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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알(면)쓸(모있는)신(기한)재(테크)’(11)] ‘전세 부채’ 적신호에 대비하는 노하우 

집값 잡으려다 ‘깡통집’ 늘어날라 

정부 규제와 대규모 물량 공급 맞물려 집값·전셋값 동반 하락...집값 더 떨어지면 집주인 절반은 전세보증금도 못 돌려줄 판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 일부에서도 나타났다. 2017년 7월 최고가 에 계약한 전세 만기가 올해 여름 돌아온다. 전셋값 하락에 대처하는 세입자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고공행진할 때만 해도 자취를 감췄던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안내문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 사진:연합뉴스
'전세(傳貰)’는 영어로 ‘jeonse’다. 우리말 발음대로 쓴다. 한국에만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재벌(chaebol)’이나 ‘갑질(gapjil)’의 표기 방식과 같은 원리다. 때로는 이해를 돕기 위해 ‘jeonse’라고 쓰고 ‘lump-sum housing lease(일시불로 큰 돈을 내고 집을 빌리는 것)’나 ‘long-term rent with lump-sum deposit(일시불로 거액의 보증금을 내고 장기간 집을 빌리는 것)’ 등의 설명을 덧붙인다.

전세의 유래는 조선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펴낸 [실록 부동산 정책 40년]에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 조약)에 따른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 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세 제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다.

처음으로 전·월세를 전수 조사한 197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서울 가구 중 38%가 전세, 14%가 월세였다. 1970년대 후반 경제성장과 함께 집값이 급등하면서 전세 비중도 커졌다. 목돈이 없는 서민들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저렴한 돈으로 안정적인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었고, 집주인은 전세금을 활용해 집에 투자해 매매 차익을 누렸다.

때로는 전세가 사회문제를 낳기도 했다. 정부는 1989년 전세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담보하진 못했다. 집주인들은 2년치 전세금을 한 번에 올려버렸다.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1990년에는 두 달 동안 17명의 세입자가 자살했다. 외환위기로 집값과 함께 하락한 전셋값은 경기가 회복될 무렵인 1999년부터 2002년까지 66%나 올랐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양극화’가 이때 잉태됐다.

전세 파동이 또 휘몰아칠 위기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이른바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서구에는 전세 제도가 없다. 매달 사용료를 내는 월세(rent)가 보편적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주택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이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의 확충으로 대응했다. 민간임대주택의 경우엔 임대료 규제와 계약 갱신권 부여 등을 통해 세입자를 보호했다.

한국은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도심 주거지 부족 현상이 너무 급격하게 나타났다. 정부와 기업이 미처 자본을 축적할 여력이 없었다. 임대주택은 엄두도 못 냈다. 대신 전세가 그 기능의 일부를 대신했다. 정부와 기업이 아닌, 개인이 임대주택 시장에서 공급자 역할을 맡았다.

세계 유일 ‘메이드 인 코리아’, 전세


전세가 발달한 건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지렛대 삼아 추가로 집을 사들였다(이른바 ‘갭 투자’다). 세입자는 절반 정도의 집값으로 최소 2년간은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받았다. 약간의 부침을 겪기는 했지만 경제성장과 함께 집값은 꾸준히 올랐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75년 전체 가구의 17.3%에 불과하던 전세 가구 비중이 1995년에는 29.7%로 증가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아 주춤하기도 했지만 전셋값은 지속적으로 우상향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기조가 꺾였다. ‘부동산 불패’는 거짓 명제가 되는 듯했다.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부동산 10년 대폭락] 등 집주인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책이 서점가를 점령했다. 집주인들은 매달 고정 수입원으로서의 월세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201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주거 형태 중 월세 비중이 23.9%로, 처음으로 전세(19.6%)를 추월했다.

세입자가 선호하는 전세 물건이 사라지는데 전세를 찾는 이들은 늘어나니 전셋값이 폭등했다. 2015년 수도권의 3.3㎡(평)당 평균 아파트 전세가격은 1년 전보다 15.7% 올랐다. 2000년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였던 2001년(21.7%) 이후 15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전셋값은 치솟고 매매가는 그대로니 전세가율(전세가/매매가)은 턱없이 높아졌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2011년 55.6%에서 2015년 72.8%로 상승했다.

