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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25)] 아름다움은 바티칸 절대 권위의 원천…‘바티칸 뮤지엄편’ 下 

가톨릭만이 아닌 인류 문명·문화를 이해할 기본 교과서 

교황의 권위와 정통성 수호 수단만이 아닌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회와 인생의 길라잡이’
다른 종교와 조화는 ‘바티칸 뮤지엄2.0’ 핵심, 부처 일생 다룬 불교 조각은 ‘포용’ 의지 증거


▎남미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축구를 통한 포교 활동에 주목하는 인물이다. 펠레가 생전에 프란치스코에게 보내온 자신의 노란 유니폼과 축구공이 보인다. / 사진:유민호
'정의·지혜·용기·절제’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개인 차원의 덕(Virtue)을 구성하는 4요소다. 플라톤의 덕은 도덕적 차원보다 지식(Knowledge)에 주목한 개념이다. 평생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개인 실천 강령이라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플라톤은 ‘국가=정의의 실현 무대’로 해석했다. 정의·지혜·용기·절제로 이뤄진 개인의 덕이 국가 정의를 지탱하는 기반이라 말한다. 국가 정의가 올바르게 실천·실현되려면 개인 차원의 덕이 필수적이다. 개인 차원의 덕이 엉망이라면 국가 정의도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플라톤은 ‘철인 정치가=이상적 국가 지도자’로 정의했다. 그러나 덕의 4개 요소와 무관한 개인이 넘치는 한, 철인 정치 탄생 자체가 어렵다. 설령 철인 정치가가 기적적으로 등장한다고 해도 오래 못 간다. 당연한 진리지만, 정치가는 그 나라 국민의 거울에 해당된다. 1930년대 등장한 독일 나치는 연설에 탁월한 히틀러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 당시 독일 인구 6600만 명의 거울이 바로 독재자 히틀러다.

플라톤의 정의·지혜·용기·절제는 동양 유학에서 말하는 5가지 인간의 도리,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비견될 수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리저리 결론으로 가면 결국 ‘개인 덕’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인의예지신에 기초한 공동체가 유교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결론은 같더라도 개인 덕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동과 서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미의식(美意識)’이 가장 큰 차이로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형이상학이 아닌 형이하학으로서 미의식이다. 눈·코·손으로 표현될 오감 대상으로서의 미의식이다.

플라톤의 서양과 유교의 동양을 가르는 구체적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미의식 여부에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미의식이다. 꽃을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동양에도 미의식은 있다. 그러나 핵심은 마음 속 미의식이 아닌 눈에 나타나는 직접적이고도 현실적 미의식이다. 그리스·로마 당시 등장한 조각과 건축 같은 것이 좋은 본보기다. 동양에도 조각과 건축이 있다. 그러나 지배층에 국한된, 일반인과 무관한 ‘당신들의 세계’일 뿐이다. 서양 미의식도 지배층을 위한 도구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당시 상황에서 보듯 미의식에 관한 영역과 공감대가 동양에 비해 광범위하다.

올해 초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들른 적이 있다. 17세기 스페인 치하 팔레르모는 돈과 정보의 집산지였다. 신대륙 발견에 따른 돈의 파워가 스페인만이 아닌 시칠리아와 나폴리로 밀려들었다. 교회와 사교 클럽은 당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화려하고도 큰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다. 저세상에서의 보험으로서 교회 건축, 현세의 부를 위한 사교 클럽인 셈이다. 현재 팔레르모에는 당대 사교 클럽 10여 개가 남아있다. 관광 명소로 떠오른 것은 물론이다. 17세기 당시 파티·음악·무도·식사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클럽 멤버로 등록하려는 사람이 넘쳤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클럽 건물 전체가 호화찬란하게 꾸며졌다. 무지갯빛 대리석은 기본이고 보석·벽화·유화가 건물 전체에 장식됐다. 플라톤의 덕목 4요소는 건물 장식의 공통분모 중 하나다. 보통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건물 천장이나 벽에 장식돼 있다. 흥미롭게 주목한 부분은 정의·지혜·용기·절제를 표현하는 기법이다. 팔레르모만 아니라 유럽 어디에 가도 비슷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내세우면서 그 아래에 정의·지혜·용기·절제라는 단어를 새겨 표현한다. 그리스풍 옷을 입은 여성에다 날개를 단 큐피드도 등장한다. 덕의 4요소를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본다면 ‘정의·지혜·용기·절제=미’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 장식들이다. 여성들의 표정이나 자세, 나아가 분위기 전체가 너무도 이상적이다. 도덕·윤리·정의와 같은 거창한 생각에 앞서 품격을 갖춘 아름다운 세계로서 덕의 4요소다.

