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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정전 65년··· 한반도 군사지도 바뀐다 

남북, 휴전선에서 軍 철수시킬 수도 

박용한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판문점선언 이후 NLL·DMZ 등 평화 지대화 논의 ‘급물살’…섣부른 종전선언 논의로 비핵화 동력 약화될까 우려 목소리도

1953년 정전체제가 그려낸 한반도 군사지도가 변화 조짐을 맞고 있다. 군사충돌이 빈번했던 NLL·DMZ부터 ‘서울 불바다’ 위협을 가능케 했던 북한 장사정포, 단계적인 군비 축소까지 남북한의 안보 현안이 모두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문제는 북한의 진정성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때부터 매번 ‘선언적 합의’에 그쳤던 약속들을 어떻게 이행해낼 수 있을까.


▎남북한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확성기를 철거하는 데 합의했다. 육군 장병들이 5월 1일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설치돼 있는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가 급변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동시에 남북한 갈등 구조를 해체한다는 합의가 나오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우려되는 군사적 충돌 방지를 화두로 제시해 구체적인 논의도 시작됐다. 1953년 정전체제가 그려 놓은 군사분계선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세기 넘게 남북을 막아선 낡은 군사지도를 다시 그린다는 희망은 현실이 될까. 한여름 밤의 꿈으로 사라질까.

가시적인 성과는 나왔다. 남북한 모두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확성기 철거에 나섰다. 4월 27일 정상회담 직후 나온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서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며 확성기 철거를 확정했다. 이어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면서 평화지대 구축을 화두로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번 더 확인했다.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은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실질적인 평화지대가 될 것”이라며 DMZ 문제를 거론했다. 또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남북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할 것”이라며 NLL도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온 겨레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하고 이를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합의했다”면서도 부연 설명은 자제했다.

일단 긍정적인 평가다. 남북관계 및 군사 전문가들은 남북한이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가장 뜨거운 분쟁 지역인 NLL과 군사적 대치가 항시적으로 이뤄지는 DMZ이 거론됐기에 의미가 있다”며 “비핵화 조치와 함께 나왔기 때문에 북한도 의지가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승조 전 합참의장은 “정상회담에서 평화구축을 논의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 “과거 남북한 관계를 참고해 신중하게 접근한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전문가 분석은 대체로 방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평가로 풀이된다.

사실 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고, NLL에서 평화수역을 만들자는 논의는 간단하지 않다. 우선 DMZ 평화지대 논의는 향후 단계적 군축 논의로 확장될 수 있다. 전방지역 부대를 후방으로 옮기자는 목소리도 벌써부터 나온다. 이런 남북한 군비통제는 평화체제 구축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와 맞물려 주한미군 한반도 주둔을 둘러싼 논쟁도 벌써 시작됐다. 한반도 공간을 뛰어넘는 쟁점이다. 남북한 평화체제를 논의할 때 통일 이후 국제정치적 지형과 위협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NLL 평화수역 문제는 남북한 사이에서 지난한 과제였다. 멀게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가깝게는 2007년 10·4 선언과 연계된다. 이미 논쟁 경험이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지난 10년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과 곧 이은 연평도 포격 도발 때문이다. NLL 평화수역은 단순히 남북한 해상 분계선 논쟁을 넘어 북한 지역 경제특구 등 비군사적 논의도 포함한다. 남북한 관계가 포괄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오밀조밀하게 엉켜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평화수역 논의 앞서 북한의 NLL 인정이 우선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325(오른쪽)가 북한 경비정을 들이받은 후 최대 동력으로 후진하는 모습. / 사진:국방부
NLL을 둘러싼 논쟁은 무엇보다 첨예하다. NLL 남쪽 지역에서 두 차례 연평해전이 벌어진 현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6월 29일 발발한 2차 연평해전에서는 북한이 기습 공격을 감행해 한국 해군 참수리 고속정에서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남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2007년 5월 11월 판문점에서 같은 합의가 이미 나왔었다. 제5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동을 방지하고 공동어로를 실현한다”고 합의했다.

같은 해 10월에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힘을 실어줬다. 남북한 정상이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여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든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어 11월 29일 개최된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도 “쌍방은 해상불가침경계선 문제와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남북군사동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며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07년 NLL 협상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충돌 방지를 위한 평화수역 논의는 당연히 해야 한다”면서도 “북한이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존중해야 가능하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그동안 서해 평화수역 논의가 진척되지 못한 이유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평화수역 협상을 NLL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진단이다.

