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특별 인터뷰] 해외 북한 노동자 연구자 강동완 동아대 교수 

“황폐해진 인민의 삶은 누구 책임인가” 

28개월 동안 10차례 러시아 방문… “새해 첫날에도 노동의 연속”
“자유 가치와 자본주의 경험, 9만 명 북한 가족들에게 전파될 것”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자유를 맛본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귀국함으로써 북한 사회에 다양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한다. / 사진:송봉근 기자
모두가 연말 분위기에 들떠 있던 2019년 12월 22일.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러시아 방문차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날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 8항에 따라 모든 회원국 내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전원 송환하도록 한 마지막 날이었다. 강 교수는 철수 시한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의 상황을 살피고자 연말연시를 타국에서 맞이했다.

그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2397호)이 채택된 2017년 12월 22일 이전인 그해 9월부터 연 3~4차례 러시아 지역을 방문했다. 북한 노동자들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강 교수가 접한 그들의 현실은 피폐하고 열악했다. 그래도 북한보다 자유로운 ‘환경’,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북한에 남겨둔 ‘가족’이 그들의 버팀목이었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그는 28개월 동안 9차례 러시아를 오가며 만난 북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 - ‘충성의 외화벌이’라 불리는 북한 노동자])을 2019년 12월 22일 출간하기도 했다.

본국 송환 시한을 넘겨 강 교수가 방문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여전히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월간중앙은 2년여 기간 동안 북한 노동자 송환 과정을 꾸준히 지켜본 강 교수로부터 현지의 분위기와 전망을 들었다. 그와의 만남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돌아온 직후인 1월 8일 동아대 부산하나센터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러시아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은 얼마나 자유로워 보였나?

“보통 북한 노동자들은 옆에만 가면 경계하고 주위를 살핀다. 남한 사람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표현일 수 있지만, 본인의 처지를 알아채 달라는 무언의 신호인 경우도 있었다. 내 개인 신변에 대한 위험도 있었기에 그것을 구분해 내는 것이 어려웠다.”

10차례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건설 노동자들을 통해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열사의 나라 중동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외화를 벌어온 아버지 세대의 모습 말이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고된 노동을 견뎌내는 북한 노동자들은 우리 아버지 세대가 그러했듯 지갑 속의 가족사진을 보고 위안을 삼더라. 우리 아버지 세대의 외화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반면 북한 노동자의 피와 땀은 독재자금이 될 뿐이다. 그들의 삶이 황폐해지는 것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직접 만나본 북한 노동자들의 속내랄까 내면의 풍경이 와 닿기도 했나?

“해외에 오래 나와 있는 사람일수록 생각의 변화가 크다. 국제적 압박이나 송환 강제 등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게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제재이지만, 원인 제공은 북한 당국이 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또 그렇게 만든 핵무기를 자부심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더라. 그 사람들은 ‘당과 조국을 위한 충성자금 때문에 해외에 나왔지만 내가 일하는 이유는 가족’이라고 말한다. 가족을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의식의 변화다. 정권에 대한 불만이 날로 커지고 있는 셈이다. 자유에 대한 갈망도 크다. 단순히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수준이 아니라,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도 맞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고뇌할 정도다. 마음은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한번 자유를 맛본 이상 북한에서 살 수 있을지 번뇌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봤다. 삶의 이유인 가족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자유의 가치를 크게 느낀 셈이다.”

“북한 회사에 착취당하고 러시아 경찰에 단속당하는 신세”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가 장비(그라인더)를 다루고 있다. / 사진:강동완 교수
가족을 두고 해외에서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인데.

“그만큼 북한에서 살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해외는 오늘 못 벌면 내일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란 의미 아니겠는가. 이 때문인지 만났던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무슨 수를 쓰든 다시 나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북한 노동자의 본국 소환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진단한다면?

“본인의 의사가 아니더라도 최소 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들은 자유를 경험했다. 그들의 내적 갈등이 약 6만~9만 명의 처자식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다. 물질적으로도 이들이 갖고 들어가는 자본은 시장에 풀릴 것이다. 한 노동자가 얘기하기를, 100달러면 4인 가족 기준 두 달 동안 먹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자유의 사조(思潮)가 이들을 매개 삼아 북한 사회로 스며들 수 있다.”

앞으로도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 등 해외에서 일을 계속할까?

“북한은 올 3월 유엔 이행보고서 제출 이후 날이 풀리면 다시 노동자들을 내보내겠다고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마저 막히면 외화벌이할 수단이 끊기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2019년 12월 안보리에 대북제재의 일부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남북의 ‘철도·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핵심은 ‘북한 노동자의 본국 송환 규정 폐지’다.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학자로서 러시아 북한 노동자 삶에 천착하는 동기는?

“당초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 등 생활 실태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만나 얘기 나누고 사는 모습을 접하면서 그들의 번뇌와 고통을 느끼게 됐다. 그들은 뇌물을 바쳐가면서까지 한 푼이라도 벌려고 해외에 나왔다. 하지만 북한에서 파견한 회사에 착취당하고, 러시아 경찰에게 단속당하는 비참한 신세다. 돈도 중요하지만, 자유를 경험한 이상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볼모로 잡혀 있는 북한의 가족 사이에서 번뇌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다. 매 순간 일어나는 내적 갈등 속에 고된 노동 현장으로 가야 하는 게 그들의 일상이다. 이것이 과연 사람다운 삶인가.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의 삶이 고통받고, 그 안에서 기생충처럼 노동자의 돈을 갈취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구조다. 말할 수 없는 분단의 아픔을 그곳에서 목격했다.”

그들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보는 북한은 잘 살고 화려한 평양의 모습이 전부다. 북한의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에 나와 있는 분단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 글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 사진 송봉근 기자 song.bonggeun@joongang.co.kr

202002호 (2020.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