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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와이드 인터뷰 | 반도체 패권, 양향자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에게 묻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시장 주도할 수 있는 산업은 반도체뿐”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美 주도 ‘칩4’ 불참하면 반도체 산업 무너져, 최대 수출시장 中 설득 병행해야
반도체 기술 주도권 핵심은 인재 양성, 尹 정부 정책 방향 옳지만 제도화 필요


▎양향자 의원은 오직 초격차 반도체 기술만이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활로를 열어줄 것이라고 본다. 그 필연성을 전파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다.
만약 세상에 ‘반도체교(敎)’라는 종교가 있다면, 양향자(55) 무소속 의원은 틀림없이 복음 전도사를 자처할 것이다. 8월 11일 오후 의원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순례의 첫 코스인 듯 양 의원은 대형 모니터를 켰다. 거기에는 업종별 글로벌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빼곡하게 표기돼 있었다. 얼핏 주식 투자자들이 즐겨 볼 법한 그래프 같았지만, 그는 이 그림을 볼수록 두려움이 밀려온다고 털어놨다. “글로벌 산업 지형도는 곧 세계 질서다. 최근 2년 사이 텐센트·알리바바 등 중국 플랫폼 회사의 시총 감소와 애플·테슬라 등의 시총 증가 추이를 보면,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 영향을 체감할 수 있다”, “대한민국 시총 100조원 이상 회사는 (8월 15일 기준) 삼성전자(359조3809억원)와 LG에너지솔루션(107조7570억원)뿐이다. (사실상) 삼성전자 하나로 먹고사는 상황이지만, 대만 TSMC와 시총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에서 미국의 세컨드 벤더(퍼스트 벤더는 TSMC)가 되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이다.”

양 의원은 “우리 국민 눈에 불을 켜주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그가 ‘대한민국이 왜 반도체 산업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지’에 관한 가치를 일관되게, 지치지 않고 외칠 수 있는 근원적 힘이다. 실제 양 의원은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아들을 설득해 국내 대학 반도체학과로 보냈다. 광주 서구을이 지역구인 국회의원인데도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 특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는 행보에 대해 그는 “정치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 나를 비판하면 ‘당신이 내 삶을 알아?’ 이랬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7년을 겪으니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나’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국민은 말과 처신에 능한 것이 아니라 행동의 진정성과 실적으로 정치인을 평가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읽혔다. 어쩌면 이는 그가 상고 출신으로 첫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 삼성전자에서 배웠던 ‘반도체인의 DNA’와 맥이 닿는 정서일 수도 있겠다. 이제 양 의원은 그 정신을 국가 전체로 전파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우선 한국 반도체 산업이 처한 현실부터 이야기하자.

“‘되게’ 위험하다. 보이지 않을 뿐,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계속되고 있다. 삼성에서 일하던 중국 고급 엔지니어들이 다 빠져나갔다. 그리고 (8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법’ 서명에서 드러났듯) 미국은 자국 내에서 반도체 자급자족을 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D램·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세계 1등을 점하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을 제외하면 뚜렷한 경쟁자가 없다. 하지만 시클리컬(경기 민감)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는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파운드리에 삼성전자가 사활을 걸고 있지만, 1등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며 미국의 종합반도체 기업 인텔 등에 쫓기는 형국이다. 게다가 원천기술에 해당하는 팹리스(설계) 분야는 미국의 AMD·엔비디아 등이 틈을 내주지 않고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 역량은 반도체 기술에서 나온다”


▎2022년 7월 25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공개된 3나노 반도체 양산 출하식에 이창양(가운데) 산자부 장관과 경계현(왼쪽) 삼성전자 사장 등이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은 한·미 동맹을 매개로 ‘칩4’ 가입을 압박하고 있다.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 반도체가 미치는 영향도 워낙 크다. 우리는 중국을 향해 ‘협력적 공생 관계로 가자’고 계속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가 없으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아예 지속할 수가 없는 현실을 (중국에) 설명해야 한다.”

한국 반도체 수출의 약 60%가 중국(홍콩 포함)에 집중돼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 생산라인, 쑤저우에 테스트·패키징(후공정) 공장이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생산라인, 충칭에 후공정 공장, 다롄에 낸드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이런 부분이 훼손된다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시련이다.

“‘한국 반도체 수입 안 하겠다’고 하면 중국이 더 문제다. 우리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이 그만큼 (대체 불능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역량은 기술에서 나온다. 칩4 동맹에 가입했다고 중국이 경제 제재를 가한다면 한시적이지만, 가입을 안 해서 기술적으로 실기하면 국가의 존립이 위협당할 수 있다.”

미·중 패권전쟁에서 반도체가 주(主) 전장이 됐다.

