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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습지를 품은 정원, 도시로 스며들다]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스토리 

싱그러운 초록 정원에서 낭만적인 하룻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개발 막고 갯벌 지키려 만든 순천만정원 관광 명소로 탈바꿈
4월부터 10월까지 순천만과 국가정원, 도심 곳곳에서 펼쳐져


▎2023 순천만국제 정원박람회 주요 행사장인 국가정원에 마련되는 가든스테이는 정원에서 하룻밤 묵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 사진:순천시
중앙일보는 2008년 9월 23일 자 신문 1면과 3면을 할애해 순천만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명품화 전략의 성공 사례를 조명하는 연속기획의 일환이었다. 1990년대 초까지 버려진 땅이었던 순천만의 생태를 복원한 뒤 여행객이 늘더니 2007년 한 해에 18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고 소개했다.

당시 시장으로서 순천만 생태계 복원을 진두지휘했던 노관규 순천시장(현재 3선)은 15년 전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노 시장은 “중앙일보 기사가 나간 뒤 대통령(이명박 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세 번 방문했다. 보도를 계기로 순천만이 크게 알려졌고, 이듬해(2009년)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유치와 국가정원 1호 지정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노 시장의 말처럼 순천만은 십 수년 전만 해도 환경운동가나 사진 애호가들에게 알려졌을 뿐 관광과는 거리가 먼 땅이었다. 2000년대 들어 순천만 갯벌과 습지의 생물학적·환경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2006년 벌교 갯벌과 함께 국내 연안습지로는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이후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사업에 따라 공원화가 시작됐다.

순천만과 순천시 구도심 사이에 낀 순천만국가정원은 도시 팽창을 막는 완충지대였다. 노 시장은 “도심이 확장되면 순천만의 자연환경을 해칠 수 있어서 이를 막기 위한 완충벨트로 국가정원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개발 압력을 막아주는 일종의 그린벨트였던 셈이다.

2013년에 국내 첫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 뒤 2015년에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국가정원이 법적 개념으로 도입됐다. 같은 해 9월 순천시가 조성한 오천동과 풍덕동 일대 순천만정원이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됐다. 현재는 전국에 국가정원 2곳과 지방정원 29곳이 있다. 40여 지자체에서 국가정원 추가 지정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원 문화는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다. 전통 한옥의 정원은 대개 뒤뜰, 후원(後園)을 의미했다. 외부와 차단돼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정원에 관한 한국인의 편견을 깨뜨렸다. 개방적이고 공유되는 정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원이 일상이 되는 ‘정원 도시’의 개념을 주창했다. 4월 1일에 개막하는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슬로건을 ‘정원에 삽니다’로 채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50만 평 정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최고 프로그램


▎2008년 9월 23일 자 중앙일보. 갯벌을 복원한 뒤 명품 여행지로 재탄생한 순천만의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노 시장은 “정원 도시는 생태가 삶 속에 녹아드는 미래 도시의 이상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박람회에 미래 도시의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녹여냈다. 박람회장은 크게 해양정원, 경관정원, 국가정원, 도심정원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그 안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원들을 꾸몄다. 전통 양식에 충실한 세계 12개국의 정원과 순천만가든쇼에서 선정된 50개 작품이 실내외에 조성됐다.

정태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홍보팀장은 “이번 박람회는 순천시 전체가 행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원 도시답게 주요 행사장 외에 순천시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정원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국가정원과 뱃길, 잔디길로 연결된 도심권역 행사장은 정원 도시의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도가 이뤄졌다.

우선 동천을 따라 시내로 이어지는 왕복 4차로의 강변도로가 잔디길로 탈바꿈했다. 동천교에서 강변로를 연결하는 나들목 램프까지 도로 형태는 그대로 유지했다. 도로를 폐쇄할 때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국제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데 시민들도 뜻을 모았다. 이 길을 따라가면 순천역까지 도보로 연결된다. 동천을 따라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면 동천테라스에서 국가정원 내 호수정원까지 2.5㎞ 구간을 뱃길로 오갈 수도 있다. 동천테라스는 순천역과 동천, 박람회장을 연결하는 전망 휴게 시설이다. 유람선 ‘정원드림호’는 과거 곡식을 실어나르던 배에서 영감을 얻었다.

강변로를 사이에 두고 동천에는 ‘물 위의 정원’이, 왼쪽 저류지에는 오천그린광장이 조성됐다. 물 위의 정원은 박람회 개막식 행사장이기도 하다. 드넓은 잔디밭에 자유롭게 앉아 물 위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오천그린광장은 당초 홍수 조절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저류지였다. 큰 비가 왔을 때 물을 가두는 용도 외에 별다른 쓰임새가 없었는데, 재해예방 기능은 유지하면서 평소에는 정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조성됐다. 잔디광장 면적은 축구장 12개에 달한다. 조직위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72개 저류지 중에서 상설공원으로 만든 첫 시도”라고 했다.

자연의 한가운데서 하룻밤을 지내는 가든스테이도 이번에 처음 선보였다. 국가정원 내 생태체험교육장과 동천 제방에 샤워시설을 갖춘 캐빈하우스 35동을 배치했다. 하루 최대 수용인원은 100명이다. 순천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클래식 공연, 영화 상영이 이뤄진다. 50만 평의 정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하루로는 모자랄 다채로운 여행 코스로 준비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이 열릴 동천 ‘물 위의 정원’ / 사진:순천시
정원 도시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는 순천시의 바람은 도심 곳곳에서도 묻어난다. 집과 점포 앞에서 작은 화단을 만나는 건 예사다. ‘한뼘정원’에는 소박한 이웃의 정이 숨쉰다. 건물 옥상에도 정원이 숨어 있다. 밖으로 삐죽 나온 나뭇잎과 가지는 마치 멋들어진 모자처럼 건물을 장식한다. 건물의 온도를 낮춰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능도 있다. 건물 벽면을 초록으로 물들인 잔디도 마찬가지다.

마을을 수놓은 크고 작은 정원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성돼 의미가 남다르다. 순천의 24개 읍 면동 주민이 참여하는 시민정원추진단이 도시 정원 가꾸기를 주도한다. 주민 의견을 반영해 담장을 낮추고 마을 공동 정원을 만들어 공동체를 복원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에 걸쳐 열린다. 봄, 여름, 가을의 저마다 다른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입장권은 일반 기준으로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 8000원이다. 순천시민은 50%, 전남도민은 전기간권을 50% 할인해준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야놀자에서 살 수 있다. 노관규 시장은 “이번 박람회를 통해 대도시와 차별화된 생태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만국가정원에는 네덜란드정원을 비롯해 세계 12개 나라의 전통 정원을 재현했다. / 사진:순천시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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