 진검승부 의지를 보여주리라는 기대와 요구가 교차한다. 안 지사의 30년 친구인 김종민 의원은 “내부의 결의는 (지사직 사퇴) 그 이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선 날짜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지사직 사퇴 여부를 논할 순 없다고 톤을 낮췄다. 김 의원은 “대선 날짜가 결정된 이후 판단해도 된다”면서 “지금은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라고 말했다.

현재 2위 후보인 안 지사가 1차 관문인 경선을 통과하는 데는 선결과제가 있다고 정한울 교수는 강조한다. “안 지사의 지지율이 오르고, 탄핵도 인용 가능성이 높아져야 하며, 문 전 대표 쪽의 실책까지 더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3박자가 맞아 들어가야 반문(反文, 반문재인) 정서가 흐르는 호남, 대망론에 목마른 충청에서 안풍(安風, 안희정 바람)이 분다는 분석이다.

안 지사의 지사직 사퇴가 역전 드라마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한도형 인턴기자

201703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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