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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분석] ‘전도사’ 황교안의 ‘소명 정치’ 

교회법과 사회법이 충돌하면 뭘 택할까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주변에선 “다 포기해도 신앙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사람”으로 평가... 과거 자신의 종교적 발언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 올 수도

항해를 시작한 지 100일을 넘긴 ‘황교안호’의 갑판이 시끌벅적하다. 신출내기 선장과 선상에서 잔뼈 굵은 선원들 사이에 벌어진 기싸움 때문이다. 보수의 기함이 가야 할 방향을 두고서다. 갓 배에 오른 선장을 향한 시선에는 불안과 의심이 뒤섞여있다. 보수의 방향타를 맡겨도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 ‘선장 황교안’의 앞에 혼탁한 정치의 풍랑이 몰려오고 있다. 그는 이런 세속의 도전에 분연히 맞설 준비가 된 걸까?


"참을 만큼 참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황교안 당 대표를 향해서다. 홍 의원은 6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한애국당 주최로 열린 ‘태극기집회’에서 “조금 있으면 한국당의 기천명 평당원들이 여러분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탈당 선언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13일에는 BBS불교방송 ‘이상휘의 아침저널’과 인터뷰에서 “이미 탈당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10월에서 12월이 되면, 많으면 40~50명까지 동조하리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친박 중진의 탈당 발언에 한국당이 술렁였다. 홍 의원은 황 대표를 겨눴다. “(황 대표가) 오직 대권 행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보수 우익 사람들이 느끼는 황 대표의 리더십이 걱정스러워지고 있다.” 황 대표가 보수를 결집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었다.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도 가세했다. 6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확실한 중심을 잡아주셔야 하는데, 사과를 너무 많이 하고, 안 해도 될 사과를 하는 것을 보고 우파를 우려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내년 총선에서 원내 재입성을 노리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 당수가 마땅하고 옳은 말을 하는 자기 당 싸움꾼만 골라서 스스로 징계하는 경우를 저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 황 대표를 비판했다. 김 전 지사와 가까운 차명진 전 국회의원에게 세월호 막말 파문을 이유로 당원권 정지 3개월의 징계를 내린 데 대한 불만 표시였다.

친박 중진들은 왜 황교안에게 칼을 겨눴나


▎부처님 오신 날인 5월 12일 경북 영천시 은해사를 찾은 황 대표(왼쪽 셋째)가 봉축 법요식 중 합장 대신 손을 모은 채 예를 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갑자기 터져 나온 친박 중진들의 공세 빌미가 된 건 6월 5일 2040세대 토크콘서트 행사에서 나온 황 대표의 발언이었다. 황 대표는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세력’으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이기기 위해서는 중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이어진 한국당 인사들의 막말에 국민 여론이 차가워지자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신뢰를 떨어뜨리는 언행이 나온다면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도 했다. 차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그 연장선이었다.

막말 징계에 대한 반발은 명분 싸움의 성격이 짙다. 이면에는 황 대표가 노선 조정을 시사한 것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내년 총선 공천을 확신하지 못하는 개인들의 정치적 위기감도 섞여있다. 황 대표가 보수 우익을 대표할 자질을 갖췄느냐는 의구심을 전면에 내세우는 식으로 각을 세우는 것이다.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황 대표에 대한 극우 진영의 ‘사상 검증’이 시작됐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시각이다.

검증을 하자면 기초 자료가 필요하다. 황 대표는 현실정치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신인이다. 총선이나 대선에 나서 본 적도 없다.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거친 게 전부다. 그의 정치력이나 권력의지를 검증할 정보가 부족하다. 앞으로 이어질 최대 정치 이벤트(총선·대선)는 보수진영의 사활이 걸려있다. 당내의 불안감이 보수진영 전체로 확대될 수도 있다.

황 대표를 잘 아는 한 보수 정객은 “기존의 정치공학으로는 황 대표의 진면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 대표를 대권을 목표로 삼은 정치적 야망가로 놓고 본다면 보수 진영의 내부 혼란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경고다.

그렇다면 그의 정치적 가능성을 가늠할 실마리는 ‘인간 황교안’이다. 그의 삶의 궤적을 그려온 핵심 키워드는 두 개다. ‘크리스천’, ‘공안검사’가 그것이다. 황교안의 본성과 신념은 두 개의 단어로부터 출발하고 완성된다. 이를테면 ‘교회법’과 ‘실정법’ 양쪽을 다 아우르는 존재라고 하겠다.

