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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6) 朝野] 상생(相生), 조화(調和)가 근본적인 지향점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권력 행사하는 조정의 ‘朝’, 그로부터 떨어진 지역 ‘野’… 궁전에 몸담고 있다고 들판에 머무는 존재 얕보면 곤란

▎인정전(仁政殿)은 태종 이방원이 거처할 이궁(離宮)으로 창덕궁을 건립하면서 1405년에 완공됐다. 인정전은 인자한 정치를 펼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사진·유광종
옛 왕조 시절에 정부를 일컫는 말 가운데 대표적인 단어는 조정(朝廷)이다. 지금이야 용례(用例)가 적지만 예전에는 아주 많이 쓰이던 말이다. 이 단어는 원래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즉 외조내정(外朝內廷)의 준말이라는 이야기다.

조정이라고 적으면 제왕(帝王)이 거주하는 공간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궁전(宮殿)과 동의어라는 말이다. 宮(궁)과 殿(전)은 본래 제왕이 거주하는 공간을 지칭하지 않았다. 크고 웅장하며 멋진 건축물을 지칭하는 글자였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부터 정치권력을 손에 쥔 제왕의 거주 공간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그 궁전 안에는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이 있다. 앞의 외조는 제왕이 공식적인 정치행사를 집행하는 터전이다. 뒤의 내정은 제왕이 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다. 처음에는 그런 구별이 뚜렷했다. 외조에서 공식적인 활동을, 내정에서 사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서 동양사회의 최고 권력은 이런 구별을 넘어섰다. 궁전의 안팎에서 무분별한 통치행위가 마구 이어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래도 어쨌든 원래의 출발점에서 공식적인 활동과 사적인 행위를 구별하려는 노력은 나름대로 진지했던 셈이다.

궁전이나 조정에 맞서는 지역을 일컫는 한자가 野(야)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져 있는, 제왕의 권력 자장(磁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나 지역을 가리켰던 글자다. 따라서 권력을 행사하는 조정과 그로부터 떨어진 사람이나 지역을 함께 지칭하는 말이 조야(朝野)다.

이 단어의 맥락을 타고 나온 요즘의 용어가 여야(與野)다. 여당과 야당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조어지만, 그래도 옛 동양사회의 전통인 ‘조야’에서 흐름을 잡아낸 말이다.

이런 단어의 흐름은 옛 동양사회의 행정 구역에 관한 명칭을 살펴야 잘 이해할 수 있다. 춘추시대에 앞선 주(周)나라 때를 보면 이렇다. 권력이나 행정의 힘이 존재하는 곳에는 대개 성(城)이 들어섰다. 그 성은 흔히 國(국)이라는 글자로도 표시했다. 따라서 성을 경계로 안쪽을 부를 때 등장했던 명칭이 國中(국중)이다. 때로는 그 자체를 中國(중국)이라고도 했다. 지금의 명칭과는 퍽 다른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교외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의 교외는 한자로 郊外다. 이 郊(교)는 서로 만난다는 뜻의 交(교)와 사람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邑(읍)이라는 글자의 합성이다. 따라서 이 글자의 당초 뜻은 성을 둘러친 國中(국중)과 그 바깥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지금도 도시의 외곽을 가리킬 때 이 郊(교)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그로부터 더 바깥으로 번지는 지역의 이름이 궁금해진다.

글자의 새김을 풀었던 고대 자서(字書) <이아(爾雅)>에는 이런 풀이가 나온다. 도시에 해당하며 성으로 둘러싸인 邑(읍)의 바깥 지역을 郊(교), 그 郊(교)의 외곽을 牧(목), 다시 그 牧(목)의 외부 지역을 野(야), 그 野(야)의 외곽을 林(림)이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정치권력이 머무는 邑(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野(야)다. 그래도 ‘들판’이라는 뜻이 있어 숲이 우거져 사람이 살기 힘든 林(림)보다는 좀 낫다면 나은 셈일까.

