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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공공기관 탐방] 이종순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장의 ‘우문현답’ 

“우리의 모든 문제, 현장에 답이 있더라”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농림부 산하 3개 공공기관 통합해 농업·농촌 ‘토털 케어’ 10년째
첨단기술·빅데이터·청년농 육성으로 농업 경쟁력 강화 고군분투


▎이종순 농림수산식품 교육문화정보원장이 6월 28일 오후 세종시 농정원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 뒤 개원 10주년 기념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에서 KTX와 굴절버스를 번갈아 타고 찾아간 세종국책연구단지내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하 농정원)’은 예상과 다르게 청사가 소박했다. 농림수산식품 분야의 교육·문화·정보를 아우르는 기관 명칭만으로 막연히 꽤 규모가 클 거라고 짐작했던 터다. 청사에 들어서자 여느 공공기관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4층 원장실 앞에는 직원들의 간식거리가 준비된 아담한 라운지가 있다. ‘보고의 스트레스는 여기서’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층마다 부서별 업무 특징에 맞춘 라운지가 있다. 공공기관이면서 딱딱하지 않은 조직 문화가 엿보였다.

농정원에 유연한 조직 문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이종순 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지난해 말 취임한 이 원장은 [농민신문]에서 잔뼈가 굵은 언론인 출신으로 농업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현장 전문가’다. 올해로 창립 10년째를 맞은 농정원은 작지만 또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 원장은 인터뷰 내내 단기 성과보다 내실 있는 변화를 강조했다.

농정원,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이름이다.

“2012년 5월 3개 기관(한국농수산정보센터·농업인재개발원·농촌정보문화센터)이 통합돼 출범했다.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알리는 첨병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팜과 빅데이터, 플랫폼이 융합된 디지털농업을 확산하고 K팜(farm)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향상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장 중심 전문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업무 분야가 꽤 방대하다.

“올해 추진하는 단위 사업만 106개나 된다. 농산물 소비 촉진 홍보나 스마트팜, 디지털 영농 서비스, 귀농·귀촌 교육, 청년농 육성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인원이 적다 보니 직원들이 힘들어해서 늘 미안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농업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주는 직원들이 있어 든든하다.”

대개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에는 퇴직한 고위공무원이 잠시 거쳐 가는 경우가 많은데, 민간 전문가 출신이란 점이 눈에 띈다.

“[농민신문]을 포함해 농업계에 종사한 지 33년 됐다. 그래서 비교적 업무 파악이 빨랐고, 민간인이다보니 사업 효과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조직 변화를 이끄는 데 좀 더 유리했다. 현장에 머물면서 농업 관련 저서를 세 권 냈다. 첫 저서 [농업커뮤니케이션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처음으로 ‘농업 커뮤니케이션’이란 용어를 창안했다. 농정원의 농식품 소비 촉진 활동이나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홍보하는 업무와 관련돼 있다. 두 번째 책인 [정보격차를 넘어 평등사회로]는 농촌과 도시 간 정보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것도 우리 기관의 정보화 사업, 지식융합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최근에는 [돈이 보이는 농식품 소비 트렌드]라는 책을 썼는데 이것도 농정원의 주요 사업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민간에서 잔뼈 굵은 현장 전문가


▎중동지역에 최초로 건립한 한국형 스마트팜 온실에서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관계자가 대화하고 있다. 첨단기술로 장식한 한국형 스마트농업의 해외 진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그래도 기관장이 되어 바라보는 농업의 현실은 민간에 있을 때와 또 다를 것 같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농촌의 위기,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농림어업조사를 보면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 40세 미만 청년 농가 경영인은 1.2%에 불과하다. 1년 만에 농가 인구가 약 10만 명 줄기도 했다. 초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2년은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일손 부족도 더 심해졌다. 농촌의 위기는 식량 주권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기술이 부족하고 미래가 불확실해 선뜻 귀농하지 못하는 이들을 농촌으로 유도할 방법은 없을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궁극적으로는 후계 인력 확보가 중요하다. 현재 청년농 선발 기준이 만 40세 미만이다. 3년 차까지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고 있고, 귀농·귀촌센터와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통해 창업을 돕고 있다. 인재 발굴과 육성, 정착까지 시스템화해 스마트 기술에 익숙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청년들이 농촌에 스며들어 우리 농업의 변화를 이끌어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보통신(IT) 기술을 접목한 농업 경쟁력 강화는 어떻게 추진되나?

“농업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안전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집약적 첨단농업인 스마트팜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농업은 우리 농업이 처한 안팎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경쟁력 있는 대안이다. 또 우수 인재를 농촌에 유입해 청년실업 해소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전북 김제와 경북 상주 등 전국 4곳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구축해 빅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농정원이 축적한 데이터는 농가에 개방해 디지털농업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려 한다.”

