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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와 인생’] 전설의 아마추어 고수 이준기 전 미드아마골프협회장 

“잘 치는 것보다, 잘하는 게 골프의 진짜 매력” 

49년간 1만 회 넘게 라운딩, ‘에이지 슈트’만 수천 번 세운 ‘기록 제조기’
프로 전향 마다하고 순수 아마추어 위한 협회 만들어 골프 대중화 앞장


▎이준기 전 미드아마골프협회장은 한국 아마추어 골프계의 전설로 통한다. 서른 넘어 골프를 시작한 이래 프로와 아마추어를 넘나들며 여전히 왕성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 사진:성호준
4월 14일, 경북 김천 포도CC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스코어를 내기에는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이준기 전 미드아마골프협회장은 1942년생으로 79세다. 골프계에는 이 회장이 1년에 150번 이상 ‘에이지 슈트’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에이지 슈트는 자기 나이보다 적은 타수를 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75세에 74타를 치면 에이지 슈트다.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은데 75세에겐 100배쯤 어려울 것이다. 건강과 골프 실력이 겸비돼야 한다. 골퍼들에겐 꿈같은 일이다.

첫 홀은 맞바람이어서 그런지 드라이버샷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거리는 170m 정도다. 하이브리드와 아이언을 쳐서 그린에 올렸으나 3퍼트로 보기를 했다. 에이지 슈트가 쉽지 않을 듯했는데 이 회장은 2번 홀에서 파, 3번 홀에서 버디를 잡았다. 1오버파로 전반을 마쳤다. 전반 페어웨이 적중률 100%에 그린을 놓친 홀은 세 홀이었다.

그늘집에서 이 회장은 “나이가 너무나 많아지니까 에이지 슈트가 어렵지 않게 됐다”며 웃었다. 이 회장은 시니어 티에서 치지 않는다. 요즘 골프장은 화이트 티를 두 개 만들어 그중 하나는 시니어 티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형식적으로는 화이트 티지만 실질적으론 시니어 티다. 이 회장은 오리지널 화이트 티만 이용한다. 동반한 미드아마 최고수 김양권(62)씨는 “이 회장님은 2~3년 전만 해도 블루 티에서 쳤다”고 했다.

후반 들어 깃대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더 강해졌다. 후반 첫 홀 더블보기를 했다. 두 번째 홀에서 까다로운 3m짜리 버디 퍼트가 바람을 타고 홀로 빨려들어갔다. 이 회장과 작은 내기를 한 김양권씨는 “(안 들어갈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저런 거 못 집어넣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음 홀에서도 버디를 잡았다. 강풍 속에서 이 회장은 75타를 쳤다. 에이지 슈트다.

이 회장의 첫 에이지 슈트는 67세 때였는데, 65타였다. 69세에는 고(故) 구본무 LG 회장과 동반 라운드에서 67타를 쳤다. 구본무 회장은 “이런 건 처음 봤다”며 내장객 200명에게 와인을 한 병씩 돌렸다.

10년 넘게 10라운드 중 8번은 ‘에이지 슈트’

이 회장은 1년에 최소 200라운드를 한다. 에이지 슈트를 못하는 라운드는 20%도 안 될 거라고 주위에서 말한다. 10년 넘게 에이지 슈트를 했으니 1500번은 족히 되리라. 이 회장은 “잘 못 치는 사람과 치면 살살 치는데 그럴 때 스코어가 안 나올 때도 있다”고 했다.

최근 끝난 마스터스에서 시타에 나선 1940년생 잭 니클라우스를 보니 이준기 회장이 절대 뒤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회장의 내공은 상당하다. 몸 관리 잘하기로 유명한 게리 플레이어와 지금 당장 맞붙어도 박빙일 것 같다. 실제로 이 회장은 1993년 한 위스키 회사의 아시아 투어에 참가해 게리 플레이어와 14홀을 쳐서 2타 차이로 이겼다고 한다.

이 회장의 폼은 PGA 투어 선수 같지는 않다. 백스윙 궤도가 수직이며 임팩트 후 상체가 앞으로 나간다. 오른손이 오른쪽 무릎을 지나며 빗자루로 땅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공은 자로 잰 듯 똑바로 갔다. 18홀 내내 드라이버는 한 번도 페어웨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평균 거리는 190m 정도. 7번 아이언으로 130m, 8번 아이언으로 120m를 보낸다.

그가 원래 이런 변칙 스윙을 한 건 아니다. 1990년 스키를 타다 다쳐 다리에 깁스를 했는데 라운드 제안이 왔다. 의사에게 물었더니 “단단하게 깁스를 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칠 수는 있다”고 했다. 그는 목발을 짚고 발에 비닐을 씌워 골프장에 갔다. 오른쪽 다리 깁스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15번 홀까지 잘 치다 16번 홀 벙커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77타를 쳤다. 오기가 생겨 다음 날 또 가서 76타를 쳤다.