당시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동양 인의예지신에 관한 부분이다. 폭포와 깊은 산으로 표현된 무릉도원 선비 모습부터 떠올랐다. 그러나 형이하학으로서 품격이나 미와는 무관하다. 내면의 미를 강조하는 것이 동양 가치관이라 말할 듯 하다. 그러나 내면만 강조하면서 외면을 무시해온 것이 기존 동양의 가치이기도 하다. 심하게 말하자면 내면과 외면을 적대 개념으로 대하는 것이 동양적 가치 기준일지 모르겠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이 없다’는 말은 어릴 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얘기다. 일본 음식을 얘기할 때면 반드시 등장하는 ‘빛깔만 좋지 맛도 없고 양도 적다’는 말도 기억난다. ‘겉이 번지르르하고 속도 차 있다, 빛깔이 좋으면 맛도 좋다’는 생각은 동양, 특히 한국 역사에서는 ‘이단(異端)’으로 통해왔다. 겉이 번지르르하지 못한 양반, 빛깔이 엉망인 사대부의 체통을 세우지 못할 ‘건방진 생각’이기 때문이다.

동과 서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미의식’

지난해 8월 31일,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에서 ‘비타에 정상회담(Vitae Summit)’이 열렸다. 민간 단체 바티칸과 공동 주최한 행사로, 교황 프란치스코가 개막식에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타에’는 라틴어로 ‘현세에 투영된, 당대의 존재하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행사 참가자는 배우 덴젤 워싱턴,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인사다. 인간 감성을 통해 세계 평화를 구축해가자는 것이 비타에 정상회담의 주된 취지다. 프란치스코는 9월 1일 대회장에 나타나 참가자들과 대화했다. 교황이 던진 ‘예술론’ 메시지는 주목할 부분이다. “예술은 사람들 서로를 존중하도록 도와주는 자극제가 돼야 한다. 더불어 예술은 (사람들의 생각을) 집중시키도록 도와주는 가슴 속의 가시(thorn)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 같은 집중을 통해 사람들은 올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교황의 예술론을 접하면서 필자는 ‘21세기’ 바티칸 뮤지엄의 의미와 가치를 절감할 수 있었다. 7만여 개 뮤지엄 전시물의 최종 목적이 교황의 발언 속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전 볼 수 있던 교황의 권위와 가톨릭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만이 아닌, 사람들을 연결하고 개인의 자아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사회와 인생의 길라잡이’로서의 바티칸 뮤지엄이다. 16세기 개장 이래 20세기까지 이어진 교황·카톨릭 중심 바티칸 뮤지엄1.0 역사에서 사회와 개인에 방점을 찍는 21세기 바티칸 뮤지엄2.0으로의 진화라고나 할까. 교황 메시지를 통해 세계 최고(最古) 법통의 뮤지엄이 종교를 넘어선 인류 전체를 위한 문명·문화의 보편적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교황이 던진 ‘예술론’, 바티칸 뮤지엄의 새 의미


