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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사진작가·행위예술가 김미루의 구도(求道) 오디세이 

사막 고행 3년, 문득 깨달은 삶의 평범함 

사하라·고비·타르… 전 세계 주요 사막 헤매고 또 헤매
죽음의 땅에서 어느 날 문득 삶과 예술이 하나 되는 체험


삶은 모험의 여정일 뿐이다. 그의 모험은 사막에서 펼쳐진다. 사막은 한반도 내에서 쉽게 경험해보기 힘든 미지의 영역이다. 때로는 죽음의 공간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곳이다. 사진작가, 행위예술가이자 화가인 저자 김미루는 3년에 걸쳐 사막 여행을 떠났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몽골의 고비 사막, 요르단의 아라비아 사막, 인도의 타르 사막 등 전 세계 주요 사막을 헤매고 또 헤매었다고 한다.

헤매었다는 것을 좀 고상하게 표현하면 ‘구도(求道) 행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헤맴과 구도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모두가 모험일 뿐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험의 상황에서도 마지막 한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에서부터 삶의 모험은 시작되는 것 같다.

3년 동안의 사막 체험을 사진과 글로 일일이 기록해온 저자는 이를 [문도선행록(問道禪行錄)]이라는 제목을 달아 658쪽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만들어냈다. 제목은 ‘도를 물어 선적으로 걸어간 기록’이라는 의미인데, 저자의 부친인 도올 김용옥 교수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문도선행’은 도올이 평생 걸어온 ‘철학 기행’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와 딸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위치하며 각기 다른 경로로 구도의 모험을 떠났다. 그들 부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삶의 기행이자 모험의 길이다. 우리 모두 아프리카 사막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감하게 떨쳐 일어나는 모험 정신 그 자체다.

처음 사막에 갔을 땐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젊은 여성이 홀로 감내하기엔 온통 두려운 것 뿐이었다. 일상에서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도 있었다. 낯선 곳으로의 긴 여행 도중에 그는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평범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범, 그것은 구도자들이 궁극에 가서 만나게 되는 약속의 땅이자 지혜의 영역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돌아온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금 더 슬기로워지고 여유로워졌다. 3년간의 사막 고행은 나를 보다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최종적인 소득이라면 나의 삶과 나의 예술이 하나로 되었다는 것이다.”

김미루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의학 공부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으나 자신의 소질과 희망을 좇아 서양화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렇게 화가의 길을 걷다가 다시 사진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떴다고 한다. 첫 탐구 소재는 그가 오래 머물렀던 뉴욕이란 도시 그 자체였다. 대도시의 화려함 뒤에 방치된 어두운 면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폐기된 지하철역, 터널·하수도·공장·병원 등의 황량한 공간 속에서 뉴욕의 ‘무의식 세계’를 발견했다고 한다. 문명의 폐해를 고발하는 퍼포먼스로 그는 예술가로서 대중에 첫선을 보였다. 이번 책에서 보여준 사막 체험은 또 하나의 새로운 계기가 될 듯하다. 고발과 비판을 넘어 구도와 평화로 가는 길이다. 그의 표현처럼 삶과 예술과 철학이 만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 배영대 중앙콘텐트랩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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