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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운용 한 달째, 제주한라병원 닥터헬기 출동 현장 

제주의 안전 지키는 ‘하늘 위의 응급실’ 

최영재 기자
1500만 관광객 찾는 제주도, 연간 350여 명 중증외상환자 발생
닥터헬기 도입 후 제주한라병원 중증외상센터 이송 시간 크게 단축


▎임무 시작 전 권오준 기장(왼쪽)과 전경석 기장이 수망리 계류장을 떠나 제주도에 환자 발생 시 헬기가 긴급 이·착륙이 가능한 인계점을 상공에서 확인하고 있다.
2022년 11월 2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계류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라산 중턱 해발 300m에 위치한 수망리 계류장은 산림청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제주한라병원 닥터헬기 임시 계류장으로 사용 중이다. 사방이 뻥 뚫려 시계(視界)는 좋지만, 비바람 막아주는 시설 없이 덩그러니 공터만 있는 이곳에서 조종사와 정비팀은 닥터헬기 기체가 비에 젖어 얼지 않도록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시범운용을 시작한 지 한 달 된 제주 닥터헬기는 아직 격납고를 마련하지 못했다. 수망리 계류장은 주변에 인가가 없고 넓은 평지라서 헬기 이착륙에 용이하지만, 변화무쌍한 날씨로 악명 높은 제주의 날씨 탓에 이륙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제주도청 황순실 방역총괄과장은 “추경을 편성해서 내년 연말까지 제주공항에 격납고를 완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한라병원 응급의학과 구홍두 부센터장과(왼쪽) 응급구조사, 간호사가 환자 이송훈련을 하고 있다
제주도는 상주인구 70만명에 연간 관광객이 1500만명이다.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인구 대비 중증 외상환자가 많은 편이다. 한 해 제주에서 발생하는 약 350명의 중증외상환자 중 20% 정도가 관광객이다. 제주도에 닥터헬기가 꼭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제주한라병원에서 운용하는 닥터헬기는 전국에서 8번째로 도입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에서 제작한 LCH(소형 민수 헬기, Light Civil Helicopter)를 기반으로 의료 장비가 설치돼 있다. 제주도 내에서 중증외상환자가 발생할 경우 닥터헬기는 수망리 계류장에서 이륙해 제주한라병원 옥상에서 응급의학과 의사와 응급 구조사, 간호사 등을 태우고 출동한다. 환자가 발생한 현장 부근 헬기 이착륙이 가능한 곳에서 구급대원으로부터 환자를 인계받은 뒤 헬기 안에서 응급치료하면서 병원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이송하는 게 주요 임무다.


▎열악한 환경인 수망리 계류장에서 조종사와 정비팀은 닥터헬기 기체가 비에 젖어 얼지 않도록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우도·마라도·가파도·비양도·차귀도 등 여러 부속 섬이 있는 제주도는 중증외상환자를 신속히 구조하기에 취약한 환경을 갖고 있다. 부속 섬뿐만 아니라 한라산으로 가로막힌 서귀포시에서 중증외상환자가 발생할 경우 권역중증외상센터가 있는 제주한라병원까지는 구급차로 40분이 걸렸다.


▎제주한라병원 조현민 권역외상센터장이 헬기를 통한 중증외상환자 병원 이송 절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0년 3월 제주한라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되며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을 20%에서 8%로 낮췄지만, 이송이 늦어져 사망하는 경우는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번 닥터헬기 도입으로 이 같은 의료사각 지역 문제가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닥터헬기 도입으로 15분 이내에 중증외상환자가 병원에 도착해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제주한라병원 조현민 권역외상센터장은 “심장과 폐 기능을 상실한 중증외상환자를 한 달까지도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이동식 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장비까지 탑재하게 되면 닥터헬기는 ‘날아다니는 응급실’을 넘어 ‘날아다니는 중환자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닥터헬기가 의료진과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제주한라병원 옥상 헬리 포트이다. 이날 닥터헬기가 상주해 있는 수망리 계류장에 바람이 세게 불어 이륙조차 할 수 없었다.



▎제주시 도남동 광장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 이송 훈련을 위해 헬기를 기다리고 있다.
제주한라병원에 도입된 닥터헬기는 글로리아 항공에서 위탁 운용한다. 조종사 훈련부터 제트기 정비까지 아우르는 항공 전문 회사인 글로리아 항공은 닥터헬기 운용을 위해 조종사와 운항 관리팀, 정비팀을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들로 구성했다. 권오준 기장과 전경석 기장은 공군 구조 전대 출신으로 악천후 속에서 익수자를 구조한 경험이 있다. 전경석 기장의 친형도 목포에서 닥터헬기를 조종하고 있다. 신대현 글로리아 항공 대표는 “LCH는 국내에서 만들어 모든 정비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게 장점”이라며 “소음도 65㏈로 외국 기종에 비해 적어 관련 민원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시작이지만, 제주한라병원 닥터헬기는 병원과 항공사, 도청의 노력이 합쳐져 생명의 불씨 하나도 꺼트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 사진·글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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