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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공권력 대신하고 나선 ‘유튜브 자경단’의 명과 암 

경찰이 놓친 범인, 유튜버가 잡는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리얼한 취재 영상에 시청자 열광… 공중파 방송과 ‘단독’ 경쟁하기도
“신상공개라는 사적 제재는 위험… 명예훼손 등 법적 책임 주의해야”


▎자경단 역할을 자처한 유튜브 탐사 채널 [명탐정 카라큘라] 팀이 강원도 동해시에서 발생한 집단 감금·폭행 사건을 조사하던 중 지역 경찰과 대화하고 있다. / 사진:이세욱
민생 범죄를 취재한다는 명분으로 범죄자를 추적하는 유튜브 채널이 기존 뉴스 미디어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6㎜ 캠코더를 쥔 카메라맨부터 스토리 구상을 담당하는 작가진, 그리고 현장을 취재하는 민간조사자(탐정)까지. 이들의 현장 탐사는 방송 취재진을 능가한다. 때로는 공중파와 초 단위로 단독 경쟁까지 벌인다. 보통 수사 개시에 두 달가량 소요되는 경찰보다 사건을 먼저 파고들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자경단(自警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의 신속한 일처리와 생생한 화면에 시청자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하지만 범죄 혐의점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특정인과 사건 내용을 유튜브에 게시해 시청자의 공분을 유도하는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지난 9월 중순,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50대 김모씨는 21살 아들의 행적을 수소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 만나러 간다던 아들이 돌연 연락이 끊어졌다. 지적장애 3급인 아들이기에 우려는 더욱 깊었다. 보름이 넘도록 실종됐던 아들은 어느 날 불쑥 집에 돌아왔다. 핏기가 가신 뺨은 푹 팬 채였고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무슨 일이냐”며 아들을 다그쳐 옷을 벗겨보자 심하게 폭행당한 흔적이 있었다. 어깨에 점처럼 무수히 찍힌 붉은 흉터는 담뱃불에 찍힌 게 확실했다. 병원에 갔더니 전치 6주 진단이 나왔다.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감금·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에 김씨는 경찰서를 찾았다. “제발 엄벌해달라”며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경찰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 이래가지고는 재판에서 져요. 자신 있으면 소송을 하세요.” 결국 고소장은 반려됐다.

“내가 옷도 거지처럼 입고 글씨도 잘 모르니까 그런 것 같아….” 제보를 받고 찾아온 유튜버에게 아버지 김씨가 털어놓았다. 평범한 일상은 아들이 폭행 당한 일로 산산조각이 났다.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은 되지 않았고 언론에 제보하는 일도 미지의 것처럼 막연했다. 하지만 김씨 아들의 지인이 유튜브 채널에 메일을 보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바닥 장판이 다 해진 방에 있던 부자(父子)를 자경단 유튜버가 찾은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3주 뒤였다.

집단 감금·폭행 취재해 경찰수사 이끌어낸 유튜버


▎집단 감금·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18일 동안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했다. 전치 6주 상해진단을 받았으나 경찰은 고소장을 반려하는 등 초기 대응에 미온적이었다. / 사진:이세욱
이세욱씨는 유튜브 채널 [명탐정 카라큘라] 운영자다. 그는 동국대 법무대학원에서 탐정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사건 취재는 일주일 평균 3건. 그러나 영상에는 1건 정도만 올라간다. 팩트체크를 한 후 사건 성립이 안 되는 경우는 뛰어들지 않는다. “나는 제보자의 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가해자도 대면해서 항변을 듣고 가해자가 제시한 증거 또한 교차검증을 한다.” 이들은 수사기관이 가진 과학적 증거는 확보할 수 없다. 하지만 성범죄나 협박, 사기사건의 경우 당사자 간에 오간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 통화 녹취록, 입출금 내역 등을 피해자와 가해자로부터 전달받아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변호사의 법적 자문 과정도 거친다.

‘왜 감금당했느냐?’는 이씨 질문에 피해자 김군은 사고비용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피해자가 묘사한 악몽 같은 사건 내용이다. 9월 13일 신모군은 피해자 김군을 불러내 자신이 렌트한 외제차량을 몰아보라고 시켰다. 운전이 미숙한 피해자가 접촉사고를 내자 신군은 태도가 돌변, 수리비 400만원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일해서 갚겠다는 사정은 통하지 않았다. 신군은 차용증을 쓰라며 협박했다. 자신의 여자 친구 집과 모텔 등을 전전하며 피해자를 가두고 친구와 함께 폭행했다. 세면대에 피해자의 머리를 처박아 물고문을 해댔고, 얼굴이며 뺨을 때렸다. 쇠파이프도 휘둘렀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트렁크에 가두기도 했다. 감금 후 18일이 지난 9월 30일에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씨 팀은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또 다른 김모군을 만났다. 가해자인 김군은 카메라 앞에서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김군과 신군은 이틀 뒤 입장을 바꿔 경찰에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 팀과 동행한 천호성 변호사(법무법인 디스커버리)가 대리로 고소장을 써서 피해자와 함께 접수한 직후였다. 천 변호사는 “아주 악랄한 범행이다. 지금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으면 가해자들은 무혐의로 끝난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동해경찰서 형사팀은 최근 수사과 형사팀에 사건을 배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고소인을 전원 소환해 조사를 마쳤다. 강도상해 혐의로 입건한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고소장을 반려한 일에는 확답을 피했다. 이 사건은 10월 12일 이씨의 채널에서 최초로 전파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후속 보도는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도심과 번화가에 잠복해 있다가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몰카범을 적발, 현장에서 경찰에 넘기는 유튜브 채널도 자경단과 성격이 유사하다. 유튜브 채널 [감빵인도자]에 9월 2일 게시된 영상을 보면 서울 마포구 홍대 문화의 거리에서 여성을 쫓아가며 몰카를 촬영하던 남성을 제지해 관할 지구대에 넘기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출동한 경찰관은 문제의 남성에게 수갑을 채워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홍익지구대 경찰관은 “그런 경우까지 갔다면 신고자의 설명에 신빙성이 있고 용의자의 혐의점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토바이 배달원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유튜버도 있다. 오토바이의 교통법규 위반 행위만 추적해 신고하는 유튜브 채널 [딸배헌터]다. 배달 노동자를 비하하는 은어를 전면에 내세운 이 채널에서는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과속 등을 저지르는 오토바이 배달원을 적발해 경찰에 신고한다.