“미·중 경쟁은 군사·경제뿐 아니라 기술 영역에서 가열되고 있고, 그 기술의 핵심은 반도체다. 미국이 파격적 보조금과 함께 자국 내 공장 건설을 독려하는 이유는 한국과 대만의 생산기술을 자국으로 이전해 미래 반도체 산업을 미국 주도로 놓기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미국이 반도체를 무기화하는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과 경쟁력 강화는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체재가 없다. ‘대기업에 주는 특혜’라는 시각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본토 투자를 늘리고 있다.

“낸드플래시보다는 D램, D램보다는 파운드리의 반도체 공정이 더 어렵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공장을 미국에 짓는 이유로 ‘관리’ 측면을 들 수 있다. 또 파운드리 주문을 넣는 엔비디아, AMD 등 90% 이상의 팹리스 회사들이 미국에 있다. 고객이 있는 곳에 시장이 생기고, 쏠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2공장을 짓고 있다. 투자액은 170억 달러(약 22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미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시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운영하고 있다. 또 테일러시와 오스틴시에 총 250조원 넘는 추가 투자 의향도 밝히며 세금 감면을 신청했다. SK도 반도체 150억 달러를 포함해 배터리·바이오 분야 등, 총 220억 달러(약 28조8000억원)에 달하는 미국 투자를 7월 말 발표했다. 이를 통한 파격적 혜택을 받으려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중국 공장에 최신 기술을 적용하지 못하면, 중국에 둔 우리 공장들의 경쟁력 쇠퇴는 명약관화하다.

“노조 문제로 반도체 기업이 에너지 안 쏟았으면…”


▎2022년 8월 2일 무소속 신분으로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장을 맡은 양향자(가운데) 의원이 그동안의 성과를 발표했다. / 사진:연합뉴스
국제정치학에서 반도체의 중요성도 알겠고, 한국의 활로는 기술력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렇다면 핵심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노력 이외에 정치권에서 어떻게 받쳐줘야 할까?

“세계 경제 질서에서 주도권을 잡는 시총 100조 기업이 더 나오려면, 글로벌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 독과점적 시장)’과 그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재 수급에 문제가 생긴 지 벌써 15년 이상 흘렀다. 국내 대학에서 배출된 인재로는 세계를 끌고 가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엔지니어를 다 데려다 썼다. 중국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최근 7년 사이 중국 엔지니어는 단 한 명도 한국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인력이 자국으로 돌아가 중국 반도체의 저변과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무엇을 해야 할까?

“반도체를 할 수 있는 (고급)인력들이 의대로 갔다. 그나마 이공계로 갔던 인력조차도 플랫폼 생태계가 확장하면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다 이동했다. 반도체에서 가장 시급한 인재는 기술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석·박사 인력이다. 하지만 기본인 수학·물리·화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 와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인력이 정작 없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우리가 반도체 산업을 위해 재원을 이렇게 쓸 것이고, 향후 5년 후 10년 후 이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메시지만 있어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원을 조정할 것이다. 메시지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실제 이렇게 집행 되도록 해야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를 만들었지만, 야당인 민주당 출신인 내가 위원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가 7월 21일 발표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에 따르면 ▷2026년까지 340조원 이상의 기업 투자 ▷2031년까지 반도체 인력 15만 명 이상 양성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점유율 10% 확보 ▷2030년까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율 50% 달성 등의 목표를 담고 있다. 위원장으로서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에 대해 자평한다면?

“시즌1은 법안(8월 4일 발의된 K-칩스법)이었다. 이제 시즌2는 예산이다. 아시다시피 거의 모든 지자체장이 반도체 클러스터, 반도체 특화단지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한정된 재원으로 다 해줄 순 없다.”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의도는 선하지만, 막상 우수 인력들이 지방으로는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인식으로는 그렇다. 1965년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구미 단지를 위한 경북대 전자과, 조선·항만을 위한 부산대 기계과, 여수·순천 단지를 위한 전남대 화공과 등 산학(産學) 모델을 배분했다. 그러면서 그곳 학교를 졸업해 산업체에서 5년간 근무하면 병역 의무가 면제되도록 했다.”

농수산물을 개방해도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은 예외로 뒀듯, 반도체는 워낙 특수하고 절박하니까 예외를 둬야 한다는 의미인가?

“개인적 생각으로는 반도체를 ‘안보 산업’으로 지정해서 노조 문제에 기업이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노조를 포함해 모두가 함께 국가를 위한 일에 나서자’는 설득을 하려면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반도체법엔 반대하면서 일자리는 달라고?”


▎양향자 의원은 “‘반도체는 삼성후(後)자가 아닌 삼성전(前)자’의 자부심으로 삼성전자에서 혼신의 힘을 쏟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반도체만 관(官) 주도로 비치면,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바이오·배터리 등 모든 산업이 반도체의 영역에 들어간다. 아울러 이를 설득하는 것도 정부의 업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하나 들어오면, 그 지역에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요식업까지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있었나?

