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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11)] 봇물처럼 터진 K예능의 가능성과 한계 

연애 리얼리티쇼, K예능 대표주자 될까 

K멜로 연상케 하는 ‘감정의 과몰입’으로 글로벌 시장서도 흥행
나영석 PD “트렌드 따라가기보다 로컬 색깔 분명해야 경쟁력”


▎티빙 오리지널 예능 [환승연애](왼쪽)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이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를 론칭했다. / 사진:넷플릭스
K팝, K드라마, K무비까지 K콘텐트에 대한 글로벌 열풍이 이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K예능만큼은 약한 면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문화적 정서 차이가 장벽이 되기 때문인데, 과연 이 장벽을 깰 수 있는 K예능의 가능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예능 생태계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과 함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 [환승연애]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이 단적인 사례다. 이 두 프로그램이 열어젖힌 연애 리얼리티 예능의 트렌드는 지난 1년간 국내 예능가를 강타했다. [환승연애2], [체인지데이즈], [나는 SOLO], [돌싱글즈], [솔로지옥2], [러브캐처 인 발리], [에덴], [남의 연애], [홀인러브], [썸핑], [메리퀴어], [좋아하면 울리는], [잠만 자는 사이] 등등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그 진원지는 OTT다.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웨이브, 쿠팡플레이, 왓챠 같은 OTT 채널이 경쟁적으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쏟아냈고, 이러한 트렌드를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 종편이 거꾸로 받아들이는 형국이 됐다. 플랫폼의 주도권이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서 이제 OTT로 옮겨가고 있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예능계 강타한 연애 리얼리티 열풍


▎지난해 9월 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디즈니+ 오리지널 예능 〈더 존: 버텨야 산다〉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재석, 권유리, 이광수, 조효진 PD, 김동진 PD. / 사진:연합뉴스
여기서 중요한 건 [환승연애]나 [솔로지옥] 같은 연애 리얼리티가 과연 K예능으로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환승연애]는 아직 분명한 지표가 없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를 증명하기가 어렵지만, 이 프로그램이 티빙에 가져다준 막강한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보면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환승연애]는 시즌1이 공개됐던 2021년 티빙에 신규 유료회원 가입자 수를 가장 많이 끌어온 프로그램이었고, 시즌2도 마찬가지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솔로지옥]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글로벌 탑10에 들어간 K예능 최초의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환승연애]와 [솔로지옥]을 보면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일반인들이 출연해 리얼한 연애 과정을 담는 리얼리티쇼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해왔다. 서바이벌 콘셉트가 더해진 서구의 리얼리티쇼는 침대 안까지 카메라를 들이미는 사생활 도촬의 자극적인 표현 수위와 선정성을 무기로 삼곤 했다. 하지만 [환승연애]나 [솔로지옥]을 보면 말초적인 자극보다는 ‘감정의 과몰입’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솔로지옥]은 남녀 출연자들의 섹스어필하는 몸이나 스킨십을 좀 더 과감하게 보여준 바 있지만, 그 안에서도 그들의 감정이 엇갈리고 만나는 아픔과 기쁨의 순간을 깊게 포착했다. [환승연애]는 이미 헤어진 연인들이 출연해 다른 사람을 만날 것인가, 아니면 다시 과거의 연인에게 돌아갈 것인가 하는 색다른 ‘관계의 변주’를 통해 더 깊숙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담아냈다. 이러한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가 보여주는 ‘감정의 과몰입’은 이미 글로벌한 저변을 갖고 있는 K멜로의 경향이기도 하다. 남녀가 만나고 서로 알아가면서 감정을 나누고, 그 교감을 통해 가까워지지만 어떤 운명적인 순간들을 만나 엇갈리기도 하고 다시 겹쳐지기도 하는 그 과정은 K멜로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해외의 멜로드라마들과 사뭇 차별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는 K멜로가 글로벌 시장에서 먹힌 그 코드들을 리얼리티쇼 버전으로 풀어내는 지점에서 경쟁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연애 리얼리티가 예능가를 장악하다시피 하기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그나마 먹히는 K예능으로 지목됐던 건 ‘게임 예능’이다. [런닝맨]을 만들었던 조효진 PD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으로 처음 시도해 시즌3까지 만들었던 [범인은 바로 너]와 [신세계로부터] 그리고 디즈니+에서 오리지널로 제작한 [더 존: 버텨야 산다]가 그 OTT 게임 예능의 계보다. 사실상 조효진 PD가 만들어낸 이 게임 예능의 계보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될 정도로 글로벌 인기를 끌었던 [런닝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재석의 글로벌 인지도는 이미 [무한도전] 시절부터 있었지만 [런닝맨]으로 더욱 공고해졌고, 이광수는 이 프로그램으로 ‘아시아프린스’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넷플릭스 예능 〈신세계로부터〉 속 거제 외도 ‘보타니아’의 모습. 〈신세계로부터〉는 코로나19 상황의 역발상으로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 게임 공간화하는 실험을 했다. / 사진:넷플릭스
[런닝맨]의 큰 성공으로 조효진 PD는 SBS 퇴사 후 중국에서 예능 프로그램 제작을 한 바 있고, 한한령으로 인해 귀국해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인은 바로 너]로 OTT에 최적화된 게임 예능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투게더]를 통해 이승기와 대만의 스타 류이호가 함께 아시아 방방곡곡을 돌며 팬을 찾아다니는 색다른 여행 버라이어티를 시도하기도 했고, [신세계로부터]라는 코로나19 상황의 역발상으로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 게임 공간화하는 실험도 했다. 또 [더 존: 버텨야 산다] 같은 게임 예능에서는 자막을 최소화함으로써 글로벌 구독자들이 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OTT에 최적화된 게임 예능 성과 있지만 한계도 분명


