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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 세계로 뻗어나가는 K푸드(1) 농심 

한국은 몰라도 신라면은 안다… 세계인이 더 많이 찾는 농심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신라면 해외 매출 비중 59%… 세계 곳곳에서 1초에 53개씩 팔려나가
신동원 농심 회장, 2030년 미국 1위 이어 글로벌 1위 목표 향해 속도


▎미국 어린이들이 농심 신라면을 즐기고 있다. / 사진:농심
"오는 2025년은 농심 창립 60주년입니다. 지난 60년간 쌓아온 위상과 성과에 안주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60년을 생각하며, 지속가능한 농심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우리의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올해로 취임 4년차를 맞은 신동원 농심 회장이 최근 임직원에게 당부한 말이다. 신 회장은 임직원에게 ‘미래’를 강조하며, 해외 시장 진출에 더욱 힘써 줄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올해 경영 지침을 ‘전심전력’으로 정하고, 글로벌 넘버원을 향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한 해가 될 것임을 선언했다.

신 회장은 이와 관련해 글로벌 브랜드들이 모여 ‘작은 지구’로 불리는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1위를 우선 목표로 삼았다. 농심은 현재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2위다. 일본 기업과 용호상박의 경쟁을 펼치며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신 회장은 오는 2030년까지 미국 시장 매출을 현재의 3배 수준인 15억 달러까지 끌어올려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 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중국과 호주, 베트남, 캐나다, 일본 등 법인이 진출한 주요 핵심 국가에서도 유의미한 성적을 거둬 글로벌 넘버원의 꿈을 이뤄나간다는 계획이다.

미국·중국 등 주요 시장 깊숙이 침투


▎신동원 농심 회장이 사내 아이디어공모전 챌린지 페어에서 연구원들이 만든 시제품을 시식하고 있다. / 사진:농심
신 회장은 농심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의 사업 다각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최근 ‘미래사업실’을 신설했다. 농심 미래사업실은 창립 60년을 맞는 2025년 이후 농심의 중장기 비전과 목표, 전략을 수립한다. 미래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하는 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신 회장은 미래사업실을 앞세워 국내외 공장 설립 등 대규모 투자의 타당성을 따져보는 것은 물론 인수·합병(M&A)이나 신규사업 진출 여부를 검토하고 추진할 계획이다.

농심이 K푸드를 처음 수출한 때는 1971년이다. 농심은 당시 국내 인기 라면이던 ‘소고기라면’을 미국에 수출했다. 한인 시장을 타깃으로 제품을 유통했고, 10여 년간의 시장 개척 덕에 80년대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 등의 주요 브랜드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농심은 1984년 샌프란시스코에 영업사무소를 만들었고, 1994년에는 첫 해외 법인인 미국 법인(LA)을 설립했다. 농심은 현재 중국과 미국, 일본, 동남아, 유럽 등 100여 개 국에 라면을 수출하고 있다.

농심이 수출하는 K푸드 선봉장은 신라면이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1991년 국내 라면시장 1위에 올랐다. 이후 33년간 단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한국 대표 라면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라면의 자존심’ 신라면은 계속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2015년 식품업계 단일 브랜드 최초로 누적 매출 10조원을 넘어섰다. 신라면은 특히 출시 35년째 되던 해인 2021년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해외 소비자가 더 많이 찾는 라면이 된 것이다.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신라면은 이제 세계인이 사랑하는 매운맛이 돼 글로벌 시장을 울리고 있다.

농심 신라면은 지난해 전년 대비 14% 증가한 1조2100억원의 국내외 매출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판매량은 16억6000만 개로, 전 세계에서 1초에 53개씩 팔려나갔다. 1986년 출시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매출은 17조5100억원, 누적 판매량은 약 386억 개에 달한다. 신라면은 특히 2021년 해외 매출이 국내를 넘어선 이후 그 격차가 매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신라면의 총 해외 매출은 7100억원으로 매출 비중이 59%에 이른다. 국내에서 30년 넘게 1등 브랜드 위상을 유지하면서 해외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 브랜드로 비약적 성장을 이룬 셈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 신라면이 해외에서 더 큰 인기를 누릴 수 있게 된 건 ‘한국적인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라는 농심의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이 주효한 덕이다. 신라면은 출시 이듬해인 1987년 처음 세계 무대에 나섰다. 1971년부터 미국 LA 지역에 라면을 수출하며 발을 넓혀오던 농심은 신라면의 매운맛을 그대로 들고 나가 정면승부를 펼쳤다.

농심은 단순 수출을 넘어 해외 생산 기지를 건립하며 글로벌 영토를 넓히는 데도 힘을 모았다. 이를 위해 1996년 중국 상해공장을 시작으로 중국 청도공장(1998년), 중국 심양공장(2000년), 미국 LA공장(2005년) 등을 설립했다. 또한 농심재팬(2002년)과 농심호주(2014년), 농심베트남(2018년), 농심캐나다(2020년) 등 각국에 판매 법인을 세워 안정적 공급망을 갖춤으로써 현지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해왔다. 1999년에는 바둑에 열광하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해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창설하는 등 각국에서 현지 문화와 정서를 고려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며 현지 시장에 깊숙이 침투했다.

