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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남북 경제협력 기대감 ‘상한가’ 거품 없나 

‘1000억 달러 규모’ 北 투자시장 열린다 

박용한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북한 ‘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에 기업 관심 높아… 비핵화 잡음 일희일비 말고 장기전 준비하는 게 현명

두 가지 뉴스가 주식시장을 뒤흔든다. 연일 한국의 성장률 전망은 하향 조정되고 있는 반면, 남북 간 실무회담은 회수(回數)를 더하고 있다. 덕분에 남북 경협(經協)주는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중이다. 경협 관련 세미나들도 만원 행진을 이어간다. 전문가들은 기회의 문이 열리는 시점과 규모, 그리고 투자할 산업 분야를 세밀하게 분석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6월 27일 한 행사에서 “개성공단이 가능한 한 빨리 재개됐으면 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고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 변화로 훈풍이 불어 오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기업 전략 담당자부터 주식시장 소액 투자자까지 모두 북한발(發) 뉴스에 긴장감을 느낀다. 북한 핵무기 실험과 대북 선제공격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기업들이 대북 진출 논의에 활발하게 나선 배경은 역시나 판문점선언이다. 4월 27일 남북한 정상이 만나자 대북투자 기대감은 당장 현실로 이뤄진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에서 그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법무법인 지평은 7월 3일 ‘북한투자 법제 현황과 전망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마련된 300석이 가득 차며 성황을 이뤘다. 이보다 한 달여 앞선 6월 7일 회계법인 삼정KPMG도 남북 경협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자 기업들이 몰려들었다. 남북 경협 현황과 북한 투자환경 분석, 북한 인프라와 사업을 두루 이해하는 자리였다. 세미나가 끝난 뒤 대북투자 문의도 빗발쳤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의뢰를 모두 수용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거절하는 상황”이라며 “북한 전문가와 실무 직원을 긴급하게 추가 채용하며 역량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테마주 360% 급등, 시장 열기 뜨거워


▎동해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이 성사됐던 2007년 5월 동해선 열차가 북측 통문을 지나 강원 고성군 제진역을 향하고 있다. 남북은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를 연결하고 현대화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주식시장 반응은 더 뜨거웠다. 남북 경협 테마주가 급등했다. 한국거래소가 7월 1일 발표한 올해 수익률 상위 10개 종목(6월 29일 기준)에 남북 경협주가 6개나 들어갔다. 수익률 1~3위를 남북 경협주가 내리 차지했다. 지난해 말 1160원이었던 A회사 주가는 6월 29일 5440원으로 368.97% 오르기도 했다. 철도 차량용 부품을 생산해 남북한 철도 연결사업 논의에 영향을 받았다. 상위권에 오른 기업들은 북한 사회기반시설(SOC) 건설사업 테마주로 주목받았다.

기업은 대북사업 전담팀을 다시 모으고 본격적인 투자분석을 시작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대북사업 전담팀을 꾸리고 에너지 분야 대북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수원은 해당 조직을 한시적으로 운영한 뒤 향후 상시 전담 조직으로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도 움직이고 있다. 산업은행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개성공단 확장을 위한 에너지 공급 방안 연구에 착수했다. 개성공단 확장에 대비한 에너지 공급을 실무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당시 철수 차량들이 지붕 위에 물품을 싣고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입경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남북 경협 준비 열풍은 대학으로도 번졌다. 동국대는 ‘남북 경협 최고위 과정’을 개설했다. 각 분야 경영자를 대상으로 통일에 대한 이해를 높여 사업 기회를 준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남북 경협에 따른 법률 및 세무 이슈, 대북투자 시 인사제도 및 노동환경,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표시와 방향, 분쟁 발생 사례 및 처리방안, 북한의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 및 관리 체계의 변화, 남북 경협의 성공 및 실패 사례분석, 주변국 대북정책 추진 방향 등 남북 경협 관련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북한은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해 기존의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검토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됐다”고 선언하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선진적인 기술과 과학적 경영관리기법을 받아들이고 해외자본 유치를 바탕으로 국가경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경제협력과 기술교류가 뒷받침돼야 한다.