▎헤라클레스에서 시작되는 그리스 로마 유물 전시관. 우상 숭배는 가톨릭 율법의 제1 금지 사항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본다면 바티칸 뮤지엄은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단으로 비쳐질 것이다. / 사진:유민호
바티칸, 나아가 서양 문명·문화에 흐르는 기본 바탕이지만, ‘아름다움은 진리의 반영물’이란 생각이 지배한다. 간단히 말해 아름다울수록 진리·진실에 가깝다는 의미다. 앞서 말한 미의식의 연장선이지만, ‘미=진리’라는 생각이다. 바꿔 말해 ‘진리=미’이기도 하다. 덕의 4요소인 ‘정의·지혜·용기·절제=미’인 동시에 ‘미=진리’라는 의미다. 따라서 ‘정의·지혜·용기·절제=미=진리’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 바티칸 뮤지엄은 ‘미=진리, 진리=미’라는 생각의 실천 공간이다. 아름다움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의 뜻이기도 하다. 신의 천지 창조 기록인 창세기 1장 3절을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신은 천지 창조 첫날 빛과 어둠을 나눈다. 그러나 신이 “좋았더라”고 말한 것은 어둠이 아닌 빛에 그친다. 눈으로 본 뒤 내려진 결론이다. 좋았더라는 말은 아름답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주관적 개념의 미의식이기는 하지만,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불경스런 생각이지만, 신이야말로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최고 심사위원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빛을 대하듯 진·선·미 우승자를 단번에 가려낼 수 있다. 빛은 모든 것을 밝히고 드러내는 형이하학의 기반이라 볼 수 있다. 빛이 없다면 미도 느낄 수 없다.

바티칸 뮤지엄은 빛을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한 신의 생각을 구현하는 공간이다. 당연하지만, ‘신=진리’다. 바티칸 뮤지엄은 빛을 대하는 신의 생각에 기초한 땅이다. 흔히들 뮤지엄을 즐기는(muse) 공간이라고 말한다. 즐긴다는 의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뮤지엄의 원래 어원은 그리스어 ‘모우세이온(Mouseion)’이다. ‘뮤제(Muse)’는 태양의 신 아폴로를 지지하는 9명의 아름다운 요정을 의미한다. 모우세이온은 9명 뮤제를 모신 신전이다. 세속적 의미의 즐기는 공간과 무관한 신과 철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신성한 곳으로 풀이된다. 앞서 프란치스코가 말한 집중하면서 개인의 자아를 발견할 ‘진리의 보고(宝庫)’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많이 보고 경험하며 실천할수록 진리의 세계, 즉 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음악·그림·영화·책·무용에 이르는 모든 예술과 문화가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서방 뮤지엄 어디에 가도 초등학교 학생의 집단 참관을 볼 수 있다. 보통 그림이나 조각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선생님은 열심히 작품 설명에 들어간다. 어른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미술사나 미에 관한 지식이다. 초등학생이 알아들을지 의문이지만, 사실 집단 참관의 주된 목적은 작품 설명 그 자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뮤지엄에 자주 갈수록, 미와 자주 접할수록 진리를 이해하고 신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어린이 집단 참관의 진짜 목적이다. 유년기부터 시작되는 미의식 함양 훈련인 셈이다. 한국에서 통하는 교양, 나아가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한 예술이 아니다. 미를 생활화할수록 진리와 신의 세계도 이해하기 쉬워진다. 미를 모르는 사람은 진리도 신도 무시하기 십상이다. 최고급 명품이나 완벽한 성형으로 무장한다 해도 미의식이 겸비되지 않을 경우 ‘돼지 목에 진주’에 불과하다.

하루 8시간, 이틀간 바티칸 방문을 통해 특히 두 가지 전시물에 주목했다. 기독교 상징인 십자가 역사와 요한 바오로 2세부터 시작된 바티칸 21세기 포교 방안에 관련된 전시물이다. 전자는 바티칸 뮤지엄1.0, 후자는 바티칸 뮤지엄2.0에 해당될 듯 하다. 먼저 십자가 역사다. 십자가는 예수가 처형된 모순과 희생 그리고 부활의 아이콘이다. 21세기 최고 인기 아이콘을 들자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주름잡는 ‘좋아요’의 엄지부터 떠오른다. 둥글게 웃는 얼굴이나 박수치는 모습의 아이콘도 있다. 십자가는 이들 디지털 문양이 탄생하기 2000여 년 전 등장한 인류 최고(最古) 인기 아이콘이다.

십자가는 교회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비슷하게 보일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백인백색 전부 다르다. 예수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모습도 있지만, 개신교에서 보듯 아예 아무 것도 없이 십자가 문양만으로 처리된 아이콘도 있다. 예수가 없는 십자가라도 구체적으로 보면 전부 다르다. 십자가 길이·넓이·비율이 전부 다르고, 십자가 바깥 처리도 수직이나 원형으로 차이가 있다. 초기 교회에서는 어떤 문양의 십자가를 사용했는지, 교회가 커지고 가톨릭·동방정교·개신교로 이어진 기독교 종파 분할과 더불어 어떤 식의 아이콘이 등장했는지 관찰했다.

