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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공판·송무 최고 권위자 홍효식의 ‘낭만 검사론’ 

“32년 한 우물 파니 ‘공인전문검사 1급’ 타이틀” 

■수조원 규모 강남 자곡동 땅 환수한 ‘국민 재산 파수꾼’
■후배들과 미술, 철학, 물리 토론하며 수사 전문성 키워
■'상속·증여세법의 이해' 출간 등 세법, 회계이론과 씨름


▎서울고검 앞에선 홍효식 전 검사. 그는 2014년부터 7년간 세월호 사건 국가소송수행단장 겸 조세소송 전담 검사로 일했다.
국내 법조계에서 전·현직 검사 중 ‘공판·송무’ 분야 최고 전문가를 고른다면 홍효식 전 검사를 빼놓을 수 없다. 홍 전 검사는 2019년 검찰 내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공인전문검사 1급, 즉 ‘블랙벨트’(공판·송무 분야)로 선정됐다. 2013년 대검의 공인전문검사 인증 제도 시행 이후 공판·송무 분야에서 1급 공인전문검사로 배출된 이는 홍 전 검사가 유일하다. 공인인증검사 1급은 전문 지식, 실무 경험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검사에게 주어진다. 그는 2014년부터 7년간 세월호 사건 국가소송수행단장 겸 조세소송 전담 검사로 일했고, 1995년 서울 강남구 자곡동 국유지 환수 소송, 1998년 국무총리 및 감사원장 서리 임명 관련 위헌심판 제청 사건 등 주요 소송을 수행했다.

그는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검사 동료, 후배들 사이에서는 ‘낭만 검사’, ‘검찰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와 같은 애칭으로 통했다. 동일체 원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검사 세계에서 자유로운 취향을 가진 그는 어쩌면 ‘이방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밤에 사석에 불려 나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소위 충성 맹세하는 게 너무 싫었다” 고 조직생활의 애환을 돌이켰다.

12월 9일 32년간의 검사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으로 퇴임한 홍 전 검사는 이제 ‘장외’의 공판·송무 분야 전문가로 새 인생을 개척한다. 서울고검 송무부 조세소송 전담 검사의 경험을 토대로 [최신사례를 통한 상속·증여세법의 이해](박영사 발행)를 펴내기도 한 그는 국가 재산뿐 아니라 국민 재산의 ‘파수꾼’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검사가 수행하는 공판·송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국가도 소송에 관여될 때가 적지 않다. 국가 소유 재산에 관한 소유권 분쟁 소송이나 국가 공무원이 직무상 행한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누군가가 국가 편에서 소송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 일이 송무(訟務)이고, 그 일을 하는 이가 송무부 검사다. 이와 별개로 행정소송, 조세소송도 송무 분야에 속한다.”

대한민국 최초 공판·송무 분야 1급 공인전문검사가 갖는 의미는?

“공인(公認)이라는 말은 공적으로 인증됐다는 말 아닐까. 공인전문검사는 1급과 2급으로 나뉘고, 1급은 2급 자격을 가진 검사만 신청할 수 있다. 1급은 십수 명의 심사위원이 전원 동의해야 선정된다. 그 누구도 후보자가 1급 공인전문검사가 되는 데 회의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평생을 바쳐 일한 분야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 동의를 얻는다는 건 엄청난 영광이자 명예라고 하겠다.”

재심까지 끝난 사건을 뒤집는 뚝심


▎2020년 1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으로부터 ‘공판·송무’ 공인전문검사 1급 인증서를 받는 홍효식 검사. 당시 방송에 보도된 공인전문검사 인증서(오른쪽). / 사진:[검찰방송]
국가 송무 전문가로 나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을 들자면?

“위증(僞證) 등으로 법원의 눈을 속인 사람에게 넘어갔던 서울 강남구 자곡동 소재 국유지 10만여㎡(3만여 평)를 되찾은 사건이 제 인생의 분수령같이 느껴진다. 그 전에는 1990년 부산지검에서 검사 인생을 시작한 뒤로 남원에서 시청 공무원들 비리 사건 등을 처리한 후, 1993년 8월 서울지검으로 발령받아 형사 3부에서 살인, 강도 등 수많은 강력 사건을 처리했다. 그중에는 아현동 가스 폭발 사건, 배우 최진실의 매니저인 배병수씨 살해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도 있었다. 그러다 1995년 1월 서울지검 송무부 검사로 자곡동 국유지 환수에 성공하면서 송무 전문 검사의 길을 걷게 됐다.”