“당장 1000억 달러 규모 투자 시장 열려”


▎북한 나진항에서 시베리아산 유연탄을 선적한 신홍바오셔호가 2014년 12월 1일 경북 포항신항 내 포스코 원료부두에 접안해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
북한은 2011년 1월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에 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고 국가경제개발총국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계획이 수행되면 북한은 “당당한 강국으로서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국제경제 관계에서 전략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구체적인 사업 분야는 모두 12개이며, 총 투자 규모는 1000억 달러”라고 설명했다.

조봉현 부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12개 사업 분야는 ▷농업개발 ▷5대 물류산업단지 조성(나선·신의주·원산·함흥·청진) ▷석유에너지 개발 ▷2000만t 규모 원유 가공 ▷3000만㎾ 규모 전력 생산 ▷지하자원 개발 ▷3000㎞ 연장 고속도로 건설 ▷2600㎞ 연장 철도 현대화 ▷공항과 항만 건설 ▷도시개발 및 건설 ▷국제금융 거래가 가능한 조선개발은행 설립 ▷김책제철소를 중심으로 2000만t 규모 제철 생산이다.

조 부소장은 “북한의 10개년 전략계획은 외자 유치를 통해 북한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라면서 “비핵화 이행에 따라 북한의 개혁·개방, 대북투자 및 경제협력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으로서도 새로운 투자처가 절실하다. 복수의 기업 관계자는 “더 이상 국내에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새로운 해외 투자처 개발도 어렵다”며 “결국 남은 시장은 북한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 인구 2600만 명과 한국 인구 5100만 명이 합쳐지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내수 시장이 만들어진다.

지리적으로도 주변국과 연계되면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망(TSR)과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연결되면 한반도가 유라시아 철도의 기착지가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2박3일 동안 러시아를 국빈 방문하면서 유라시아 철도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문 대통령은 6월 21일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한국과 북한이 유라시아의 새로운 가능성에 동참하고 유라시아의 공동번영을 이뤄내는 데 함께하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관계자는 “공단에 들어가겠다는 기업 입주 신청이 폭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 대북제재 완화가 결정되거나 재가동이 확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도 분위기는 뜨겁다. 6월 한 달간 이뤄진 개성공단 입주 신청은 350건으로 집계됐다. 업종뿐 아니라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기업 규모도 다양했다.

또 다른 개성공단을 설치하자는 논의도 나왔다. 개성공단이 성황이던 시기엔 노동자가 부족했다.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더라도 같은 현상이 나올 수 있다. 나선특구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된 적이 있다.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급격한 변화에 민감한 북한 당국도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개성공단 기대감에 불씨를 더했다. 조명균 장관은 6월 2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8 한반도 국제포럼’에서 “개성공단이 가능한 한 빨리 재개됐으면 하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는 아직까지 닫혀 있다. 2016년 2월 북한이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에 나서자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결정을 내렸다. 당장 재개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한 공단 운영 시에도 나왔던 마찰 요인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안정적인 교류가 가능해야 투자 확대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김정은 “우리 교통이 불비해 불편 염려돼”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1일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하원인 ‘두마’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북투자 기회가 생겨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경영 실패로 연결될 수 있어서다. 남북한이 같은 말로 소통한다는 이유로 북한을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자동차 회사와 호텔을 경영했던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은 “북한은 정치가 최우선인 체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같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도 북한은 중국과 완전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남북한 관계 개선도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 노동자 신규 취업허가, 북한과 합작사업 설립·유지·운영을 금지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에 저촉된다고 지적한다. 개성공단 사업뿐 아니라 단순 위탁가공이나 농수산물 교역도 제재가 풀려야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명균 장관도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경제협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며 신중론을 내놓기도 했다.

낙후된 투자여건도 발목을 잡는다. 철도·도로·댐 등이 대부분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에 건설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1990년대 이후 경제위기가 깊어지면서 설비 개선은커녕 정비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은 북한 경제의 ‘성장판’을 닫았다. 2013년 북한의 에너지 총 공급량은 1990년의 55.5% 수준인 1063만 석유환산톤(TOE)에 불과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북한의 발전량은 216억㎾h로 추산된다. 같은 해 한국의 발전량인 5220억㎾h와 비교하면 4.3%에 불과하다.

