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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첨 인터뷰] 파스칼 라미 전 WTO 사무총장이 본 ‘한·일 무역 분쟁의 진로’ 

“WTO 최종 결론까지 최대 5년 걸려” 

일본, 정치적 사안으로 보이는 문제에 경제적 수단으로 대응
자유무역체제 반하는 일본 행보를 국제사회에 알릴 기회


▎파스칼 라미 전 WTO 사무총장은 “일본이 ‘자유무역체제’라는 WTO 정신에 반하는 길로 가는 것처럼 국제사회에 비칠 수 있다”고 말한다.
한·일 무역 갈등이 소송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추석 연휴 하루 전인 9월 11일, 한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겨냥해 단행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건 수출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일본의 부당 행위를 WTO분쟁해결 절차로 가져간다는 의사를 밝혀 왔지만, 실제 제소까지는 두 달여가 걸렸다.

월간중앙은 WTO를 8년간 이끌어 온 파스칼 라미(Pascal Lamy) 전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역 분쟁과 WTO 제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파스칼 라미 전 사무총장은 2005년부터 2013년의 재임 동안 한국과 일본의 6번에 걸친 분쟁 사안을 지켜봐 온 사람이다. 이 중 분쟁이 마무리된 3건 모두 한국이 승소했다. 하지만 파스칼 라미는 7번째로 시작되는 이번 한·일 무역 분쟁을 두고 ‘그동안의 분쟁과는 결이 다른, 매우 중요한 사안(serious matter of concern)’이라고 말한다. WTO 제소 공략 포인트와 그가 바라본 한·일 무역 갈등의 본질을 무엇일까. 9월 초 프랑스에 있는 그와 전자메일을 통해 문답을 진행했다.

2019년 8월 28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안보상’의 이유로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 정부의 조치가 ‘정치·외교적 사안’을 빌미로 경제 보복을 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나라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엔 WTO는 어떤 절차를 밟게 되는가.

“현재 한국과 일본의 논쟁은 아주 드문 케이스다. 두 나라가 내세운 대응논리가 서로 상충한다. 분명한 것은 양 국가 모두 현안을 비(非)무역적인 것에 기반을 둔 무역제재라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 WTO는 한국의 제소를 받아서 일본의 조치를 심사하게 된다. 한국이 일본을 WTO 분쟁해결 절차에 제소하면 1심 성격의 패널이 설치되며, 패널에서 패소한 측은 2심 성격을 갖는 상소 기구에 상소할 수 있다. 물론 1심 전에, 양국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으로서 협의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양국간 논쟁은 분쟁해결제도(Dispute Settlement System, DSS)에서 판결을 내리게 된다.”

1심에서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나?

“전문가 패널들로 구성된 DSS의 판결은 이후의 최종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심의를 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안보가 한국에 의해서 위협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만약 사실이라면, 일본의 제재가 적절한 수준이었는지, 아닌지 ▷무역제재로 인해 한국과 일본이 각각 입은 피해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따진다.”

WTO의 최종 판결에 이르기까지 대략 얼마의 기한이 걸릴까?

“보통 2심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는 데 대략 2~3년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양 국가 간의 의견이 대척점에 머물고 있는 중대한 사항인 만큼, 협의가 힘들 것을 고려한다면 최대 5년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WTO 제소가 장기전이 된다면, 한국이 기한의 이익이 없기에 불리하진 않을까.

“이 점은 내가 아니라. 현시점에서 WTO 제소라는 카드를 빼 든 한국 정부가 판단하고 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대목이 있다. 소송의 결과가 무엇이고, 소송으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떠나서 이 논쟁은 여태껏 한국과 일본이 지켜오던 WTO 정신, 즉 ‘자유무역체제(Free Trade System)’에 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WTO를 가벼이 여기고 ‘보호무역(Protective trade)’을 수호하는 선례를 일본이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보일 수 있다. 장담컨대, 이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한국은 WTO 제소를 통해 국제 사회가 이 같은 일본 정부의 행로에 주목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항변 근거로 내세운 1947년 GATT 협정문 제21조는 WTO 회원국이 자신의 필수적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GATT 상의 의무를 예외적으로 위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일본은 사실상 ‘정치적 사안(a political issue)’이라고 보이는 전후 보상에 대한 불합의에 대해 무역제재라는 경제적 수단으로 대응했다. 내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GATT 21조는 안보적 목적에 근거한 무역제재를 원칙적으로 주권국가의 자의적 판단에 맡겼지만, 이것이 주권국가에게 제한 없는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아까 말했듯이 전문가들 패널들에게 달렸고, 이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한국도 이 점을 파고들어 주도면밀한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행로에 견주어 보았을 때, 국내에선 WTO가 유지해오던 자유시장 경쟁의 판도가 바뀔 것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반(反)글로벌에 기초한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선진국인 미국보다 개발도상국들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미국의 이 같은 공격적 보호무역주의 압력 때문에 지금의 자유무역주의의 판도가 바뀌리라고 보진 않는다.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 수치가 나머지 75% 비중을 가진 나라들의 무역 룰(Rule)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좌지우지 해야 할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지 않나. 사실 현재 미국 내부에선 WTO 탈퇴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WTO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lake8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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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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