‘소신’과 수익 사이 아슬아슬한 저울질


▎거리의 몰카범을 적발해 경찰에 신고하는 유튜버도 최근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다. / 사진:감빵인도자’
이러한 유형의 유튜브 채널은 중고차 사기 수법을 공개하는 콘텐트가 원류다. 이후 피해자의 제보를 받고 문제의 업체를 찾아가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탐사 방식으로 콘텐트가 심화됐다. 현재는 민생 범죄 사건에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소득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일종의 ‘스타덤’에 오르면 일정 수익은 보장된다. 이씨는 업계에 뛰어든 지 3년간 5억원가량의 수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 채널의 구독자는 40만 명을 돌파했고, 총 조회 수는 약 1억5000만 회다. 지난해 9월 7일 첫 영상을 업로드한 [딸배헌터]의 구독자는 16만 명으로 총 조회 수는 6300만 회. 올해 6월 15일 유튜브에 가입한 [감빵인도자]의 구독자는 12만여 명으로, 총 조회 수는 390만 회다. 보통 조회 수 1회당 2원의 광고수익을 거두는 것을 고려하면 [딸배헌터]와 [감빵인도자]의 수익은 각각 1억2000여만원, 800여만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유튜브 심의를 통해 욕설, 폭력, 선정성 등 사유로 수익이 제한되는 ‘노란딱지’ 제도는 논외로 한 계산이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위험한 소재를 다루며 신변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을 무릅쓰고 하는 데는 나름의 신념과 소신도 있다.” 이씨가 말했다. “사기 범죄의 경우 금융 플랫폼이 진화하면서 사기꾼들 또한 지능화되고 있다.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허점이 계속 생산되는 현실인데 수사기관은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피해자를 만나 조속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돕고 관련 수법을 공유한다.” [감빵인도자] 운영자의 동기도 비슷하다. 그는 “이전에도 불법촬영범들을 잡은 적이 있었다. 이렇게 나쁜 놈들 잡는 재능으로 사회와 공익에 도움 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윈윈(Win-Win)이라고 생각해 시작했다”고 한 영상에서 털어놨다.

자경단이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최종 권한은 현장에서 가해자를 경찰에 인도하거나 피해자를 도와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는 것이다. 동해시의 감금·폭행 사건처럼 미디어의 힘을 이용해 경찰의 적극 수사를 끌어내기도 한다. 때로는 신상 공개라는 압박을 가해 가해자의 자백을 유도해내는 성과도 거둔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의 판단에 앞서 한 개인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그를 영상에 박제, 불특정 다수의 분노를 유도하는 행위는 사회질서 유지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천호성 변호사는 “범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신상 공개다. 팩트체크가 확실한 상황에서 얼굴 모자이크 처리와 실명 비공개, 음성 변조 등의 선을 잘 지키면 괜찮다고 본다. 이것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게 너무 지나쳐서 범죄자의 인권을 과하게 보호하고 피해자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같은 구성원이라고 볼 수 없는 범죄자들이 많다. 이들을 과연 선량한 일반인과 같은 잣대로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자경단의 사적 제재, 어디까지 허용되나?

민간인이 공권력을 대신하는 이들 자경단의 행동에 경찰의 태도는 완고하다. 지방경찰청 관할서의 한 지능범죄팀장은 “일선 경찰관들이 사건 해결에 괜히 시간을 쏟는 게 아니다. 무고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고 혐의를 밝혀내는 데 각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사건 수사를 빨리 진행하려고 일반인이 개입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자극적인 영상을 위해 소란을 피우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과 대립하는 구도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명백한 공권력 낭비”라고도 했다. 반면 경찰 내 기피 부서로 전락한 수사과의 씁쓸한 단면이 엿보인다는 시선도 존재했다. “한 달에 쏟아지는 사건이 100여 건이다. 격무에 시달리지만 진급 기회는 없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속도 조절하는 틈을 유튜버들이 파고든 것 같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언론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헌법상에서는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넓게 보면 유튜버들도 기성 언론이 지닌 취재나 보도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학습된 만큼 범죄 사건에서 익명보도 원칙을 지키는 반면, 유튜버들은 이 부분에서 판단이 안 될 수 있다. 유튜버들도 명예훼손 책임과 사생활 침해 등 형법상의 책임은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순 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은 “매체 변화가 빠른 시대다. 유튜브가 기성 언론의 트래픽을 가져가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밝히는 기능도 일부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상을 공개하는 것에 공인의 범위를 다양하게 고려해 보도 내용을 결정하는 기성 언론과 달리, 정제된 데스크가 없는 유튜버 활동은 모 아니면 도로 갈 수 있다”고 바라봤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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