발전(發電)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 2013년 발전설비 용량 기준으로 수력발전 비중이 59.2%를 차지해 가장 컸다. 화력은 그 다음인 40.8%였다. 일제강점기부터 수주화종(水主火從) 생산 체계를 구축했던 탓이다. 수력발전소는 계절적인 영향에 취약하다. 동절기에는 수력발전소 발전용수가 줄어 발전량이 60% 감소한다. 전력 부족은 산업 발전을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전력 공급 문제를 해결해야 향후 경제협력과 대북투자에 속도를 낼 수 있다.

북한의 교통체계는 ‘주철종도(主鐵從道)’를 따른다. 도로는 철도를 보조하는 기능에 그친다. 철도의 수송분담률이 74.8%에 이르는 반면 도로는 24% 수준이다. 그마저 도로 포장률은 8.5%에 불과하다. 고속도로를 제외한 대부분 구간에서 시속 50㎞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다. 철도는 노후화가 심하다. 평균 시속이 2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27일 회담장에서 백두산을 방문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 교통이 불비(不備)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솔직한 심정을 꺼내기도 했다.

해상운송은 ▷무역항 8개 ▷원양수산 기지항 5개 ▷어항(漁港) 30여 개로 이뤄지는데 수송분담률은 2~3%에 불과하다. 하역 능력은 한국의 10억1700만t 대비 3.5% 수준인 3600만t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나진항을 꾸준히 주목해 왔다. 러시아는 2008년 나진항 3호 부두를 50년 동안 사용하는 권리를 확보하고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3년 뒤인 2011년에는 러시아 극동 하산과 나진항을 잇는 54㎞ 구간 철도 개·보수 작업을 마쳤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2014년 나진항 3호 부두 준공식 당시 “러시아가 3호 부두를 통해 매년 500만t의 석탄을 아시아와 유럽으로 수출할 계획에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2014년 12월 시베리아산 유연탄이 나진항에서 출발해 경북 포항신항 내 포스코 원료부두에 하역되기도 했다. 중국도 나진항 1·2호 부두 10년 사용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IMF 가입이 경제협력 신호탄 될 것


▎2007 남북 정상회담 당시 남포시에 위치한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지배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 평화자동차는 1999년 설립된 최초의 남북 합영회사다. / 사진:연합뉴스
공동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은 마련돼 있다. 북한은 외국투자기업으로 합영·합작·외국인기업 세 가지 형태를 허용하고 있다. 합영기업은 1984년 제정된 합영법에 따른다. 주식회사처럼 출자 지분에 따라 경영이윤이 배분되는 합영기업을 허용한 중국의 사례를 참조했다. 합작기업은 북한과 외국회사가 공동투자하고 북한이 단독 경영하며, 이윤은 출자 지분이 아닌 계약조건에 따라 나누는 방식이다. 1982년에 제정된 합작법을 따른다. 1992년 제정된 외국인기업법에 따라 외국기업이 단독으로 투자하고 경영하는 외국인기업을 설립할 수도 있게 됐다.

한국 기업이 북한에 투자할 때는 북한의 ‘북남경제협력법’을 따른다. 북남경제협력법 7조에 따르면 ‘북남 경제협력은 당국 사이의 합의와 해당 법규, 그에 따르는 북남 당사자 사이의 계약에 기초’하도록 돼 있다. 법무법인 지평의 채희석 변호사는 “남북경제협력 관련 법규에서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외국인투자 관련 법률이 적용된다”고 해석했다. 박상권 명예회장 역시 “북한에서 평화자동차를 경영하면서 얻은 이익을 한국에 가져오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도 이전에 북한 당국을 믿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개성공단에서는 북한 근로자 배정을 두고 여러 논란이 나왔다. 북한 당국이 우호적인 한국 공장에 우수 인력을 우선 배치해서다. 한국 기업 간 노동자 거래도 빈번히 이뤄졌다. 북한 당국은 2014년 11월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가운데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인상액 상한선을 5%로 제한한 조항을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다음해 2월에는 5.18% 인상을 요구한 뒤 남한이 거부하자 북한 근로자들은 잔업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박상권 명예회장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북한에 협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정치적 지원을 해줘야 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이 협상 전면에 나서야 한다면 중소기업이 직접 협상에 나서기보다 대기업과 연계해 규모를 키워 협상력을 키우는 방법도 있다”며 조언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과거 협력했던 사례를 재검토해서 지속 가능하고 상호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남한뿐 아니라 해외 민간자본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장벽이 있다. 국제금융기구 가입이다. 그래야 투자하는 데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이 가입할 수 있는 국제금융기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그리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있다. 이들 기관 가운데서 IMF 가입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 국제금융기구 대부분이 IMF 가입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WB는 설립 헌장에 IMF 가입국에만 회원국 가입 자격을 준다고 명시했다.

