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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뛴다] 창업이 바뀐다… 무인점포 전성시대 

“가성비 굿, 직원 눈치 안 봐서 좋다”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코로나에 임금 인상 겹치자 너도나도 무인점포 창업 도전
“가게 열어 놓고 여행도”… 진상 고객·절도 등 고충은 여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비대면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무인점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무인 편의점에서 시민이 셀프 계산대에서 결제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1일 낮 12시 서울 마포구의 한 동네. 무인으로 운영되는 라면 가게가 길을 걷던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직장인으로 보이는 8명의 사람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기자도 라면에 물을 붓고 직장인 김모씨 옆에 앉았다. 그가 일반 식당이 아닌 무인 라면 가게를 찾는 이유는 한마디로 ‘가성비’ 때문이었다. 라면 가격이 3500원인 것은 분식집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떡·콩나물·햄·야채 등의 토핑이 무료로 제공된다. 김씨는 “요즘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 먹으려면 기본이 4000원이지 않나. 또 일반 식당에 가면 최소 8000원은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무료 토핑도 있고 저렴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서울 외식 8개 메뉴(김밥·칼국수·자장면·삼계탕·삼겹살·김치찌개 백반·비빔밥·냉면)의 평균 가격은 약 1만538원이었다. 외식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저렴한 무인점포로 향하는 것이다.

코로나에 최저임금 오르자 급증


▎무인 라면 가게에서는 3500원의 라면에 떡·콩나물·햄·야채 등의 토핑을 무료로 넣을 수 있다. / 사진:권혁중 인턴기자
라면 가게뿐만 아니다. 무인 카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한 무인 카페. 12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물건을 포장하는 사람도 있고, 노트북을 켜놓고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대학생도 있었다. 대학생 최모(23)씨는 주로 과제를 하거나 시험 공부를 할 때 무인 카페를 이용한다고 했다. 평균 5000원인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해 저렴한 가격 역시 그가 방문하는 이유다. 실제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2100원이었고, 제일 비싼 음료인 복숭아·자몽·청포도 등의 에이드도 2800원이었다.

무인점포는 또한 비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요즘 세태에 제격이다. 좁디좁은 공간에 많은 물건이 비치된 무인 문구점과 편의점에서 금세 알 수 있었다. 직원이 상주하는 편의점이나 문구점을 방문할 때 오랜 시간 구경하거나, 물건을 사지 않고 나오면 눈치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무인 가게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한 무인 문구점에서 만난 대학생 강모(23)씨는 “오랜 시간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그냥 나가면 나를 바라보는 직원의 눈빛이 따가웠던 적이 있었다”며 “무인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6년째 자취 중인 정모(25)씨는 “밥 먹기, 장보기도 무인 가게에서 할 수 있어서 편하다”며 “집에 건조기가 없는데 무인 빨래방에서 건조까지 할 수 있어서 습한 여름철에 특히 애용한다”고 말했다.

무인점포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아이스크림 상점에서부터 라면·카페·독서실·편의점·문구점·빨래방·사진관·밀키트 가게 등이 많다. 애완용품점과 정육점도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 대부분 24시간 운영된다. 때문에 무인점포만으로도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할 정도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3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인점포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1.9%가 이용 경험이 있다고 했고, 73.9%가 이용이 편리하다고 답했다.

무인점포는 대면 접촉이 줄어들고 비대면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방청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실시한 ‘무인점포에 대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총 6323개의 무인점포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면 접촉이 제한되면서 많은 상권이 무너진 상황에 무인점포는 자영업자의 탈출구였던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무인점포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2017년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2019년 8350원으로 급격히 올랐고, 코로나가 직격한 2020년부터도 꾸준히 올라 내년부터는 9860원이 적용된다. 코로나19로 매출이 떨어지는데 끊임없이 인상되는 최저임금은 자영업자들에겐 골칫덩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을 둘 필요가 없는 무인점포는 인건비를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점주들 “부업으로 하기에 매력적”


