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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4)]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디자인은 모든 이에게 기쁨 주는 나의 선물” 

평창올림픽 성화대·중앙박물관 ‘나들길’ 등 한국의 美 세계에 알려
창의적 인재 뜻하는 ‘퍼플피플’이 만드는 ‘빅디자인’의 시대 예견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는 ‘디자이너의 구루’,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힌다. 그는 권위 있는 각종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상업 디자인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진:조정화
"별종, 별에서 온 것 같은 사람이 ‘퍼플피플(Purple People)’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의 말이다. 최근에 가장 대두되는 컬러가 퍼플(Purple)이다. 일반적으로 생산직 근로자를 블루칼라, 사무직 근로자를 화이트칼라로 규정한다. 김 대표는 2012년에 출간한 [퍼플피플(Purple People)](교보문고)을 통해 미래형 인재,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퍼플 컬러’로 새롭게 정의했다. 창의력을 상징하는 ‘퍼플’이야말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이들을 상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퍼플피플’의 시대이며,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결과도 타인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 ‘당신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미쳐야 빛난다’고 말한다.

그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의 발자취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얼마 전 ‘빅디자인(Big Design)’이란 신조어와 더불어 새로운 디자인 경제 이론서 [빅디자인](2019, KMAC)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가 말하는 빅디자인은 ‘어떻게(How to)’에 앞서 ‘무엇을(What to)’에서 비롯된다. 능동적으로 아직 세상에 없는 그 무엇을 찾아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빅디자인’의 핵심이다. 회사를 디자인하는 회사, 비즈니스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어 ‘빅디자인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꿈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퍼플피플]과 [빅디자인] 외에도 [12억짜리 냅킨 한 장](2001, 중앙M&B), [이노베이터](2005, 랜덤하우스코리아), [이매지너](2009, 랜덤하우스코리아) 등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

‘퍼플피플’의 시대 예견한 디자인계의 구루


▎김영세 대표가 디자인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화대. 오 대륙을 뜻하는 다섯 기둥이 백자 달항아리를 떠받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 사진:조정화
‘디자인계 구루(Guru, 스승)’로 불리는 김영세 대표는 자신을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이며 상상가라고 말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봉을 든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팅해서 성화대를 점화한 감동적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성화대는 기둥 다섯 개가 백자 달항아리를 떠받치고 있다. 올림픽 정신과 한국의 미를 담은 이 성화대와 성화봉이 김 대표의 작품이다.

김 대표는 한국적인 브랜드 가치를 나타내는 데 주력해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 나들길’이다.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연결되는 공간에 1㎞(255m×4면) 길이로 설치된 대작이다. 2013년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 IDEA의 스페이스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명작이다. 그가 가장 아끼는 ‘나들길’ 작품은 황병기 가야금 명인의 연주곡이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LED 조명을 이용한 유물 수십 종의 실루엣과 태극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태극의 곡선과 4괘의 직선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연간 300만 명 넘게 찾아오는 한국의 대표 박물관이다. 이런 곳에 모던 코리아(Modern Korea)를 각인시키고, 한국 아이덴티티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것 역시 김 대표의 진가가 드러나는 국위선양이다.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해당 학과에서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안정된 교수직을 접고 모험을 감행, 1986년 한국인 최초로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Innodesign)을 설립한다. 1999년에는 한국에 이노디자인 지사를 열고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기술을 능가하는 디자인은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노디자인은 동양매직의 휴대용 ‘랍스터 버너’, 삼성 ‘애니콜 가로본능 휴대폰’,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 ‘슬라이딩 콤팩트’ 등 많은 역작을 만들어 이를 실증했다. 언제부터인가 ‘김영세’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노는 혁신(Innovation)을 뜻한다. 이노디자인은 회사 이름에 걸맞게 최근 ‘생활’, ‘공간’, ‘문화’를 기반으로 디자인과 건축 컬래버레이션에 주력하고 있다. 김종훈(74) 한미글로벌 회장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는데, 앞으로 건축 디자인을 통한 한국 도시 브랜드 가치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퍼플피플’이 되려면 ‘무엇을 남길 것인가’란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김영세 대표를 판교 테크노밸리 ‘이노디자인’ 본사에서 만났다.

