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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22)] 그리스 “살라타 살라타” 세계관과 바다 

힘 모아 뭉치는 ‘우리’ 정신으로 2023년 ‘한국판 오디세이’의 모험과 도전을… 

“살라타 살라타” 세계관, 그리스서 시작해 유럽에서 진화한 뒤 미국에 계승
뒤늦게 바다 중요성 깨달은 중국도 해양으로 확장… 한국도 도전정신 절실


▎배는 이동 수단인 동시에 자유와 비즈니스를 의미한다. 초기에는 에게해 중심의 작은 배였지만, 이후 3단계 노로 일시에 나아가는 시속 20㎞ 그리스 전함도 나타났다. / 사진:유민호
"살라타 살라타(Thalatta! Thalatta).” 고대 그리스어로 “바다다, 바다다”라는 의미다. 거의 울부짖으면서 터트리는 함성이나 탄성 속에서의 “바다다 바다다!”로 통용된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그리스어지만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알아야만 하는 역사 공부 필수 단어이기도 하다. 무대는 기원전 401년 겨울이다. 현재의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중북부 마둘(Madur)산에 도착했던 그리스 군인 5000명이 주역이다. 피곤한 장기 행군에 나서던 중 희미한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흑해다. 그리스 군인들은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친다. “살라타 살라타!”

아무리 그래도 바다를 보면서 지른 함성 하나가 중요 역사 소재가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그리스 군인이 던진 격한 목소리의 “살라타 살라타”란 말에 ‘아주’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무의식중 쏟아졌을 법한 “살라타 살라타”라는 말 한마디가 그리스는 물론 에게해 민주주의에 기초한 서방 세계관을 120% 대변하기 때문이다. 세계, 아니 우주를 대하는 그리스 유전자를 설명할 최적의 개념이 “살라타 살라타”라는 말속에 응축돼 있다는 뜻이다.

“살라타 살라타”, 그리스 영혼의 출발점

“살라타 살라타”라는 말의 출처는 기원전 4세기 출간된 그리스 책 [아나바시스(Anabasis)]다. 그리스 군인이자 작가인 크세노폰(Xenophon)이 남긴 회상기이자 역사서로, 총 7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다. 아나바시스는 그리스어로 ‘위로 올라간다’로 해석된다. 확대해서 ‘행군 진군 내륙기’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크세노폰이 그리스 군인과 함께 행군한 전쟁 회상기라고 볼 수 있다. 기원전 401년 봄 시작된 전쟁기로, 목적지는 페르시아다. 페르시아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한 전쟁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크세노폰과 그리스 군인 1만 명은 페르시아 반군(反軍)격인 동생 사이러스(Cyrus) 왕자에 고용된다. 용병인 셈이다. 주권 문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지만, 돈에 관한 문제라면 그리스와 페르시아도 친구가 될 수 있던 시대였다. 그리스는 페르시아까지 가서 사이러스 왕자의 왕위찬탈을 돕는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황당한 상황에 직면한다. 전쟁 중 사이러스가 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Artaxerxes II)에 살해되면서 용병 고용주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돈은커녕 식량도 없이 그리스로 귀환해야 하는 운명에 직면한다. 일종의 패잔병 탈출기로 변한 셈이지만, 당시 그리스 용병 귀환을 이끈 책임자가 바로 29세 크세노폰이다. 모두의 지지하에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크세노폰은 적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북쪽 루트를 통해 그리스로 돌아가기로 한다. 지도도 없이 처음 보는 내륙 땅을 헤매던 끝에 결국 튀르키예 마둘산에 도착한다. “살라타 살라타”는 패잔병 탈출기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도망 중 눈앞에 펼쳐진 흑해를 통해 그리스 영혼의 출발점인 바다를 만난 것이다. 크세노폰은 저서 [아나바시스]에서 “살라타 살라타”에 관한 그리스인의 감동과 주변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인에게 바다는 1960년대 폴 뉴먼 주연 영화 [영광의 탈출(Exodus)]에 비교될 수 있다. 죽든 살든 이스라엘에 몰리는 유대인 귀속 본능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스가 이스라엘과 다른 점은 특정 공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넓은 바다가 넘실대는 땅이라면 어디든 자신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섬이나 반도가 아닌 섬과 반도 앞에 펼쳐진 바다가 주 목적지다. 바다를 보는 순간 희망·미래·행복이 넘실댄다. 바다에 접하는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승리의 내일을 확신하게 된다.