서울 노른자위 땅이고 규모도 엄청나다. 자곡동 국유지 소송은 어떤 내용인가?

“이 사건은 국가의 패소가 확정돼 종결된 사건으로 캐비닛에 잠자고 있던 사안이었다. 나중에 이 토지가 1939년 일본인에게 경락된 귀속재산, 즉 국가 소유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가에서는 재심으로 판결을 뒤집고자 했으나 30일간의 재심 기간을 넘겨 소를 제기하는 바람에 패소했다. 1995년 제가 송무부 검사로 배치돼 수천 페이지짜리 이 사건 종결기록을 접하게 됐다. 며칠 동안 궁리한 끝에 우선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놓고, 강남구청 소송 수행자로 하여금 소송사기로 원고를 고발토록 하는 한편, 기판력에 걸리지 않게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지검 조사부에서도 원고를 소송 사기로 기소했다. 1심에서 원고가 일본인에게 경락된 사실을 모르고 소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항소했는데 항소장을 하루 넘겨 접수하는 바람에 무죄가 확정됐다. 결국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 청구는 불가능해졌고,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길만 남았다. 일단 서울시의 각종 서류 창고를 뒤졌다. 해방 후 국가가 관리한 증거자료 등을 토대로 새로운 법리를 구성, 끝내 승소판결을 끌어냈다.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이는 등기함으로써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점유취득 시효’를 이 사건에 역으로 적용해 이 땅이 국가 소유라는 점을 밝혀냈다.”

국가로서는 엄청난 재산을 보전하게 된 것 같은데.

“환수한 자곡동 땅값이 당시 기준으로 1000억원대였으니까 지금 시가로 보면 수조원에 달하리라 판단된다. 자곡동 국유지 소송은 패소로 확정되고, 재심에서도 져 이미 종결된 걸 뒤집은 것으로서 다른 소송과는 그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1996년 7월부터 1998년 8월까지 법무부 송무과 검사로 일했다. 이때는 최초의 정권 교체 등 정치 격동기와 겹친다.

“1998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없이 국무총리 서리를 임명하자 당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이 국회의 국무총리 임명동의 권한이 침해당했다며 권한쟁의 심판 등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다. 법리 개발 및 준비서면 초안 작성 등 과제가 법무부 송무과 검사인 저에게 부과됐다. 전례가 없고, 헌법 교과서에도 없는 내용이라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 등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고 나름대로 논리를 만들어 결국 각하 결정을 끌어냈다. 당시 헌재 결정문에는 제가 만든 준비서면 초안 내용이 그대로 인용되기도 했다.”

“주한미군 법무장교와 치킨으로 담판”


▎2021년 [검찰방송]에 출연해 검찰청 내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홍효식(오른쪽) 검사. / 사진:검찰방송]
그 외 법무부 송무과 검사로서 기억에 남는 일은?

“홀어머니를 모시다가 미군에게 잔혹하게 살해된 윤금이씨 사건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유가족에 대한 배상문제도 있었는데, 직무상 불법행위가 아니라 개인의 범죄였기 때문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상 미군 당국이 반드시 배상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유가족이 배상을 받을 길이 요원했다. 그래서 통닭을 사 들고 주한미군 법무장교를 찾아가 술잔을 기울이며 유가족의 어려운 사정 등을 설명했다. 결국 ‘미군이 먼저 배상한 뒤 병사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미군이 받아들여 유가족에게 배상금이 지급됐다. 이와 다른 사건으로 국가배상법상 배상기준을 재경부와 보험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라이프니츠 방식에서 호프만 방식으로 바꾼 것도 성과로 꼽고 싶다.”

2013년 광주고검 송무, 감찰 전담 검사를 거쳐 2014년 6월부터는 세월호 사건 국가소송수행단장으로 일했다. 국가적 참사 사건을 맡는다는 게 부담되진 않았나?

