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오컬트 더한 독특한 장르에 청춘물 아이콘이 주연 맡아 화제고시원 연쇄 자살사건 등 부조리한 사회 조명하는 날선 시선은 여전
▎김은희 작가의 SBS 금토 드라마 [악귀]는 범죄 스릴러에 오컬트 장르를 더한 작품으로 방영과 동시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 사진:SBSN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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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작가가 새 드라마 [악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오컬트 장르로, 대중의 반응이 뜨겁다. 범죄 스릴러의 대가로 매번 새로운 영역을 열어온 김은희 작가는 어떤 진화 과정을 겪었고, 그의 세계가 가진 무엇이 대중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SBS 금토 드라마 [악귀]는 시작 전부터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쓰고 김태리, 오정세가 캐스팅됐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정림 감독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김은희와 김태리의 만남”을 꼽았다. 범죄 스릴러의 대가인 김은희가 쓰고 청춘물의 아이콘인 김태리가 연기를 하는 작품이 어떤 색깔을 낼 것일지 시청자들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범죄와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이 두 조합이 장르로 가져온 것이 ‘오컬트’다. 제목에 담겨 있듯이 이 작품은 ‘악귀’가 씐 산영(김태리)과 귀신 보는 해상(오정세)이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다.어찌 보면 접점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살인사건 같은 범죄와 귀신의 접점은 우리네 ‘아랑 전설’ 같은 이른바 ‘원혼 서사’에서 자주 등장했다. [전설의 고향]에서 ‘나비의 한’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이 밀양 아랑 전설은,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또의 딸 아랑에 얽힌 이야기다. 결국 귀신이 돼 나타난 아랑 때문에 새로 부임해 오는 사또들이 줄초상을 치르는데, 새로 온 사또 이상사가 원귀 아랑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범을 잡아 그 원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다. 이처럼 원혼 서사에는 ‘살인’ 같은 범죄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등장한다. 또 그 진실을 풀어주는 이상사 같은 인물도 나온다.[악귀]가 가진 범죄 스릴러와 오컬트의 접점도 마찬가지다. 산영과 해상은 어쩌다 갖게 된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의문의 죽임을 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상사 같은 인물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했던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은 한 학생의 원혼 이야기는 바로 이 ‘아랑 사또’의 서사와 유사하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나타난 원혼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어린 동생이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해온 걸 참지 못한 오빠가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원혼이었다. 즉 김은희 작가는 아랑 전설 같은 전통적 설화가 가진 범죄와 원혼의 서사구조를 가져와 현대적인 재해석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랑 전설 등 ‘원혼 서사’ 뼈대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을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 사진: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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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흥미로운 건 산영이라는 청춘 캐릭터다. 산영은 악귀가 씐 인물로 원혼들을 보거나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이상사 같은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점점 커지는 악귀에 의해 잠식당할 수 있는 아랑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즉 외부인을 구원해주는 존재이면서 자신 또한 구원해야 하는 인물이라는 것. 산영에게 빙의된 악귀는 깃든 자의 욕망을 들어주면서 점점 커지는데, 그 욕망은 때론 분노와 저주로 표출되기도 한다. 산영의 어머니에게 보이스피싱을 한 범죄자는 그래서 산영의 저주를 들어준 악귀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분노는 그 욕망을 들어주는 악귀에 의해 세상의 악을 처단하는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산영의 안에 깃든 악귀는 점점 커진다.세상의 악과 싸우면서 내 안의 악귀를 억눌러야 하는 산영의 처지는 이 범죄 스릴러에 오컬트를 더한 작품이 현재의 ‘청춘들’과 만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는 가득하고, 그래서 당장 저들을 처단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만 그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어쩌면 자신마저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악귀]의 산영이라는 청춘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은희 작가가 범죄 스릴러에서 시작해 오컬트 장르로까지 확장해온 이 선택들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실 김은희 작가의 초창기 범죄 스릴러인 [싸인], [유령] 같은 작품들은 리얼한 범죄의 세계를 담아내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지만, 전반적으로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범죄 현장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공포에 가까운 자극들이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세계에 인간적인 온기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악귀]를 보면 김은 희 작가가 그간 어떤 변화와 진화를 겪었는지 느껴진다. 귀신과 범죄가 더해진 이 작품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온기, 그리고 통찰이 느껴지니 말이다.예를 들어 [악귀]에서 고시원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나 청년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어르신들만 있는 백차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객귀’ 에피소드를 잘 들여다보면, 거기서 ‘청년들’이 맞닥뜨린 막막한 현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하고도 날선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값비싼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 사채업자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되지 않아 빚쟁이로 내몰리는 현실이 ‘고시원 연쇄 자살사건’의 이면에 담긴 이야기이고, 도시로 가야 살 수 있어 고향을 떠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객귀(길에서 죽은 귀신)’의 처지가 돼 고향으로 돌아오는 현실이 ‘백차골 사건’이 꼬집는 이야기다. [악귀]는 이처럼 자극적인 소재의 차원을 넘어 세상에 대한 통찰이 그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옛 문서 찾아보며 작품 연구해
