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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8·16 부동산 대책에 담긴 맥락 읽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시그널로 집값 잡는다? 

김원 중앙일보 부동산팀 기자
기대치 밑도는 ‘맹탕’ 대책 이면에는 단기 급등에 대한 경계심 자리해
부동산 경착륙 아닌 한 완화책 안 나올 듯, 민주당도 ‘부자 감세’ 반대


▎원희룡(왼쪽) 국토부 장관은 어느 정도까지는 집값이 서서히 내려가는 편이 여당에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기조다. /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정상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지난 8월 16일 첫 부동산 대책인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5년 임기 내 주택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250만 가구+@ 공급)에서 20만 가구가 추가된 것인데, 임기 동안 해당 물량의 주택 인허가를 마치겠다는 구상이다.

상징적인 1호 부동산 대책에서 문재인 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충분치 않아 집값 급등이 발생했고, 28번이나 발표한 대책 대부분이 ‘사후약방문’식 규제책이어서 집값 상승을 더 심화시켰다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8·16 대책은 재개발·재건축 사업 관련 규제를 풀어 주거 선호도가 높은 도심 내 주택 공급에 방점을 뒀다. 270만 가구 중에서 수요가 많은 서울·수도권에 158만 가구, 비수도권에 112만 가구가 공급된다. 특히 서울에는 5년간 50만 가구가 인허가될 예정인데, 이는 문 정부의 지난 5년과 비교할 때 50% 이상 증가한 수치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도심 개발에서도 전 정부의 ‘공공 주도’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민간 참여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소야대, 尹 부동산 정책의 최대 걸림돌


