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평양 리포트] 암호화폐, 국제 제재를 뚫을 북한의 보검? 

김정은이 핵과 블록체인으로 무장한다면… 

북, 세계 전문가 평양에 초청하는 맨투맨 방식으로 암호화폐 개발에 혈안
시·군 단위 영재학교에서 ‘IT 전사’ 양성… 인민무력부 산하 해커부대 배치


▎북한은 2020년 2월 ‘평양 블록체인·암호화폐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00년대 초반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한 당국 간 회담 당시의 기억이다. 북한의 거듭되는 억지 주장에 정회를 선언하고 서울의 훈령을 기다리는 동안, 회담장인 고려호텔 2층 서점을 찾았다. 서점에서는 김일성 저작집 등 우상화 선전물 책 이외에 각종 소프트웨어(SW)를 1개당 20달러에 판매하고 있었다. 평양정보센터(PIC)와 조선콤퓨터센터(KCC) 등에서 제작한 소프트웨어는 외국어 교육, 체질 감별 등 건강, 낚시와 바둑 등 취미생활까지 매우 다양했다. 특히 북한말을 영어, 일어 및 중국어 등으로 자동 변환하는 번역 프로그램과 발음의 98% 이상을 문자로 전환하는 음성인식 프로그램 등이 인상적이었다. 북한의 소프트웨어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칭찬하자 안내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번 도약’ 전략으로 단숨에 IT 발전을 이뤄내 가까운 시일 내 북한이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종합대학이 서울대학교와 비교해서 우수한 학과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수학과”라고 농담을 했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어디서나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온 나라의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와 같은 컴퓨터 수치제어 기술로 4차 산업혁명에서 성과를 거둘 것을 강조해왔다. 평양 서점에서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북한 지도부의 디지털 정보화 리더십(digital information leadership)이 국제사회의 최신 흐름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필자는 이후 북한 자료와 서적, 국제사회 보고서를 종합해 한국 최초로 북한 IT에 관한 책인 [북한의 IT 발전 전략과 강성대국 건설(2002, 한울아카데미)]을 발간했다. 책을 낸 배경은 북한 당국의 IT 발전 의지가 강했고, 엘리트 영재를 통한 수학교육을 토대 삼아 향후 북한의 정보화가 날개를 달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정보통신 발전에 주력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IT 분야 발전 속도가 간단치 않았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대 및 조선과학원의 기초연구 인력을 토대로 평양정보센터, 은별콤퓨터기술연구소 등에서 신기술 연구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북한 IT 연구는 군사 및 경제적 이득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회피가 목적이었다. 군사와 경제적 이득은 첨단무기 개발과 해킹이 목표이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회피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암호화폐의 개발 및 유통을 겨냥했다. 물론 CNC 기술을 공장에 접목해 현대화시키는 산업화의 목적도 있다.

FBI, 자국 암호화폐 전문가를 체포

2019년 11월 28일, 북한을 방문해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을 전수하고 돌아온 미국 시민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LA 공항에서 체포했다. 미 법무부는 11월 29일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미국인 버질 그리피스(Virgil Griffith, 36)를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2019년 4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암호화폐를 이용해 미국의 경제제재를 회피하는 고급기술을 북한에 전수한 혐의였다.

그리피스는 미 재무부 허가 없이 북한에 상품과 서비스, 기술 수출을 금지한 ‘긴급국제경제조치법(IEEPA)’을 위반한 혐의를 적용받았다. IEEPA는 미국 시민이 재무부 해외자산관리국(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의 허가 없이 북한에 상품, 서비스 또는 기술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다. 검찰 기소에 따르면 암호화폐 이더리움 전문가인 그리피스는 2019년 4월 평양에서 열린 ‘평양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회의’에 참석했다. 행사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조선우호협회(KFA)가 주최했다. 그리피스는 ‘블록체인과 평화(Blockchain and Peace)’라는 제목으로 프레젠테이션(PT)을 했다. 평양에서 개최됐으며 북한 관료들로 구성된 청중 100여 명이 강연을 들었다. 회의 주최 측은 그에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잠재적으로 돈세탁과 미국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유용하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돈세탁과 제재 회피, 두 가지 주제가 북한에서 파급력이 가장 크다는 이유였다. 그리피스는 강의를 통해 돈세탁이 가능하고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블록체인의 구체적인 기술에 관해 설명했고 이 기술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북한이 독립할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고 연방 검찰은 공소장에서 밝혔다.

