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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도올 김용옥 50년 老子 연구 총결산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이다” 

“중국에서 노자,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당해”
5000자 우리말 풀이, 한국 철학 물줄기 탐색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또 한 권의 노자(老子) 책을 냈다. ‘노자 5000자’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해설했다. 저자의 노자 번역과 해설이 처음은 아니다. 대만·일본·미국 유학을 마치고 1982년 귀국해 내놓은 첫 책도 [길과 얻음]이라는 노자 번역이었다. [노자철학 이것이다]와 [노자와 21세기](EBS 방송 교재) 등을 비롯해 그의 숱한 저서에서 노자는 늘 중심에 있었다.

그에게 노자는 철학함의 출발점이다. 대학생 시절이던 1970년 철학 수업 때 고 김충렬 교수의 노자 강의를 듣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로부터 50년 세월이 녹아 있는 이 책은 김용옥식 ‘노자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한 글자 한 글자를 풀이하면서 동서양 철학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종합해놓았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는 [노자 도덕경]의 첫 구절이면서 노자 철학을 대변하는 문구다. 저자는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 말하여진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고 번역하면서, 특히 ‘늘’로 번역한 ‘항상 상(常)’ 자에 주목했다. 노자는 ‘상(常)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항상 상’ 자를 변화가 없는 ‘불변’이나 ‘영원’의 의미로 풀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상도(常道)’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에게 불변이란 없다. 오직 변화가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변화의 지속’이 노자가 말하는 ‘상도’의 의미라고 저자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번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노자를 통해 한국 철학의 물줄기를 찾아보려는 시도다. 위로는 고조선 시대 사상가까지 언급하면서 신라시대 최치원의 ‘현묘지도(玄妙之道)’와 ‘풍류(風流)’를 재해석했고, 아래로는 주자학 일색인 줄 알았던 조선시대에 의외로 노자를 읽은 유학자들이 적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율곡 이이가 노자의 일부를 발췌해 풀이한 [순언(醇言)]을 필두로 조선 후기로 가면서 서계 박세당의 [신주(新註) 도덕경], 보만재 서명응의 [도덕지귀(道德指歸)], 초원 이충익의 [담노(談老)], 연천 홍석주의 [정노(訂老)] 등 노자 주석서가 속출했다. 이 가운데 이충익의 [담노]를 높이 평가했다. 다른 주석서와 달리 주자학의 틀 속에서 노자를 해석하는 한계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자학뿐만 아니라 어떤 권력에도 구속되지 않는 노자의 아나키즘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는 “초원 이충익이야말로 [노자 도덕경]이라는 텍스트 그 자체를 현학(玄學)의 본류 속에서 이해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철학사를 통관해보려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이다.” 과감한 선언이다. “[노자 도덕경]을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속에 한 사람이 들어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선진 시대의 경전이 그토록 많건만 [노자]처럼 일관된 통일성을 갖춘 문헌은 없다. 그 한 사람이 고조선 시대의 사람이었다는 것은 매우 확실한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말을 하는 근거의 하나로 저자는 “노자가 중국에서 잘 이해되지 않았고, 지금도 노자는 열심히 중국 사상가들에 의해 배척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노자 번역’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노자 주석서는 아닐지라도 고조선 문명을 이야기하면서 노자를 다시 언급하는 또 하나의 책이 이어질 것 같다.

- 배영대 학술전문기자 balance@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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