“대화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지도자의 메시지로 정부 시스템은 움직이는데,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반도체 중시 발언은)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라고 본다. 다만 이를 국정운영 철학에 녹여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려면 전문가를 기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17만7000명이었던 반도체 산업 인력은 2031년 30만4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려면 향후 10년간 12만7000명이 더 필요하다.

“노동자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특성을 살려 평생 에너지를 쏟고 행복하게 일하면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자는 것이다. 반도체의 발전으로 스마트폰을 쓰면서 시공간의 경계는 무너졌다. 반도체는 철학이다. 철학적 베이스가 없이 개발되지 않는 ‘양심(良心)산업’이다.”

양심산업이란 어떤 의미인가?

“반도체 공정이 40개 정도 된다. 단 한 군데에서도 오류가 있으면 안 된다. 더 중요한 건 오류를 숨겨서는 안 된다. 내 안위가 걱정돼서 숨기고 넘어가는 안일한 생각이 모럴 해저드다. 이런 도덕적 해이가 자율주행에서 나온다고 하면 인류의 재앙이 된다. 그래서 반도체인을 뽑을 때 기술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양심, 정직함이다. 웨이퍼는,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기업과 정부가 위기감을 느끼고 열심히 해도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의회에서 동의해주지 않으면 무력화될 수 있다.

“민주당도 작년까지 여당이었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이 8월 4일 시행됐다. 민주당도 열심히 해줬다. 만약 반대하면 ‘그쪽 지역구에 반도체 클러스터는 없는 것으로 아시라’고 할 것이다.(웃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능력은 시스템 반도체에서 결판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팽창 속도가 메모리보다 2배, 4배 빠르게 갈 것이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에서 주도권을 못 쥐면 바퀴 하나로 가는 셈이다. 그래서 인재를 적시에 공급해주는 노력을 정부가 해야 한다. 현재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와 삼성의 점유율은 거의 53.5%:16.3% 비율이다. 이를 6:4까지 올리면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 압도적 1위니까 시너지를 발할 수 있다.”

양 의원은 평소 ‘반도체 투자는 기업 투자가 아니라 국가 안보 투자’라고 말해왔다.

“네이버·카카오는 글로벌 시장을 못 잡는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메타 등을 뚫고 갈 수 있겠나. SK텔레콤도 국내 수요밖에 없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산업은 반도체 딱 하나뿐이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만, 이 회사의 미래 성장성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국가가 반도체 산업에 얼마나 지원하느냐, 인재를 공급하느냐는 문제일 뿐 시장은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에 메모리와 비메모리반도체는 필수적이다. 다만 데이터 저장 공간인 메모리보다 처리 공간인 비메모리 영역의 확장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성장성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때, ‘노 재팬’ 여파로 반도체 소재 국산화가 화두인 시절이 있었다.

“어떤 기술이 궤도에 오르려면 최소 1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한다고 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규제는 우리나라 소·부·장의 현주소가 어디였는지 파악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 후 국산화가 얼마나 이뤄졌느냐’고 묻는다면 ‘100% 국산화하지 않아도 된다’로 답하겠다. 왜냐하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어떤 영역에서는 가치사슬로 서로 묶이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가지고 있으면, 일본과 유럽에서 소·부·장을 공급받고, 미국에서 소프트웨어를 받는 것이다. 잘하는 영역에 집중해 더 잘해야 한다. 우리가 모든 걸 하겠다고 하는 순간, 그만큼 인력과 재원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사이즈로는 안 된다. 한정된 인력으로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만 하기도 힘들다.”

“반도체는 모순 극복의 역사”

반도체 산업을 효율적으로 도우려면 정치권에서도 제도의 시스템화가 필요할 것 같다.

“당정 협의를 한 적이 있는데 8개 부처가 오더라. 저마다 정책 발표를 하는데 중첩되는 게 너무 많았다. 부처 간 벽이 높아 서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재원을 제대로 쓰려면 국회와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수적이라고 다 느꼈을 것이다.”

준비된 질문이 소진됐지만, 양 의원은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반도체는 모순 극복의 역사다. 저장 공간은 커져야 하지만 면적은 줄어들어야 한다. 속도는 빨라져야 하지만 전력 소모는 작아야 한다. 성능은 좋아져야 하지만 가격은 내려가야 한다. 모순을 극복하려면 익숙한 것과 결별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회로 구성 전체를 버리고, 초격차 기술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고수(高手) 엔지니어밖에 없다. 초‘격’차의 기술은 차이의 ‘격’이 아니라 품격의 ‘격’에서 나오는 것이다.”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큰 목표를 가져라’, ‘일에 착수하면 물고 늘어져라’,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양 의원이 삼성전자에서 얻은 30년의 교훈은 기술뿐 아니라 철학에 있었다. 철학은 품격이고, 문제를 대하는 방식과 닿는다. 무대는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 녹취 정리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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