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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인터뷰]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벨퍼센터 소장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동의 없이 북한과 협상할 수도”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턴=김동현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북핵 폐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 북한 공격받으면 한국·일본에 핵 보복할 가능성 있어”

▎그레이엄 앨리슨 소장은 “북핵 폐기 과정은 일종의 거래이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크레이그 벨퍼센터
월간중앙이 동북아 문제와 핵 안보 관련, 세계적 석학인 그레이엄 앨리슨(77) 미 하버드대 벨퍼센터 소장을 미국 보스턴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최근 미·중 관계를 분석한 <미국과 중국은 전쟁을 피할 수 없는가?(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라는 책을 펴내 주목을 받았다. 앨리슨 소장은 세계 패권을 놓고 지난 500여 년 동안 벌어진 전쟁들의 특징을 신흥 세력(rising power)과 지배 세력(ruling power)의 대결로 분석했다. 신흥 세력의 성장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지배 세력을 자극했고, 이 자극이 결국은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으로 인해 전쟁 상태에 돌입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 인터뷰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7월 10일 이뤄졌다. 인터뷰에서 앨리슨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 없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럴 경우 한·미 관계가 경색될 수도 있지만, 이는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라고 지적하며 문 대통령의 대북 독자 협상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또한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다면 김정은 정권을 교체하고 보다 우호적인 정권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공존하면서 남과 북의 통일을 장기 과제로 미루는 방식의 구조 변화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질 것”이며 “이는 일종의 거래이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다음은 앨리슨 소장과의 문답.

북한 미사일 위기는 쿠바 위기의 슬로모션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정책결정 모형을 다룬 명저 <결정의 엣센스>에서 사용한 모델을 북한 핵·미사일 위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Rational Actor Model)을 적용해보면 김정은은 그의 세계관에 걸맞은 목표를 위한 합리적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모델인 조직 과정 모델(Organizational Process Model)을 적용하자면 북한의 군부, 기업가들과 핵·미사일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조직 모델을 분석해볼 수 있다. 북한 내부와 관련한 정보가 많지 않지만 적어도 권력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장성택과 김정남의 사망으로 보건대 일정 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의 공격용 미사일 쿠바 배치가 미국의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은 핵 개발과 단거리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까지 매번 레드라인을 넘곤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미국의 레드라인은 어디쯤인가?

“질문에서처럼 미국은 북한에게 수차례 레드라인을 설정해 발표한 바 있고, 북한은 매번 별다른 대가를 치른 적 없이 레드라인을 어겨왔다. 북한이 핵무기,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지속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레드라인을 긋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매번 북한은 레드라인을 넘었고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앞으로도 북한이 무심코 레드라인을 넘어설 것으로 생각되지만, 다소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르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 위기를 쿠바 위기 상황과 비교·분석한다면?

“북한 미사일 위기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슬로모션(slow motion)이라고 쓴 적이 있다.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적절한 비유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레드라인을 분명히 했다. 당시 소련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면 케네디 대통령이 그 대가를 치르게 했을지는 알 수 없다.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배치한 핵탄두 미사일이 실전 모드에 들어서는 것이 레드라인이라면서 타격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소련 측에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13일 사이에 일어났다. 북한 미사일 위기의 경우 13일이 아니라 13개월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은 1회가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미 서부를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시험발사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사전에 이를 저지당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김정은을 압박해 그의 의지를 꺾을 수도 있고, 미국이 북한의 ICBM 실험을 막기 위해 발사대를 공습하는 방법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과정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맡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보이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이 7월 6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옛 베를린시청 내 베어홀에서 ‘7·6 베를린 구상’을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의 북핵 위기를 진단해본다면?

“역사가 주는 교훈은 모든 것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이다. 쿠바와 북한 미사일 위기는 다르다. 북한은 두 개의 국가가 아니라 3∼4개 국가가 얽혀 있다는 점이다. 또한 김정은은 중요한 역할자다. 쿠바의 경우 카스트로가 역할자를 자임했으나 미국과 소련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허가 없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허가가 없다면 한·미 관계가 경색될 수도 있지만 이는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다. 북한 미사일 위기는 쿠바의 경우보다 더 복잡하지만 전반적인 구조는 비슷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는 무대응, 격리(quarantine), 봉쇄(blockade), 정밀 타격(precision strike) 등 여러 가지 정책 옵션이 고려된 바 있다. 북한을 상대로 어떤 옵션이 가능하리라 보나?

“하나의 옵션인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북한에 있는 모든 핵 시설을 선제타격하는 것인데 그 위치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수일에 걸친 작전이 전개될 텐데 한국과 일본이 공격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미사일 발사대를 목표로 한 제한적 선제타격은 난이도가 높지 않지만 이것 역시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미지수로 남는다. 둘째, 사막의 폭풍작전(Operation Desert Storm) 때와 같이 몇 개월에 걸쳐 다양한 훈련을 실시하고 군사력 증강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선제타격 혹은 침공을 두려워하게 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중국이 제안했던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 전진배치의 제한 등을 통해 북한의 절제를 유도하는 것이다. 넷째, 북한의 정권교체를 위해 미국 혹은 중국이 노력해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중국, 한국, 러시아의 제재를 통해 김정은을 압박할 수도 있지만 중국은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동안 그 방식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

대북정책의 여러 가지 옵션 중 당신이 미국 대통령이라면 어떤 옵션을 택하겠는가?

