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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연구 | ‘현캐’ 배구단 스토리 (마지막 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컬러로 변모하는 ‘현캐’ 배구단의 미래 

“개선(효율 극대화)을 즐겁게 생각하는 팀원을 원한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숙소 겸 훈련장 ‘캐슬’부터 모방하지 않은 독창성 탑재, 정용진 SSG 구단주도 순례
캐슬 내부에선 선수들의 생체역학 실험 진행 중… “동남아 시장 공략에 배구도 기여”


▎2023년 10월 정의선(오른쪽 두 번째) 현대차그룹 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 자격으로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과 함께 했다. 배구, 야구, 축구, 농구 등 현대차와 기아차 계열 국내 프로 구단들도 최고를 지향하는 정 회장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미션을 의식하며 움직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대캐피탈은 금융회사다. 이 회사의 배구팀인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도 본질적으로 승리를 추구한다. 다만 이기기 위한 방편에서 과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경쟁자들과 다른 노선을 모색했다. 훈련과 재활을 겸하는 복합 베이스캠프 ‘캐슬’은 이 팀의 이런 지향성을 기능적으로,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건축물이어야 했다.

캐슬은 야누스적인 공간이다. 바깥에서 외양만 보면 중세 유럽의 성(城)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애플과 같은 IT 회사의 엄정한 간결성이 내재돼 있다. 2013년 7월 완공된 캐슬을 설계한 황두진 건축가는 “금융회사로서 현대캐피탈의 정밀하고 기계미학적인 선호를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키가 173㎝인 황두진 건축가에게 배구선수들의 세계는 생소했다. 그는 직접 선수단 안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캐슬이 지어지기 전, 현대캐피탈의 숙소와 훈련장은 경기도 용인 대웅제약 연수원에 있었다. 그는 “설계팀과 함께 합숙하겠다”고 구단에 요청했다. 침대, 변기, 세탁기 등 무엇이든 들일 때마다 선수들에게 물어봤다. 황 건축가가 “돌이켜보면 캐슬은 선수들과 같이 만든 것”이라고 공언하는 이유다.

외양은 중세 유럽의 성, 내부는 실리콘밸리 IT 기업

기획 단계에서 황 건축가는 일부러 아무런 선례도 참고하지 않았다. 숙소와 훈련 시설을 한 지붕 아래 짓는 발상의 전환이 실현된 배경이다. “처음에는 관습적으로 캐슬도 훈련장과 숙소를 분리하려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동선을 관찰하다 보니까 땀으로 범벅된 옷을 입은 채 숙소까지 걸어가면 감기에 걸릴 수 있겠다 싶었다. 훈련장과 숙소를 잇는 지하통로를 구상하다가 아예 ‘훈련장과 숙소가 같은 공기를 마시면 안 되나?’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캐슬 안의 배구선수들은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를 지향하는 중세 기사의 태도와 닮았다. 내부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경기는 공연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또한 캐슬은 지극히 개방적이다. 이는 그만큼 감시와 통제가 용이하다는 함의를 품고 있다. 황 건축가는 “코트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플랜에 따라 움직이는 마을처럼 캐슬을 만들려 했다”고 밝혔다. “건물의 의도 중 하나는 어디에 있든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원팀’은 선수가 중심이되, 스태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모두가 승리라는 공통 목표를 위해 자기 포지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서로가 볼 수 있도록, 공간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캐슬은 이제 다른 팀, 다른 종목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도 ‘순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캐슬의 정중앙을 차지하는 코트 벽면에는 유일하게 대형 모니터가 걸려 있다. 그리고 도처에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촬영하는 초정밀 카메라가 가동 중이다.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수감자 스스로 늘 감시당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구조)의 현실판 버전 같다. 윤웅석 배구지원팀 과장은 “체육관 동서남북 벽면과 공중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촬영된 화면은 10초쯤 지나면 대형 모니터에 구현된다. 선수들은 스파이크를 때린 직후, 모니터를 통해 자기의 폼이 어땠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4층 건물인 캐슬의 3~4층은 선수단 숙소다. 2층에는 웨이트와 재활 시설, 회의실 등이 있다. 특수 재질을 바닥에 깐 복도는 조깅 트랙으로도 활용된다. 원정팀이 방문하는 상황까지 고려해 넓게 지었다. 실제 캐슬을 방문하는 팀들은 일체의 이동 없이 내부에서 식사와 숙박까지 할 수 있다.