▎김은희 작자는 앞서 [킹덤](왼쪽)에서 오컬트적 요소를 선보였으며, 이후 [지리산](오른쪽)을 통해 이러한 요소를 더욱 발전시켰다. / 사진:넷플릭스, 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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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다소 차갑게 느껴졌던 김은희 작가의 세계가 본격적인 변화를 시작한 건 [시그널]부터였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라는 판타지가 더해진 이 작품이 그리려 한 세계는 미제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풀어보려는 강렬한 열망이 판타지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작중 인물들이 가진 피해자들에 대한 절절한 공감과 인간애 같은 따뜻한 감정이 특히 중요했다. [시그널]에 등장하는 박해영(이제훈), 차수현(김혜수), 그리고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들이 더할 나위 없이 인간미를 가진 형사들로 그려진 건 그런 이유에서다.[시그널]은 또한 김은희 작가가 그려온 범죄 스릴러의 세계가 판타지로 확장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물론 훨씬 이전에 만화 원작으로 썼던 작품이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훨씬 더 확장되고 성장한 김은희 작가의 공력이 더해져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작품이 됐다. 특이하게도 두 부류의 좀비군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가난해 어쩔 수 없이 좀비가 된 서민 좀비군과, 부유하지만 여전히 권력과 혈통에 굶주린 권력자 좀비군을 통해 양극화된 세계를 정치적으로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공포에 가까운 살벌한 스릴러를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색다른 느낌의 좀비들을 탄생시켰다.[시그널]이 시도한 판타지가 [킹덤]이라는 보다 확장된 세계로 그 상상력을 연결한 것처럼, [킹덤]이 갖는 오컬트적 요소는 그 후 [지리산]을 거쳐 [악귀]로도 이어진다. 김은희 작가는 [킹덤]을 쓰면서 옛 문서들을 찾아 당대의 지리와 지방의 특징,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진 자잘한 사건들을 들여다봤다고 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한국의 설화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리산]이 다룬 역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졌던 사건·사고들도 그렇지만, [악귀]가 그리고 있는 ‘태자귀’ 서사나 객귀를 몰아내기 위해 하는 ‘허제비 놀이’ 같은 이야기도 김은희 작가가 가진 우리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킹덤', '시그널' 등 장르 넘나들어
▎김은희 작가의 tvN 드라마 [시그널]은 미제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풀어보려는 강렬한 열망이 판타지로 발현된 작품이다. / 사진: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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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르를 깊게 파다 보면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김은희 작가는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시종일관 추구해왔다.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반 농담으로 사랑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사람이 죽을 수 있는가를 계속 찾아내고 들여다보는 일을 주로 해왔다고 했지만, 그 ‘죽이는 이야기’가 지향해온 건 결국 ‘삶의 이야기’였다. 피해자나 남은 가족들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들여다보며 현실의 부조리를 찾아냈고, 거기 담긴 대중의 정서들을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억울함이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든 끌어안으려는 열망은 판타지로 확장되며 [시그널]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 같은 장치를 만들었고, 이른바 ‘헬조선’으로 불리는 양극화된 현실의 문제들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비물로 그려졌다.또한 [킹덤] 같은 한국의 로컬 문화를 장르물과 결합해 글로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경험은, 이제 김은희 작가가 [악귀] 같은 ‘한국적인 소재나 서사’에 더더욱 관심을 갖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특히 장르의 결합에도 더욱 능숙해진 필력은 [악귀] 같은 작품에서 범죄와 오컬트를 넘나들며 시청자들의 예상을 깨는 전개를 가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악귀의 짓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악귀보다 더 악독한 인간의 짓이라는 걸 밝히기도 하고, 정반대로 사람이 벌인 짓인 줄 알았더니 악귀가 한 짓이라는 식으로 반전을 만든다. 이러한 반전은 자연스럽게 악귀와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을 같은 위치로 세워 놓음으로써 그런 범죄자들을 비판하고, 나아가 악귀가 저지를 법한 강력 범죄가 탄생하게 되는 현실의 시스템을 들여다보게 해준다.물론 [지리산]은 사건을 사고로 위장하는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갖가지 이야기를 품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풀어낸다는 괜찮은 기획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성취를 이뤄내지 못했다. 하지만 [악귀]를 보면 [지리산]의 이런 아쉬움은 오히려 자양분이 돼 보다 원숙해진 서사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범죄 스릴러로 시작해 판타지를 더하고 사극과 좀비물을 더한 퓨전을 실험하더니 이제 오컬트 장르까지 확장해온 김은희 작가의 세계. 대중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 끊임없는 도전 때문이 아닐까. 그로 인해 우리는 매번 신박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상 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