“세월호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지대하고 정치적으로도 민감했다. 이런 국가소송을 맡는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는 먼저 피해자들에게 배상, 보상을 하고 세월호를 운행하던 청해진해운에 구상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청해진해운은 한국해운조합에 보험을 들었고, 한국해운조합은 영국 로이드사에 재보험을 든 상태였다. 약관상 보험사는 운행 책임자에게 고의가 있거나 선사가 임의로 선박을 개조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월호 선장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판결을 받았고, 청해진해운은 선박을 개조했기에 법률적으로 해운사가 보험 공제금을 받기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이에 세월호 국가소송수행단은 보험사에 대한 소송과 협상을 병행키로 했다. 우선 해양수산부 협상팀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한국해운조합과 로이드 측이 제시하는 조건을 놓고 수많은 법률 검토 작업을 벌였다. 보험금을 최대한 받아낼 수 있는 수정 의견을 제시하는가 하면 때론 소송을 협상의 압박수단으로도 활용했다. 그 결과 2018년 말 1200억원가량의 보험금을 국고로 귀속시켰는데, 약관상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보험금이었다. 또 청해진해운과 사고 책임자, 유병언 일가 등 127명에 대하여 약 130건의 보전 조치를 완료하고 사고 책임자에 대한 구상금 소송을 진행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정치적 고려 없이 법리에 따라 수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세월호 사건 소송 수행은 여러 차례 송무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2019년엔 최신 사례를 분석해 엮은 [상속·증여세법의 이해]도 펴냈다. 어떤 내용을 담았나?

“제가 세월호 소송수행단장 겸 서울고검 송무부 조세 담당 검사로 서울·중부·인천지방국세청과 그 산하 세무서가 수행하는 조세소송도 지휘했다. 또 서울·경기·인천 지역의 지자체와 관세청을 상대로 하는 각종 부과처분 취소 소송 등도 제 지휘권에 속했다.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일반 납세자들과 조세소송 관계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책을 펴냈다. 실제 소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례 위주로 해설서를 쓰되 상속·증여세법상 논란이 되는 쟁점과 법리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하게 다루고자 했다.”

조세소송은 세무와 회계도 다루게 된다. 검사로서는 낯선 분야 아닌가?

“2014년 공인인증검사 2급을 받고, 50대 중후반에 조세소송을 지휘하면서 본격적으로 회계원리를 익혔다. 중급회계·고급회계·재무관리 등은 인터넷 강의를 수강했고, 올해 들어서는 개정된 국제회계기준(IFRS)도 인터넷 강의로 공부했다. 방대한 조세법, 즉 국세기본법, 법인세법, 소득세법, 부가가치세법, 상속·증여세법, 지방세법(재산세법), 관세법, 국제조세조정법, 조세범처벌법 등을 제대로 다루자면 회계를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요즘도 방대한 조세법, 회계이론과 씨름하고 있다.”

“검찰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홍효식 전 검사는 “국민을 위해 소신대로 일하는 검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세 담당 검사로 일하면서 어떤 점에 주력했나?

“철저한 소송 수행 및 지휘가 가장 중요하다. 정밀한 사건 분석과 법리 검토, 그리고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 관세청 등과의 긴밀한 협조도 필수적이다. 또 같이 일하는 공익법무관들의 소송 수행 능력을 향상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조세팀에서 수행한 사건의 경우 조세 부과 경위, 당사자의 주장, 판결 요지, 소송 수행 과정에 대한 평가 등을 분석·정리토록 했다. 그 결과 어느 로펌도 갖추지 못한 자료를 보유하게 됐고, 매월 1회 학술세미나를 통해 세목별 중요 쟁점을 연구하고 토론했다. 공익법무관들의 소송 수행 능력을 향상한 것이다. 그 법무관들이 지금은 조세소송 전문가로서 국세청, 관세청, 여러 대형 로펌 등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

강력 사건과 국가 송무 사건을 다뤄온 검사였지만 문화·예술·역사 분야에서 제2의 자아를 길러왔다. 그 한 단면을 대검찰청이 개설한 [검찰방송]에서 접할 수 있다. [검찰방송]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는 검찰 내 재주꾼을 조명하는 ‘성덕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성덕은 ‘성공한 덕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프로의 첫 출연자가 바로 홍효식 검사였다. 2021년 9월 말 홍 검사와 함께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을 찾은 방송 진행자는 홍 검사를 일러 ‘검찰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소개했다. 그가 철학·신학·문학·예술·역사·물리 분야를 꿰뚫는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홍 검사는 한양대·백석대 등에서 미술 특강을 하고, 포스코 등 기업에서도 직원 대상 미술사를 강연하기도 했다. 또 2020년 검찰청 내 미술 투어 담당자로도 활동하는 등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검찰방송] ‘법무연수원 미술투어’ 편에서 “현대미술은 사람들에게 생각의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연수원 내 미술품이 발산하는 매력을 작품별로 설명했다. 예컨대 김창영 작가의 모래사장 작품 [From Where To Where]는 “사물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며 다음과 같이 불교와 연관 지어 해석한다. “이 작품은 불교의 아상(我相, 나), 인상(人相, 타인), 중생상(衆生相, 살아 있는 것), 수자상(壽子相, 존재하는 것) 등과 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말라던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생각게 한다. 이른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와 같은 느낌 말이다.”

