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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메모리 이어 시스템 반도체 1위 노리는 삼성전자 

‘이재용의 뉴삼성’, 초격차 확대 힘 싣는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메모리·시스템·파운드리 ‘반도체 3대 분야’ 주도 위해 선제적 투자와 기술력에 승부
이재용 부회장 복권으로 경영 제약 사라져… 글로벌 M&A 추진·신규 시장 창출 탄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14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방문해 피터 베닝크 ASML CEO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반도체는 ‘미래 산업의 쌀’로 통한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미래차·로봇·인공지능 등의 핵심 부품도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단순 가전을 넘어 반도체 사업을 적극 육성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D램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1993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한다는 비전을 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미국과 중국 기업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30여 년간 지켜온 메모리 시장에서마저 추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거대한 내수 시장과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메모리 업체의 성장이 부담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과감한 투자와 첨단 기술의 선제적 적용으로 경쟁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경영 제약이 사라지면서 ‘뉴삼성’ 전략이 탄력을 받게 됐다. 이 부회장은 8월 12일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어 기업인의 책무와 소임을 다하겠다”며 “지속적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한국 경제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 복귀해 대규모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현안을 직접 챙길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 삼성전자가 주력 사업인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영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 ARM,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 NPX 등을 M&A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124조원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도 지난 1월 ‘CES 2022’에서 M&A와 관련해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뒤부터 사실상 그룹의 총수 역할을 해왔다. SK, 현대자동차, LG가 3세 경영에 돌입한 만큼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과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할 수 있을까? 관건은 선제적 투자와 차별화한 기술력, 새로운 시장 창출에 달려 있다. 삼성은 이와 관련해 최근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과 차세대통신으로 대표되는 신성장 정보기술(IT) 등을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원(국내 360조원, 관계사 합산 기준)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삼성이 지난 5년간 투자한 330조원 대비 120조원 증가한 액수다. 삼성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래 신산업 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연평균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30% 이상 늘렸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메모리 초격차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역전해 반도체 3대 분야를 모두 주도하는 초유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최초’ 영역 확대한다


▎삼성전자는 6월 30일 화성캠퍼스에서 세계 최초로 GAA(Gate- 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양산을 시작했다. / 사진:삼성전자
우선 메모리 분야에서는 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적용해 경쟁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시장점유율을 더욱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공정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신소재·신구조 분야 연구·개발(R&D)을 강화하는 한편, 반도체 미세화에 유리한 극자외선(EUV) 기술을 조기에 도입하는 등 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 노광 공정의 미세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필수 기술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EUV 공정을 적용한 14나노미터(nm) D램을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14nm D램은 마이크론의 10nm급 4세대 D램보다 선폭이 짧아 앞선 기술력을 적용한 것으로 평가 된다. 삼성전자는 또한 14nm D램 생산에 EUV 장비를 활용하는 레이어(층)를 5개로 확대한 상태다. ‘멀티 레이어’ 공정을 사용한 업체는 삼성전자가 최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D램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며 1위 자리를 수성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D램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43.9%로 3분기 연속 상승세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 경쟁력 확보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히 고성능·저전력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5·6세대 이동통신(5G·6G) 모뎀 등 초고속 통신 반도체, 고화질 이미지 센서 등 4차 산업혁명 구현에 필수불가결한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와 센서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는 인간의 눈·코·귀·피부처럼 데이터를 센싱하고 두뇌처럼 분석·처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반도체를 뜻한다. 8000여 종의 제품으로 구성돼 용도와 수요가 사실상 무한대로 꼽히는 반도체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의 2025년 시장 규모는 4773억 달러(약 620조원)로, 메모리 반도체(2205억 달러) 시장의 2배 이상을 형성할 전망이다.

3나노 파운드리 양산 등 기술 혁신에 ‘속도’


