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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포커스] 저출산, 지방소멸 시대의 예비타당성조사 생존법 

특별법 양산보다 예타 제도의 신축적 운용이 효율적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SOC 건설에 따른 편익 저평가… 편익 항목 조정 검토해야”
경제성 분석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따로 적용하는 방안도


▎지난 2월 7일 광주에서 열린 달빛철도특별법 국회 통과 축하 행사에서 강기정(앞줄 왼쪽 둘째) 광주시장과 홍준표(앞줄 왼쪽 셋째) 대구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가결됐다. 중앙과 지방으로 갈려 찬반 논란이 분분했던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 법은 달빛철도 건설사업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추진하고자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특례를 규정했다. 달빛철도 건설의 걸림돌이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법률로 철도 건설을 못 박은 것이다. 2월 13일 공포된 이 법은 8월 1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로써 달빛철도특별법은 가덕도신공항특별법,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 등에 이어 여야가 손잡고 밀어붙이는 예타 면제법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달빛철도 건설 사업이 탄탄대로를 달리게 될지는 미지수다. 기획재정부는 특별법 통과 직전까지도 예타 제도의 틀 안에서 달빛철도 건설은 충분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예타를 면제하는 특별법보다는 기존의 절차에 따른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한다는 바람을 내비친 것이다.

달빛철도특별법 7조에 보면 “기획재정부장관이 달빛철도 건설 사업의 신속하고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국가재정법’에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한다”고 돼 있다. 면제가 강행 조항이 아닌 임의 조항이다. 면제할 수 있다는 것과 면제한 것은 성격이 다르다.

사실 특별법으로 진행되는 SOC 사업은 진행은 되더라도 진도는 더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성덕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은 “예타가 면제된 것과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이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후속 조치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는다. 김수성 대구정책연구원 정책시뮬레이션센터장은 “기존 예타면제 사업들이 예산 문제로 인해 시기가 조금 지연되는 경향은 있다”라면서도 “대구·경북 사업은 현재 모두 진행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지방의 관계자들은 나라의 곳간 열쇠를 쥔 기재부가 이런저런 절차를 제시하면서 사업을 살려는 두되 멈추지 않을 정도로만 진행하는 경우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낙관할 수 없는 달빛철도의 미래


▎1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달빛철도건설특별법이 가결됐다. / 사진:전민규
이처럼 특별법으로 예타 면제를 받기는 했지만, 중앙과 지방 모두 찜찜해하는 사업이 바로 달빛철도 건설이다. 대표적 지역균형발전론자인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국회가 특별법에 예타 면제 조항을 넣어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은 예타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바람직스럽지는 않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전문가들은 예타를 우회하는 특별법 양산보다는 예타 제도를 보다 신축적으로 운용해 지역의 SOC 갈증을 적절히 해소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예타 제도 개선을 통해 특별법 강행 소지를 줄여준다면 국가 재정 건전성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방의 절실한 개발 수요를 중앙정부가 예타 제도 안으로 흡수함으로써 의회발(發) 특별법 남발을 막는 방식이다. 그래서 현행 예타 제도를 전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국회입법조사처는 소식지 ‘이슈와 논점’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 기준 조정의 쟁점과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의 기준은 제도 도입 초기인 1999년에 마련된 예타 선정 가준 및 기본 틀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예타 제도는) 변화된 우리나라의 경제 및 재정 규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조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예타 면제사업의 대상 및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확립, 운용해 불필요한 논란을 불식시켜야 한다.”

예컨대 예비타당성조사 제도의 운용이 주로 효율성 측면에만 맞춰져 있어 경제성 분석의 편익 항목이 지나치게 제한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보고서는 “SOC 건설로 인한 편익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의견은 종래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면서 “편익 항목 조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현행 예타 제도에서는 측정 가능한 편익 중심으로만 경제적 분석이 이루어져 시장권 확대에 따른 효과, 인력 및 산업구조 개편 효과, 도시 기능 고도화와 집적 경제 효과 등의 편익은 계량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타 제도, 시대 상황 제대로 반영 못해