‘불편함’ 해결이 창작의 트리거가 된다


▎지하철 4호선 이촌역과 국립중앙박물관을 연결하는 255m 길이 지하터널 디자인에는 태극기의 4괘와 음양을 모티브로 삼았다. 2013년 미국 IDEA Space Design상을 받았다. / 사진:조정화
보편적 기준으로 볼 때 예술과 디자인은 차이가 있다. 그 경계에 어떤 기준이 있을까?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년 전 프랑스에서 유명한 화가와 만난 자리에서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내게 그는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디자이너란, 경지에 오르게 되면 아티스트로 불릴 것이다’라고 대답하자 그가 기쁜 마음으로 나의 잔에 와인을 가득 따라주었던 기억이 난다. 예술품은 예술가가 창작하는 각각 하나의 소유주의 작품인 데 반해 디자이너가 창작하는 결과물은 대량으로 생산되어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소유하게 된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사용한 성화봉과 성화대, 그리고 1㎞나 되는 국립중앙박물관 ‘나들길’에 그려진 ‘건곤감리’ 역시 앞서 말한 예술적 맥락에서 보면 될까?

“국가를 위한 이러한 내 작품들은 상업적인 목적을 넘어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할로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이 작품들을 ‘예술품’으로 받아들일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 작품들은 유일한 존재이며, 시간의 제약 없이 많은 사랑을 받을 우리 국민 모두의 자산이다. 이런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작품을 남길 수 있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IDEA 금·은·동상을 받고, 독일의 iF와 reddot, 일본의 Good Design Award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들을 받았다. 가로 본능으로 대표되는 삼성 애니콜, 프리즘 형태의 아이리버 MP3, 동양매직의 ‘It's Magic’ 가전기기 시리즈, 라네즈의 슬라이딩형 콤팩트 등 수많은 제품을 디자인했다. 이렇듯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비결이 궁금하다.

“그동안 디자인했던 히트 상품들의 배경에는 항상 나에게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 또는 상황이 존재한다. 이미 존재하는 경쟁사들의 상품보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일반인의 행동이나 때에 따라서는 불편함’이 창작의 트리거가 된다. 일반적인 콤팩트는 뚜껑을 열어서 두 손으로 사용하기에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기가 불편하다는 아내 말을 듣고 한 손으로 미러가 달린 뚜껑을 밀어서 열 수 있는 ‘라네즈 슬라이딩 팩트’를 디자인할 수 있었다. 이 상품은 수년간 수백만 개가 판매돼 제조사의 위상을 높였고, 수백만 사용자에게 기쁨을 줬다.”

상품 디자인 외에도 최근에는 건축, 공간디자인 작업에 주력한다고 했다. 건축 디자인의 차별성과 방향성은?

“건축 디자인에 차별성은 없다. 다만 추구하는 방향성을 차별화할 뿐이다. 나의 디자인 키워드는 ‘생활’, ‘공간’, ‘문화’다. 그리고 이 중심에 사람이 있다. 몇 년 전 한미글로벌의 김종훈 회장으로부터 송파 마에스트로 아파트 디자인 의뢰를 받았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이노디자인이 주력해온 제품디자인과 새롭게 도전하는 건축디자인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체험하면서 제품이든 건축이든 결국은 ‘사용자’의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디자인의 기본을 중시하면서 새로운 건축물 창작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건축디자인의 첫 번째 경험은 1995년에 미국 팔로알토(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 사옥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협업했던 건축가에게 나는 ‘건축 디자인은 커다란 하나의 제품 디자인, 또는 수많은 제품이 모인 디자인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가 아닌 ‘무엇을’이 ‘빅디자인’의 철학

