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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경기] 대중교통 할인정책 3종 전격 비교 

K패스 품은 더경기패스… 혜택과 편리함에서 ‘한 수 위’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국토부 알뜰교통카드, 오는 5월 편의성 높인 K패스로 업그레이드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로 독자노선… 경기도는 가성비로 승부수


▎대중교통 이용자의 비용 부담을 줄여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 잇따라 선보인다. 국토교통부는 알뜰교통카드를 보완해 5월경 K패스로 전환하기로 했고,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를, 경기도는 더경기패스를 각각 내놨다. 왼쪽부터 김동연 경기지사, 원희룡 국토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 사진:중앙포토, 연합뉴스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 성동구의 회사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 김지훈 씨에게 교통비는 작지 않은 부담이다. 신분당선 정기권 비용만 해도 약 10만원이다. 알뜰교통카드를 써볼까 했지만, 걷는 거리에 비례해 할인되기 때문에 전철역과 회사가 가까운 김씨에게는 정기권보다 할인 폭이 적었다. 대중교통 정기권인 기후동행카드는 신분당선과 광역버스는 제외해서 김씨처럼 서울을 오가는 경기도민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김씨처럼 대중교통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경기도민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경기도가 내놓은 대중교통비 지원 사업인 ‘더(The)경기패스’다. 국토교통부의 알뜰교통카드(향후 K패스로 개편),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에 비해 혜택이 크다. 대중교통 할인정책 삼국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셈이다. 세 정책 모두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우선 201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알뜰교통카드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에 비례해 최대 20% 마일리지를 지급하고 카드사가 추가로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월 15회부터 최대 60회까지 할인을 적용한다.

또 할인을 받으려면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이나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보를 입력해야 해 번거롭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시스템 장애로 온종일 이용이 중단되기도 했다. 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부담하는 구조여서 예산 조달이 어려운 지자체 사정에 따라 마일리지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1월 9일 기준으로 일부 지자체는 작년 11, 12월분 마일리지 지급이 중단되거나 지연돼 이용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알뜰교통카드는 오는 4월경 종료되고, 이용자 편의성을 높여 ‘K패스’로 개편된다. 지난 9일 알뜰교통카드 개편을 위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기존의 이동 거리 비례 할인 방식을 폐지하고 이용금액에 따라 일정 비율로 최대 60회까지 환급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환급액도 기존보다 높였고, 앱으로 출발·도착을 설정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걷기 비례 할인 폐지, 환급률 높인 K패스 5월 시행


▎서울 신분당선 양재역 승강장에서 승객들이 정자행 열차를 기다고 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이 주로 이용하는 수단이지만,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로는 광역버스와 함께 이용할 수 없다.
K패스로 개편되면 현재의 불편함은 다소 개선될 전망이다. 현재는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를 출발과 도착 시점에 기록해야 했으나, K패스가 시행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월 15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무조건 이용금액의 일부를 최대 60회까지 환급해주는 방식으로 개선되기 때문이다. 할인율은 일반 이용자 20%, 청년 30%, 저소득층 53%로 정해졌다.

1월 27일에 시범 운영을 시작하는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는 지자체가 하는 전국 최초 대중교통 통합 할인 정책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카드 한 장으로 대중교통과 공공자전거 ‘따릉이’까지 횟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월 6만2000원에 서울지역 지하철과 시내·마을버스, 하반기에 도입될 한강 수상버스까지 폭넓게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3000원을 추가하면 따릉이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동행카드는 몇 가지 제약이 있다. 우선 적용 지역이 서울에 국한되는 점이다. 지하철의 경우 서울에서 출발해도 도착지가 경기도라면 할인을 적용받지 못 한다. 할인금액만큼을 하차역에서 역무원에게 지불해야 한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신분당선도 기후동행카드를 쓸 수 없다. 광역·공항버스와 서울 이외 지역의 면허 버스도 제외된다.

실질적인 혜택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대중교통 이용 습관을 잘 따져봐야 한다. 월평균 이용 횟수가 44회 이상이어야 실질적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 2회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주5일제 직장인이라면 거리에 따라서 이익이 거의 없거나 오히려 손해다. 또한 별도 카드로 매달 충전해야 하므로 K패스를 같이 이용하려면 카드를 추가로 발급받아야 한다.

