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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10)] 회귀 판타지, '재벌집 막내아들'이 주는 의미 

‘수저계급론’ 갇힌 젊은 세대와 격동의 시대 경험한 기성세대 다 홀렸다 

JTBC 드라마의 화려한 부활, 20% 시청률 넘기며 고공행진
87년부터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사고 현실감 있게 그려내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 그룹 비서로 일하던 윤현우(송중기)가 억울하게 살해당한 뒤 그 재벌가의 막냇손자로 깨어나 복수를 계획하는 판타지 회귀물이다. / 사진:JTBC
이 정도면 신드롬이다.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매회 시청률이 수직 상승하며 결국 20% 시청률을 훌쩍 넘겨버렸다. 젊은 세대부터 기성세대까지 빠져들게 한 [재벌집 막내아들]의 저력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주인공이 어떤 계기를 통해 과거로 회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최근 웹툰·웹소설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하나의 장르가 된 ‘회귀물’의 정의다. 물론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스토리는 ‘타임리프’(과거 또는 미래로의 시간 여행) 같은 장르를 통해 이미 등장했지만, ‘회귀물’의 특징은 자신이 살았던 삶을 ‘다시 산다’는 이른바 ‘인생 리셋’ 판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장의 사다리가 그나마 존재했고, 그래서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살던 기성세대에게 ‘태생적 환경’은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떤 수저를 갖고 태어났는가가 심지어 미래까지 결정하는 현실 앞에 놓인 현 세대들에게 태생적 한계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정서를 가진 이들은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처음으로 돌아가 삶을 다시 설계하고 살아보고픈 욕망을 갖게 된다. 이것이 ‘회귀물’이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이유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바로 이 회귀물의 저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인공 윤현우(송중기)는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장으로 사실상 오너가의 갖가지 리스크를 관리하고 해결해주는 머슴 같은 삶을 살아간다. 아버지는 아진자동차에서 일자리를 잃고 노조 투쟁을 벌였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 윤현우는 그런 아버지를 무능하게 생각하며 순양그룹에서 갖은 수모를 겪지만, 어떻게든 버텨낸다. 그러다 우연히 비자금이 해외로 반출된 정황을 알게 되고 그 돈을 되돌려놓으라는 진성준(김남희) 순양그룹 부회장의 명을 수행하다 괴한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한다. 보통 주인공의 죽음은 서사의 끝이지만, 회귀물에서는 서사의 시작이다. 죽은 줄 알았던 윤현우는 시간을 거슬러 1987년으로 회귀해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이성민)의 막냇손자 진도준(송중기)으로 깨어난다. 그는 다시 삶을 재설계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들을 찾아 복수하려 하고, 그러기 위해 막대한 부와 힘을 축적해나간다.

“내가 진도준의 몸으로 태어난 건 빙의도, 시간여행도, 환생도 아니다. 이번 생은 나에게 기회다.” 진도준의 이 말은 이 작품이 어떤 판타지를 건드리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예를 들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곧 터질 걸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얼 하겠는가. 달러를 더 많이 보유하려 애쓰지 않겠는가. 또 어느 지역이 재개발될 걸 알고 있다면? 나아가 어떤 영화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칠 줄 안다면? 재벌가 막냇손자로 다시 살게 된 진도준은 이미 한 번 살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들을 이용해 시선조차 주지 않던 진양철 회장의 눈에 들게 된다. 결국 대한항공 폭탄테러 사건으로 죽을 위기에 몰린 그를 구해내고, 그로부터 분당지구에 땅을 선물 받은 진도준은 대학생이 됐을 때 벌써 수백억대의 자산가가 된다. 이를 밑천으로 그는 오세현(박혁권)을 파트너로 세운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를 차리고 모든 투자에서 큰돈을 벌어들이면서 순양그룹을 위협한다. 그리고 드디어 진양철 회장 앞에 그 정체를 드러낸 후, “앞으로 자신이 순양그룹을 사겠다”고 선전포고를 날린다.

앞서도 언급했듯 보통 회귀물이라고 하면 주로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진원지는 웹툰·웹소설 같은 젊은 세대들이 주로 이용하는 콘텐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마회귀] 같은 웹툰은 무협과 결합한 회귀물이고, [상남자] 같은 웹툰은 오피스물과 결합한 회귀물이다. 또 죽을 위기에서 회귀해 다시 산다는 회귀물의 특성은 주인공을 그렇게 만든 누군가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과도 종종 결합한다.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던 웹소설 [어게인 마이 라이프]가 바로 그 사례다. [재벌집 막내아들] 역시 자신과 가족을 그렇게 만든 순양그룹 오너가에 복수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비슷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처절한 복수’ 서사 가미해 긴장감 높여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윤현우(송중기)는 재벌가 막냇손자로 다시 태어나기 전 그룹 오너가의 갖가지 리스크를 해결해주는 머슴 같은 삶을 살아간다. / 사진:JTBC
하지만 이 작품에는 독특한 지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실제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사고들이 밑그림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1987년 직선제로 치러진 대선, 그 해 있었던 대한항공 폭파사건, 분당 신도시 개발, IMF 금융위기, 911테러 등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대사가 회귀물을 만나자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시너지가 생겨난다. 그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실제 사건·사고들 위에 그려지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서사가 보다 현실감을 갖게 됐다.

