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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닻 오른 문무일호… 검찰개혁 항로는? 

외부 개혁안엔 부정적 ‘독자 노선’ 카드 꺼내 들다 

좌영길 헤럴드경제 사회부 기자 jyg97@heraldcorp.com
수사·기소 분리 문제, 영장청구권 경찰 부여 등에는 반대. 법무부와 엇박자 예고. 일선 형사부 강화 같은 검찰 체질 개선 약속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문 총장 부인 최정윤 씨 등과 함께 차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무일(56·사법연수원 18기) 검찰총장이 내놓은 자체 개혁안은 한마디로 ‘외부 통제를 받겠다’로 요약된다. 그는 취임식에서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한 수도권 지역의 부장검사는 “김수남 총장 취임 때는 ‘국민을 위한 바른 검찰’이 슬로건이었다. 이번에 ‘투명한 검찰’이 맨 앞으로 나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검찰을 믿지 않으니 개혁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고 평했다.

문 총장의 자체 개혁안은 8월 8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수사와 결정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겠다’라는 게 골자다. 외부 전문가들이 수사와 기소 과정 전반에 관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 도입을 약속했고, 수사기록 범위도 확대하기로 했다. 중립성 시비가 생길 수 있는 특수·공안 부서의 기획수사를 줄이고, 일반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 중심으로 검찰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검찰의 신뢰를 다시 찾겠다는 의지는 곧 권한 축소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 총장의 운신 폭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부터 검찰 조직이 개혁 대상으로 거론되며 외부 개입이 불가피하고, 정권 초기 주어진 역할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추가 수사 등 사정 기능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지만 어차피 여소야대 정국이다. 다음 총선이 가까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건 국민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것과 적폐청산 정도다. 가을이 되면 검찰이 바빠질 것이다.” 한 대검 간부급 검사의 말이다.

실제 문 총장은 이번 정부 들어 이뤄진 검찰 인사에 크게 관여하지 못했다. 조직의 인적 청산은 문 총장 취임 전에 이미 이뤄져 소위 ‘우병우 라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고위직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돼 옷을 벗었다. 검찰총장에 이어 ‘넘버 투’로 분류되는 서울중앙지검장에는 윤석열(57·23기) 검사가, 대검 차장에는 봉욱(52·19기) 검사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검찰 인사와 예산을 좌우하는 검찰국장에도 박균택(51·21기) 검사가 임명됐다.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들 중 선봉인 1차장에는 참여정부 때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에서 일했던 윤대진(53·25기) 검사가 임명됐다.

검찰총장의 ‘반쪽자리 인사’


▎7월 25일 대검찰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이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 총장 취임 후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는 윤 지검장을 필두로 하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후속수사 맞춤형’으로 이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대형 기획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4부가 도맡았는데 이곳을 총괄하는 3차장에는 한동훈(44·27기) 검사가 파격 발탁됐다. 검사장 승진이 보장되는 데다 특수통 검사로 공식 인정받는 자리인 만큼 사법연수원 24~25기의 실력파 검사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전임자보다 5기수나 낮은 한 검사로 낙점됐다. 그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을 조사했다. 한 검사 외에도 특수1부장에 기용된 신자용(45·28기) 검사는 최순실(61) 씨의 딸 정유라(21) 씨의 이화여대 학사비리 수사를 맡아 9명을 기소했다. 특수3부장에 발탁된 양석조(44·29기) 검사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를 담당했고, 특수4부장 김창진(42·31기) 검사도 박근혜(65)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 의혹을 수사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임명 전에 청와대가 큰 판을 미리 짜놓은 인사라고 볼 수 있다. 검찰 내부에선 ‘이러면 지난 정권과 다른 게 뭐냐’는 반응이 일부 나오기도 했지만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한 중견 검사는 “인사가 한 번에 이뤄졌으면 충격이 컸을 텐데 여러 번 나눠서 단행돼 구성원들이 체감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이번 인사를 보면 박근혜 정권에 줄댔던 검사들 몇몇이 살아남은 걸 볼 수 있다. 전부 다 내쫓았으면 검사들이 뭉칠 수도 있기 때문에, 비수사 보직을 주는 선에서 남겨둔 것이다. 참여정부 때 조직적 반발에 부딪혔던 경험이 있는 청와대가 노련한 인사를 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문 총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통해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는 “검찰의 기초체력은 형사부”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형사부 근무 경력이 전체 재직 기간의 3분의1 미만이면 부장검사 승진이 제한된다. 일선 형사부 강화를 통해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일반 시민의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본연의 기능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공안·특수로 대변되는 검찰의 직접수사 총량을 줄이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정기인사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 비리를 파헤쳤던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단장은 검사장급에서 차장검사급으로 내려갔고, 수사팀도 2개에서 1개로 규모가 줄었다. 직접수사를 위해 범죄 첩보를 수집하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도 전면 개편할 예정이다.