바티칸 21세기 포교 방안 관련 전시물 ‘눈길’


▎부처의 삶을 기록한 조각. 10여 점의 불교 조각이 바티칸 뮤지엄 출구 주변에 전시돼 있다. / 사진:유민호
십자가라고 하면 한자의 열십(十)자 문양부터 떠올릴 듯 하다. 그러나 열십자 문양이 기독교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은 4세기 이후부터다. 이전까지만 해도 십자가는 일자(ㅣ) 또는 십자가 위가 짧거나 아예 없는 T자형으로 인식됐다. 놀랍게도 영어로 십자가(Cross)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1세기 이후다. 11세기부터 본격화한 유럽 가톨릭의 이슬람 공격도 당대에는 ‘십자군 전쟁(The Crusaders)’이라 불리지 않았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공격이란 의미의 ‘프랑크(Franks)’란 용어만 있었을 뿐이다. 십자군 전쟁이란 단어는 이후 600여년이 지난 17세기에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초기 기독교도는 십자가를 멀리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예수가 처형된 도구를 가까이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성경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오전 9시 십자가에 매달리고 오후 3시 숨을 거둔다. 무려 6시간 십자가에서의 고통 끝에 세상을 뜬다. 정상인이라면 십자가를 대하는 순간 비명을 지를 듯 하다. 십자가가 기독교 신자 사이에 퍼져나간 것은 2세기부터다. 고통, 고난과 더불어 부활의 아이콘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십자가는 오늘날의 열십자 문양과 달랐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모습도 없는 단순한 문양이었다. 예수 십자가는 6세기 들어 나타난다.

‘비종교 활동 강화와 포용’ 나선 가톨릭


▎빈센트 반 고호의 피에타. 바티칸 뮤지엄은 현대 미술을 통한 미의식의 확산에도 주목한다. 과거만이 아닌 오늘과 내일을 준비하는 인류 최고의 법통이 바티칸이다. / 사진:유민호
바티칸에는 십자가만 따로 모아놓은 전시관이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발굴·발견된 오래된 십자가 수 백여 개가 걸려있다. 재료를 보면 종이·돌·목재·철·청동·금 등 다양하다. 그러나 크게 보면 예수 처형 모습이 나타나 있는지 여부로 대별할 수 있다. ‘루카 십자가(The Holy Face of Lucca)’는 가톨릭이 특히 중시 여기는 아이콘이다. 예수 모습이 담겨있다. 8세기 탄생한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예수 시신을 묻은 ‘니고데모(Nicodemus)’가 직접 만든 십자가라고 한다. 왕관을 쓴 예수가 눈을 뜬 채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의 조각이 십자가 위에 드리워져 있다. 몸은 아래로 처지지 않고, 공중에 뜬 듯한 편안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죽음과 불의를 이겨낸 부활의 상징으로서 예수 십자가다. 십자가를 볼수록 죽음을 이겨낸 예수의 파워를 느낄 수 있다. 예수의 부릅뜬 두 눈을 통해 악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대략 15세기까지의 십자가는 슬픔의 십자가와 무관하다. 피를 최소한 줄이고 예수의 고통도 생략된 십자가다. 극적인 변화는 16세기다. 다리가 꼬인 채 오른발이 왼발 위에 포개져 있고, 예수의 목이 오른쪽으로 쳐진 처참한 모습의 십자가가 16세기부터 등장한다. 표현 방식도 초대형으로 바뀐다. 유럽 곳곳에서 종교 개혁 바람이 불면서 의도적으로 예수의 피와 고통을 강조하는 식으로 나아간 것이다. 예수의 고통을 대하면서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고문·창·가시면류관을 통해 예수 십자가를 피로 물들인다. 당시 부패한 가톨릭에 대한 반발의 결과겠지만, 개신교는 피는 물론 예수 모습도 생략한 ‘간단 십자가’로 나아간다.