페르시아는 바다와 무관한 내륙 국가다. 그리스의 파워와 정신을 펼치기 힘든 공간이다. 크세노폰이 바다를 발견할 당시 그리스 용병은 1만 명에서 5000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기아·질병·추위로 행군 중 절반이 희생됐다. [아나바시스]는 승리의 행군과 무관한 죽음과 기아의 기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바다를 향한 그리스인의 정열을 강조하면서 ‘아나바시스=패배’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반대로 바다에 모든 것을 거는 그리스의 영광과 전통을 강조하면서 그 정도 피해는 ‘능히’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나바시스]에 남긴다. 바다는 그리스의 가치이자 목적, 나아가 존재 그 자체다. 바다의, 바다를 위한, 바다에 의한 나라의 세계관을 가장 간단히 표현한 말이 바로 “살라타 살라타”라는 절규다.

지금은 중국이 전 세계 바다 쟁탈전 주도


▎트로이 전쟁은 이탈리아 건국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트로이 패전 후 비너스(그리스명 아프로디테스)의 피를 받은 아이네이아스 (Aeneas)가 이탈리아로 망명해 로마 건국 신화의 출발점으로 활용된다. 바다를 통한 영웅 창조가 로마 역사의 출발점이다. / 사진:유민호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기 무섭게 바다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주변이 뜨겁다. 주범은 중국이다. 갑자기 항공모함도 3척이나 건조하면서 남중국은 물론 동해와 태평양으로 중국 파워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공산 독재국이라는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신속하고도 일사불란하다. ‘바다의 실크로드’라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섬과 바다가 중국 영향권에 흡수되고 있다. 14억 인구가 밀어붙이면서 수백만 단위의 섬나라 자체가 아예 소멸 직전이다. 중국의 약진과 달리 서방측 대응은 느리고도 복잡하다. 말만 무성할 뿐 전 세계 국방 예산의 5할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조차도 ‘눈뜬장님’으로 못 따라가는 느낌이 든다. 과연 그럴까?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차원의 시각이 필요하다. 전투와 전쟁의 차이와 같은 논점이다. 2400여 년 전 숨넘어갈 듯 외쳤을 그리스 용병의 “살라타 살라타”는 전투와 전쟁, 나아가 바다를 대하는 중국과 미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바다에 관한 중국 유전자가 핵심이다. 중국에는 “살라타 살라타”라는 유전자가 없다. 그냥 없는 것도 아니고 제로라고 보면 된다. 땅이 아닌 바다에서 이뤄지는 중국의 생각이나 계획에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중국 관련 무협 소설에서 ‘천하=중원(中原)’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중원을 차지하려는 영웅들 무용담이 중국 무협지의 핵심 테마다. 중국에서 통하는 중원은 황허(黄河) 중류·하류 지역을 지칭한다. 허난(河南)성 대부분과 산둥(山東)성 서부, 허베이(河北)성과 산시(山西)성 남부 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바다에서 떨어진 내륙 지역이다. 중원 규모를 아무리 크게 잡는다고 해도 바다와 무관한 내륙이 중국식 천하의 출발점이다. 바다 항구나 섬을 통한 해양 진출은 중국인 유전자에 아예 없다.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세계 어디든 영국 식민지가 존재했다는 의미다. 땅이 아닌 바다를 포함한 5대양 6대주 지배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실체다. 중원은 어떨까?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할 때 해가 잠시 떠 있는 땅에 불과하다. 바다가 아닌 황허 강줄기 정도가 영국 5대양 6대주에 맞먹는 중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살라타 살라타” 세계관은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럽을 통해 진화한 뒤 21세기 현재 미국에 계승되고 있다. 영국 식민지 정책에 이어 미국이 벌이는 군사동맹과 군사기지가 21세기 “살라타 살라타” 유전자의 증거다. 중국은 그 같은 미국의 패권에 맞서 ‘바다의 실크로드’라는 해양 확장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라고나 할까?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바다의 실크로드라지만, 실상은 최신 전함과 19세기형 식민지 무대로 진화되고 있다. 2022년 5월 국가 부도를 선언한 인도양 섬나라 스리랑카가 최적의 본보기다. 원래부터 중국 차관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이다가 파국을 맞이했지만, 국가 부도 이후 중국의 자본잠식과 군사력 진출이 한층 더 격화되고 있다. 나라만 독립국일 뿐 사실상 중국 돈과 군사력에 좌우된 지 오래다. 중국에 있어 “살라타 살라타”는 상대를 점령·착취할 차원에서 연상하는 말에 불과하다. 바다를 통한 도전과 모험, 나아가 새로운 창조라는 개념과 무관하다. 원래 바다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기도 했지만, 있다고 해도 그리스나 서방 세계관과 전혀 다르다.