그리피스는 평양 토론회 참석 직후 남북한 간에 ‘암호화폐 1’의 테스트 송금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FBI는 4월 회의 이후 지속해서 그리피스를 감시 추적했고, 그의 동의로 11월 22일 스마트폰 포렌식 조사를 한 뒤 그를 체포했다. 제프리 버먼 뉴욕 연방검사는 성명을 통해 “그리피스는 북한에 가치 있는 고급 기술 정보를 제공했으며, 북한이 이 기술을 돈세탁과 미국의 제재를 피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FBI 부국장 윌리엄 스위니 주니어(William F. Sweeney Jr.)는 “대북 제재가 가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나라와 그 지도자는 우리의 국가 안보와 동맹국에 문자 그대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리피스는 연방정부의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법에 저촉된 행위를 했다. 우리는 누구도 북한이 제재 회피를 돕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더군다나 미국 시민이 우리의 적을 돕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된다.”

연방 검찰은 그리피스가 북한과 한국 간 암호화폐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계획했다고 밝혔다. 평양 국제회의가 끝난 뒤 그리피스는 남북 간 암호화폐의 이동을 쉽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2019년 8월 그리피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암호화폐를 이동시키는 문제를 논의하다가 적발됐다고 NBC는 보도했다. ‘사람 2’라고 표기된 문자메시지 수신자가 ‘제재 위반 아니냐’고 묻자 그리피스가 ‘그렇다’고 답한 문자도 확인됐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현재 그리피스의 범죄는 최고 징역 20년형을 받을 수 있는 중범죄로 분류된다.

2019년 7월 서울 블록체인 행사에서도 강연한 바 있는 그리피스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을 연구한 흔적이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수사 당국은 공범 한 명을 추가로 구속할 예정이다. 그리피스는 당초 미 국무부에 방북 허가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비자를 발급받았다. 100유로(약 13만원)를 지불하고 받은 비자로 중국을 거쳐 입북했다. 북한에 다녀온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여권이 아닌 별도의 종이에 비자를 받았다. ‘로만포엣(Romanpoet)’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그리피스는 일찍이 컴퓨팅에 소질을 보였다. 미국 앨라배마대에서 컴퓨터와 인지 과학을 공부했고,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서 컴퓨팅과 신경망 체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생 때 캠퍼스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와 동전 세탁기 결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리기 위해 공짜로 사용하는 방법을 온라인에 알렸다가 결제회사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피스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개발 오픈소스 플랫폼인 이더리움 소속이다. 해킹과 암호화폐 세계에서 유명인사로 알려졌다. 2008년 [뉴욕타임스]는 그를 ‘말썽꾼’, ‘파괴적 기술자’라고 소개했다. 해킹 관련 국제회의 단골 연사였다. 2007년에는 오픈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정보를 갱신한 사용자의 IP주소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위키 스캐너’를 개발했다.

2017년 6차 핵실험 이후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 간 창과 방패의 싸움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북한의 돌파구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등 가상화폐 첨단기술로 확대되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고 ‘미국 중심의 세계 금융 체제’를 타개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개발하고 있다. 자체 기술 개발의 한계를 인식한 북한은 세계적인 전문가를 발굴해 평양에 초청하는 맨투맨 방식으로 첨단기술을 획득하려고 시도한다. 고급 족집게 과외 방식을 통한 기술 습득이 평양에서 최초로 열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국제행사였다. 전문가 설명회 등으로 구성된 콘퍼런스는 2019년 4월 22~23일 진행됐다. 남은 기간에는 판문점, 김일성광장, 평양외국어대학, 대동강 맥주공장 등을 방문했다.

북한판 비트코인이 만들어질까?