바티칸 십자가 전시관은 십자가 역사인 동시에 가톨릭과 동방 정교, 나아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불화를 읽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대와 상황만 아니라 다른 종파와 이교도와의 싸움을 통해 십자가 자체가 변해가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변화는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환하게 웃는 흑인 예수를 내세운 십자가, 아예 십자가에서 벗어나 공중에서 양손을 승리의 브이(V)자로 표현한 십자가도 있다. 바티칸은 가톨릭 공식 십자가를 지정한 적이 없다. 기독교 신자들의 생각과 시대 흐름에 맞춰진 것이라면 전부 좋다고 해석한다. 율법과 교리에 매달리는 이슬람이나 유대교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바티칸 뮤지엄2.0, 즉 21세기 가톨릭 포교 방안에 관련된 전시물은 필자가 주목한 또 다른 관심사다. 정치는 인간만사 전부 통하는 ‘약방의 감초’다. ‘뮤지엄=미=신=진리’인 동시에 ‘뮤지엄=정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신=진리=정치’라는 관점에서 분석할 수도 있다. 반대할 사람도 많을 듯 하지만, 세상에 정치에서 자유로운 영역은 없다.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종교 신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 아예 무신론자도 많고, 신은 믿지만 종교와 무관한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신을 찾는 목소리도 작았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신의 저주’로 보지 않은 역사가 상식화했다고나 할까? 가톨릭은 이 같은 위기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비종교 활동 강화와 포용’이 키워드다. 비종교 활동의 본보기를 뮤지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축구다. 축구를 가톨릭 포교 영역에 넣으면서 교세를 확장하는 식이다. 교황이 직접 나서 유명 축구 선수와 만나고, 축구 선수들의 옷과 공이 바티칸 전시대의 중요 물품으로 장식돼 있다. 스포츠를 가톨릭 확장의 수단, 아니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대해 부정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역사를 보면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그러했듯이 기독교 포교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시작됐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은 물론 우상으로 가득찬 그리스·로마 신전 주변은 초기 기독교 포교의 핵심 터전이었다.

축구를 포교 영역에 넣으면서 교세 확장하기도

보는 각도에 따라 축구를 21세기 신앙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축구팬들의 광적인 응원에 따른 집단 패싸움도 벌어지는 판이다. 바티칸은 사람들의 뜨거운 에너지를 종교적 열정으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축구 선수들을 바티칸에 초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가톨릭 신자로 끌어들이는 식이다. 축구황제 펠레와 마라도나는 물론 21세기 축구 스타 상당수가 바티칸에 들러 세례나 축복 기도를 받았다. 축구에 가장 열광하는 남미는 축구 선수의 동정이 대통령 이상 뉴스로 취급된다. 축구 선수의 바티칸 방문이 1면 헤드라인에 오른다. 축구가 인류 최고 인기 스포츠로 존재하는 한 바티칸의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로마 당시 유물보다 펠레 사인이 새겨진 축구공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대다.

다른 종교와 조화는 포용으로서 바티칸 뮤지엄 2.0의 핵심이다. 개신교에서부터 동방 정교는 물론 이슬람과 불교와의 관계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가톨릭이 정통이고 나머지는 전부 이단이란 식의 종교관은 21세기 들어 완전히 사라졌다. 이겨야만 하는 것이 아닌, 서로 경쟁하며 지지 않는 종교로 나아가자는 것이 바티칸의 생각이다. 뮤지엄 출구에 들어선 부처의 일생을 다룬 불교 조각은 바티칸 ‘포용’ 의지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증거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가톨릭의 전향적 자세도 포용의 본보기 중 하나다.

바티칸 뮤지엄은 가톨릭만이 아닌 인류 문명·문화를 이해할 기본 교과서다. 화석화하고 있는 다른 뮤지엄과 달리 변화하면서 진화해나가는 현재진행형으로서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만이 아닌, 인류 가슴 속에 숨겨진 미·신·진리를 일깨워 줄 뮤지엄이 될 수 있다. 중국인들의 해외 여행이 본격화하면서 바티칸 뮤지엄도 동대문 시장으로 변해갈 듯 하다. 로마로 간다면 적어도 출발 반년 전 바티칸 뮤지엄 예약에 나서길 권한다. 개장 시간인 아침 9시부터 폐장하는 오후 6시까지 인류의 어제·오늘·내일을 하루 종일 음미하길 바란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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