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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희랍의 시간과 공간을 소요하다 

그리스 문명사를 고고학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조망… 한국의 서양사 연구 수준 한 단계 높인 역작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저자의 이력은 독특하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와 최영애 전 연세대 중문과 교수의 1남2녀 중 맏딸이다. 서울대 천문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우주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후 과정까지 마친 뒤 2003년 돌연 전공을 바꿔 버지니아대에서 예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김 교수의 이 책은 2016년 4월호부터 약 1년간 월간중앙에 연재돼 많은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프린스턴대 천문학과에 들어가 천체물리학의 여러 분야 중, 우주론(cosmology)을 공부할 수 있게 되기까지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지도와 추천의 힘이 컸다고 한다. 도올은 김승중 교수의 천체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 과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프린스턴 대학의 아스트로피직스(Astrophysics,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학위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논문제목은 ‘Clusters of Galaxies in the Sloan Digital Sky Survey’였다. 슬로안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라는 것은 뉴멕시코의 아파치 포인트 관측소에 설치한 2.5m 너비의 광학망원경을 사용해 다중필터 이미징과 스펙트로스코픽 레드시프트 서베이(spectroscopic redshift survey)를 행하는 천체관측 프로젝트다. 이 데이터 컬렉션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미징 데이터는 전천(全天)의 35% 이상의 범위를 관측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이 시설을 만드는 데 자금을 댄 알프레드 슬로안 재단(Alfred P. Sloan Foundation)에서 따온 것이다.”

김 교수가 그리스 미술, 고고학으로 학문적 궤도 수정을 한 데에도 도올의 격려가 컸다. 김 교수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단 한 치의 책망도 없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격려해주셨다”면서 “잘 아는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학문의 태도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던 도올 역시 1990년 원광대에 입학해 한의학을 공부한 바 있다. 그는 아버지와 탄탄한 학문적 동지 사이다. 도올은 딸의 책 말미에 “승중이의 글은 희랍 문명사를 철학사의 좁은 인식의 지평에서 벗어나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줬다”고 적었다.

천체물리학(Astrophysics)이라는 학문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간의 개념, 그 인식론적 층차에 관하여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김 교수가 희랍미술사를 전공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추상적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뉴턴이 절대공간·절대시간을 말한 것은 매우 상식적인 얘기 같지만, 사실 시간·공간을 추상적인 주제로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우주론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시간·공간 개념은 칸트에게서 의식내부의 사건, 의식외적 사건이라는 인식론적 테제로 철학화 되었고, 이 시·공의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시공연속체로 발전하면서 철학적 변주를 거듭했다. 이 책은 김 교수의 이러한 인식론적 성과를 빌어 희랍인들의 생명론적 시간의 계기를 재발견하고 있다. 그 세계는 매우 넓고, 통찰은 날카롭고 깊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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