더경기패스는 가장 늦게 나왔지만, 혜택과 구성은 가장 꼼꼼하고 알차다. 국토부의 K패스를 기반으로 삼아서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도 혜택이 적용된다. 카드 한 장으로 매달 자동 환급되기 때문에 충전하거나 마일리지를 전환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폭넓은 할인 혜택이다. 기존 만 13~23세를 대상으로 한 경기도 청소년 교통비 지원사업을 만 6~18세로 넓혔다. 청년 연령대도 K패스는 34세까지지만, 더경기패스는 39세까지다. 횟수도 월 15회 이상으로 무제한 적용된다. 할인율은 K패스와 마찬가지로 일반 20%, 청년 30%, 저소득층 53%다.

광역버스나 신분당선의 요금이 높고, 서울 출퇴근 등으로 장거리 통행이 잦은 경기도민에게 그만큼 할인폭이 크다. 앞서 소개한 김지훈 씨처럼 월 12만원의 교통비를 지출하는 청년이라면 할인율 30%를 적용해 3만6000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김씨는 “버스비 1500원에서 450원을 돌려주니 대중교통비를 인하한 거나 다름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출퇴근 경기도민에겐 ‘더경기패스’ 유리


단일생활권이나 다름없는 수도권에서 3개의 할인정책이 공존하는 기이한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가 뭘까. 이는 수도권 광역교통체계에서 두 핵심 주체인 서울시와 경기도의 특별한 긴장 관계와 관련돼 있다. 두 지자체는 광역버스 노선 조정이나 서울시내 정류장 설치 등 광역교통체계 조정을 두고 협력과 대립을 반복해왔다.

서울시의 교통 정책은 경기도민에게도 영향이 작지 않다. 2019년 경기도 사회조사 통계에 따르면 서울로 출퇴근·통학하는 경기도민은 전체 인구의 20%에 이른다. 수도권 직장인이 출퇴근에 소요하는 시간은 83분. ‘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길에서 버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경기도민에게 출퇴근길은 생활의 중요한 문제다.

최근 벌어진 ‘명동 버스대란’이 서울시와 경기도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명동 버스대란은 서울시가 사고 방지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28일 명동을 경유하는 경기도 광역버스 29개 노선에 대해 명동 버스정류장에 노선별 대기판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공간이 충분치 않은 곳에서 앞차가 승객을 태우느라 정차하는 동안 뒤로는 버스 수십 대가 정류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교통 흐름을 막았고, 이로 인해 퇴근 시간대 서울역부터 명동 입구까지 1.8㎞가 한 시간 이상의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결국 시행 9일 만인 1월 7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현장에 나와 사과하고 잠정 중단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와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논쟁으로 두 지자체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서울시가 기후동행카드 파트너로 김포시를 끌어들인 것도 관계를 악화했다. 서울시와 김포시는 7일 기후동행카드 참여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은 경기도에 사전 통보 없이 진행됐다고 한다. 경기도는 기후동행카드 확대가 현 여권에서 제기하는 서울 확장 정책(메가시티론)의 방편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실제로 서울과 김포시의 업무 협약식에서 김병수 김포시장은 “김포 시민들이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서울 편입을 위한 또 하나의 성과”라고 말했다. 인천시도 기후동행카드에 참여하기로 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상수 경기도 교통국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가 경기도 내 일부 시·군과 개별 협의를 하는 것에 대해 매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서울 ‘명동 버스대란’, 최대 피해자는 경기도민


▎지난 1월 4일 서울 중구 명동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가 광역버스 노선별 승차 위치를 지정하면서 꼬리를 문 버스들의 병목현상으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오 시장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정책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오랜 경험을 가진 정치인 출신인 오 시장은 시민의 눈길을 끄는 정책 홍보에 능한 편이다. 같은 대중교통 할인 정책인데 서울시가 ‘기후’를 붙이면서 오 시장은 기후위기 대응에 앞서간다는 이미지를 챙겼다. 다만 명동 버스대란에서 보듯이 정책 결정 과정이 즉흥적이란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오 시장에 비해 김동연 경기 지사는 신중한 관리자에 가깝다. 경기도도 서울시 못지않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경기 RE100으로 대표되는 김 지사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더경기패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숙의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라며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도민에게 드릴 혜택만 고민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더경기패스의 경쟁력을 자신하고 있다. K패스와 호환성과 혜택에 있어서 비교 불가라는 것이다. 또 정책 지속성을 가늠할 수 있는 예산에서도 더경기패스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게 사실이다. 더경기패스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1083억원이다. 그중 국가사업인 K패스 예산이 816억원으로 대부분이고, 경기도의 추가 혜택에 필요한 예산은 267억원이다. 반면 기후동행카드의 경우 연간 1800억원을 서울시가 온전히 부담해야 한다. K패스 사업예산은 별도다. 경기도 관계자는 “두 달 정도 시행해보면 확실하게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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