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권경률의 노래하는 한국사(22)] 강남스타일로 보는 현대사(下) 2000~2020년대 

강남은 어떻게 권력이 됐을까 

서초 삼성타운, 대치 교육특구, 청담 명품가 ‘공고한 아성’
‘세금 폭탄’에 강남 부동산 불패 흔들리자 정권 교체 나서


▎2000년대 이후 강남은 부동산 불패 신화의 아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압구정, 삼성동 일대. / 사진:연합뉴스
2000년 11월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자리한 서초동에 주상복합 아크로비스타가 터를 다지고 공사에 들어갔다. 아크로비스타는 3년 만에 22~37층의 3개 동이 완공됐으며, 스카이라운지·스포츠센터·연회장 등 화려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내부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상가로 나눌 수 있는데 대형 평수의 고급 아파트가 대종을 이뤘다.

그런데 이 주상복합의 바닥에는 잊을 수 없는 참사의 기억이 묻혀 있었다. 아크로비스타는 삼풍백화점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삼풍백화점 A동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지상 5층, 지하 4층 건물이 완전히 붕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초. 한창 영업시간이라 인명피해가 컸다. 백화점 손님과 직원 등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실시공과 무리한 증축이 낳은 인재(人災)였다.

주상복합과 재건축아파트 붐 일다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비스타는 삼풍백화점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백화점 경영진의 탐욕이었다. 사고 10일 전부터 5층 식당가 테이블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천장에 구멍이 났다고 한다. 당일 오전에는 4층까지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때라도 영업을 중지하고 건물을 폐쇄했다면 최소한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진은 붕괴가 시작된 곳만 칸막이로 가리고 쉬쉬 입단속하면서 영업을 강행했다. 하루 매출 5억~6억원이 아까워 영업을 마치고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수많은 생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셈이다.

참사의 기억 위에 세워진 것은 위령탑이 아니라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였다(위령탑은 5㎞ 떨어진 양재시민의숲에 조성). 삼풍그룹에 구상권을 행사해 백화점 부지를 인수한 서울시가 보상금을 마련하려고 대상그룹에 매각한 것이다. 대상그룹은 주상복합 건설 경험을 가진 대림산업을 시공사로 선정해 그 자리에 아크로비스타를 지어 올렸다. 이곳은 훗날 또 다른 모습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국내 부동산시장을 들썩이게 만든 것은 강남권에서 분 주상복합 열풍이었다. 그 중심에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있었다. 이 부지는 원래 삼성그룹이 102층 사옥과 복합업무단지를 건립하기 위해 1996년 서울시로부터 매입한 땅이었다. 도곡동 일대에 이른바 삼성타운을 조성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유동성 문제에 직면하자 삼성은 계획을 바꿔 이곳에 수익성 좋은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타워팰리스는 2002년 10월에 1차분(A·B·C·D동), 2003년 2월에 2차분(E·F동), 2004년 4월에 3차분(G동)이 차례로 완공됐다. 최고 69층 높이의 주상복합 단지였다. 주상복합이라지만 상업 공간은 10% 정도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주거 용도였다. 또한 입주자를 위해 수영장·골프연습장·클럽하우스·게스트하우스 등 당시로선 호화로운 부대시설을 갖췄고, 2000여 대의 폐쇄회로 TV와 지문 감식 시스템 등으로 철통 같은 보안을 자랑했다.

대기업 임원, 고소득 전문직, 각계 유명 인사들이 이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모여들었다. 타워팰리스가 신흥 상류층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로 떠오른 것이다. 주민들의 우월의식도 층수만큼이나 높아졌다. 2004년 11월 강남교육청이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타워팰리스의 취학 아동 학구를 A초등학교에서 B초등학교로 조정하자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A가 B보다 가깝고 다니기에 편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교육청의 학구 조정은 무산됐다. 그런데 두 학교의 실제 거리와 경로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럼 왜 반대했을까?

“기존의 A초교에는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강남 최고가의 주상복합 단지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반면 B초교에는 주공 단지의 작은 평수 아파트 자녀들이 많다. 타워팰리스 학부모들의 반대는 한마디로 값싼 우월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신흥 상류층의 대표적 주거지로 꼽히는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의식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2005년 2월 7일 [국민일보] 사설 ‘타워팰리스 주민의 왜곡된 우월의식’)

투기 열풍에 재건축 비리 기승 부려


▎강남 3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서민이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높다. / 사진:연합뉴스
주상복합과 함께 2000년대 부동산시장을 뒤흔든 것은 강남권 재건축아파트였다. 강남은 1970~80년대에 대규모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노후되며 재건축 수요가 어느 지역보다 높았다. 낡은 아파트는 용적률이 낮아 재건축하면 이익이 몇 곱절 커졌다. 예컨대 5층 주공 아파트를 20층 고층아파트로 다시 지으면 분양 가구 수는 4배 늘어난다. 게다가 신축아파트는 품질과 시설이 좋기에 프리미엄이 붙어 아파트 가치가 뛰어오른다. 이렇게 키운 이익을 건설사와 조합원(소유자)들이 나눠 가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다.