그리고 검찰동우회 회지에 기고한 ‘세잔, 앤디 워홀 그리고 조영남’ 글에서는 가수 조영남씨의 화투 연작 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의 판단에 수긍하면서도 일부 판시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미술 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 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홍 검사는 “대법원이 ‘미술 작품의 가치 평가에 사법 자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문구를 넣어, 앞으로는 사법부가 미술이나 예술에 대하여 연구할 필요도 없이 전문가의 의견에만 따라야 한다는 몰상식한 내용을 덧붙인 것”이라고 날 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검사의 내면에 예술가의 기질이 흘렀다고나 할까?

“사실 10대 학창시절 미술대회에 나가면 매번 입상할 정도로 손재주가 남달랐다.(웃음) 하지만 집안에 미술 하는 사람은 한 사람(친형)이면 족하다는 아버님의 뜻을 따라 법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취향은 속일 수 없었다. 대학 때는 개가식 도서관에서 영어사전을 옆에 놓고 곰브리치의 [The Story of Art]를 하루 종일 번역하면서 읽었다. 연수차 프랑스에 유학한 2004년 미술사 공부에 제법 몰두했다. 현지 박물관에서 대가(大家)들의 진품을 접할 때는 전율과 흥분이 온몸을 가로지르던 시절이었다. 나중에는 박물관을 돌며 작품 설명을 할 정도로 미술에 흠뻑 빠져들기도 했다. 또 철학·신학·역사학·물리학 등도 개인적으로 깊숙이 천착하는 편이다. 이런 다방면의 지식은 검사의 사건 처리에도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후배 검사들 사이에서는 ‘낭만 검사’로 불리는 건가?

“10여 년 전 함께 일했던 후배 검사가 저를 회고하면서 ‘검사를 인간답게 만드는 낭만을 추구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지금은 부부장 검사로 일하는 그 후배는 ‘선배께서 사준 밥은 그냥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세상을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업무로 지쳐 있는 검사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그야말로 솔 푸드(영혼의 식사)였다’는 소회를 피력하더라. 법무부의 과장으로 근무하는 후배 검사는 저더러 ‘다양한 빛깔의 매력이 있는데, 합성되어 흰색의 빛이 되듯이 주변을 은근히 밝혀준다’고 평했다. 이 정도면 과한 아부 아닌가?(웃음) 물론 저는 일을 낭만적으로 하진 않는다. 오히려 치밀함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편이다.”

“충성 맹세 싫었고,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아”

아랫사람 챙기다 보면 윗분들 모실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제가 서울지검에서 법무부 송무과에 발령받았을 때는 동기들 사이에서는 아주 일찍 법무부에 들어간 케이스였다. 그런데 체질상 검찰 조직 어디에서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쉽지 않더라. 술자리 등에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소위 충성 맹세하고 하는 게 너무 싫고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솔직히 예전에는 검사들이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인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급자 혹은 검찰 출신 변호사의 의중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저는 가급적 후배 검사들이 소신껏 수사하도록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고자 노력했다.”

검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접할 때 드는 생각은?

“검찰이 좀 고압적이고, 남에게 윽박이나 지르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검찰 조직이 권력 지향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검찰 개혁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 많은 검사는 그렇지 않고, 또 그렇게 사는 걸 원치도 않는다. 국민편에 서서 소신에 따라 올곧게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가 대부분이다. 강·폭력, 재산 범죄, 교통·안전사고, 환경, 식품·의약, 성범죄, 명예훼손 등 같은 일반 형사사건을 다루는 검사들은 정말 뛰어난 업무 역량을 발휘한다. 이런 검사들이 많이 중용되지 못해왔던 현실이 안타깝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어쩔 수 없이 일부 검사에게만 승진과 인사의 혜택이 주어지다 보니 그렇지 못한 많은 후배 검사들이 좀 의기소침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젠 윗선에 잘 보여 승진하려는 검사보다 자기 소신대로 국민과 사회를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일하는 검사가 훨씬 더 많다. 아니 대부분의 검사가 그렇다. 그들이 자랑스럽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2201호 (20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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