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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행운과 복을 불러오는 물고기 도미 

수명 길어 생일이나 회갑 등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 한반도에서 전래된 도미는 대표적인 일본 음식으로 발전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도미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최고 어종으로 대접받는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돔을 몇 가지로 분류해 나름대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참돔은 머리뼈가 단단하여 부딪치는 물체는 모두 깨어지고, 이빨도 강하여 조개껍질을 부술 수 있으며, 낚시를 물어도 곧잘 이를 부러뜨린다. 살코기는 탄력이 있고, 맛이 좋으며, 흑산도에서는 4~5월에 처음으로 잡히고, 겨울에는 자취를 감춘다”라고 썼다.

‘돔’이란 ‘도미’의 준말로 농어목 도밋과의 바닷 물고기다. 일본 사람들이 죽고 못 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물고기 도미는 몸 빛깔이 아름다울뿐더러 둥글 반반하게 생긴 것이 맵시도 멋져서 그들은 도미를 ‘바다의 여왕’, ‘바다의 왕자’라고 부른다. 살이 깊고 푸진 것이 맛이 좋아 고급요리 중 윗길(상품)로 치고, 도미찜으로 유명하며, 또 낚시 대상어로도 인기 어종이다.

여기서 ‘돔’이란 말은 ‘가시지느러미’를 뜻하므로 물고기 이름에 ‘돔’자가 들어있으면 보나마나 등지느러미가 매우 거세고 날카롭기 짝이 없다. 또한 예부터 도미(bream)는 행운과 복을 불러오는 물고기라 하여 생일이나 회갑 등 잔칫상에는 빠지지 않고 올랐다고 한다. 사계절 중에서도 특히 봄철에 가장 맛있기로 소문났다. 지방이 적고, 살이 단단하고 마디며, 단백질이 풍부하여 수술 후 회복기 환자에도 매우 좋다 알려졌다.

우리도 그렇지만 역시 일본인들은 돔을 극찬을 아끼지 않는 으뜸 횟감으로 친다. 사업차 일본에 다녀온 한 후배한테서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다. 싱싱해 펄떡거리는 도미 머리를 회칼로 탁 때려 기절시키고는 깻잎으로 눈알을 덮은 다음 썩썩 회를 떠서 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더란다. 기이한 행위나 혐오성 식품을 먹는 등 비정상적인 식생활을 가리켜 몬도가네라 한다지?

일본 요리 전문 문헌에 간장을 타서 끓인 도미장국인 고려자(高麗煮)라는 음식이 나온다는데 그 명칭으로 미뤄볼 때 우리나라에서 전파된 음식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맑고 산뜻한 도미 맛을 즐겼고, 일본에까지 전해 대표적인 일본음식으로 발전됐다는 것이다.

‘돔 중의 돔’으로 불리는 참돔(Pagrus major)을 우선 살펴본다. 학명의 Pagrus 는 지느러미, major 는 크다는 뜻으로 역시 등지느러미가 억세다. 진도미어(眞道味魚)는 최대 몸길이 1m, 몸무게 얼추 8㎏으로 암컷보다 수컷의 성장이 훨씬 빠르다. 몸은 타원형이고, 옆으로 납작하며, 직사각형 굵은 비늘로 덮여 있다. 등 쪽은 싱그러운 붉은색이며, 배는 노란색 또는 흰색이고, 옆줄(측선, 側線)주위로 푸른빛의 작은 반점이 흩어져 있다. 어릴 때는 선홍색 바탕에 다섯 줄의 짙은 붉은색 띠가 있으나 자람에 따라 사라지고, 성장하면서 검은빛이 약간 돈다.

우리나라 참돔은 수심 10∼200m의 바닥 밑의 울퉁불퉁한 암초 지역에 주로 서식하고, 제주도 남방 해역에서 겨울잠을 자며, 봄 되면 동서해안과 중국 연안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어릴 때에는 연안 얕은 곳에서 생활하다가 2~3년간 훌쩍 자란 뒤에 수심이 깊은 곳으로 옮겨간다. 육식성으로 먹새가 좋아 게·새우·까나리를 비롯하여 성게나·불가사리까지 미어터지게 먹어치운다.

성전환(性轉換)을 하는 감성돔

참돔은 회·구이·조림·건어물·찜·찌개 등 요리에 여러모로 쓰인다. 옛날에는 주로 주낙으로 많이 잡았으나 오늘날은 저인망 등으로 잡고, 몸 길이가 24㎝ 이하는 포획이 금지돼 있다. 참돔은 성장이 매우 빨라 우리나라도 수산양식(水産養殖)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일본만 해도 60종이 넘는 바닷물고기를 키우고, 돔도 그중의 한 종이라 한다. 이렇게 양식 참돔의 공급이 늘어나자 ‘바다의 왕자’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다. 무엇이든 흔하면 더는 대접받지 못하는 법.

참돔은 우리나라 전 해역에 서식하고, 일본 홋카이도 이남, 타이완, 남중국해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 연해에 분포하는 도미의 종류로는 참돔·감성돔·돌돔·옥돔·청돔·황돔 등이 있다. 참도미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40년에 가까운데, 물고기 중에서도 상당히 오래 사는 편이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도밋과 어류들은 특별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최고 어종으로 대접받는다. 회나 찜 등 입맛을 돋우는 요리용이지만 특별히 수명이 긴 터라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비는 회갑연에는 반드시 올렸고, 결혼 잔칫상에나 새해 차례상에도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식문화의 차이로 그다지 인기가 없다. 그리고 제사를 모신 뒤 살을 발라 먹어보면 몸 안의 뼈다귀(가시)도 어마무시하게 뾰족뾰족해 까딱 잘못하면 찔릴 판이고, 사실 내 입에도 퍼석퍼석한 것이 깊은 맛은 적더라.

한편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참돔 버금가는 감성돔(Acanthopagrus schlegelii) 은 몸이 타원형이고, 등 쪽 외곽이 융기됐으며, 몸 빛깔이 금속 광택을 띤 회흑색이어서 전체적으로 검게 보이고, 배 쪽은 조금 연하다. 몸길이는 40㎝ 정도로 참돔보다는 작고, 보통은 40∼50m의 얕은 바다에 살지만 때로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하구(河口)나 내만(內灣)의 기수(汽水)지역에도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동·남·서부(중부이남) 연해에 분포하고, 역시 지느러미가 유별나게 예리해 학명(속명)의 Acantho 는 가시(spine), pagrus 는 지느러미(fin)란 뜻으로 그 또한 지느러미가 몹시 감사나움을 특징으로 보았다.

감성돔은 참돔에 비해 성장이 더뎌 양식을 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산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최근에는 참돔이 누리던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감성돔은 자라면서 성전환(性轉換)을 하니 알에서 깨어날 때는 모두 수컷이지만 5년 정도 자라서 몸길이가 30㎝ 이상인 성어(成魚)가 되면 대부분 암컷이 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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