▎지난해 4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 기재위 소위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기준 완화 법안 통과를 규탄하는 대학생들. / 사진:연합뉴스
예타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이라는 3개 요소로 구성된다. 이 중 경제성, 즉 비용·편익(B/C) 수치 결정 방식이 늘 도마 위에 올랐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은 B/C가 잘 나올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특정 사업이 지역민들에게 절실하고 간절하다는 것은 이 사업이 지역에서 갖는 편익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뜻”이라며 “몇 사람이나 사용할 것인가와 같이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댈 게 아니라 더 정밀한 기법을 개발해 지역민의 절박성을 B/C 분석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KDI의 B/C 분석이 기본적으로 편익에다 이용자 수를 곱하는 기조에서 진행되다 보니 지역에서 진짜 필요한 사업들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특히 B/C 분석에 지역 간 불평등을 보정하는 가중치 채택에 주목한다. 오래전부터 소득분배 요소를 B/C 분석에 포함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그는 “예타 당국은 소득의 분배적 가중치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고, 이를 비용·편익 분석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KDI는 이에 난색을 표한다. B/C는 경제성 분석을 하기에 소득분배 효과를 당연히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KDI의 기본 입장이다. 분배 효과는 B/C를 다루는 경제성 섹터가 아닌 지역균형발전 섹터에 반영될 사안이라는 것. KDI 측은 “경제성 분석에 소득분배 효과를 반영하는 방안은 검토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지역에서는 필수불가결한 SOC 사업의 경우 예타 없이 추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김민석 경상북도 정책실장은 “예타 제도가 국가 불균형을 야기한 가장 큰 원인”이라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폈다. “예타 제도는 미래를 개척하는 데 길을 닦는 게 아니라 현재가 있는 곳에 길을 놓는 방식과 같다. 지방은 이런 예타의 근간인 B/C 논리를 뛰어넘어야 산다. 지자체는 정책적으로 목표 수요를 만들고 그것을 달성하는 도구로 SOC를 예타 없이 건설하는 방식으로 지역 회생을 모색해봄 직하다.”

이와 함께 예타 경제성 분석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분리해 따로 적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는 “저출산, 지역 소멸의 위기를 해소하자면 비수도권의 경우 B/C값이 낮아도 사업을 통과시켜 줄 정도의 과감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예타 제도의 혁신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경제성 요소를 건드리지 않고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성 요소를 통해 지역의 여망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게 KDI 측의 입장이다. 예타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성 분석 결과를 종합해 사업 추진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도출한다. KDI 측은 “고도의 낙후 지역의 경우 예타의 문턱이 낮아졌기에 과거 같으면 예타를 통과하기 어려운 사업들도 종합평가에서 채택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예타 종합평가에 지방 전문가 참여해야”

현장의 기류는 이와 사뭇 다르다. 박성덕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은 “형식적으로는 종합평가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낮아도 다른 부분에서 보완이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달빛철도의 사례로 볼 때 이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말하는 예타 종합평가는 기재부 산하 재정사업평가 분과위원회(12명)가 진행하는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 분석적 계층화법) 분석’을 말한다. 예타의 주요 요소인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에 가중치를 부여하고 전반적인 정성평가 요소를 따져보는 절차이다. 종합평가에서는 종합평점을 근거로 ‘사업 시행’ 대안과 ‘사업 미시행’ 대안 간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정책담당자에게 제시할 정책 제언을 도출한다. 12명의 평가위원 중 최고·최저 점수를 제외한 10개 점수의 산술평균을 내서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구조다.

현재 기재부는 AHP 분석 과정에서 경제성 연구에 참여한 인력 외 평가위원들에게는 해당 사업의 B/C값을 공개하지 않는다. KDI 관계자는 “AHP 분석 평가자들에게 B/C 자료를 직접 제시하지는 않고, 비용과 수요, 편익 추정 결과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B/C를 산출할 때 모든 비용과 편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지만, AHP 분석 평가자들에게는 비용과 편익의 현재 가치가 아닌 불변 가치로 제공한다는 말이다. B/C값이 현재 가치로 공개되면 이게 하나의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나머지 평가 항목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동조화(同調化)’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AHP 분석’에는 기재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2명, 예타 실무 연구진 3명, 기재부가 관리하는 민간 전문가 풀(pool) 소속 7명이 참여한다.

반면, 지자체와 학계에서는 연구책임자 집단이 비책임자 집단에 비해 예타의 경제적 측면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간주한다. 정부가 경제성에 방점을 둔 종합평가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는 의구심이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의사 결정 집단을 구성할 때에는 지금보다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전문성과 이해관계를 가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에서는 기재부가 관리하는 민간 전문가 풀에 중앙과 지방의 시각이 고루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예타 종합평가 과정에 지역의 실정에 정통한 이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 박성덕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은 “현행 구조에서는 AHP 분석 기법을 아무리 바꾼들 결론은 기재부가 정해 놓은 방향으로 수렴할 것”이라며 “지역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종합평가에 참여할 때 평가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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