높아진 전셋값을 충당하기 위해 세입자 일부는 은행을 찾았다. 금융권 전세대출 잔액은 2012년 말 25조5000억원 수준이었지만, 2015년 말에는 45조7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은행 문턱을 못 넘은 이들은 서울 외곽으로 떠밀려가거나,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월세로 갈아탔다.

2016년 6월 75.1%로 사상 최고점을 찍은 전세가율은 이후 하락했다. 세입자들은 전세난에 허덕이다 저금리와 느슨해진 대출 규제를 활용해 내 집 마련에 들어갔다(필자도 이즈음 견디다 못해 가진 돈보다 대출을 더 받아 집을 장만했다). 입주 물량도 폭증했다. 2016년 아파트 입주 물량은 전년보다 12.4% 늘어난 32만 가구를 웃돌았다. 2017년에는 36만 가구가 시장에 풀렸다. 2014년 바닥을 친 후 서서히 반등하던 집값이 2017년 정권 교체와 함께 본격적으로 상승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재연되는가 싶었다.

정부는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대책을 쏟아냈다.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후엔 약발이 먹히는 모양새다. 시장이 서서히 식고 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그 정도와 속도는 심각하다. 문제는, 집값과 동시에 전셋값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서울의 전세가격은 지난해 11월부터 하락세로 전환했다. 지방은 2017년 4월 이후 하락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 초반, 집값이 떨어졌지만 전셋값은 올랐다. 주택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현상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만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지금, 이른바 ‘깡통전세’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깡통전세는 집값과 전셋값 하락으로 전세 재계약을 하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주택을 말한다. 대체로 세 가지 상황이 겹칠 때 깡통전세가 등장한다.

750조원에 달하는 전세 부채


▎지난해 말 입주가 시작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입구 모습. 9510가구 규모의 물량 공급으로 시작된 인근 지역 전셋값 하락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먼저, 입주 물량 폭탄이 터질 때다. 2014~2016년 아파트 분양이 대거 몰리면서, 지난해부터 전세 물량이 시장에 쏟아졌다. 역전세난(집주인이 세입자를 못 구하는 현상)에 주변 시세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서 신축 아파트의 전세가가 형성됐다. 이 가격이 기준이 되면서 기존 전세가도 끌어내렸다. 최근 서울 송파구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1만 가구 규모의 헬리오시티 입주가 시작되면서, 지난 1월 말 현재 전세가율은 역대 최저치(49.9%)를 기록했다. 전용면적 84㎡(30평형대)의 전세가격이 입주 전 7억~8억원대에서 4억원대까지 떨어졌다.

둘째, 집값이 안 오른다는 전망이 대세가 될 때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올해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나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 오른다는 전망은 드물다. 그나마 이 전망도 서울 아파트에 국한해서다. 지방은 당분간 침체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셋째,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때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인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1월 말 발표된 통화정책 성명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한 해 금리 인상은 없다”고 풀이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숨통이 트였다.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려야 하나 고민하던 한은이, 이제는 여차하면 금리를 내릴 수도 있게 됐다. 최근에는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다. 시장은 앞으로 금리가 떨어질 가능성을 더 크게 본다는 의미다.

게다가 전세 관련 부채의 덩치가 너무 커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세보증금 담보대출 규모는 100조원 가까이 불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와 주택금융연구원 고제헌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전세금융과 가계부채 규모’ 논문에서, 전세 부채(전세보증금 대출 이외에 전세금 마련을 위한 신용대출 등 전부를 포함) 규모가 750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이것도 ‘보수적 가정하에’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를 포함하면 전체 가계부채 규모는 1500조원이 아니라 220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전세 계약 기간이 보통 2년이라는 점도 걸린다. 2017년 7월, 이른바 ‘상투’에 전세 계약한 세입자의 만기가 올해 여름부터 도래한다. 당시 ‘갭 투자’가 성행했다. 약간의 대출을 끼고 전세금을 담보로 집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6월 발표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전셋값이 외환위기 당시처럼 20% 급락하는 경우, 가지고 있는 돈으로 전세보증금 전액을 돌려줄 수 있는 집주인의 비율은 47%에 불과하다. 집주인의 31%는 가지고 있는 돈 20%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의 전세금을 합쳐야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 집주인의 나머지 22%는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강화된 대출 규제 탓에 새로 대출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곧, 다섯 집 가운데 한 집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법원경매정보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세입자가 강제경매를 신청(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경우)한 전국 아파트는 1분기 42건에서 4분기 88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낙찰가가 채권청구액보다 낮은(전세보증금을 전액 못 돌려받는 경우) 건수는 66% 늘어난 556건이었다.