▎삼성전자 반도체의 역사는 선도적 투자와 기술력이 이룬 성과였다. 고(故) 이병철(앞줄 왼쪽 넷째) 삼성 창업주와 고(故) 이건희(섯째) 삼성 회장 등이 1983년 용인시 기흥반도체공장 (기흥캠퍼스)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는 삼성전자의 경쟁자들이 막강하다. 중앙처리장치(CPU)의 강자 인텔,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엔비디아, 시스템온칩(SoC) 1위 퀄컴, 이미지센서 강자 소니 등 분야별 1위 기업이 포진해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 사업 중 모바일 SoC, 이미지센서 등은 1등 업체들과 기술 격차가 큰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과감한 투자와 R&D 등을 통해 기술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같은 목표가 꿈만은 아니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이미지센서 매출점유율 24.9%를 기록하며 글로벌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소니가 40%대, 삼성전자가 20%대 초반 매출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올해 그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5G 모뎀(통신칩)을 업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도 ‘최초’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선단 공정 중심의 기술 개발로 미래 시장을 개척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6월 30일 화성캠퍼스에서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양산을 시작했고, 향후 평택캠퍼스로 공정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3나노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로 꼽힌다.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 신기술을 적용한 3나노 공정 파운드리 서비스는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 중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에서 전류가 흐르는 채널 4개 면을 게이트가 둘러싸는 형태인 차세대 GAA 기술을 적용했다. GAA 기술을 적용하면 채널의 3개 면을 감싸는 기존 핀펫 구조 대비 게이트의 면적이 넓어지고, 공정 미세화에 따른 트랜지스터의 성능 저하를 극복할 수 있다. GAA가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이는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또한 채널을 얇고 넓은 모양의 나노시트 형태로 구현한 독자적 ‘MBCFET GAA’ 구조를 적용했다. 나노시트의 폭을 조정하면서 채널의 크기도 다양하게 변경할 수 있고, 기존 핀펫 구조나 일반적 나노와이어 GAA 구조에 비해 전류를 더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어 고성능·저전력 반도체 설계에 큰 장점이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나노시트 GAA 구조 적용과 함께 ‘3나노 설계 공정 기술 공동 최적화(DTCO)’를 통해 소비전력을 절감하고 성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면적은 축소시켰다. 삼성전자는 3나노 GAA 공정을 고성능 컴퓨팅(HPC)에 처음 적용하고, 모바일 SoC 제품 등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대표이사)은 “삼성전자가 이번 제품 양산으로 파운드리 사업에 한 획을 그었다고 본다”며 “핀펫 트랜지스터가 기술적 한계에 다다랐을 때 새로운 대안이 될 GAA 기술 조기 개발에 성공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목표


▎삼성전자 평택반도체공장 (평택캠퍼스) 전경. / 사진:삼성전자
글로벌 기업들도 놀랄 삼성전자의 과감한 투자도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1위 달성 이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시장인 미주 시장으로 일찍부터 눈을 돌렸다. 1996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반도체 생산 단지를 준공했고 그해 12월 본격 가동했다. 삼성전자 오스틴 사업장은 현지에서 반도체 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생산도 담당하는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업장은 최초 가동 당시 D램 제품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파운드리 라인으로 전환돼 모바일 프로세서 등의 시스템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정보를 단순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데이터를 목적에 맞게 가공 처리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뜻한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화성사업장(화성캠퍼스)을 준공한 데 이어 2014년에는 중국 시안에 두 번째 해외 생산 기지를 설립했다. 2015년에는 무려 15조6000원을 투입해 경기도 평택에 축구장 약 400개 크기와 맞먹는 부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라인을 건설해 2017년 본격 양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그 결과 2017년 미국 인텔을 꺾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매출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미국 진출 25주년이던 지난해에도 과감하게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 단지 건설을 결정했다.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들어설 삼성전자의 신규 생산 단지는 495만8677㎡(150만 평) 크기다. 오스틴 공장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생산 단지 건설에 앞으로 21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5세대 이동통신(5G),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분야 등의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역사는 이처럼 선도적 투자와 기술력이 이룬 성과였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웨이퍼 가공 생산 업체였던 ‘한국반도체’ 인수를 결심하면서부터다. 한국반도체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강기동 박사가 세운 업체였다. 당시 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면서 한국 기업에는 모험이나 다름없는 분야였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물론 회사 임원들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시기상조”라며 이건희 회장을 뜯어말린 이유였다.

삼성전자 반도체 성공은 선도적 투자와 기술력의 역사


그러나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삼성의 미래가 반도체에 달려 있다고 봤다. 이 회장은 TBC동양방송 이사로 재직 중이던 1974년 사비를 털어 경영난에 처한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 회장의 혜안은 선친의 마음도 움직였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1977년 한국반도체의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하며 회사 이름을 ‘삼성반도체통신’으로 변경했다. 1978년 반도체 조립 회사인 ‘페어차일드(Fairchild)’ 부천 공장도 추가로 인수했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 부문을 웨이퍼 가공 생산에서 조립 분야로 넓히게 된 계기였다. 삼성이 종합 반도체기업으로 성장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이 선대회장은 1983년 ‘2·8 동경 선언’을 통해 D램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사업 전반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이 선대회장의 자신감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삼성은 1983년 11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첫 메모리 반도체 생산 라인을 경기도 용인시 기흥공장(기흥캠퍼스)에 준공하며 사업의 기틀을 닦았다. 삼성은 1985년 반도체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1987년 12월 이 회장이 선친의 뒤를 이어 제2대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부터 날개를 달았다. 취임과 동시에 ‘제2의 창업’을 선언한 이 회장은 1988년 11월 1일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했다. 삼성전자는 1969년 1월 13일 설립한 ‘삼성전자공업’이 모태지만 삼성반도체통신 합병일인 11월 1일을 창립 기념일로 삼고 있다. 이 회장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1993년 세계 1위로 올려놓았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일본 도시바·NEC 등을 제치고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했던 게 메모리 반도체 1위 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는 이후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유지하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재용의 뉴삼성’도 이 같은 삼성의 DNA인 선제적 투자와 기술력으로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노리고 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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