어쨌든 궁벽한 땅을 가리키는 글자가 野(야)다. 당시 행정구역 명칭으로 등장하는 글자로는 鄙(비)가 있다. ‘낮다’ ‘더럽다’ 등의 좋지 않은 새김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글자다. 그러나 역시 행정구역 표시였다. 野(야)와 같은 구역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자다. 둘 모두 사람이 사람답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와 타운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 이 둘의 합성인 야비(野鄙)라는 말이 생겼던 듯하다. 치사하기 짝이 없는, 더럽고 야만스러운, 아주 치졸하며 지저분한 등의 새김으로 쓰는 말이다. 궁벽한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두고 도시의 주민들이 지녔던 깔봄과 멸시의 흐름에서 생긴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여야(與野), 좁은 틀 벗어나 소통·협력해야


▎전북 고창은 넓고 푸른 보리밭으로 유명하다. 보리밭 사잇길로 관광객들이 지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감안한다면 與野(여야)라는 요즘의 낱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與(여)는 정부와 ‘함께’ ‘더불어’ 행동하는 당, 즉 집권당을 가리키는 흐름이다. 野(야)는 권력 중심에 서지 못한 사람의 지칭이다. 권력을 잡지 못해 중심에 들어서지 못한 측이다. 그래서 야당(野黨)이다.

그러나 중립적인 의미에서 이 글자는 ‘들판’이다. 벌판에서 치르는 전쟁이 야전(野戰), 들판의 경치는 야경(野景), 그저 들판이라는 뜻으로 쓰는 야외(野外) 등이 있다. 시선이 향하는 범위를 일컬을 때는 시야(視野)라는 단어를 쓴다. 권력에서 물러나는 일은 하야(下野)라고 적으며, 몸이 권력 중심에서 멀어져 있으면 재야(在野)라고 표현한다.

권력과 상관없이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초야(草野)에 묻혀 있다”고 말한다. 정통의 역사 기술이 아닌, 구전 등을 광범위하게 모아 얽은 역사를 야사(野史)로 적는다.

벌판에서 나오는 채소가 야채(野菜), 깊은 수풀이나 들판에 사는 맹수를 야수(野獸), 그런 식생이나 동물들의 환경을 야생(野生)으로 적는다. 의미가 중립적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전체적인 어감으로 보면 野(야)는 ‘들판’ ‘자연’에서 간혹 벗어나 ‘시골’ ‘지저분한’ ‘가공을 거치지 않은’ ‘세련되지 못한’ 등의 새김이 더 많다.

그러나 서울이 있다고 해서 시골을 깔보는 일이 가능할까. 마찬가지다. 궁전에 몸을 담고 있다고 해서 들판에 머무는 모든 존재를 낮춰보는 일이 버젓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도시의 세련과 규격, 절차, 형식도 중요하지만 들판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움, 상상력, 참신함 등도 사람이 사회를 이뤄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둘 다 땅 위의 생명체에게는 다 중요하다. 조야(朝野)의 관계도 그런 측면에서 헤아릴 필요가 있다. 내가 지니지 못한 요소를 남으로부터 얻어 상생(相生)과 조화(調和)를 추구하는 것이 정치가 근본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일이다.

이제 정부가 바뀌었다. 새로운 ‘조정’이 들어선 셈이다. 이 시점에 중요한 당부는 바로 그런 상생과 조화를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다. 조정에 새로 선 사람들은 오만과 자만의 소아병적인 자세를 벗어 던지고 제 생각을 참신함으로 채워줄 수 있는 야권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

야권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파당(派黨)적 이해관계의 좁은 틀을 벗어나 과거 10년 동안 보수정권의 어지러운 행보를 반성하면서 정부와 여당에게 협력할 것은 적극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러 가지의 위기 요소에서 흔들려 왔던 대한민국호가 방황과 혼돈의 항로(航路)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항해를 이어갈 수 있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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