바우하우스 이후 100년 만에 펼치는, 디자인 경제 이론서란 대전제로 [빅디자인]을 출간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빅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빅디자인’은 ‘무엇을 디자인할까?’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어떻게 디자인할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디자인을 이제는 ‘스몰디자인’이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인생 자체가 디자인이었던 나에게 ‘디자인이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평소의 과제였다. 몇 년 전 큰 화두가 된 ‘빅데이터’의 의미를 생각하던 중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빅데이터도 ‘디자인’이라는 과정 없이는 부가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빅디자인’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동명의 책을 출간하게 됐다. ‘빅디자인’이란 개별 상품의 디자인을 넘어 어떤 솔루션을 찾아서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기쁨을 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큰 뜻을 담는다. 새로운 사업을 구성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는 일이 빅디자인이다. 디자인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는 경제모델은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퍼플피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천 가능한 팁을 준다면?

“‘퍼플’이라는 컬러가 요즘 많이 보인다. 10년 전 [퍼플피플]을 처음 출간한 후 세상의 흐름을 지켜봤다. 우선 눈에 띈 것은 미국 컬러연합이 2016년의 ‘Color of the Year’로 ‘퍼플’을 선정했다는 발표였다. 선정 이유는 퍼플이 신비롭고 독특하며, 창조와 상상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이 디지털시대를 맞이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며 색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고 했다. 내가 [퍼플피플]이란 책을 쓰게 된 생각과 너무 일치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예측해서 썼던 책의 내용과 오늘의 현실이 비슷하게 진행되는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퍼플이라는 컬러가 주위에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자랑인 BTS도 라스베이거스 공연 때 거리를 퍼플로 물들였다는 기사도 떴다. 이런 트렌드가 우연은 아닐 것이다. 퍼플피플이 되려면 우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나는 ‘피카소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림을, 비틀스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스티브 잡스는 사과(애플)를 남겼다. 당신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퍼플피플] 뒤표지에 남겼다.”

어릴 적 꿈 이뤄준 ‘랍스터’ 휴대용 버너


▎영국의 디자인 전문 매거진 [DESIGN] 표지에 실렸던 김영세 대표의 작품과 스케치. 김 대표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꼽았다. / 사진:조정화
문화예술 발전에 세운 공을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받고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살아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의 역할’이다. 나의 인생은 ‘나의 역할’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의 인생을 만들어나간다. 그중에서도 ‘나의 역할’을 통해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었던 모든 계기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했다. 나는 ‘디자이너’라는 역할을 사랑하며 존중한다. 디자이너인 나의 역할이 내가 만들어낸 가치를 사용하며 기뻐하는 모든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창작에 몰두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고마워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서 남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 한 장이 있다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은, 인물 사진이 아닌 나의 작품 사진 중 하나다. 그동안 나의 ‘일’에 얼마나 몰입하고 살아왔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 사진은 내가 인생 최초의 상을 받게 된 ‘포터블 가스 쿠커’, 일명 ‘랍스타’라는 작품을 찍었던 사진이다. 이 사진을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사진을 보면 나의 디자이너 루키 시절의 온갖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생애 최초로 수상했던 (그 후 너무 많은 상을 받아서 당시 ‘오버’했던 나의 반응이 민망하기도 하지만) 기억을 떠올리게끔 하는 이 사진은 내가 대학생 때 즐겨 보던 영국 잡지 [Design]의 표지에 실렸다. 당시 IDEA Gold Award 수상을 취재하러 샌프란시스코에 온 [Design]지의 편집장 존스(Jones)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떠날 때 나는 그에게 이 사진을 건네주면서 ‘어릴 적 나의 꿈은 내 작품 사진이 [Design] 커버에 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없이 미소로 대답했던 존스 편집장이 보내준 매거진을 받아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표지에 이 사진이 실렸던 것이다. 어렸을 때의 꿈 하나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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