2025년 미국 제3공장 설립 검토


▎농심 신라면 광고를 입힌 버스가 미국 뉴욕을 누비고 있다. / 사진:농심
신라면은 가깝게는 일본, 중국에서부터 유럽의 지붕인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 중동 및 아프리카,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지구 최남단 칠레 푼타아레나스까지 세계 방방곡곡에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의 활약이 눈에 띈다. 2017년 업계 최초로 미국 월마트 4000여 개 전 점포에 신라면을 입점시킨 농심은 코스트코, 크로거를 비롯한 미국 메이저 유통사 전점에 신라면을 입점시키는 것을 목표로 판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미국시장에서는 2018년부터 주류 시장(Mainstream) 매출이 아시안 마켓 매출을 6:4 비율로 제쳤다. 한인 시장에서 벗어나 미국 소비자가 먼저 찾는 대표 한류 식품이 된 셈이다. 특히 지난해 미국 법인의 신라면 매출이 전년 대비 19% 성장하면서 신라면 해외 매출 증가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2022년 5월 가동한 LA 제2공장을 통해 공급량을 확대하는 등 미국 대형 유통업체 중심으로 매출 성장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2공장 생산 능력을 기반으로 홍보와 마케팅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이 실제 매출 상승으로 나타나는 선순환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농심의 올해 해외 합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2%, 영업이익은 8.7%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미국에서는 메인스트림 유통 채널에서의 품목 수 확대와 히스패닉 인구를 타깃으로 하는 서부 유통 채널 확장이 예상된다”고 했다.

중국에서도 신라면의 매운맛은 여전하다. 농심은 중국 전역에 퍼진 1000여 개 신라면 영업망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중국에서 신라면은 단순 한국산 라면을 넘어 공항이나 관광명소 등에서 판매되는 고급 식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농심 관계자는 “현지에서 경험할 수 없던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이 중국인들이 신라면을 찾는 가장 큰 이유”라며 “신라면의 빨간색 포장과 ‘매울 辛’자 디자인을 두고 현지인도 종종 자국 제품이라고 여길 만큼 신라면은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신라면은 2018년 인민일보 인민망이 발표한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명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한국은 몰라도 신라면은 안다’는 각국 현지인의 반응은 신라면의 글로벌한 인기를 실감케 한다. 신라면은 지구촌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라면을 판다고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도 팔리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 브랜드가 각축전을 벌여 ‘작은 지구’라 불리는 미국 시장에서 농심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교민들이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먹던 라면이 이제는 미국인이 더 많이 찾는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자리매김 한 셈이다. 미국 법인은 농심 해외 매출 전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농심은 미국 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올해 하반기 LA 제2공장 내부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이르면 2025년 제3공장 설립을 검토할 예정이다.

농심이 미국 제3공장 건립을 저울질하는 이유는 현지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제품 수요 때문이다. 농심은 2022년 미국 시장에서 전년 대비 24% 성장한 4억9000만 달러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농심은 LA 제2공장 가동 전인 2021년 기존 미국 공장 생산 능력이 포화상태에 달해 국내 생산 물량까지 수출하며 시장 수요에 발맞춰왔다. 제2공장이 그간 공급이 부족했던 제품의 대량생산 기지가 돼 성장을 견인한 것이다.

농심 미국 제2공장은 현재 봉지면 1개, 용기면 2개의 고속 생산 라인을 갖추고 있다. 연간 3억5000만 개의 라면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다. LA 제1공장 생산력을 더하면 미국에서만 연간 8억5000만 개의 라면을 생산할 수 있다. LA 제2공장 가동은 농심의 전체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상반기 농심 미국 법인 매출은 전년 대비 25.2% 증가한 3162억원, 영업이익은 536% 증가한 337억원으로, 농심 전체 영업이익의 28%를 차지하며 성장을 주도했다.

아시안 시장을 넘어 미국 현지인이 더 많이 찾는 브랜드로 발돋움한 농심은 미국 주요 유통채널인 대형마트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매출이 전년 대비 42% 증가한 월마트가 대표적이다. 신라면블랙과 신라면블랙컵 입점 점포를 확대한 것이 주효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코스트코(47%)와 샘스클럽(95%)에서도 큰 폭의 매출 성장을 거뒀다.

LA 제2공장으로 또 하나의 심장을 갖춘 농심은 미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해 수년 내 일본 도요스이산을 꺾고 미국 라면 시장 1위에 오른다는 목표다.

시장 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농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21년 기준 25.2%로, 일본 도요스이산(47.7%)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3위인 일본 닛신의 점유율은 17.6%로, 농심에 7.6%p 차이로 뒤처져 있다. 주목할 부분은 농심의 상승세다. 농심은 2017년 일본 닛신을 꺾은 이후 점유율을 꾸준히 높이며 3위와 격차를 벌려나가고 있다.

북미 이어 멕시코 등 중남미 진출에도 속도

미국 제2공장 가동으로 힘을 얻은 농심은 북미에 이어 중남미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멕시코가 첫째 타깃이다. 멕시코는 인구 1억3000만 명에 연간 라면 시장 규모가 10억 달러로 추정되는 큰 시장이다. 현재는 일본의 저가 라면이 시장 점유율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농심은 멕시코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고 있다. 멕시코는 고추 소비량이 많고, 국민 대다수가 매운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라면을 먹어본 멕시코 소비자들은 농심 라면의 맛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상에서 고기와 건고추, 향신료 등을 첨가해 만든 멕시코식 스튜 ‘비리아’를 접목한 신라면 레시피가 인기를 얻고 있는 등 시장 반응이 좋아 멕시코 시장 공략이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농심은 멕시코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지난해 전담 영업 조직을 새롭게 신설했다. 아울러 신라면 등 주력 제품 외에도 멕시코의 식문화와 식품 관련 법령에 발맞춘 전용 제품을 선보여 현지인의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판매량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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