▎2022년 9월 7일 국회에서 종부세 일부 개정법률안이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당초 약속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8·16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의 반응은 그리 너그럽지 않았다. 우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빠지고 두루뭉술한 청사진만 제시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어떤 일을 언제부터 할 것인지, 단순히 일정표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예를 들어 기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가 과다한 부담금 부과로 재건축 사업 위축·지연 등 문제가 발생해 이를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세부 계획은 법안 개정안 발의와 함께 9월에 발표하겠다”는 식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공공 주도로 해왔던 주택 공급의 패러다임을 민간으로 전환하려면 그동안 이를 가로막았던 규제 완화가 동반돼야만 하는데 이번 발표에 이 부분이 깊이 있게 설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대책의 상당수가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8·16 대책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11개 법률의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다수당인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법 개정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종합부동산세법(종부세법) 개정안 입법 과정에서 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올해 3억원의 특별공제를 도입해 종부세 공제 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리려고 했다. 올해 1주택자는 공시가격 14억원까지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지난 7일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일시적으로 2주택자가 된 사람과 고령·장기 보유 1주택자 등의 종부세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만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 합의 결과에 따라 납세 금액이 달라지는 대상자는 약 21만4000명이다. 현재 개정안대로라면 1세대 1주택자 가운데 공시가 11억∼14억원 주택을 보유한 9만3000명은 종부세를 내야 하고, 공시가 14억원 이상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1주택자 12만1000명은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난다. 무엇보다 “종부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은 없던 일이 된다. 야당인 민주당에서 “부자 감세”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난관은 이미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공약 이행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인 것이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재정비 마스터플랜 논란이다. 정부는 8·16 대책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까지 마련하겠다고 했다. 1기 신도시 재정비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며, 실제 이 지역에서 기대 이상의 득표율을 보였다. 그래서 당초 올해 연말쯤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고 임기 내 착공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5월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 마스터플랜에 따라 질서 있게 지역마다 재정비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8·16 대책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문제가 뒤로 밀린 듯한 인상을 주자 이 지역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일부 주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8·16 대책은) 2024년 총선을 겨냥한 대책”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1기 신도시의 최초 입주는 1991~1993년 사이이며, 가장 빠르게 입주한 단지의 경우 현재 입주 32년이 지났고, 올해를 기준으로 건축 연한이 30년을 넘는 아파트가 전체의 16.7%(국토연구원 통계)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1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등이다. 앞서 재건축 사업이 진행된 다른 지역 단지들의 용적률보다 높다. 또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여 있어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별법 등 정부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실상 추진하기 어렵다.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논란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현시점에서 집값 부양 정책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논란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정부의 준비 부족과 소통 부재를 꼽고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한 한 인사는 “공약을 만드는 과정이나 인수위 등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문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며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사업성 등을 고려해 리모델링 등을 준비해왔는데, 정부에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용적률 상향, 특별법 제정 등 장밋빛 공약을 꺼내 들면서 주민들에게 재건축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심어준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서울 목동, 상계동, 여의도 등 지은 지 40년이 넘은 단지들도 여러 규제 때문에 재건축이 여의치 않은 상황인데, 준공 30년 이내인 1기 신도시에 온갖 혜택을 줄 경우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은 5년 정도 걸리는 사안을 최대한 단축했다. 그런데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며 질책했다. 공약 후퇴 논란 이후 정부는 줄곧 “5년 이상 걸리는 도시 재창조 수준의 종합 대책을 1년 6개월 안에 수립한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으로 빠른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용산 역세권과 3기 신도시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데 각각 50개월, 36개월이 걸렸는데 이에 비해 빠르다는 것이다. 결국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기 신도시 주민들이 기대하고 궁금해하던 부분들에 약간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놓았다. 1기 신도시 재정비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 공동팀장을 현재 국토부 실장에서 1차관으로 격상했다. TF는 경기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5개 1기 신도시별 전담팀을 구성하고 도시계획 현황 분석과 노후주택 정비, 기반시설 확충, 광역교통 개선, 도시 기능 향상 방안 등을 담은 마스터플랜 수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두성규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스터플랜 이후 특별법 제정이 중요한데, 여소야대인 정치권 상황에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며 “이럴 경우 특별법은 다음 국회에서나 논의될 가능성이 큰 데다 특별법 제정 후 인허가 과정 등 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이주 수요 분산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실제 착공까지는 10년가량이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진형 교수는 “1기 신도시 재정비의 경우 투기 수요 유입, 가격 상승 우려, 이주 대책, 지역 형평성 문제 등이 얽혀 있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에는 난관이 많고, 포기하기에는 공약 미실행에 따른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며 “결국 정부가 대선 공약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하락세에 접어든 집값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집권과 동시에 내놓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1년 유예조치는 다주택자의 매물을 유도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상생 임대인 제도 확대 역시 시의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 직전 계약 대비 전·월세를 5% 이내로 올린 집주인에게 양도세 비과세를 위한 실거주 요건(2년)을 면제해주는 이 제도가 임대시장 안정에 도움이 됐다. 당초 ‘8월 전세대란’ 우려에 하반기 집값 급등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이제는 ‘역전세’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집값과 함께 전셋값도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8·16 대책에서도 재건축 부담금 감면 대책(9월), 신규 택지 발표(10월), 민간분양 택지 공모(12월), 안전진단 제도 개선(연내) 등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구체적인 정책 발표는 대부분 연말이나 내년으로 미뤄졌다.

“집값 더 떨어져야 한다”… 몸 사리는 정부

“집값을 하향 안정시키겠다”는 신호도 시장에 거듭 보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9월 7일 “부동산 시장은 지금 많이 급등한 상태”라며 “비정상적인 시장·제도라도 하루아침에 되돌리면 교란이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장관도 9월 5일 국회에서 “하향 안정화가 상당 기간 지속해 안착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 3~4년간의 급등기 이전부터 (집을) 갖고 있던 분들이 대부분이라 급상승기 이전의 안정 상태로 간다고 해도 금융 충격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거래 절벽이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시장 경착륙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15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 ‘조정대상지역 해제’ 등 거래 활성화를 위한 정책 마련을 기대하고 있다.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진형 교수는 “거래절벽을 해소하려면 취득세, 양도세 등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를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 정부가 취임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당장 전격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질 것으로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김원 중앙일보 부동산팀 기자 kim.won@joongang.co.kr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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