바다가 바로 떠올려지는 나폴리와 오디세이

12월 초부터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그렇듯 물가가 엄청 올랐다. 한국이 자장면이라면 이탈리아 물가 기준은 에스프레소 한 잔 값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90센트 수준이던 에스프레소 가격이 1.5유로까지 올랐다. 이탈리아 커피도 글로벌 경제 체제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글로벌 커피 체제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가 이탈리아다. 전 국토를 통틀어 스타벅스 점포가 18개에 불과하다. 한국은 1639개(2022년 상반기 기준)다. 스타벅스와 무관한 나라가 이탈리아지만, 사실 스타벅스 커피 출발점은 이탈리아다. 증기로 압축해 만드는 이탈리아식 커피를 미국은 물론 세계에 퍼뜨린 곳이 스타벅스다. 특히 스타벅스 문양이기도 한 머리를 길게 땋은 인어는 명실상부 ‘메이드 인 이탈리아’다. 세이렌(Seiren)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바다 요정으로, 글로벌 커피왕국 스타벅스의 상징이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을 유혹해 배를 좌초시키는 바다의 요정이다. 경찰이나 응급차의 경고음인 사이렌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된 요정이기도 하다.

나폴리는 세이렌의 고향이다. 나폴리 주변은 기원전 8세기 개척된 이탈리아반도 내 최초 그리스 식민지 땅이다. 당시 그리스인은 나폴리를 ‘파르테노프(Parthenope)’라고 불렀다. 세이렌 전신인 그리스 요정 이름이다. 스타벅스 문양처럼 상체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하체는 지느러미를 한 인어 요정이다. 아마도 당시 나폴리 앞바다에서 좌초하는 배가 많았을 것이다. 요정 덕분이겠지만, 나폴리인들은 지금도 자신을 ‘파르테노피안(Parthenopean)’이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파르테노피안은 스타벅스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나폴리에는 스타벅스 커피점이 단 한 곳도 없다. 세이렌이 놀았던 바다, 증기로 뽑는 커피, 세이렌의 전신인 파르테노프의 터전이지만 스타벅스에 무심하다.

바다에 대한 그리스 유전자를 확인할 최대의 자료로, 기원전 8세기 ‘오디세이(Odysseus)’만 한 것도 없다. 트로이 전쟁사를 기록한 일리아드(Iliad)와 더불어 호메로스(Homer)가 기록한 서구 최고(最古)의 대서사시가 ‘오디세이’다. 트로이전쟁에서 이긴 뒤 고향 이타카(Ithaca)로 귀환하던 중 닥친 10년간 바다 표류기가 중심 내용이다. 그리스 문학 특징이기도 하지만, 승전기로 100% 도배하지는 않는다. 한국 영웅은 100전 100승 기록만 갖고 있다. 그리스인이라면 이순신 장군이 적에 패한 뒤 낙담하고 괴로워하는 부분도 가감 없이 기록할 것이다. 앞서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에서 보듯 패잔병 탈출기가 그리스 문학이자 역사 금자탑으로 추앙될 정도다. 100% 완전 승리가 아닌 51% 영웅에 49% 패잔병 기록이 그리스 전쟁 관련 기록물의 대세다. ‘오디세이’도 마찬가지다. 오만과 편견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출발 10년 만에 부인 페네로프와 재회하게 된다.