▎점주들은 무인점포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사진은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무인 애완용품 가게. / 사진:권혁중 인턴기자
양모(42)씨는 경기 고양시에서 16평 크기의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을 4년째 운영하고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전하던 그는 확실한 수입원을 찾다가 무인점포를 창업하게 됐다. 주변 상권과 세대 수를 파악한 뒤 점포를 열었고, 창업 비용은 키오스크를 포함해 약 1500만원(보증금 제외)이 들어갔다. 양씨는 현재 월 평균 200만원 안팎의 수익을 얻고 있다. 매달 일정하지는 않지만 쏠쏠한 수익을 챙긴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무인점포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양씨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매장으로 출근하면 우선 청소를 한다. 이후 물건을 진열한 뒤, 부족한 물건을 발주(주문)한다. 여름에는 손님이 많아 매일 출근해야 하지만, 모든 업무가 2시간이면 끝난다. 심지어 물건 주문은 집에서도 가능하고, 겨울철에는 일주일에 세 번만 출근해도 지장이 없다고 한다. 양씨는 “가게를 열어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가족들과 여행을 갈 수도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직장에 다니는 30대 여성 장모씨도 부업으로 무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다른 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력이 적게 들어간다. 직장에 다니면서 부업으로 하기에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템”이라며 “노동력이 덜 들어가는 만큼만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좋은 수입원”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아예 여러 개의 무인점포를 관리하며 많은 수익을 내는 이들도 있다. 무인 애완용품점을 운영하는 임모(27)씨가 그렇다. 충남 천안과 서산에서 3개의 무인 애완용품점을 관리하는 그는 한 달에 1000만원이 넘는 순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매장 한 개를 운영하는 것보다 여러 개 하는 게 마진이 조금 더 높다. 또한 발주할 때, 용품 5개를 구매하면 한 개를 더 주는 시스템들도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성공 소식이 널리 퍼져 현재는 그의 브랜드(도그마캣)로 70개가 넘는 가맹점이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학과를 졸업하고 애견 미용사로 일하던 그는 어느새 ‘이사’라는 직함도 얻었다. 임씨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매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면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런 걸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손님들이 원하는 것들도 더 갖다 놓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진상 고객에 도난 많아 골머리 앓기도


▎무인점포 점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절도 문제였다. 사진은 서울의 한 무인 문구점에서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 붙여 놓은 경고문. / 사진:권혁중 인턴기자
물론 무인점포도 고충이 있다. 직원이 가게에 없고, 24시간 동안 문을 열어 놓는 매장 특성상 가게를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점주들에 따르면 진상 고객과 절도가 가장 큰 고충이었다. 창원에서 무인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27)씨는 진상 손님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그는 “매장이 작아서 2~3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데, 한 번은 6명이 와서 음료 두 잔을 뽑았다. 뭔가 이상해서 CCTV를 통해 자세히 보니 직접 가져온 종이컵을 들고 와서 나눠 먹고 있더라”고 전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무인 카페를 운영하는 한 점주는 “손님이 매장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도 문제지만 외부 음식은 물론 배달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손님이 비교적 적은 심야 시간대를 틈타 술을 마시거나 노숙을 하는 등 무인점포를 ‘아지트’로 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절도나 도난 사건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인점포 절도 사건은 6018건으로 집계됐다. 월 평균 501건으로 2021년(351건)에 비해 42.7%나 증가했다. 특히 형사처벌이 어려운 촉법 소년(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비율이 높다. 보안업체 에스원이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절도범 연령대 중 10대가 34.8%로 집계됐다. 절도의 유형도 다양하다. 물건을 숨겨서 가지고 나가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계산을 누락시켜 들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키오스크에 있는 현금통을 털어가기도 한다.

대구에서 무인 아이스크림과 세계과자 할인점을 운영 중인 한 점주(44)는 “도난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매장 내에 포스터를 붙이거나 도난 시 배상을 요구한다는 문구를 지속적으로 달아 놓지만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자구책을 마련하는 점주도 늘고 있다. 진상 손님의 경우 점주가 CCTV를 들여다보면서 경고 방송으로 주의를 주는 경우도 있다. 절도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도 있다. 심야 시간대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전화 인증을 거쳐야 하는 ‘스마트 출입인증기’가 대표적이다. 한 점주는 “문이 안 열리니까 당황하면서 두리번거리더라. 들어오려면 전화를 해야 하는데 기록이 남으니 더 이상 시도를 하지 않고 떠났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무인점포 점주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겼다. “진상 고객이나 절도 사건 같은 고충은 있어도 할 사람은 다 하더라. 다만 소심하고 두려움을 잘 느끼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고 싶다.”

-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gur145145@naver.com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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