▎IT분야 기초연구 인력 육성에 주력하는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전경.
조선우호협회는 “이번 행사를 통해 북한이 전 세계 나라와 친선과 교류, 기술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기대한다”며 “각국 참가자 의견과 전문가, 기업들의 큰 관심을 바탕으로 향후 더 큰 규모로 두 번째 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협회는 2018년 11월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행사 소식을 밝혔으며 2019년 2월 10일까지 참가 신청을 받았다. 협회는 당시 “전 세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전문가들이 평양에 모여 관련 지식과 비전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사업 기회를 논의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한국, 일본, 이스라엘 여권 소지자, 언론인을 제외하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으며 참가비는 항공, 숙박, 식사 등 여행비를 일체 포함해 총 425만원 상당이었다.

북한은 4월 행사를 통해 암호화폐, 블록체인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을 보여줬다. 평양 4곳, 원산 1곳에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매장도 참가자들에게 공개했다. 제1차 회의에는 북한 측 관계자와 외국 전문가 등 모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몰타의 암호화폐 컨설팅업체 ‘토큰키’ 등이 참여한 외국 전문가단이 블록체인 관련 설명회를 진행했고, 북측에서는 정보기술, 금융, 무역, 보험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당시 조선우호협회는 행사 후 “북한 관계자와 외국 전문가들 모두 행사 내용과 결과에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자평하며 “저명한 업체들로부터 행사 참가와 후원, 협력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1차 회의에서 북한 암호화폐(가상화폐) 회의의 책임자인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Alejandro Cao de Benos)는 북한 디지털 화폐가 비트코인(BTC)과 비슷하겠지만, 토큰을 만드는 데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현재로서는 북한 화폐를 디지털화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北의 가상화폐 개발 최대 장애물은 폐쇄성


▎북한 정찰총국 110연구소 소속의 해커 박진혁은 미국 FBI에 지명 수배된 상태다. / 사진 : FBI
북한은 2019년에 이어 2020년 2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주제로 제2차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평양 블록체인·암호화폐 콘퍼런스 2020’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행사는 2020년 2월 22∼29일 평양 과학기술전당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북한 정부기구인 대외문화연락위원회가 주최하고 해외 친북 단체 ‘조선우호협회(KFA)’가 조직을 맡는다고 홈페이지는 밝혔다. 주최 측은 문답 형식의 안내문을 통해 참가자의 여권에 입국 기록이 남지 않도록 별도의 종이 비자를 발급할 것이라며 “미국 여권도 환영한다”고 공지했다. 참가자들은 “공화국(북한)의 존엄에 반하는” 선전물, 디지털 파일, 출력물을 빼고 노트북과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북한으로 가져갈 수 있다. 또 심(SIM) 카드를 구매한다면 스마트기기로 24시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고 홈페이지는 설명했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이 회의에 이어 마식령스키장에서 겨울 스포츠와 휴식을 즐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전문 인력을 활용해 가상화폐(암호화폐)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국제회의에 참여한 방북자들은 북한도 시범적으로 가상화폐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2018년 7월 산업은행은 [북한의 가상통화 이용 현황] 보고서에서 “북한의 정보기술(IT) 기업인 ‘조선엑스포’는 가격정보 수집·차트화를 통해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거래를 중개하는 솔루션을 개발·판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관광객 모집용으로 운영하는 웹사이트 고려투어는 올해 만우절 공지에서 자신들이 ‘고려코인’을 개발하고 ICO(가상화폐 공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가상화폐 개발에 주목하는 핵심 이유는 익명성과 자금 추적의 곤란함, 용이한 환금성 등으로 미국의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은 익명성 보장 기능이 강력하고 전문 채굴기가 아닌 일반 중앙처리장치(CPU)로도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가상통화 ‘모네타(MONETA)’ 채굴에 적극적이다. 비트코인 사용처를 수집·공개하는 ‘코인맵(Coin-Map)’에 따르면 비트코인 수납 식당이 평양에 4곳, 원산에 1곳 존재한다. 다만 북한은 전력 부족, 고성능 컴퓨터 보급 미비, 인터넷 인프라 열악 등으로 가상통화 관련 활동이 단기에 확대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코인맵 보고서는 “인터넷 접속을 일부 계층이 독점하는 북한 상황을 고려할 때 탈중앙화(decentralization)적 가치가 중요한 가상통화의 발전을 단기간 급속하게 이루기 위해선 과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다만 당국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할 경우, 새로운 개발모델이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북한 정보화의 또 다른 목표는 해킹이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미발표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5년 이후 수십 차례 사이버 금융 공격을 시도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작성한 142페이지로 구성된 미국 발표의 중간보고서는 “북한은 2015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적어도 17개국 금융기관이나 암호화폐 거래소에 35차례에 걸친 사이버 공격을 실행한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4년간 최대 20억 달러(한화 약 2조4320억원) 이상의 도난”이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대남 담당기관인 정찰총국은 2017년 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암호화폐 거래소를 5회 해킹해 모두 5억7100만 달러(약 6943억원)를 훔쳤다. 2018년 1월에는 일본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체크(Coincheck)’에서 580억엔(약 6649억원) 상당의 통화를 부정 유출했다.