골프 친구들이 이 소식을 듣고 도전했다. 원래 이 회장에게 9홀에 석 점씩 핸디캡을 받던 사람들이었는데 반대로 석 점을 주겠다고 했다. 이 회장은 받지 않았다. 3홀 연속 파를 하니 친구들이 원래 주던 핸디캡을 달라고 했다. 이 회장은 그날 이븐파를 쳤다.

‘깁스 스윙’과 인대 부상이 영향을 미치면서 이 회장의 스윙이 변했다. 그는 65세 때인 2007년 55세 이상이 출전 가능한 세계 시니어 아마선수권에서 우승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이 대회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아마추어 강자들이 참가한다. 프로에서 아마추어로 전향한 선수도 나온다. 스트로크 플레이로 16명을 뽑아 매치플레이로 우승자를 가렸다. 당시 이 회장의 스윙이 화제였다. 한 참가자는 “난생처음 본 스윙이 소문난 강자들을 제치고 우승했으니 이제 골프 스윙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자기 스윙을 알고, 자신의 템포에 맞게 경기하는 것이 좋은 스코어를 내는 비결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김천에서 정미소와 제지공장을 하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운동도 잘했다. 어릴 땐 축구를 좋아했다. 그때 생긴 하체 근육이 골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고려대에 다닐 때는 당구 2000점을 쳤다. 승부욕이 강해 누구에게 지면 이길 때까지 따라붙었다. 유명 당구 선수에게 사사했다. 1960년대 중반 한국 당구 일인자였다.

골프를 배운 건 1972년이다. 고려대 농대를 졸업한 그는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댐 관련 일을 하다 수자원개발공사로 옮겼다. 구미에 있는 한국수출산업공단에 근무했다. 당시 공단 이사장이었던 박승도 전 해병대 부사령관이 이 회장을 아들처럼 아꼈다. 클럽을 주며 골프를 가르쳐줬다.

사흘 배운 후 박 이사장이 대구CC로 골프 하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가자고 했다. 이 회장은 축구장에 가는 것처럼 골프장도 그냥 가서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단다. 다행히 박 이사장의 동반자 한 명이 오지 않아 라운드를 했다. 이사장의 공을 잃어버리고 여러 번 헛스윙도 했다. 그는 연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경주는 완도 명사십리의 백사장 훈련으로 유명하다. 백사장 훈련은 이 회장이 원조다. 낙동강 백사장에 흙으로 타석을 만들고 100m, 150m 거리의 모래에 낚싯대를 꽂아놓고 연습했다. 백사장에 골프장도 만들었다. 낚싯대를 꽂아놓고 1m 되는 줄을 달았다. 줄 안에 들어가면 홀인으로 인정했다. 340m 파4, 150m 파3 홀을 만들었다. 이 작은 백사장 골프장에 동호회도 생겼다.

독특한 스윙으로 세계 시니어 아마추어 대회서 화제 몰이


▎이준기 회장의 독특한 스윙은 각종 대회에서 화젯거리다. 그의 티샷은 마치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것 같지만, 결코 페어웨이를 벗어나는 법 없이 정교하다. / 사진:성호준
처음엔 발판 세 개를 가지고 다녔다. 샷을 할 때 양발에 하나씩 깔고 나머지 하나엔 공을 올려놓고 쳤다. 실력이 좋아지면서 발판을 치웠다. 모래에서는 조금만 뒤땅을 쳐도 공이 거의 나가지 않는다. 여기서 정확한 임팩트를 배웠다.

골프 시작 3개월 만에 94타를 쳤다. 4년 만에 싱글 핸디캡이 됐다. 직장생활을 하느라 잠시 주춤했으나, 1981년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간 여유가 생겨 본격적으로 골프를 갈고닦았다. 1985년 경주 신라CC 챔피언이 됐다. 1990년대 초 대구CC에서 5년간 4차례 챔피언이 된 후 그는 클럽 챔피언십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클럽 챔피언들이 출전하는 전국 챔피언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아마추어 골프의 전설이 됐다.

그는 한 라운드에서 이글 4개를 한 적이 있다. 이때 11언더파 61타를 쳤다. 전국 체전에 경북 대표로 15년간 나갔다. 15년 출전은 61타보다 더 희귀하다. 허석호 등이 그와 한 팀이었다. 지금은 프로가 된 이 회장의 아들과도 3년간 함께 뛰었다. 이 회장의 성적이 아들뻘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현재는 40대 후반이 된 선수들과 지금 맞붙어도 이 회장이 질 것 같지 않다. 그는 여러 차례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해 88 서울올림픽 성화 봉송도 했다.