대서사시 ‘오디세이’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로, 세이렌에 관한 얘기가 있다. ‘오디세이’는 요정 키르케(Circe)를 통해 세이렌 얘기를 미리 듣게 된다. 해협에서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경우 곧바로 암초를 만나 좌초된 뒤 모두 죽을 것이라는 경고다. 세이렌 해협은 오늘날 나폴리 앞바다에 해당된다. 출항 직전 오디세이는 키르케에게서 받은 꿀벌 밀랍을 부하에게 나눠준 뒤 귀를 막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 귀는 막지 않았다. 세이렌 노래가 어떤 것인지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다. 부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몸을 배 중심 기둥에 단단히 묶는다. 세이렌 해협을 통과하는 순간 오디세이는 몸부림을 친다. 세이렌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가자고 큰소리로 명령한다. 그러나 귀를 막은 부하는 세이렌 노래와 오디세이의 명령을 무시한 채 해협에서 무사히 빠져나간다.

세이렌 스토리는 모험심과 도전정신 일깨워


▎세이렌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의 샤메란(Sahmeran). 하반신은 뱀, 상반신은 여성의 몸을 한 괴물로, 알라신 등장 이전의 우상 숭배 대상이었다고 한다. 세이렌도 원형으로 가면 우상 숭배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사진:유민호
세이렌 스토리는 그리스인, 아니 이후 인류 모두에게 전해줄 메타포(Metaphor) 교훈담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에게 와닿은 얘기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오디세이의 탐구 정신이다. 밀랍으로 귀를 막지 않은 채 세이렌이 어떤 존재인지 ‘직접’ 파악한 인물이 오디세이다. ‘무섭다, 피하라’면서 공포를 조장하는 지도자가 아닌 ‘왜 무서운지, 왜 피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오디세이 본인이 제시한다. 진짜 지도자 모습이다. 오디세이는 세이렌의 유혹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자청해 부하에게 보여준다. 해협을 통과하기 직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말라는 명령도 부하에게 내린다. ‘지도자도 잘못할 수 있다’는 점을 부하들에게 일깨운 셈이다. 죽을 때까지 신처럼 군림하는 완전무결한 지도자는 없다. 오디세이는 그 같은 인간 한계를 부하들에게 분명히 보여준다.

세이렌 스토리에서의 둘째 교훈이지만, 그리스인 특유의 ‘모험심·도전정신’이야말로 대서사시 오디세이 전체에 통할 주제일 듯하다. 오디세이는 세이렌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대응했다. 배를 멀리 다른 길로 돌려 세이렌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아예 배를 버리고 땅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이는 세이렌 노래가 들리는 좁은 해협으로 정면 돌파를 선택한다. 묵으로 그린 한국 고전화(画)를 보면 바다 그림이 극히 드물다. 특히 바다 내부에서 바다의 파워를 절감할 그림은 전무하다. 네덜란드 유화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파도나 태풍에 부서지는 상선과 함포 사격에 불타는 전함 등의 그림은 전혀 없다. 신선놀음 기암절벽 아래 강 위에 실린 낚시용 작은 돛단배를 제외하면 배에 관한 그림 자체도 드물다. 유전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조선시대만 아니라 21세기 한국 현대화를 봐도 바다 그림이 극히 드물다. 있다고 해도 육지에서 바라본 바다의 일출이나 일몰이 전부다.