재건축에 들어가려면 우선 안전 진단에서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새로 지어야 할 정도로 안전하지 않다는 뜻인데, 그래야만 아파트 가치가 올라가는 아이러니가 부동산시장에 자리 잡았다. 반포와 잠실, 대치동 등지의 대단지에서 재건축이 추진되자 부동산투기 광풍이 몰아쳤다. 거주 목적이 아닌 아파트의 소유가 폭증한 것이다. 잠실의 경우 소유자와 거주자가 일치하는 집이 10%대에 불과한 단지도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러 채를 보유하는가 하면 미성년자가 집주인이 되기도 했다.

투기와 함께 재건축 비리도 기승을 부렸다. 재건축 절차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조합 설립 인가나 사업 계획 승인을 받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꽤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가 비일비재했다. 강남의 한 아파트는 지은 지 15년 만에 재건축이 허용됐는데, 조사 결과 수십억원의 뇌물이 오간 것으로 밝혀져 조합 간부, 공무원, 은행원, 정계 인사 등이 처벌받았다. 건설사와 조합장의 암묵적인 거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로 인해 조합장이 감방에 다녀오더라도 빌딩 등을 마련했을 테니 이득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재건축을 두고 건설사 간의 법정 공방도 치열했다. 정말이지 이런 복마전이 없다.

2000년대 이후 강남은 부동산 불패 신화의 아성으로 자리매김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부동산 투기 억제에 나섰다. 고액 부동산 소유자에 대해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고,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추진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국내 부동산시장을 주도하는 강남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집값은 금리·수출·주택 공급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규제만으로는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

부동산 신화 뒷받침한 사교육 특구


▎올해 3월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사교육 특구’로 유명한 대치동은 강남 신화와 맞물려 호황을 누렸다. /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쳤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지명자 가운데 다수는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른바 ‘강부자 내각’이었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고위 공직자들도 강남에 많이들 거주했다. 부동산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법제화하는 데 강남의 잣대가 반영됐다. 기존의 규제는 완화되거나 유예됐다. 2010년대에도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는 흔들리지 않았다. 강부자 내각을 조소하던 사람들도 강남 아파트는 부러워하고 소유하기를 꿈꿨다. 한국인의 욕망을 자극하는 판타지가 돼간 것이다.

부동산 신화와 판타지를 강력히 뒷받침한 것은 강남의 사교육이었다.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가 ‘학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과외 교습이 전면 허용됐다. 부모의 교육권과 자녀의 인격발현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 판결을 계기로 강남 입시학원이 재수생은 물론 재학생까지 대거 흡수했다. 2000년 서울대 정시모집에 합격한 서울 출신 입학생 1000여 명 중에서 강남 8학군의 비율은 50%에 이르렀다.

‘사교육 특구’로 유명한 대치동은 호황을 누렸다. 수능 난도가 올라가면 인근 은마아파트 거래가격이 치솟았다. 주말에는 지방 학생들까지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정부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시모집을 확대하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등 대입 전형을 다양화했지만, 대치동 학원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명문대 대입 전형을 분석해 논술·면접·스펙 등을 맞춤형으로 준비한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충족해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드라마 [SKY 캐슬]은 알고 보면 무척 현실적인 풍자극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인터넷강의(인강)가 본격화되자 사교육 특구는 더욱 빛을 발했다. 대치동에서 잔뼈가 굵은 학원들이 인강 열풍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강남식 사교육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타고 빠른 속도로 온라인 교육 시장을 장악했다. 2004년 12월에는 메가스터디 학원이 교육기업으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당시 1000억원 규모였던 시가총액은 2007년 3월 1조원을 돌파하더니 그해 10월에는 2조원을 넘어서며 코스닥 순위 3위에 올랐다([강남을 읽다] 전상봉).

외고·특목고·자사고 신드롬은 입시 사교육 연령대를 초등학생으로 낮췄다. 국내 사교육 시장 규모는 2000년 7조1200억원에서 2003년 13조6485억원으로 3년 새 두 배 가까이 급팽창했다.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받은 강남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도 눈에 띄게 올라갔다. 2010년대에는 한때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합격생 중 30~40%가 강남 3구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제 더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자식들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 학부모들은 강남 진출을 뜨겁게 열망했다.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 베이비 베이비 / 나는 뭘 좀 아는 놈 / You know what I’m saying / 오빤 강남스타일 / 에~섹시 레이디 / 오오오오 오빤 강남스타일.”

2012년에 나온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조회 수 신기록을 작성하며 미국·영국 등 주류 음악 시장의 진입장벽을 허물었다. 싸이가 길을 열어준 덕분에 한국에서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뉴진스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K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세계인은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나는 뭘 좀 아는 놈”에 열광했다. 그것은 강남 사람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했다.

