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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화제] ‘최초 담배회사는 조선 공기업이었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KT&G, 창립 30년 만에 기존 대한제국 ‘삼정과’에서 조선후기 ‘순화국’으로 창립기원 변경…134년 전 개화파가 국난 극복 위해 설립한 수출 국유기업으로 출발

▎국내 담배회사 KT&G의 연혁이 바뀌었다. 회사의 모태가 개화기 시절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 외교통상문서를 통해서 새롭게 밝혀지면서다.
‘“순화국’은 완전한 관립(官立) 기구로 외아문주사 김가진이 주임이 되고 우리나라(일본)에 다녀간 김용원이 발기한 서양식 엽권연초를 제조하는 연초제조소다.” <통상휘편>, 日 외무성

한국 최초 담배회사의 역사가 바뀌었다. 고종 황제가 운영한 황실 기관이 아니라 개화파가 주도한 조선 공기업이란 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발견됐다. 개화파의 주도로 설립된 한국 최초의 국영 담배회사는 조선의 국가재정 적자를 타개하고자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수출기업이란 것이 밝혀졌다.

KT&G는 3월 31일 창립 기념을 맞아 회사의 모태를 기존 대한제국의 ‘궁내부 내장원 삼정과’가 아닌 이보다 연도가 빠른 조선 개화기 시절의 국영연초제조소인 ‘순화국(順和局)’으로 변경했다. 설립 30년 만에 회사의 창립기원과 사사가 바뀐 것이다.

그동안 KT&G는 1899년 세워진 대한제국 황실의 ‘삼정과’를 창업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1980년 전매청이 사사 편찬 때 고종실록과 조선총독부 자료에 근거해 ‘삼정과’를 전매 기원으로 명시한 데 따른 것이다. ‘삼정과’는 고종 황제가 궁내부 내장원에 설치해 담배 전매를 맡긴 기관으로 수익금은 모두 황실 예산으로 사용됐다.

이 같은 새로운 사실은 국내 학자들이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발견한 <통상휘편>이란 문서에서 찾아낸 것이다. ‘순화국’은 ‘삼정과’가 설치된 해보다 16년 앞선 1883년에 개화파 주도로 세워진 담배회사였다. <통상휘편>은 당시 일본 영사관이 작성한 일종의 외교통상 정보보고서로, 최근 수년간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해왔다.

개항지 인천에서 수출담배 생산 시작


▎1. 일본 영사관이 작성한 <통상휘편>에 담겨 있는 국내 최초 연초제조소 ‘순화국’. / 2. 그동안 KT&G가 창업의 출발점으로 삼아온 대한제국 시절의 궁내부 내장원에 속한 ‘삼정과’. / 3. ‘순화국’의 주임이었던 상하이 망명 시절의 김가진. 그가 순화국 담배사업으로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댔다는 이야기도 있다.
<통상휘편>에는 “‘순화국’은 완전한 관립기구로 외아문주사 김가진이 주임이 되고 우리나라(일본)에 다녀간 김용원이 발기한 서양식 엽권연초를 제조하는 연초제조소다”라고 적혀 있다. 또 “기호에 맞게 주의한다면 충분히 외국인의 관심도 끌 수 있다”며 “후일 무역품이 될 수 있다”고 기록했다.

<통상휘편> 인천항지부편에 ‘순화국’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 짐작할 때 위치는 인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후일 무역품이 될 수 있다”는 언급은 개항장에 설치된 ‘순화국’이 향후 수출용 담배를 생산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인천항은 강화도조약으로 개항된 3개항 부산·원산·인천 중 하나로 가장 근대적인 항구로 꼽혀왔다. 조선시대의 연초는 사람의 기운을 순조롭고 조화롭게 하는 기호품으로 인식됐다고 한다. <통상휘편> 외에도 <일본 관보>와 <도쿄요코하마마이니치신문> 등 일본의 다른 기록에도 담배 무역을 겨냥했던 조선의 ‘순화국’ 설립 관련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순화국’의 명운은 개화파의 몰락으로 오래가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설립 이듬해 김옥균 등의 갑신정변 실패로 개화파가 힘을 잃으면서 ‘순화국’ 등 각종 사업도 중단됐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당시엔 담배 제조기술도 열악한데다 회사 운영경험조차 전무했다.

광무 2년(1898년) 9월의 <독립신문>을 보면 영국 총영사는 한국산 담배에 대해 “본품은 좋으나 배양과 말리는 과정이 취약해 대한 사람의 구미에는 맞으나 다른 데(외국)서는 안 좋아하겠다”고 혹평한 사실이 담겨 있다. 재정 악화에 따른 국가위기를 정면 돌파하려 했던 개화파의 담배수출 시도는 허무한 결말을 맞게 된다.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라 국내 최초의 담배 전매기관의 역사가 바뀌게 됐다. 당초 대한제국 선포(1897년) 직후에 황실 예산확보를 위한 기관에서 조선의 개화파가 국난 극복을 위해 주도한 수출 공기업으로 모태가 변경되는 것이다.

KT&G는 전매청에서 ‘한국전매공사’로 전환된 1987년 4월 1일을 창립일로 기념한다. 1989년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이름이 바뀐 뒤, 2002년 민영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케이티앤지(KT&G)’로 사명을 변경했다.

2002년 민영화…수출기업으로 발돋움

KT&G는 2015년 처음으로 수출이 내수 판매를 넘어서면서 수출 주도기업으로 발돋움했다. 1988년 담배시장 개방과 함께 해외로 나간 지 28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에는 세계 50여 개국에 487억 개비 담배를 판매해 한국의 대표 ‘수출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1988년 국내 담배시장의 전면 개방 이후로 KT&G는 현지공장과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기업을 인수하는 등 해외 진출전략을 공격적으로 펼쳐왔다. 민영화를 기점으로 실적 또한 크게 향상돼 2002년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100% 이상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13조원대로 4배 이상으로 상승했다. KT&G는 경영혁신과 브랜드-품질 경영으로 국내 시장점유율도 60%대를 지켜오고 있다.

담배사업 말고도 홍삼과 제약-바이오, 화장품, 부동산 등 수익성과 성장성을 갖춘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도 성공했다. 1999년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독립 법인으로 출범한 ‘KGC인삼공사’는 지난해에는 매출 1조원대의 계열사로 성장했고, 2004년과 2011년에 각각 인수한 ‘영진약품’과 ‘코스모코스(옛 소망화장품)’ 역시 제약과 화장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현재 국내 유일의 담배 회사로 과거 전매기관의 명맥을 잇고 있는 KT&G는 지난해 487억 개비, 금액으로는 8억1208만달러(약 9130억원)어치 담배 수출을 기록했다. KT&G 측은 “‘순화국’은 한국 담배산업 134년의 효시”라며 “국내 최초 국영 연초기업을 KT&G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많았다”고 말했다.

백복인 KT&G 사장은 창립 기념사를 통해 “KT&G 창업 기원은 ‘순화국’이라는 국가 기관에서 출발해 현재의 글로벌 우량 기업이 됐다”며 “앞으로 해외 수출을 더욱 강화해 제2의 도약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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