최근 주요 농산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도시민의 어려움으로 전이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특히 밀 가격은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0.8%에 불과해 서민 식탁 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식량 가격이 오르니 주요 생산국들이 수출을 자제하는 식량의 무기화가 현실화했다. 여기에 맞서 식량 안보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하는 게 우리 농정원에 주어진 과제다.”

해법이 좀 보이나?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가 밀가루를 대체할 방법이다. 정부의 새 농정 과제로 채택된 쌀가루 소비 활성화가 대안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본다. 밀 가격은 오르는데 쌀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소비가 줄고 있어서다. 아직까지 국내에 재배되는 쌀 품종은 대부분 밥상용 쌀이다. 이걸 가공용 품종으로 교체하고 가공 방법도 바꿔서 밀가루를 대체하고, 쌀가루를 이용한 조리법을 개발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쌀칼국수라든지 쌀빵, 쌀맥주 등 우리 쌀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대중화할 방법을 깊이 고민 중이다.”

밀가루 대체할 쌀가루 개발 박차

농정원이 운영하는 인터넷 웹사이트는 기관 홈페이지 외에도 16개나 된다. 농업 관련 데이터를 집대성한 공공데이터 포털을 비롯해 농업 교육 정보를 한데 모은 교육포털, 바른 식생활을 돕고, 스마트팜과 6차산업, 귀농·귀촌을 돕는 등 각각의 수요에 특화된 웹사이트를 모두 따로 뒀다. 작은 공공기관이 이 모든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테지만, 각각의 웹사이트는 알찬 정보로 농업인과 예비농부의 길라잡이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주거와 일자리, 안정적 소득일 거다.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

“농정원이 운영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에서 준비를 시작하면 된다. 서울 양재동 aT센터에 자리 잡고 있다. 귀농·귀촌센터에서 보유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원 정보를 통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계획을 짜고, 귀촌 경험이 있는 이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맺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부터 농정원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사업을 시작했다. 농촌에서 직접 살아보고 귀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이주 전 도시에서 얻은 재능과 경력을 지역에서 나눌 수 있는 재능 나눔과 사회적 경제활동도 지원할 계획이다.”

도시에 머물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이른바 ‘도시농부’를 꿈꾸는 이들도 꽤 많다.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없는지?

“도시농부를 위해 텃밭 분양 정보에서 재배 정보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두가 도시농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학교 텃밭 등 도시지역내 다양한 생활공간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도시농업관리사 양성 사업도 하고 있다. ‘모두가 도시농부’ 웹사이트(modunong.or.kr)에 오시면 도시농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농수산 관련 박람회나 도시장터 등 다양한 교류 홍보활동에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지난 2년 반 동안 대부분의 교류와 홍보 사업이 비대면 기반으로 진행돼왔다. 메타버스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비대면 콘텐트를 강화하는 데 주력했지만, 결국 농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하는 일 아닌가. 올해부터 다시 현장성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열리는 대한민국 농업박람회는 2년 반 만에 비대면 방식을 벗어나 모든 국민이 현장에서 체험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취임 후 첫 기관평가에서 한 단계 상승


▎이종순 농림수산 식품교육문화정보원장이 6월 28일 세종시 농정원 원장실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 하며 본인이 집필한 농업관련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모든 기관이 그렇듯이, 기관장의 고민은 성과와 비례하기 마련이다. 고민이 깊을수록 업무 성과가 오른다. 농정원도 이런 공식을 비켜가지 않는다. 농정원은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 양호(B) 등급을 받았다. 농림수산 관련 기관 중에는 A등급이 6곳, B등급이 3곳, C등급이 4곳, D등급이 2곳이다.

원장 취임 후 받은 첫 성적표에 대한 자체 평가를 듣고 싶다.

“농정원은 지난 2년 연속 C등급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에 한 단계 상승한 건 꽤 고무적이다. 취임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받은 평가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본다. 직원들 사기도 올랐다. 내년에는 A등급을 목표로 열심히 해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직원들한테 고마울 뿐이다.”

요즘 K팝, K컬처 등 한국의 콘텐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도 국제적으로 손색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강점인 IT와 농업을 접목한 스마트팜사업에서 특히 해외 교류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 스마트팜 시스템을 공급하고 노하우를 전수하는 협력 사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주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진행한다. 주요 공략처는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남방 국가와 우즈베키스탄 등 신북방 국가다.”

경영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농정원이 하는 일은 결국 논과 밭을 일구고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농촌과 도시, 농민과 도시민을 이어주는 역할이다. 이 모든 교류가 현장에서 이뤄지고, 현장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경영철학은 ‘우문현답’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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