북한은 NLL보다 남쪽으로 경계선을 내린 해상경비계선을 주장한다. NLL을 중심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치하자는 한국의 제안과 달리 북한은 그들이 주장하는 해상경비계선과 NLL 사이에 공동어로 구역을 설치하자고 맞섰다.

남북한의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 중간에 설치하자는 북한측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NLL의 역사적 기원을 보면 NLL을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보인다. 북한은 반세기 넘게 NLL을 인정해 오다가 90년대 말 갑자기 돌변했다. 연평해전이 발생한 배경이다. 정영태 소장은 “NLL이 유명무실해지면 서해 지역의 불안정은 더 심해질 수 있다”면서 “북한이 공동어로 구역에 관해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NLL을 인정한다는 입장부터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는 “북한이 NLL을 인정해야 논의가 가능하다”면서도 “북한이 명분을 갖기 위해 서해상군사분계선 재협상을 열고 실질적으로는 NLL을 인정하는 합의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협상의 대안은 여러 가지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서해와 동해를 합쳐서 통합등거리 면적을 조정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서해상에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면 비례적으로 동해상 공동어로 구역에서 더 넓은 면적을 받는 절충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후속 회담에 이목이 쏠린다. 구체적인 NLL 논의가 시작되는 자리다. 군 관계자는 “NLL 문제는 통일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 위원회가 구성됐다”면서 “군이 갖고 있는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 직후부터 오는 가을 문 대통령의 방북과 내년 초 김 위원장의 방남이 거론된다. 정부 관계자는 “협상의 가시적인 성과는 그때까지는 확정될 것으로 보지만 지금으로선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DMZ 평화지대 시작, 지뢰 제거 공동작업부터”


DMZ 실질적인 평화지대화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불린다. DMZ는 군사분계선(MDL) 상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2㎞ 남북으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구역이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DMZ 안에 개인화기를 제외한 중화기 반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총연장 248㎞에 이르는 DMZ 안에 상당한 무장력을 갖춘 남북한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한국군은 DMZ 밖에 일반전초(GOP)와 철책을 설치하고 DMZ 안에는 60여 개의 전방초소(GP)를 두고 있다. 북한은 DMZ 안에 한국군 GP에 해당하는 민경초소 160여 개와 철책을 설치했다. 휴전선에서 북한군 동향을 감시하는 군 관계자는 “북한군 민경초소에는 박격포와 14.5㎜ 고사총 등이 배치돼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2005년 7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 실무대표회담에서도 다뤄졌다. 한국은 DMZ 내 GP를 공동 철수하는 방안을 북한에 제시했지만 부정적인 반응에 막혔다.

한국군도 북한군 위협 때문에 비례적인 수단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도 2014년 9월 DMZ 내 중화기 반입을 허가했다. 앞선 군 관계자는 “박격포 등 곡사화기를 배치한 북한과 달리 상대적으로 위협 수준이 낮은 K-3 기관총과 무반동총 등 직사화기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5년 군사회담에 나섰던 군 관계자는 “한국군 GP는 북한군 기습적 침투를 막을 목적으로만 운용된다. 반면 북한군 시설은 공세적으로 내려와 있어 형평성 맞게 조정해야 한다”며 “(GP를 철수하려면) 신뢰 구축이 우선일뿐더러 투명성 있는 검증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전 국방부 국방개혁실장)는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할 상징적 조치로 비무장지대에서의 지뢰 제거 협의를 제안했다. 남북한은 이미 2009년 DMZ에서 지뢰 제거를 위한 공동작업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1997년 121개국이 캐나다 오타와에서 대인지뢰의 생산·사용 등을 금지하는 대인지뢰금지조약을 체결하기도 해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얻기도 쉽다. 홍규덕 교수는 “북한이 지뢰 제거 장비가 필요하다면 한국이 비용을 부담해 지원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군 관계자도 공감하는 부분”이라면서 “시간을 못 박지 말고 일단 공동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GP 철거 및 배치 조정에 합의해도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 문제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자칫 정전협정 규정을 위반한 북한에 보상을 해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현재 수준보다 초소 규모를 줄이는 통폐합 방안과 연계하면 위협을 낮춘다는 효과를 입증할 수 있어 명분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차두현 연구위원은 “관련 예산을 여야가 합의한 가운데 국회에서 비준해야 지속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때부터 구체적인 대북지원 논의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6월에 개최될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결과가 나와야 대북제재 해제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 평화체제와 관련한 로드맵이 제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DMZ 논의도 일단은 보류 상태에 놓여 있다. 국회 비준 절차를 예상하더라도 정부안이 제출된 뒤 적어도 3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하반기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 굵직한 여야 간 협상 난제가 놓여 있기 때문에 대북지원 관련 예산 처리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높다.