북한은 부정 수단으로 외화 획득을 노리는 국가 차원의 범죄를 지속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2019년 하반기 보고서에서 “북한 해킹으로 알려진 각국 암호화폐 탈취 사건 피해액은 최대 5억4500만~7억3500만 달러(약 6190억~8350억원) 상당으로 추정된다”며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이버 보안업체 ‘레코디드 퓨처(Recorded Future)’는 2019년 하반기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싱가포르 소재 해킹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미국의 경제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9년 11월 “최근까지 북한의 해킹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몇 건 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이 북한 해킹으로 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의 대정부 질의에 이 총리는 “테러대책위원회에 사이버 방어 항목이 있고, 사이버 문제가 항상 논의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9월 북한 정찰총국 소속으로 알려진 해킹그룹 라자루스 그룹과 하부 해킹그룹인 블루노로프, 안다리엘 등 3곳을 제재했다. 미국 정부는 2018년 9월 북한의 사이버공격 활동에 대한 첫 제재로 라자루스 그룹 해커 박진혁을 기소했다. 2014년 소니픽처스 해킹,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으로 8100만 달러 탈취,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공격을 한 혐의다. 미 재무부는 북한 정권이 2007년 초 라자루스 그룹을 만들었고, 북한 정찰총국 제3국 110연구소 소속이라고 밝혔다.

필자는 과거부터 북한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및 해킹 담당 영재급 인재들을 어디서 어떻게 양성하는지를 추적해오고 있다. 평양의 ‘금성’은 우리나라의 중등교육과정에 해당한다. 6년 과정으로 한 학년당 학생이 200~300명으로 예술반과 컴퓨터반이 있는데, 컴퓨터반 학생은 100~150명이다. 또한 북한은 각 도시와 군 단위로 영재학교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도1중학교’, ‘군1중학교’가 영재학교에 해당한다. “북한에는 비밀 대학이 많다. 군부가 운영하는 대학이다. 북한은 이처럼 나라의 IT 전력(戰力)을 키우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2004년 2월 북한을 탈출한 김철수 전 북한컴퓨터 기술대학 교수의 증언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금성 컴퓨터반 출신 중에 수재급을 뽑아 미림자동화대학이나 김책공대에 진학시키고 이들이 졸업하면 인민무력부 정찰국 예하 해커부대 장교로 임명한다.