▎Mnet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은 한·중·일 3국의 출연자들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치러져 각국에서 활동하는 저변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진:CJ ENM
게임 예능은 분명 그 게임, 혹은 미션이라는 공통된 요소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형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더 자극적인 서바이벌 예능이 많은 서구권보다는 게임 자체에 대한 저변과 문화적 공감대가 있는 아시아권에서 반응이 두드러진다. 좀 더 글로벌하게 가기 위해서는 복잡한 게임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게임 설정이나 틀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게임 예능은 여전히 과거의 ‘캐릭터쇼’ 설정에 머물러 있는 게 한계로 지목된다. 지금은 캐릭터쇼 같은 가상 설정이 아니라, 리얼리티쇼의 진짜를 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넷플릭스가 최근 선보인 정효민 PD의 [코리아 넘버원] 같은 프로그램도 보다 ‘노동 리얼리티’에 맞춰진 요소가 분명해 보였지만, 여전히 유재석 특유의 캐릭터쇼에 머물러 있는 한계가 분명하다. 극강의 서바이벌 게임 예능인 [피지컬: 100] 같은 프로그램이 주목되는 건 이러한 캐릭터쇼의 한계를 과연 넘어설 수 있겠느냐는 기대감과 궁금증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내내 연애 리얼리티가 OTT를 통해 쏟아져 나와 마치 그것만이 K예능의 대안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상은 다양한 영역들이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K팝 오디션 프로그램은 BTS, 블랙핑크 같은 K팝 아이돌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Mnet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 같은 K팝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중·일 3국의 출연자들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치러져 여기서 탄생한 아이돌이 각국에서 활동하는 저변이 만들어졌고, 일본의 [니지 프로젝트]는 JYP의 일본 걸그룹 ‘니쥬’를 탄생시킨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즉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하는 K팝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진 상황이고, 미국·남미·유럽 등지까지 점점 저변이 넓혀지고 있는 K팝으로 인해, 관련 오디션프로그램의 성공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범인은 바로 너]는 [런닝맨]으로 큰 성공을 거둔 조효진 PD의 작품이다. / 사진:넷플릭스
코로나19 때문에 주춤했던 여행 예능도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꽃보다 할배]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 그 포맷을 미국 NBC에 판매하기도 했던 나영석 사단도 슬슬 해외여행을 소재로 하는 글로벌 예능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멕시코에서 촬영을 마치고 편집에 들어간 [서진이네] 연출을 맡은 나영석 PD는 tvN 방영과 더불어 글로벌 OTT 중 하나를 선택해 그 경쟁력을 타진해볼 것이라고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K예능도 리얼리티쇼 시대에 맞는 도전 필요해

“K예능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지만, 쉽게 생각하면 쉬울 수 있습니다”라고 밝힌 나영석 PD는 이미 K콘텐트로 글로벌 인지도를 가진 출연자들을 섭외해서 예능으로 만드는 것도 가장 간단하지만 강력할 수 있다고 했다. [서진이네]는 이서진을 필두로 박서준, 정유미, 최우식, 뷔가 출연한다. 섭외만으로도 글로벌 K콘텐트 팬덤이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기생충]의 최우식이 있고, BTS의 뷔가 있으며, [이태원 클라쓰]의 박서준이 있는 출연자 구성이 아닌가. 실제로 나영석 PD는 멕시코 현지 촬영 중 한 식당에 들어갔다가 알아보는 현지 팬들을 통해 K콘텐트의 위상을 절감했다고 했다. “뷔야 당연히 모두가 알아봤지만, 사실 박서준보다 최우식을 더 알아볼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K드라마 팬이라는 그들은 [이태원 클라쓰]의 박서준을 더 알아봤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OTT가 만들어낸 놀라운 변화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연애 리얼리티가 한국 예능의 대세 트렌드가 된 건,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열어젖힌 리얼리티쇼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만이 K예능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건 일종의 착시현상에 가깝다. 오히려 리얼리티쇼는 섭외 중심으로 이뤄짐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예능의 형식 실험과 도전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내포하고 있다. 과거 캐릭터쇼 시절에 [무한도전]을 필두로 다양한 형식 실험을 했던 것처럼, K예능도 현 리얼리티쇼 시대에 맞는 도전이 요구된다. 또 글로벌을 겨냥한 예능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저들을 의식해 만들어내는 ‘글로벌화’된 방식 또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K예능이 가진 분명한 로컬 색깔이 지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K예능의 경쟁력은 저들을 따라 하거나 저들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잘하는 대로 우리 것을 하는 것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로컬 색깔이 분명한 K예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글로벌 콘텐트 시대에 시장에 맞추려는 노력만 이야기되는 상황에, 나영석 PD가 말하는 K예능의 경쟁력에 대한 이야기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302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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