이를 실제로 경험했던 기성세대에게 그 판타지가 주는 묘미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술자리 농담으로 올라오곤 하는 “그때 ○○을 했었더라면…” 같은 상상이 진도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구현되는 짜릿함이 그것이다. 일찍이 분당 땅을 사둬 막대한 차익을 번 진도준은 미국의 인터넷서점(아마도 아마존이 실제 모델인)에 투자해 무려 900%의 수익률을 낸다. 또 IMF 즈음해서는 미국 시장에 투자해 달러를 모으고, 911테러가 벌어지기 직전에 모든 투자를 다시 현금화한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면, 진도준이 하는 이러한 일련의 선택들은 예측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날 일들에 맞춰진 기회 요소다. 진도준에 몰입한 기성세대가 느끼는 감흥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불공정·부조리 깨고 싶은 욕망 투영돼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실제 재벌가 인물을 연상시키는 설정으로 현실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진:JTBC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기사나 소문으로 들었던 실제 재벌가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스토리의 현실감이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순양그룹이 삼성그룹을 모델로 했고, 드라마 속에 라이벌로 등장하는 자동차 회사 대영그룹이 현대그룹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극 중에 등장하는 뉴데이터테크놀로지의 주가조작 사태는 새롬기술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한다.

즉 이러한 현재의 경제 현실을 만든 사건·사고나, 재벌가의 실제 이야기 등은 기성세대가 이 작품을 두고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두런두런할 이야기를 만든다. 회귀물이지만 현대사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생겨난 새로운 풍경이다. 이로써 회귀물이 가진 ‘이생망’ 판타지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그 실재 인물·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스토리에 기성세대도 빠져들게 됨으로써 폭넓은 시청 세대를 확보하게 된다. 지상파에서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내기 어려운 현재, 이 드라마가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건 이렇듯 폭넓은 세대에게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서사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놨기 때문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면 회귀물에 담긴 과거와 현재의 대결 구도가 새롭게 보인다. 회귀물은 결국 ‘이생망’ 판타지가 만들어낸 장르이고, 따라서 현재의 누군가가 겪는 불공정·부조리한 현실을 과거로 되돌려 하나하나 재설계하려는 욕망이 투영된 장르일 수밖에 없다. 그 현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만든 건 다름 아닌 과거다. 과거에 엇나갔던 하나하나가 축적돼 현재를 만들었다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이른바 ‘수저계급론’이라는 비정한 현실 속에 갇혀 지내게 된 건 오로지 빠른 성장과 성공만을 향해 달려오며 승자독식 구조를 공고하게 해온 과거의 축적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를 사는 청춘은 자신의 노력으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진양철 VS 진도준, 과거와 현재의 대결 상징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동명의 인기 웹소설(오른쪽)을 원작으로 한다. / 사진: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동명의 인기 웹소설(오른쪽)을 원작으로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과 진도준의 대결 구도는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대결 같은 양상을 보인다. 과거를 대변하는 진양철 회장이 작은 정미소에서 시작해 ‘노력하고 도전하면 된다’를 실증적으로 보여줬다면, 현재를 대변하는 윤현우는 저들이 성공과 성장만을 향해 달려오면서 공고하게 한 현대판 계급구조 아래 머슴처럼 이용당하다 살해되는 ‘이생망’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윤현우는 진도준으로 다시 회귀해 그 과거를 바꿔보려 한다. 진양철 회장과 맞서고, 촛불처럼 가녀린 서민의 삶을 어떻게든 챙겨보려 한다. 뭐든 노력하면 할 수 있었던 세대와 그들 때문에 뭐하나 노력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세대의 대결. 결코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을 이제 젊은 세대는 판타지 속에서나마 들여다보며 그 결핍과 갈증을 채우는 중이다.

물론 태생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현실은 서민만이 아니라 순양그룹 오너가 같은 재벌가에도 비극을 만든다. 장자승계 원칙을 내세우는 진양철 회장 앞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자식들이 벌이는 치열한 후계전쟁 속에서, 심지어 존속 살인 사주 같은 범죄까지 등장한다. 즉 저들이 만든 현재가 재벌가라고 해서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태생이 아니라 실력으로, 부모 찬스가 아니라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현재는 어려운 일일까. 그걸 위해서는 승자독식과 생존경쟁 속에 던져진 엇나간 현재를 만든 과거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봐야 한다고 ‘회귀물’은 그 장르적 특성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때 그런 선택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현재를 설계해보고자 하는 욕망. 그래서 젊은 세대만이 아닌 중장년의 판타지도 건드리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현재 왜 회귀물이 이토록 젊은 세대에게 열광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됐는가를 기성세대에게도 공감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고,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런데도 과거와 현재의 대결 구도를 통해 과거의 어떤 선택이 현재를 만든다는 걸 관망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결국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고, 현재의 어떤 선택이 미래의 또 다른 현재를 만들 테니 말이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301호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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