건강을 타고났다. 살아 계신 그의 어머니는 98세다. 술을 많이 마셔도 여전히 거뜬하다. 겨울철 태국으로 전지훈련 가면 하루 2라운드를 도는 게 일상이다. 날이 더워 맥주를 10캔씩 마셨다. 물을 마시면 갈증이 나서 맥주가 낫다고 한다. 이 회장은 “술은 인간이 만든 음식 중 최고”라고 했다. 미드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누군가 호텔 방으로 술병을 들고 찾아오면 거절하지 않는다. 서너 시간 자고 경기해도 항상 자기 스코어를 낸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암 수술을 세 번 했다. 16년 전엔 폐암 진단을 받았다. “무슨 말을 하고 세상을 떠야 멋있게 죽는 건가, 가족들에게 할 대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다행히 전이되지 않았다. 오른쪽 폐 일부를 떼어내고 퇴원했다. 병원을 나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골프 코스에 갔다. 이 회장은 “골프를 친 게 병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항암치료가 힘들었지만, 골프와 함께해서 이겨낼 수 있었다. 아니 골프를 치고 싶어 병을 극복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건강 비결은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다. “너무 머리 많이 쓰고 고민하고 욕심부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골프도 그렇다. “골프에 대해 엄청나게 연구하는 친구들이 있다. 드라이버 헤드에 여러 선을 그어놓고 수첩에 거리마다, 라이마다 치는 법을 빼곡하게 적어놓는다. 골프를 그렇게 어렵게, 복잡하게 만들어놓으면 더 깊은 미로에 빠진다”고 했다.

그렇게 잘하고 좋아하는데 왜 그는 프로가 되지 않았을까. 이 회장은 프로와 공을 쳐도 별로 밀리지 않는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나가는 오픈 대회 성적도 괜찮았다. 프로 대회 출전을 위해 대부분 프로들이 나오는 먼데이 퀄리파잉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했다.

골프 본연의 매력에 빠져 프로 전향도 사양


▎이준기 회장에게 골프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인생이자 철학이다. 코스에서 삶을 마감하는 게 일생의 꿈이라고 할 정도로 골프에 애정이 깊다. / 사진:미드아마골프협회
실제 프로가 될 기회도 몇 차례 있었다. 1985년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하는 챔피언스 시리즈에서 우승해 자격이 됐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그는 아마추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어릴 때부터 프로를 지망해 엘리트 교육을 받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 골프를 배운 순수한 아마추어 말이다. 공을 잘 친다고 캐디가 “프로님”이라고 불러도 썩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이 회장은 골프를 잘하는 것과 골프공을 잘 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그는 “에티켓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골프는 워낙 속일 기회가 많은데, 그런 버릇이 들면 계속 속이게 되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 사실 원래 프로는 골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란 뜻이고, 아마추어는 골프의 정신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프로들이 아마추어를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아마추어가 ‘프로가 될 것도 아닌데’ 하면서 규칙을 어기는 것을 보면 언짢다. 규칙과 양심을 지키면서 골프를 해야 진정한 골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추어 골퍼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 한다. 미드아마추어협회를 만든 이유다. 이 회장은 “아마추어 골퍼들의 모임인 대한골프협회가 프로 지향의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만 신경 쓰더라. 그래서 순수한 아마추어 정신을 지키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세 가지 세상이 있다고 봤다. 누구나 겪는 실제 인생과 인터넷의 사이버 세계, 또 하나는 골프 세계다. 이 회장은 자신만의 골프 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골프가 인생에 의외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업보다 골프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 골프를 해본 사람은 한 가지 차원의 인생을 더 보게 된다. 골프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와 레저에 철학이 깃든 복합적인 그 무엇이다. 골프를 해보면 인생이 어떤 것인지, 도전이 어떤 것인지, 자연이 어떤 것인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골프와 자식 농사가 마음대로 안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자식 농사는 내 능력으로 안 되지만 골프는 노력하면 된다.”

골프는 값비싼 운동 아닌가. 이 회장은 “꼭 돈이 중요치 않다”고 했다. “가을걷이한 논에 나무 막대를 꽂아놓고 할 수도 있다. 고급 골프장만이 아니라 연습장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 번 라운드를 해보면 동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또 살아온 환경까지 알 수 있다. 작은 내기라도 하면 더 그렇다. 나쁜 인상,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같이 치는 사람이 부담 갖지 않게 에티켓과 룰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기 회장은 49년간 골프를 했고 라운드 횟수는 1만 회가 넘는다. 16년 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최소 3000라운드를 했다. 다른 사람은 상상도 어려운 에이지 슈트를 수천 번 했다. 수십 년간 골프장에 가기 전날 설레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골퍼로서는 최고의 인생이다. 그는 걸을 수 있는 한 골프를 하고, 코스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인생을 한 라운드로 본다면 59타쯤 될 것 같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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