월 2만원에 세입자 근심 없앤다

현재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소송밖에 없다. 내용증명 발송과 임차권등기명령신청,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소송, 강제경매 순서로 이어진다. 소송을 걸고 판결을 받아 집을 경매에 넣든가, 아니면 집주인의 다른 재산을 찾아 경매 신청하든가 해야 한다. 소송 비용과 시간, 그 동안 받게 될 스트레스 등을 감안하면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만약 전세보증금을 당연히 돌려받을 줄 알고 다른 집을 계약했다간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만 몰수당할 수 있다. 소송에 이겼더라도 집주인이 돈이 없다면 상황은 더 막막하다.

그래서 예방이 중요하다. 어른들이 전셋집을 얻을 때 ‘집주인 직업을 살펴라’(사업가보다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좋은 식이다), ‘등기부등본이 깨끗한 집을 골라라’(집과 관련한 채무 관계에 얽히지 않은 집이 좋다) 등의 잔소리(?)를 하는 이유다. 전세금을 못 돌려받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먼저,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도 부동산 시장을 공부해야 한다.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2년 후 해당 지역에 어떤 부동산 관련 이슈가 생기는지를 따져야 한다. 만약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공급된다면 전셋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이사하는 날 바로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추기 위해서다. 대항력은 집주인이 바뀌더라도 집을 비워주지 않을 수 있는 권리다. 전입신고로 대항력 요건이 생긴다. 확정일자까지 받으면 우선변제권도 확보한다. 경매 당했을 때 우선순위에 따라 배당받을 수 있는 권리다.

셋째, 등기부등본상 자신보다 선순위인 권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선순위 권리가 없어야 경매에서 1순위로 배당받을 수 있다. 선순위 저당권 금액이 적다고 안심해서도 안된다. 향후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전셋값이 집값의 80% 안팎이라면 가급적 계약하지 않는 게 좋다.

무엇보다 2년 동안 마음 푹 놓고 전세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약간의 돈이 들긴 하지만(전세보증금이 3억원이라고 가정하면 월 2만원 정도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전세금을 무조건 돌려받을 수 있다.

가입은 서울보증보험(SGI)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할 수 있다. 집주인의 동의는 필요 없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집주인이 아니라 해당 기관에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바로 돌려준다. 가입주택에는 아파트·다가구·단독·연립주택·오피스텔(주거용) 등 대체로 제한이 없다. 전세계약 기간이 절반이 넘어가기 전에 가입해야 하며, 보증한도는 선순위채권과 보증금의 합이 주택가격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 보증료율은 SGI가 0.153%(아파트), 0.173%(그외 주택)이고 HUG는 0.128%(아파트), 0.154%(그외 주택)다.

아예 이번 기회에 내 집 마련을 노려볼 수도 있다. 입주 조건이 괜찮은 곳에 청약을 넣거나 해당 지역의 부동산에 들러 매물이 나왔을 때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매수 관심자로 등록을 해둔다. 대출과 관련해서는 오는 7월부터 신규 코픽스 변동금리가 0.27%포인트 정도 하락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

[박스기사] 전세 보증금 떼이지 않으려면?

■ 전세 거주지역의 부동산 이슈를 꼼꼼히 살필 것
■ 이삿날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을 것
■ 등기부등본상 선순위 저당권 등재 여부 확인할 것
■ 전셋값이 집값의 80% 이상인 곳은 피할 것
■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할 것

※ 고란 - 2003년 중앙일보에 입사, 주로 경제 부문을 담당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은행에 몸담은 걸 빌미삼아 ‘반 금융인’이라고 주장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열어갈 ‘토큰 이코노미’에 관심이 많다. ‘암호화폐의 정석’에 해당하는 [넥스트 머니]를 지난해 6월 출간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재테크 및 암호화폐 시장과 관련한 ‘고란의 어쩌다 투자’ 코너를 연재 중이다.

201903호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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