북한은 비공식적으로 IMF 가입을 타진했지만 좌절된 전력이 있다. 1997년 9월 IMF 조사단이 국제금융기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북한이 같은 해 여름 IMF를 공식 초청한 데 따른 것이었다. 조사단은 평양에서 북한 재정성과 국가계획위원회, 조선중앙은행, 조선무역은행 관계자를 만나 IMF 가입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했다. IMF에 가입하려면 외환보유액과 국민소득, 무역액 등 각종 경제·사회 통계가 국제 규범에 맞도록 만들어지고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통계가 끝이 아니다. 회원국의 동의를 넘어야 한다. 회원국 투표에서 ‘총 투표권의 3분의 2 이상을 가진 과반수 가입국의 참석과 찬성’이 필요하다. 미국은 IMF 지분 17.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미국은 1992년 4월 러시아 등 소련 출신 14개 국가가 IMF에 빠르게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2000년대 들어 북한이 ADB에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되는 것조차 미국은 용납하지 않았다. 북핵 때문이었다.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경제 개발의 선결조건은 비핵화라는 이야기다. 김근식 교수는 “남북한 경제협력의 방향은 맞다. 다만 속도를 천천히 조절하면서 꼼꼼하게 진행해야 한다”며 “비핵화 등 필요한 조치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 일희일비 말고 장기전 대비해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17 신경제지도 국제학술회’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여러 우려 때문인지 최근 경협주 매수세가 둔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전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 당시에도 남북 경협주는 단기 호재로 급등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자리를 찾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았고 국제사회도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대감만으로 투자하기엔 위험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기업은 평소 북한 동향을 주시하면서도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고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전에 대비하라는 조언이다. 대다수 대기업은 남북관계 단절이 장기화되자 대북투자 조직을 동남아 투자 조직으로 전환시켰었다.

반면 L그룹은 오히려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2015년에 북한연구회를 만들었다. 계열사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실무자 30여 명을 모아 반년 간 북한 진출 전략을 검토하는 조직이었다. 사업 분야를 건설과 식품, 관광 등으로 나누고 분야별 성공 가능성을 분석했다. 이 그룹은 1995년에도 북방사업 전담팀을 꾸려 북한에 공장 설립까지 추진했을 정도로 대북 진출에 대한 관심이 깊다. 그룹 관계자는 “무엇보다 북한 현지 사정을 이해하면서 얻는 자신감이 컸다”며 “7월 25일 2기 연구회를 발족할 계획”이라고 알려 왔다.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 3성까지 아우르는 북방 지역에 대한 연구와 협력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북한연구회가 한창 운영되던 2015년 8월에는 목함지뢰 도발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에 설치된 목함지뢰 3개가 폭발해 한국군 하사 두 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북한연구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불만이 들끓었다. 그러나 8월 22일부터 무박 4일간 고위급 판문점 회담이 열리면서 분위기는 다시 화해무드로 급반전됐다. 북한연구회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대북 경협이 특정 사건으로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게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먼저 준비에 나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 관계자는 “국제사회 기준에 따른 북한법 정비를 유도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며 “북측에 선제적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해야 한다”고 본격적인 경협에 앞서 한국 정부 역할도 강조했다. 조명균 장관은 “제재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경협에 착수할 수 있는 준비는 지금 단계에서도 할 수 있다”며 “정부는 비핵화를 위한 국제 공조에 보조를 맞춰 가는 한편 비핵화가 진전된 제재 이후 상황도 내다보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출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박용한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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