황 대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신앙은 황 대표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살아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난 5월 12일 불기 2563년 부처님 오신 날 찍힌 한 장의 사진은 황 대표의 신앙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북 영천의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 참석한 황 대표는 합장하고 고개 숙여 불상에 절해야 할 순간에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한 불교 언론은 황 대표가 불교 예식인 삼귀례(三歸禮, 부처와 그 가르침을 따르는 교단에 귀의한다는 의미)와 반배(목탁 소리에 맞춰 부처에 합장하고 절하는 경배의식), 아기부처 인형에 물을 부어 씻기는 관불예식을 거부했다며 “제1야당 대표로서 부적절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후 온라인에선 황 대표에 대한 두둔과 비난이 격하게 대립했다. 대한불교청년회와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입장문을 내고 “신앙을 우선하려면 공당의 대표직을 내려놓으라”고 일갈했다. 여기에 진보진영이 가세하면서 이념과 종교 대립으로 확대됐다. 황 대표를 지지해온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은 “정당 대표가 종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지만, 종교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개인의 종교에 대한 자유를 억압하고 강요하는 행위”라면서 황 대표 지원에 나섰다. 전 회장은 “불교의식을 하지 않았다고 정당 대표에게 자연인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표를 가지고 정당 대표마저 좌지우지하려는 행위이고, 이것이야말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개혁적 성향의 한 중견 목사는 “황 대표에 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종교적 측면으로 보면 논란이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당시 보도사진을 보면 황 대표의 태도가 예의에 어긋났다고 보긴 어렵다. 그는 합장 대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반배 대신 눈을 감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 목사는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하는 개신교 신앙인으로서 충분한 예를 갖춘 행동”이라고 말했다.

개신교에선 사물에 신격을 부여해 절하는 행위를 우상숭배로 규정해 엄격히 금지한다. 제사에서 위패에 절을 하지 않고, 천주교의 전례인 성체조배(聖體朝拜,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빵조각인 성체를 향해 절하는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런 교리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계가 자랑스러운 순교의 역사로 자평하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개신교계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목숨을 잃은 신자들을 순교자로 추앙한다.

‘당대표 황교안’과 ‘전도사 황교안’의 사이


▎황교안 대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서울지검 차장검사 시절인 2005년 5월 평신도지도자 120인 결의대회에서 황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개신교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법요식에 참석해 반배를 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당선된 후 불교계 인사들을 자주 만나 의견에 귀기울이는 등 각별한 배려로 서운함을 달랬다. 다만 소망교회 장로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합장과 반배를 거부하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황 대표가 “실수였다”며 사과했지만, 정치권과 개신교계에선 비타협적인 근본주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황 대표는 검사 시절부터 신앙심 깊기로 법조계에서 유명했다. 황 대표를 잘 아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을 때 룸살롱에 가지 않고, 폭탄주를 안 마시는 거의 유일한 검사였다”며 “나중에는 각 검찰청마다 개신교 신자들 모임(신우회)을 조직하는 데 앞장설 만큼 종교적 열정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전도사 직분도 맡고 있다. 개신교에서 전도사는 평신도가 아니다. 목사가 될 자격을 갖춘 수련 과정에 해당한다. 그는 사법연수생 신분이던 1983년에 서울 중구 충무로의 서울교회에 있었던 수도침례신학교(현재 침례신학대학교) 야간 과정을 마쳤다. 그와 함께 신학을 공부한 이만섭 목사(양재동 영동침례교회)는 “황 대표가 정치에 발을 들일 거라곤 생각 못했다. 국무총리를 마치고 목회자가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오래전부터 목회 사역을 꿈꿨다고 한다. 젊은 시절 기적을 체험하면서부터다.

황 대표는 1980년 병역을 면제받았다. 고질적인 피부병 때문이었다. 그가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도 피부병 때문이었다. 황 대표는 “병을 낫게 해주시면 당신을 위해 일하겠다”며 기도에 매달렸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고,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고자 신학교에 들어갔다.

황 대표는 틈날 때마다 전국의 교회를 돌며 신앙 강연을 해왔다. 검사 시절부터 했던 일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서울 잠실의 하늘비전교회에서 가진 간증 집회에서 “삶의 변화가 시작된 기점이 바로 교회에 나간 것, 예수를 믿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의 또 다른 신학교 동창은 “성장 과정에서 수차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는(이뤄지는) 은혜를 체험하면서 황 대표의 신앙이 단련됐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신앙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가는 이런 신앙적 자산에서 비롯됐다. 지금까지 한 번도 주일(일요일)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황 대표는 여러 강연을 통해 자랑삼아 밝혀왔다.