사실 검찰 업무의 대부분은 송치 사건이나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일이다. 검찰이 직접 수사 주제와 대상을 선정하는 사건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몇몇 사건으로 인해 표적수사, 하명(下命)수사 논란이 생기고 공정성에 균열이 간다. 또 검찰이 직접 나선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마련이라 진척이 없더라도 퇴로를 찾지 못해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는 일이 잦다. 박근혜 정부에서 하명 논란을 빚었던 포스코 비리나 자원외교 비리 수사 결과가 무더기 무죄 선고로 이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베스트’사 부실인수로 5000억원대 국고 손실을 입힌 혐의로 기소된 한국석유공사 강영원(66) 전 사장은 1, 2심에서 전부 무죄를 받았다. 경남기업의 해외 광물 개발사업 지분을 고가에 사들인 혐의의 김신종(67)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도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준양(69) 전 포스코 회장 역시 이상득(82) 전 의원에게 뇌물을 주고, 부실기업 성진지오텍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1500억 원대 손실을 입혔다는 주요 혐의에 관해서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기소하는 사건 무죄율이 통상 5%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표적수사·부실수사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사례들이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직접수사는 줄이는 게 맞다. 정치검사는 저절로 생기기도 하지만 외부에 의해 만들어지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검찰’ 오명 벗겠다…직접수사 기능 축소


▎7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문무일 후보자가 답변하고 있다. 문 후보자는 수사·기소 분리, 경찰에 영장청구권 부여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이다. / 사진·연합뉴스
형사부 중심으로 조직의 체질을 개선하면 조직 사기를 진작하는 효과도 생긴다. 대다수 검사에게 특수통이나 기획통· 공안통 같은 수식어는 동떨어진 세계의 얘기일 뿐이다. 실제 형사부 강화 방침에 일선 검사 대다수는 반색을 표한다. 직접수사 비중을 줄이고 경찰을 상대로 수사지휘를 하는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는 것은 정부의 검찰개혁안과도 부합한다. 다만 역대 검찰총장의 사례로 볼 때 대부분 취임 초기에 비슷한 취지의 개혁안을 들고 나왔지만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공언(空言)에 그칠지, 아니면 실제 제도로까지 정착될지 주목할 대목이다.

문 총장은 수사심의위원회 도입과 검찰 수사기록 공개 범위 확대, 문답식 조서 탈피 등도 자체 개혁카드로 꺼냈다. 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와 기소 전반에 걸쳐 외부 전문가들의 통제를 받겠다는 안이다. 어떤 방식으로 간섭을 받고 이를 강제할 방법이 무엇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문 총장이 지난해 대검에서 추진한 ‘바르고 효율적인 검찰제도 정립’ 테스크포스(TF)를 관장하며 이 문제를 연구한 만큼 조만간 구체화된 밑그림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록 공개 범위를 넓히는 문제와 조서 작성 방식의 변화는 변호사업계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하면서 수사를 받는 피의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재판이 확정된 사건은 진술서는 물론 신문조서와 같은 타인의 진술서까지 열람·등사 청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사생활 보호와 수사기법 유출 등을 이유로 그동안 공개에 소극적이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문 총장이 인사청문회와 취임식, 대한변호사협회 방문시 반복 언급하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 총장은 문답식 조서 작성 관행을 깬다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조서는 검사가 ‘피의자는 O월 △시경 ~한 사실이 있지요?’라는 식으로 물으면 소극적으로 답한 것을 기록하는 식으로 작성됐다. 검사가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진술을 확보하는 과정에 머물렀던 측면이 있다. 앞으로는 피의자가 적극적으로 혐의에 관해 서술한 뒤 검사가 의문 나는 점을 질문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바뀌면 진술 확보 위주였던 수사가 물증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문 총장의 생각이다.