북한 정찰총국의 임무는 외화벌이 해킹


▎고려투어는 2019년 홈페이지에 ‘고려코인을 개발했다’는 만우절 가짜뉴스를 내보냈다. / 사진 : 고려투어 웹사이트
금성 출신이 아니라도 해커 부대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 해마다 김일성군사학교 졸업생 중 100여 명의 수재를 선발해 컴퓨터 관련 교과과정을 집중적으로 교육한 뒤 이들을 모두 해커 부대 장교로 임명한다. 북한에서는 1999년부터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과학수재’에 대해 군 복무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이 특별제도는 각 시군에 있는 ‘제1고등’ 출신 중에 이공계에 진학한 젊은이들을 ‘IT 전사’로 인정해 연구에 전념토록 한다. 한마디로 과학영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초엘리트 교육시스템이다. 해커 부대는 인민무력부 산하에 있다. ‘121소’ 부대와 중앙당 조사부 장교들이 주력 인력이다. ‘121소’에는 500명, 중앙당 조사부에는 1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해커 부대는 총참모국 예하 지휘자 동화국과 정찰국에서 전담한다. 일반 부대는 ‘중대’ ‘소대’로 편제되지만, 해커 부대는 팀 단위다. 해커 부대는 “방화벽, 바이러스, 해킹프로그램 같은 것을 개발하고 윈도, 유닉스, 리눅스 등 모든 컴퓨터 운영체계를 분석한다. 로그인 과정을 교묘하게 통과하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허점을 찾아낸다. 허점을 꿰뚫고 있는 만큼 백신과 공격코드를 만들어 상대 컴퓨터망을 교란한다.

블록체인은 북한을 경제제재에서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현재 북한은 국제금융 결제 망인 SWIFT를 이용할 수 없어 해외 송금이 막힌 상태다. 블록체인은 이런 제재와 상관없이 당사자끼리 자율 거래 및 규제를 가능하게 한다. 당사자 합의를 통해 재화나 상품, 용역 등이 인도적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을 튼다. 북한이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진 최종 목적은 해외무역 거래에 암호화폐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암호화폐는 네트워크상에서 익명성이 보장된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국가에서는 암호화폐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유는 암호화폐의 가치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처럼 신뢰가 낮은 국가기관의 경우, 대상 국가의 화폐보다는 암호화폐에 더 신뢰를 가진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 보증을 위해 암호화폐를 사용한다. 북한 역시 블록체인으로 정부의 낮은 신뢰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북·미 현지 매거진 [바이스(VICE)]는 “북한이 국제적인 경제제재와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대처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개발 중”이라고 2019년 9월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평양 블록체인 콘퍼런스 총괄 책임자인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Alejandro Cao de Benos) 북한 대외문화 연락위원회 특사는 “아직 정해진 이름은 없지만, BTC 혹은 그 외 암호화폐와 유사할 형태를 띨 것”이라며 “아직 개발 초기 단계다. 현재 암호화폐에 가치를 부여할 만한 것들을 연구하고 있는 단계이며, 당장 북한 법정화폐를 토큰화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일부 외국 기업들이 북한 정부와 교육·의료·금융 등의 분야에서 블록체인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협약까지 체결했다”고 부연했다.

北·中, 블록체인 동맹으로 미국에 맞서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9년 10월 “블록체인 기술을 민생에 응용하라”고 지시했다. / 사진:AP연합뉴스
중국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2019년 12월 6일 [글로벌 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암호화폐 개발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블록체인 연구에 뛰어들면서 양국이 이 분야에서 협력한 기회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선전의 한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는 “북한이 블록체인 시장을 개방한다면 북한의 블록체인 산업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며 “이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은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강점이 있고, 북한은 자원과 인력을 제공할 수 있다”며 “북한 기업들과의 협력은 이 분야에서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역시 취약한 인터넷 인프라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우리는 북한이 허락만 한다면 북한 정부의 통치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성 사회과학원 연구원도 “중국과 북한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연구에 협력하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만약 중국 블록체인 기업들이 북한과의 협력을 고려한다면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컨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북한과 중국이 협력하여 미국에 대응하는 모델 개발을 시도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직 요원은 향후 미국의 국가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꼽았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CIA의 전 요원인 앤드류 부스타만테(Andrew Bustamante)는 소셜미디어 Reddit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은 러시아, 기후변화, 이란, 북한보다 강력하다”며 “블록체인 해킹 방법과 조작 방안을 개발한 첫 번째 사람이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러한 흐름을 인지하고 인력양성과 기술습득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블록체인 기술 발전은 미래 어느 시점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법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블록체인으로 무장한 ‘21세기 동북아시아의 독불장군’으로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202001호 (2019.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