황 대표가 신앙을 키워온 교회의 성향도 원칙주의자로 성장하게 된 자양분이다. 그는 10살 때 자신이 살던 용산구 산천동에 있던 침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개신교의 한 교파인 침례교는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보수색이 뚜렷하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교단이 강제로 폐쇄되는 굴곡을 겪기도 했다.

기적적 체험 겪으며 원칙주의 신앙관 굳어져


▎4월 20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정부 규탄집회에서 황교안 대표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황 대표의 보수적인 신앙관은 검사가 된 뒤 자연스럽게 원칙주의 국가관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됐다. 검사 시절의 그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출세 지향적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이만섭 목사의 말이다. “검사로 출세하려면 큰 교회에 가서 인맥도 만들고 해야 유리하잖아요? 황 대표는 그런데 관심이 없었어요. 줄곧 다니던 교회(목동 성일침례교회)에서 청년들 가르치면서 안 떠나더라고.”

출세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는 검사 시절 많은 일화를 남겼다. 신앙과 원칙이 만나 구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발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에서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2007년 10월 21일 황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에 ‘하나님 편에서 보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한 이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유력한 경선후보 중의 한 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경쟁은 몹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느냐고 질책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 전 대통령이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의 사생활 의혹을 거론하면서 네거티브 공방이 과열되고 있었다. 자칫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게다가 일개 검사가 아닌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었다. 이미 두 번의 검사장 승진에서 고배를 마신 뒤여서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인사 보복을 각오해야 할 판이었다. 이 또한 신의 섭리였을까. 오히려 그는 2008년에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앙의 원칙을 지킨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 2009년 8월 창원지검장 재직 시절 경남지방경찰청장과 국정원 경남지부장, 육군 39사단장, 창원시장 등 창원지역 기관장 4명이 일요일에 지역 기업인들과 골프를 치고 폭탄주를 마신 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결국 시장을 제외한 3명은 공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황 대표는 주일예배를 이유로 불참했다. 그는 후에 “주일이기 때문에 이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 안 나갔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은 사표를 쓰게 하시고, 일주일 뒤에 저는 고검장 승진이 됐다”고 회고했다.

황 대표와 검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한 언론인은 “스펙으로는 성공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서울지검 공안부는 영남 출신이거나 ‘KS라인(경기고·서울법대)’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들었다. 황 대표는 서울 출신에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고, 서울법대 출신도 아니었다(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그런데도 유능한 공안검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원칙주의자로서의 성실함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의 성실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993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및 비자금 사건 수사를 벌였을 때다. 검찰은 선거법 수사에 황 대표를 투입했다. 당시 그는 서울지검 공안부의 10년차 검사였다. 선배들을 제치고 대형 사건에 투입된 건 그에 대한 검찰 지도부의 신뢰를 방증한다. 당시 검찰을 출입했던 전직 언론인은 “유능하면서도 피의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신사적인 검사였다”고 기억했다.

“황 검사는 자신이 직접 워드프로세서로 타이핑을 해가며 정 전 회장을 조사했다. 당시에는 검사는 질문만 하고 조서는 수사관이 타자기로 작성하던 때였다. 조사를 마쳤는데 황 검사가 실수로 저장을 하지 않아 조서를 통째로 날렸다. 황 검사는 정 전 회장에게 양해를 구했다가 혼쭐이 났다. 위압적이었던 당시 공안부 분위기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체제 경쟁 북에 진다” 임수경 방북사건에 ‘불기소’ 의견