문 총장은 그러나 이번 정부 공약 중 하나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적극적으로 나섰던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공수처에 대해서는 제 생각을 말씀드릴 것은 아니다”라고 했을 뿐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경찰이 요구하고 있는 영장청구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현행 헌법은 영장청구권자를 검사로 한정하고 있고, 그로 인해 경찰이 강제수사에 나서려면 검찰을 거쳐야 한다.

그는 이 문제에 관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주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2중, 3중의 장치가 있어도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검찰이 고수했던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내용이다. 경찰이 신청하는 영장이 법원 심사 이전에 검사의 검토를 한 번 더 거치면 무분별한 강제수사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경찰은 개헌 논의 때 헌법 조문에 명시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영장청구 요건을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사실상 강제수사를 무마할 수 있는 권한이 검찰에 주어져 있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외부서 논의 중인 개혁안에 유보 또는 반대


▎8월 8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15층 회의실에서 대검찰청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문 총장은 “검찰이 과거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검찰총장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사진·신인섭
문재인 대통령은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권 확보를 공약집에 명문화하지 않았다. 다만 대선후보 토론 과정에서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려면 별도의 영장청구권이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문 총장은 경찰이 독자적인 수사종결권을 갖도록 하자는 부분에 대해서도 “종결권이라고 나오는 것도 수사권 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수사 전체를 사법경찰이 하게 된다는 건데 여러 논의 중 하나라 당부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결국 문 총장은 외부에서 논의되는 검찰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유보적이거나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셈이다. 그동안 대선 과정에서부터 논의되던 검찰개혁은 검찰이 비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자연스럽게 검찰의 힘을 빼고, 경찰이나 공수처 등으로 분산시키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하지만 문 총장의 자체 개혁안은 검찰의 권한을 그대로 두고 외부의 간섭을 통해 남용을 억제하겠다는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문 총장의 의중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문 총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자체 개혁안을 ‘셀프 개혁’이나 ‘선제 개혁’이라고 평가하는 의견은 이러한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검은 자체 검찰개혁 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를 지원할 추진단도 설치할 예정이다.

검찰개혁과 관련해서는 법무부와 경찰도 자체 위원회를 꾸렸다. 법무부는 문 총장의 간담회 바로 다음날 외부인사 중심의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법무부 탈검찰화, 검찰 인사제도 공정성 확보 방안 등은 물론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대검이 첨예하게 다투게 될 문제도 논의할 예정이다. 당분간 대검과 법무부가 검찰 개혁안을 ‘투 트랙’으로 각자 의논하게 된 셈인데, 대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법무부가 관련 정부입법안 등을 마련하는 당사자인 것은 맞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도 나름의 입장을 정리해서 의견을 밝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무부 검찰개혁위 위원 면면을 보면 입장 차가 상당해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위원장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 설지,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검찰 개혁의 주요 과제로 꼽는다. “수사 없이는 기소도 있을 수 없다”며 수사와 기소 분리에 부정적인 문 총장과는 대조적이다. 한 위원장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멘토’로 여기는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정부는 경찰에도 똑같이 자체 개혁안을 마련할 기회를 준 뒤 본격적인 검찰과의 권한 조정을 시작할 방침이다. 경찰은 소위 중앙집권적 구조로는 정치적 외풍에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내년 시범 실시를 거쳐 2019년 광역 단위 자치 경찰제도를 전면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6월에 이미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한 경찰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인권보호와 자치경찰, 수사개혁 등 3개 분과로 나눠 개혁안을 논의 중이다. ‘경찰에 수사권이 넘어가면 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우려를 씻어내는 게 관건이다.