대북지원 논의가 올해를 넘어갈 가능성도 점쳐지는 만큼 가시적인 변화도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그전에라도 상징적인 조치는 가능하지 않겠냐”면서 “남북 정상 간 합의사항에 속도감을 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NLL과 DMZ은 하반기에 당장 시행할 수도 있다”며 “DMZ는 군사시설이라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회 비준을 기다릴 필요없다. 비핵화와 무관하게 신뢰구축을 위해 선제적으로 추진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북한 장사정포 위협 예전만 못해”


▎남북한은 2002년 경의선 철도 연결 공사를 위해 DMZ 지뢰 제거 작업에 합의했다. 경의선 지뢰 제거에 투입된 영국산 MK-4 지뢰 제거 장비.
서울을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를 뒤로 물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실효적인 평화정착을 위해 전방 지역에 집중된 군사력을 지금보다 후방 지역으로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는 북한 장사정포 350문이 논의 핵심이다. 북한군 군단예하 포병부대에서 운용하여 군사분계선 10㎞ 이내에 배치돼 있다. 군 관계자는 “사거리 40~60㎞ 수준인 170㎜ 자주포 150여 문과 240㎜ 방사포 200여 문이 서울을 사거리 안에 두고 있다. 산술적으로 1시간에 1만 발을 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사거리가 180㎞ 이상으로 늘어난 신형 방사포를 개발했다. 2013년 5월 처음 포착되는데 한·미 군사정보 당국이 초기에 로켓으로 오인할 정도로 사거리가 늘었다. 위협의 범위가 서울을 넘어 평택 미군부대까지 내려왔다. 장사정포 위협은 서해에서도 마찬가지다. 해군과 해병대 병력이 사정거리에 들어간다. 한국군이 개머리 진지 등 북한 지역 포구를 항시 감시하는 이유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백령도 타격 부대를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이 우위를 갖고 있는데 위협을 줄이는 대화가 가능할까.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이 예전만 못 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이 대응 무기체계를 속속들이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국방과학연구소는 지하 갱도에 숨겨진 북한 장사정포 진지를 타격할 수 있는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개발을 끝낸 상태다. 이런 배경에서 북한이 먼저 군축 의제를 꺼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근식 교수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재래식 전력은 한국에 뒤지기 때문에 먼저 군축 카드를 들고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를 효과적으로 줄여 나가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영태 소장은 “북한은 뒤로 옮겨 갈 공간이 있지만 한국은 종심이 좁아 뒤로 물러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국은 도시화 진행으로 공간 제약이 있다”며 “부대 배치를 바꾸는 구조적 군비통제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할 때 논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군비통제 논의는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입장이다. 홍규덕 교수는 “갑작스러운 군축은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불필요한 오해와 반발을 일으킬 수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하고 일단 가능한 수준에서 시작하자”고 말했다.

전방 지역 부대 이동은 DMZ에서 변화가 우선 나타난 뒤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군비통제라는 큰 틀에서 논의될 사안이라 당장 그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전방 지역 부대 이동은 군비통제 시간표에 따라 결정된다는 얘기다.

군축 논의는 예정된 수순이다. 판문점선언에서도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북 정상이 주요 군사지휘관을 대동하고 나온 배경에는 이런 군축 논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올가을부터 상호 훈련과정 참관할 수도


▎북한 인민군이 2013년 10월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관한 화력 타격 훈련에서 장사정포의 일종인 방사포(다연장포)를 쏘고 있다. / 사진:노동신문
그러나 군축 논의의 진정성에는 마찬가지로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1991년 발표된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미 남북불가침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남북한은 제2장 남북불가침 조항 제12조를 통해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 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문제”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문제, 검증 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추진한다”고 합의했다.