▎1993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비자금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에 들어가고 있다. 담당검사가 황교안 대표였다.
황 대표에게 합리적인 기질도 엿보인다. 과거 적이나 다름없던 ‘반미좌파’의 주역 김현장(69)씨가 황 대표의 정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최근 [중앙일보] 보도로 알려졌다. 김 씨는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이었다. 황 대표는 김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가 감형됐다. 김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89년 출소 6개월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구속됐을 때 남산 안기부에서 고문받다가 검찰로 넘겨졌는데, 담당 검사가 황교안이었다. 존댓말을 쓰며 사람으로 대해줘 ‘깨끗한 검사’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1989년 ‘임수경 밀입북 사건’ 수사를 담당했을 때다. 당시 검찰을 출입했던 전직 기자 이모 씨에 따르면 당시 수사검사였던 황 대표는 임수경을 조사한 뒤 안기부에 ‘불기소 또는 기소유예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올렸다고 한다. ‘임수경을 처벌하면 자유대한민국이 북한과 체제 우월성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공안사건의 결정권을 안기부가 쥐고 있던 때여서 황 대표가 뜻을 관철하진 못했지만 공안검사에게 기대할 수 없는 전향적인 발상이었다. 이씨는 “청바지 차림의 임수경은 북한에서 지금의 아이돌처럼 화제를 몰고 다녔다. 황 대표는 그런 자유분방한 임 씨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고 북한에 개혁개방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긍정적 효과에 주목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자부심과 원칙주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최근 황 대표가 중도까지 포용하려는 리더십의 본질과 맥락이 닿아있다. 한국당의 원외 인사 B씨는 “황 대표가 대권 욕심 때문에 당 조직을 자기 사람들로 물갈이할 거라는 의심은 억측에 가깝다”고 말했다. 최근 황 대표와 여러 차례 만난 적 있다는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도 같은 의견을 냈다. 여러 보수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황교안의 고민은 권력 쟁취가 아니라 보수의 부활과 자유대한민국 수호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 지지율 30%대를 극복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까지 필패한다. 적어도 40% 선을 확보하려면 중도를 끌어안아야 한다. 대한민국 중도와 보수를 한 데 모아 좌파의 득세를 막아야 한다는 게 황 대표의 신념이다. 이런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이념적 순수성을 문제 삼는 건 보수 결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황 대표는 무단방북 혐의로 붙잡혀온 임수경을 기소할 경우 북한과 체제 우월성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며 안기부에 불기소 또는 기소유예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황 대표는 보수진영의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권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이다. 한국당에 입당하기 직전 그가 말했듯이 “정치는 생물”이다. 당장에는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해본 마당에 권력에 더 큰 미련이 없을 수 있겠지만, 앞날은 알 수 없다. 황 대표 스스로 소명으로 여기게 될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정치인 황교안’이 극복해야 할 벽은 ‘신앙인 황교안’일 가능성이 크다. 자연인으로서 황 대표가 자신의 신앙에 기초해 남긴 생각의 흔적들이 곳곳에 박제돼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한 중견 목사는 “황 대표는 자기 신앙을 부정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과거의 발언들이 앞으로 그를 시험에 빠뜨릴 수 있다. 당장 한기총과의 관계 설정 문제가 그런 케이스”라고 말했다.

극복해야 할 ‘신앙인 황교안’의 흔적

그동안 황 대표는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등 꾸준히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전 목사는 지난 3월 20일 황 대표가 한기총을 방문하자 “하나님께서 황 대표를 보내줬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전 목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등 논쟁을 자초하고 있다. 한기총의 극우화를 우려한 순복음교회와 침례교 등 주축 교단들이 잇따라 탈퇴하거나 연을 끊으면서 보수 개신교계는 예기치 못한 사분오열에 빠졌다.

이런 상황이 황 대표에게 달가울 리 없다. 중도를 안으려면 극우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그의 신앙적 자산이 정치적 시너지로 발휘되려면 개신교계의 지원이 절실하다. 군소 교단의 모임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한기총과의 관계 재설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신의 불교 예식 거부 논란과 한기총의 극우행보로 반 기독교 정서가 확산되는 것도 문제다. 황 대표의 근본주의적 신앙관이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과거 사회법보다 교회법을 우선시하는 듯한 주장을 해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2012년에 출간한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에서 황 대표는 “담임목사 사택과는 달리 부목사·강도사·전도사 등의 사택을 세금 부과 대상으로 판결하고 있는 법원 견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며 종교 과세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선교여행을 떠난 분당 샘물교회 신도들이 탈레반에 피랍됐을 때에는 ‘아프간으로 가자!’라는 블로그 글을 통해 공격적인 선교 행태를 두둔하기도 했다. 당시 대다수 국민 여론은 위험지역이라는 외교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한 선교단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봤다. 하지만 황 대표는 “최고의 선교는 언제나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영국의 토머스 선교사 등 선진국 크리스천들의 공격적 선교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민족이 되었다”고 했다. 비판 여론에 대해선 “그들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그럴듯한 비난에 넘어가 부화뇌동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저들과 교회를 옹호해야 한다. 인터넷에도 글을 올리고 댓글도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계 내부의 갈등에 대해 과거에 황 대표가 내렸던 나름의 진단은 현재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갈등 상황에 대입해 반추해볼 만하다. “우리 교단 안에서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목회자 또는 지도자들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며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습관적으로 분쟁을 제기하거나, 다툼과 갈등을 지속하거나, 또는 너무 자주 그 상대방이 되는 분들은 교단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지금 겉돌고 있는 국회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정치란 게 끝없는 다툼과 갈등, 분쟁의 연속이다. 당장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정치의 한 축을 이끌고 있는 황 대표는 과거 자신의 종교적 발언을 부정하는 행위를 해야할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걸 회피한다면 종교인의 양심은 지켜지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에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황대표의 종교관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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