“최악과 차악 간의 선택이 될 것이다.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보유국인 북한과 공존하는 것은 끔찍한 선택이다. 북한과 공존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옵션이지만 부시-오바마 행정부 당시 다른 대안(선제타격)은 더 끔찍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도 핵보유국 북한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선제타격보다는 나은 옵션이었다. 한국 정부는 서울에서 100만 명의 시민이 희생당하기보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했다. 1994년 나는 당시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국방장관과 함께 플루토늄 재가공을 막기 위한 공격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Ashton Carter) 국방부 국제안보정책담당차관보와 나는 같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시간은 흘렀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어떤 종류의 공격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 <핵 테러리즘(Nuclear Terrorism)>이라는 책을 통해 내가 정책결정자라면 북한에 두 가지 옵션을 제안할 것이라고 썼다. 두 가지 옵션 모두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불가능하다.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제거하거나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이 나선다면 북한이 보복을 통해 제 2차 한국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수백만의 한국민과 미국민이 희생당할 것이고 이를 아무도 원치 않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기 전에 미국은 전쟁을 감수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는 테러리스트 그룹에 판매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핵 무정부상태(nuclear anarchy)에 도달하게 돼 악몽과 같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2004년의 상황이다. 2006년 6월 22일 애슈턴 카터와 윌리엄 페리는 <워싱턴 포스트> 공동 기고문을 통해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통해 ICBM을 발사하기 전에 이를 타격할 것을 주장했다. 2017년 현재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에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만일 공격받는다면 한국과 일본에 핵으로 보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 미·중 간 전쟁 유발할 가능성도 있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7월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급인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한 뒤 군 지휘부와 기뻐하고 있다. / 사진:노동신문
중국이 대북제재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 문제가 미국과 중국에 위험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번에 내가 새로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생각해봐야 한다. 투키디데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신흥 강대국이 기존의 강대국과 맞닥뜨리게 되면 평소에는 쉽게 제어될 수 있는 외부적 요인이 작용과 반작용을 연속으로 일으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그 좋은 예다. 중국과 한국은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는지를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전쟁을 원치 않았던 강대국들이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극도로 파괴적인 전쟁에 빠져든 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신흥 강대국인 중국의 관점을 보자. 최근 내가 만난 중국의 고위 관료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을 가지는 일도, 미·중 간에 핵을 둘러싼 충돌도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정권이 남한을 공격할 야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를 두려워하고 있고, 미국이 방어를 도와주기를 원한다. 한국이 미국의 방어를 원하지 않는다면 미군은 한국에서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핵을 보유하려는 북한의 존재와 미·중의 함수관계를 설명한다면?

“기존 강대국(미국)은 항상 자신이 자비롭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모두에게 좋은 상황을 만들어냈고, 자신이 만들어낸 질서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성장에 도움이 됐다고 본다. 다른 국가들도 기존의 구조를 지지하기 위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신흥 강대국(중국)은 기존 질서가 자신이 약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자신이 강대국으로 성장한 시점에는 그 질서를 수정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조건 아래 김정은은 미국과 중국을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으로 이끌 수 있다. 중국은 미국보다 긴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는데, 나는 중국의 지인에게 북한이 중국과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과거에 그랬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전쟁이 그런 경우다.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원치 않았고, 미국도 중국과 전쟁을 원치 않았다. 북한이 다시금 미국과 중국을 전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고, 양국 모두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 제한도 고려할 수 있다”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정상회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각자의 이익을 보전하는 수준에서 협력할 수 있다고 보는가?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에 없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국경에 잠재적인 적국을 두고 싶어 할 이유가 있는가? 중국은 미군의 한국 주둔이 북한 때문이 아니라 중국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의 국력이 신장하면서 미국이 그 성장을 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성인의 감독(adult supervision)’이 가능하지 않을까 꿈꿔본다. 시진핑과 트럼프를 앉혀놓고 성인의 감독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첫째, 전략적인 관점에서 북한이 미국과 중국을 전쟁으로 이끌 수 있고, 이는 양국에 치명적일 뿐 아니라 가장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선례가 있었다. 둘째, 미국과 중국 모두 북한이 어느 날 지도상에서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한국은 북한과 핏줄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더 복잡하지만 미국은 북한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중국 또한 핵심과 비핵심 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은 그다지 중요한 나라가 아니다. 이 점에 착안해 양국 간 대화를 통해 북한 내 정권교체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 중국이 이 점에서는 미국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고 현재보다 더 우호적이며 한국과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면, 우리는 북한과 공존할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공존하면서 남북통일을 장기 과제로 미룰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어떤 과정과 방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미국은 비핵화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한국 또한 이에 동의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장기적인 목표다. 우선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중단을 바란다. 핵무기 수를 늘려서는 안 되며 천천히 비핵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거래이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제한을 둘 수 있는가? 주한미군의 군사력에 변화를 줄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한국군의 군사력에 변화를 줄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 부대의 주둔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사드에 변화를 줄 수 있는가?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양국 모두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보스턴=김동현 통신원 glutton4@joongang.co.kr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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