군비통제는 ▷군사적 신뢰 구축 ▷운용적 군비통제(Operational Arms Control) ▷구조적 군비통제(Structural Arms Control)로 이어지는 단계를 거친다. 실질적인 신뢰관계를 만드는 과정이 선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군사회담과 같은 인적 교류·군사훈련 상호 통보와 참관·직통전화 운용 등을 합의 및 이행하는 방법이 있다. 이번 회담에서 합의된 선전수단 철거는 신뢰를 쌓는 작업으로 이해된다.

두 번째 단계인 운용적 군비통제는 병력의 이동·훈련·배치 등 군사태세를 상호 통보·조정·참관해 기습공격 가능성을 낮추는 데 목적이 있다. 마지막 단계인 구조적 군비통제에서 상호 군사력의 제한·축소·폐기 등을 논의해 직접적인 전쟁 원인을 낮춘다. 이때 부대배치 조정을 논의하기 때문에 전방 지역 부대 이동은 군비통제 마지막 단계에서나 거론된다. 아직은 신뢰구축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영태 소장은 “북한이 과거 핵 이력을 제출하고 사찰을 받는 게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고 지적했다.

검증도 관건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상호 군사활동을 투명하게 감시해야 하는데 북한은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철수 시켰다”며 “평화체제 구축에 필요한 구조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규덕 교수는 “통일 이후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린 뒤에 구체적인 군축 방안을 채워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더했다. 군축의 궁극적인 목표가 한반도에 그치는 것인지, 동북아시아 전체 국가를 포괄하는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군비 통제를 논의한 적이 있어 처음은 아니다”면서도 “조직을 설치하고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구체적인 이행안을 마련할 때까지는 2~3년은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번 가을부터 상호 훈련 일정을 통보하고 일부 과정에 참관하는 운용적 군비통제가 시범적으로 실시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또한 김 위원장의 최근 협상 전략을 볼 때 본격적인 협상과 이행 과정이 나오기 전이라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일부 부대를 이동하는 상징적인 조치가 먼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평화체제 논의, 북한 비핵화 속도에 맞춰야”

군비통제는 통일 한국군 청사진을 그린다는 점에서 평화체제 논의와 연결된다. 여기에는 미국과 중국 등이 논의에 참여하기 때문에 통일 이후 지정학적인 변화도 반영된다. 그런데 평화체제 논의는 다소 앞선 논의다. 비핵화 논의에 따라 속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전면적인 핵 포기에 나설 경우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이때 군비통제도 함께 논의될 수 있다. 결국 북한 핵 문제에 군축과 평화체제 논의가 모두 결부된다.

차두현 연구위원은 “평화체제는 북한 비핵화와 발맞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북한 조기 비핵화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협정 논의가 먼저 나오면 비핵화 시점이 불분명해진다는 지적이다. 논의의 쟁점이 평화체제가 아닌 비핵화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으면 비핵화가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평화체제 불씨는 주한미군 철수설로 옮겨 붙기도 했다.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미군이 주둔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에 대해 부인 입장을 내놨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에 따른 결과로, 평화체제와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차두현 연구위원은 “평화체제와 주한미군 논의를 연계할 수 없다”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조기에 논의한다는 목표 때문에 생긴 논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 핵 포기를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된 것이 단적이다. 미국에서는 비핵화 대가로 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오히려 미국에서 나오는 미군 철수 논란은 한·미 간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나오는 신경전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집권 직후부터 주둔비 규모를 두고 여러 차례 불만을 밝혀 왔다.

평화체제로 가는 속도는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날 비핵화 합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려면 2년가량 걸린다고 예상되는 만큼 평화체제의 목표 시점도 2년 뒤로 잡힐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전에라도 상징적인 조치, 단계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언적 의미를 갖는 종전 선언은 연내에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에 돌발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DMZ와 NLL을 두고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방향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신중함을 요구하고 있다. 속도를 조절하고 신뢰구축에 먼저 나서라는 주문이다. 홍규덕 교수는 “정치적으로 너무 앞서나가면 혼선을 줄 수 있다”면서 “전략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에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당장은 한반도 군사지도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제 지도를 펼쳐놓았다. 앞으로 어떻게 바꿀지 장기전 협상이 시작됐다. 포석을 두기 전에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박용한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park.yonghan@joongang.co.kr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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