룸살롱, 강남에 드리운 향락의 그늘


▎2021년 9월 7일 경찰에 적발된 서울 강남구 유흥업소. / 사진:수서경찰서
강남에는 세계무대에서 날고 뛰는 기업들의 사옥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강남역 부근에는 2008년에 완공된 서초 삼성타운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의 3개 동 사옥이 기하학적 형태로 우뚝 솟아있다. 강남역과 삼성역을 잇는 테헤란로 주변에는 현대자동차그룹 GBC, 포스코센터, KB손해보험빌딩 등이 포진하고 있다. 삼성역의 랜드마크는 55층 높이의 한국종합무역센터다. 지상에는 종합전시장이 세계 각국의 손님을 맞이하고, 지하에는 초대형 코엑스몰이 또 다른 세계를 이룬다.

청담동으로 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멋을 아는 한국의 보보스(bobos) 거리다. 보보스는 보헤미안과 부르주아의 합성어다.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함으로 부르주아적 성공을 이뤄낸다는 뜻이다. 청담동에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나무엑터스 등 유명 연예기획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점포에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가득하고, 도로에는 값비싼 외제자동차들이 돌아다닌다. ‘강남스타일’을 찢고 나온 매력적인 남녀가 거리를 활보한다. 평소에는 정숙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때는 센스와 끼가 뿜어져 나온단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 그런 감각적인 여자 / 나는 사나이 /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신사동과 압구정동 일대는 ‘성형수술의 메카’로 불린다. 대로변 건물마다 성형외과 간판이 즐비하다. 1990년대 이후 강남이 뜨자 명동과 신촌 등지에 흩어져 있던 성형외과들이 이곳으로 병원을 옮겼다. 성형수술 수준이 높아지며 전국에서 ‘손님’이 모여들었다. ‘성형 관광’을 오는 중국과 일본 여행객들도 적지 않았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처럼 외모에 투자해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어찌 보면 외모에 대한 편견과 불이익이 빚어낸 한국 사회의 씁쓸한 풍속도다. “부모님 날 낳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셨네”라는 현수막이 씁쓸함을 자아냈다([강남의 탄생] 한종수·강희용).

룸살롱은 강남에 드리운 접대와 향락의 그늘이다. 1970년대에 서울시가 강북 도심을 ‘특정 시설 제한구역’으로 묶어버리며 술집·카바레·터키탕 등 유흥시설의 영업을 제한했다. 그러자 당시 개발이 한창이던 영동(강남) 시가지가 네온사인 불빛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룸살롱도 이때 생겨났다. 1980년대 중후반 삼저 호황이 겹치면서 논현동·역삼동·선릉역 등지에 룸살롱과 안마시술소·호텔들이 불야성을 이뤘다. 강남 룸살롱 업계는 1997년 IMF 외환 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1999년 벤처 열풍으로 되살아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속칭 ‘텐프로’ 등 고급 룸살롱에서 마약이 번져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세금 폭탄’을 표로 응징한 강남 유권자


▎윤석열 대통령과 김검희 여사가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를 찾아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권력과 문화 권력은 강남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정치 권력 차례였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논현동과 삼성동 자택에서 청와대로 향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10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나와 여의도에서 감사 인사를 했다.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자리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중심지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당선은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최대 난제는 집값이었다. 2017~2019년에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신규 주택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집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정부는 여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처방이 잘 듣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금리가 인하되자 집값이 폭등했다.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했다.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구입했다. 2016~2021년 사이 마포래미안푸르지오 24평형이 6억원대에서 15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은 12억원대에서 28억원대로 뛰어올랐다. 서울 아파트 시세가 5년 만에 2.3~2.5배 급등한 것이다(한국부동산원).

내 집 마련의 희망이 좌절된 서민층은 낙담했다. 문재인 정부는 민심을 달래고자 고가 주택 소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했다. 특히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종부세 세율을 크게 높이고, 양도세에 가산세를 더해 중과했다. 사실상 국내 부동산 시장을 주도해 온 강남을 저격한 것이다. 2021년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아 든 강남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종부세 대상자가 대거 늘어난데다 다주택자는 유례없는 ‘세금 폭탄’을 맞았다. 그렇다고 집을 정상적으로 팔 수도 없었다. 양도소득세 중과로 차익의 80% 이상을 세금으로 토해내야 했다. 이사, 부양 등의 사정 때문에 한시적으로 생긴 1가구 2주택자도 예외가 없었다.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강남 유권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징벌적 과세로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여겼다. 약탈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몰표를 던진 이유다. 강남구에서 67%, 서초구에서 6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기억이 잠든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나온 건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법으로 탐욕을 다스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기본 책무가 아닐까. 아직 늦지 않았다. 3년도 더 남았다.

※ 권경률 - 역사 칼럼니스트이자 작가. 서강대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새로운 해석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한국사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유튜브·페이스북에 ‘역사채널권경률’을 열어 독자들과 역사 하는 재미를 나누고 있다. [모함의 나라](2022),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2019), [조선을 새롭게 하라](2017) 등을 썼다.

202401호 (2023.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