검찰 개혁 의지가 강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개헌 논의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경찰은 정권 초반을 검·경 권한을 조정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검·경 수사권 문제에 있어 양측을 대표했던 브레인이 나란히 손을 떼게 됐다는 점이다. 검찰 내에서 손꼽히는 수사권 전문가로,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하며 검찰 입장을 대변하는 논리를 개발했던 이완규 검사는 최근 검사장 승진에서 제외되며 검찰을 떠났다. 반면 ‘검찰 저격수’로 불리는 황운하 경찰 수사구조개혁단장은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울산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파격 행보 속 여론 만족시킬지는 미지수


▎7월 28일 문무일 검찰총장(왼쪽)이 서울 미근동 경찰청을 전격 방문해 이철성 경찰청장을 만났다. 문 총장은 이 청장 등 경찰 지휘부를 만나 약 20분 동안 면담했다. 경찰 수사 지휘 권한이 있는 검찰총장이 경찰청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사진·연합뉴스
문 총장이 꺼낸 자체개혁안이 공수처 도입이나 수사권 조정 문제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법무부가 11월 ‘법무·검찰 개혁 권고안’을 마련해 최종 발표하겠다고 밝힌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검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여론과 법무부, 경찰을 모두 설득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문 총장은 정무적 판단보다 강한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강점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 기획부서보다 수사 파트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로 인정받았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수사 당시 취재진에게 “검사직을 계속한다면 명예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겠느냐”며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어거지(억지)로 왔는데 검사로서 지켜온 가치를 끝까지 마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는 말로 중립성 시비를 일축했다. 그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문 총장은 취임 이후 행보에 거침이 없다. 취임식에선 간부들의 도열 등 관례에 따른 의식을 생략했다. 또 검찰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동영상을 상영한 뒤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말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취임 직후에는 전례 없이 이철성 경찰청장을 깜짝 방문해 “검찰과 경찰은 동반자이고 협업 관계”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자신이 직접 기소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제외한 여야 3당 지도부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역대 총장과는 달리 국회에 출석해 각종 현안 질의를 받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취임하면 공석에서 말을 아끼던 역대 총장과는 차별화된 행보다.

그러나 외부의 관여보다 내부 개혁을 선호하는 성향은 그동안 검찰을 거쳐간 수장들과 큰 차이가 없다. 취임과 동시에 내부 개혁을 강조한 것은 문 총장뿐만이 아니었다. 임기 2년은 제도를 정착시키기엔 짧은 기간이고, 그나마도 대부분 중도퇴진하며 단명했다. 중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는 셈이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20명의 검찰총장 중 2년을 채우고 퇴임한 사례는 7명에 불과하다.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경우도 드물다. 문 총장의 전임자인 김수남 총장도 검찰 체질 개선을 위한 4개의 상설 TF팀을 꾸리는 등 제도 개혁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한 데 부담을 느껴 이렇다 할 결과물을 얻지 못한 채 중도퇴진했다.

반면 역대 총장은 외부 개혁 요구에는 직을 내놓으며 조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왔다. 2011년에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해 사퇴했다. 그나마 검찰이 외부에 의해 큰 변화를 겪은 것은 2013년 공정성 시비를 버티지 못한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것이 유일하다. 검찰개혁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서 검찰 수장 자리에 오른 문 총장이 여론을 마냥 모른 채 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체 개혁 카드를 내민 문 총장이 과연 검찰개혁 여론을 어느 정도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 개혁 진행 과정에서 청와대나 법무부와 엇박자가 나고 파열음이 커져 검찰 조직이 파문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좌영길 헤럴드경제 사회부 기자 jyg97@heraldcorp.com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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