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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통합의 씨앗을 찾다 

 


21대 총선 비례후보 선거 용지의 길이는 48.1㎝에 달했다.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냈기 때문이다. 숫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각각의 목소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다시 말해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단적으로 21대 총선에 비례후보 명단을 낸 한 정당은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지자체 선거 폐지’ ‘대통령 대리 1만5000명 둬 직접 민의 청취’ 등 우리 헌법 가치와는 겉도는 공약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인 저자의 이번 신작은 시의적절하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가 상반된 두 가지 방향(과도한 중앙집권화와 분열)으로 동시에 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쪽에선 민족성을 강조하며 국민 통제를 강화하는 ‘민족주의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다른 한쪽에선 (성별·종교 등) 특정 정체성에 대한 신념으로 뭉쳐 외부와 담을 쌓는 정체성 집단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집단 간에 합의할 가능성은 줄고, 머릿수 대결로만 결론을 내리는 현상이 빈번해진다. 상대방의 제안에 언제나 반대표(veto)만을 던지는 ‘비토크라시(vetocracy)’의 출현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저자는 책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다를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 문상덕 기자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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