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고경(苦境)을 서로 돕는 사회의 관계망 

고립된 채 홀로 어려움 겪는 사람들 내버려두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존재 주목해야
SGI 세계 192개국·지역에서 사회 활동에 참여


▎2016년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SGI가 아시아방재재해구호네트워크(ADRRN)와 공동으로 제작한 인도주의 전시 ‘인간의 부흥-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드는 미래’를 개최했다. / 사진:SGI
신종 코로나19팬데믹이 발생한 지 2년이 됐습니다. 그러나 변이 바이러스가 잇따라 발생하는 등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의를 환기하듯 수습은 더딘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자는 전 세계 2억9000만명을 넘고 사망자도 544만 명에 달합니다(1월 4일 기준).

예기치 않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특히 가슴 아픈 사실은 감염방지 때문에 생의 마지막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이 곳곳에 퍼지는 데다 경제활동이 끊겨 도산이나 실업이 급증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갑자기 곤궁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위기의 나날이 2년 가까이 달하는 ‘위기의 일상화’에 따라 각자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노력이 요구돼 사회의 무게중심이 그쪽으로 기울면, 사회 취약계층이 직면한 문제를 간과할 우려가 있습니다.

각국은 팬데믹에 맞서기 위해 의료체제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사회 전체가 취할 대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타인과 직접적인 접촉을 피해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해 재택근무 권장, 온라인 수업 도입 등 ‘원격화’와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는 ‘집에 머물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대책을 통해 감염의 급격한 확산을 막고 의료 현장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이 확대된 것은 그 의의가 큽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감염방지 대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거나 개선을 시도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상은 단순한 위험 대책의 영역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혁신적 행동은 우선 소중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일에 직결됩니다. 사소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반복은 동시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낯선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배려’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격차와 차별로 고통을 받아온 취약계층이나 ‘사회적 관계망’의 도움으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측면에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해도 일상적인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변의 지원이 평소보다 제한된다면,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을 지원해주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잃고 ‘존엄한 삶’을 구축하는 토대가 무너짐을 의미합니다.

또 일과 교육은 물론 구매에 이르기까지 온라인을 이용한 ‘원격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온라인 이용에 서툰 사람들이 뒤처지는 상황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게다가 외출 자제로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정 내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피해자가 행정기관이나 지원단체에 연락해 상담할 길마저 막혀 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감염방지 대책에 힘쓰고 사회에 넓혀진 ‘수많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배려’를 기반으로 하면서, 코로나19의 위기가 일상화돼 사회 표면에 매몰되기 쉬운 ‘여러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존재에 주목해, 그들이 겪는 괴로움과 삶의 고통을 없애주는 일이 사회 회복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사회 전체가 앞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아도, 같은 사회를 살아간다는 ‘방향 감각’만큼은 결코 잃으면 안 된다고 호소하는 바입니다.

코로나19의 위협은 모든 나라에 미치는 위기지만, 영향력의 정도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감염 방지 대책으로 권장하는 ‘비누로 손 씻기’가 불가능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세계의 40%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을 마련하기 힘든 사람이 30억명이나 됩니다. 또 분쟁과 박해로 고향을 떠난 난민 수가 세계에서 8000만명에 달하고,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난민 캠프 등에서 밀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물리적·신체적 거리두기 확보가 어렵고, 감염자가 나오면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없는 위험을 떠안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인간과 인간 가로막는 모든 울타리를 넘어

지금 세계가 직면한 미증유의 위기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각 요소가 떠안은 위협의 관계성이나 문제의 소재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기에 대한 종합적인 대처와는 별개로, 위협에 노출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일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저는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번 팬데믹이 야기한 혼란으로 많은 사람이 뼈저리게 느낀 점은 ‘인생이 멈춰버렸다’, ‘갑자기 생활 기반이 막혔다’,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등 견디기 힘든 심정이지 않을까요. 이러한 때 사회적 지원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괴로움을 견뎌야 하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그 사람은 장막이 가려진 세계에 계속 머물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상태를 알아차리고 다가간다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주변과 사회가 자신의 고경(苦境)을 비춰주는 따뜻한 빛을 받음으로써, 더없이 소중한 인생과 존엄을 되찾을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SGI는 ‘고립된 채 홀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신념에 따라 세계 192개국·지역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신념은 제 스승인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이 말씀하신 “세계도 국가도 개인도 ‘비참’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에 응축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세계와 국가 그리고 개인이라는 모든 면에서 도다 회장의 눈길은 ‘비참’을 없애는 데 일관돼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문제라 해도, 어떠한 나라가 직면한 어려움이라 해도, 어떠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고경이라 해도, 인간과 인간을 가로막는 모든 울타리를 넘어 ‘비참’을 없애기 위해 함께 힘을 합쳐 행동한다는 사회적 사명입니다.

지금까지 SGI가 국제적인 여러 과제를 해결하고자 같은 뜻을 품은 수많은 비정부기구(NGO)를 비롯해 여러 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신앙을 기반으로 한 단체(FBO)와 깊이 연계한 까닭도 바로 이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는 위협의 연속이고, 앞으로도 잇따라 일어날 위협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위협이나 심각한 과제가 발생해도, 그 위협과 과제의 영향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기 위한 기반을 사회에 구축하는 일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팬데믹으로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어, 벗어날 방법을 쉽게 찾지 못하고 미궁에 빠진 듯한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역경에서 구해낼 ‘길잡이’는 저마다 생명의 무게를 되새기고,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절실한지를 발견하는 데서 선명히 떠오르지 않을까요.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98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2202호 (2022.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