바다는 한국인 유전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만약 세이렌 해협이 한국 주변에 존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주변 수백㎞ 영역을 통행금지 구역으로 선포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모습이지만, 바다 주변을 얼씬거린다는 이유만으로 곤장형에 처해졌다. 왜적을 도와 조선을 침략할 스파이라는 것이 주된 죄명이었다. 김일성이 자신의 정적들을 CIA 스파이로 몰아세우기 전에는 왜적 협력 스파이가 천편일률 죄명이었다. 세이렌 해협 정도가 아니라 바다는 물론 해변 전체를 세이렌 무대로 여긴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그 같은 황당한 억지 발상이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천하 중원의 나라, 다시 말해 전 세계 중심이라는 ‘중국(中国)’이 원조다.

필자가 보는 중국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한족의 중국과 북방 기마민족의 중국이다. 한족 중국은 현재의 시진핑 중국과 주원장의 명(明) 그리고 기원전 3세기 삼국시대 당시 한나라로 좁혀볼 수 있다. 기마민족은 몽골의 원(元), 만주족의 청(清)이 대표적이다. 서기 7세기 당(唐)나라는 한족과 기마민족 공동 정권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은 한족이 지배한 명나라의 주자학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다. 한족의 세계관은 ‘천하=중원’에 그친다. 원이나 청은 바다를 통한 교섭과 이슬람권 이민족과의 협력을 통해 발전했다. 중원을 넘어 바다를 포함한 세계 전체를 천하로 해석했다. 바다와 무관한, 좁은 한족 세계관을 가장 충실히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조선인 셈이다. 그 결과가 바다 그림 하나 없는 조선화로 결론내릴 수 있다.

‘우리’ 정신으로 힘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가스텔 델 오보(Castel dell'Ovo)’는 나폴리에 가면 누구나 들르는 명소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으로, 멀리 화산으로 유명한 베수비오(Vesuvio)산이 보인다. ‘계란성(城)’이라는 의미로,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인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군사거점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육지에서 보면 작고 좁지만, 다리를 건너 성 안에 들어가면 의외로 넓고 깊다.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과 토산품시장으로 변해 있지만, 로마 이래 20세기 초까지 함포로 무장한 철옹성으로 활용한 곳이다. 그러나 가스텔델 오보 역사는 원래 군사적 목적이 아닌 세이렌, 즉 파르테노프 신화에서 출발됐다고 한다. 오디세이를 좌초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뒤 자책으로 자살한 곳이 가스텔 델 오보였다는 스토리다. 스타벅스 커피잔에 새겨진 세이렌의 최후가 자살이었다는 ‘섬뜩한’ 얘기다. 해석하기에 달렸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죽음도 불사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도 볼 수도 있다.

그리스인의 “살라타 살라타”를 떠올리면서 한국인 유전자를 한마디로 압축할 단어나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장 ‘우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국인 일상사에서 거의 매순간 접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보통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우리가 악용돼 나쁜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우리가 아닌 ‘우리끼리’라는 말이 그 경우다. 한 몸·한마음의 우리가 아닌 남을 배척하고 공격하기 위한 적대적 개념이 우리끼리다. 문재인 정권 때 본격화했지만, 우리가 아닌 우리끼리가 한국인 유전자의 대세가 된 것 같다. 4색·8색 당파 조선시대 재판으로 느껴질 판이다. 우리끼리가 곳곳에서 확장되면서 ‘내로남불’도 일상 풍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삶 공간을 좀 넓게 보자. 한반도 안에서 우리의 영역과 미국에서 접할 우리의 범주는 다를 것이다. 한반도 내에서 우리끼리를 연발할수록 한층 더 척박하고 살벌해질 뿐이다. 그리스인의 “살라타 살라타”는 바다를 향한 기상과 정열인 동시에 우리끼리로 대표되는 내부 편가르기를 뛰어넘을 대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넓다. 지구 수준이 아닌 우주 차원 개발에 나서는 민간 기업이 나타나는 판국이다. 한반도 내부에서 ‘우리끼리 세상’에 살기보다는 넓고 깊은 세계, 나아가 우주에 주목해보자. 우리끼리로 얽힌 좁은 세상 대신 우리 모두 참가할 ‘한국판오디세이’의 모험과 도전이 2023년 펼쳐지기를 기원해본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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