캐슬은 ‘단축’이라는 키워드를 함축하고 있다. ‘복합 베이스캠프는 훈련+재활+숙소가 동일 공간에서 수행된다’는 기능성을 품고 있다. 이곳에 구비된 재활 기기들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들 일색이다. 윤 과장은 “부상 선수가 천안에서 서울까지 재활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면, 왕복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캐슬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시간이라는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고가의 재활 기기가 도입됐다”고 말했다. 일례로 캐슬의 수중치료실은 문성민의 무릎 재활 속도를 경이적으로 끌어올렸다.

캐슬에는 ‘비밀의 방’이 있다. 감독실과 코치실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닿는 밀실의 명칭은 전력분석실이다. 현대캐피탈의 전략·전술이 이 작은 방에서 결정된다. 벽면에는 데이터가 빼곡하게 붙어 있고, 칠판에는 암호 같은 내용으로 가득하다.

캐슬은 입구부터 낯설고 건조하다. 코트로 연결되는 메인 출입구 벽에는 현대캐피탈 레전드 선수들의 핸드 프린팅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몇 년 전까지 입구 앞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진 푯말이 서 있었다.

‘전략 없는 실행, 실행 없는 전략은 없다.’

‘스피드는 결승전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유일한 변수다.’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다양성이 모여 하나 될 때, 탁월한 조직이 완성된다.’

26살 에이스의 탄생 비화


▎캐슬의 동선은 곡선의 미학을 띠고 있다. 언뜻 넓고 복잡한 것 같지만 무심코 움직이다 보면 결국 같은 장소에 다다르게 되는 단순성을 품고 있다. / 사진:현대캐피탈
2024년 1월 시점에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에이스는 26살의 허수봉이다. 아포짓과 아웃사이더 히터 포지션을 겸할 수 있고, 심지어 미들 블로커 자원으로도 활용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다. 한국 배구의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는 국가대표 자원이지만 원래 허수봉은 현대캐피탈 선수가 아니었다. 2016~2017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팀은 대한항공이었다. 전체 3순위 지명으로 V리그 역사상 최초의 고졸 선수 1라운드 지명 케이스였다. 사실 이 지명은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밀약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즉시전력감 센터 진성태를 대한항공에 넘겨주고, 대한항공의 1라운드 지명 선수를 받기로 합의했다. 1라운드 픽으로 찍어 달라고 현대캐피탈이 지목한 선수가 허수봉이었다.

2016년 10월 경북사대부고 졸업을 앞둔 허수봉은 키(195㎝)만 컸을 뿐, 도저히 힘을 쓸 것 같지 않은 체형이었다. 18살 깡마른 선수가 캐슬에 들어온 시점부터 현대캐피탈 트레이닝 파트는 일종의 ‘생체 역학에 관한 실험’에 돌입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허수봉 몸 만들기 5년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이다. 인간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은 5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울인다고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시도였다.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트레이닝 파트는 허수봉 전담 근력 강화 훈련 프로그램을 실행했고, 캐슬 영양사들과 협의하며 먹는 것까지 별도 관리했다. 2018~2019시즌 최 감독의 두 번째 V리그 우승이 달성될 때 허수봉은 핵심 멤버로 성장했다. 우승 직후 팀은 허수봉을 상무에 입대시켰고, 2020~2021시즌 복귀 후 현대캐피탈 리빌딩의 핵심 멤버가 됐다. 2023년 현대캐피탈과 FA 잔류 계약을 체결한 허수봉의 연봉은 8억원(V리그 전체 4위)에 달한다. 옵션을 제외한 순수 연봉만으로는 전체 1위다.

‘허수봉 프로젝트’와 거의 동시에 현대캐피탈에서는 ‘또 하나의 가설’이 등장했다. “젊은 선수의 하드웨어를 개선하는 작업이 가능하다면, 반대로 나이 든 선수의 노쇠화를 늦추는 방편도 모색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발상이 그것이었다. 실험 대상자는 레전드 리베로 여오현이었다. 당시 ‘여오현 45살 현역 프로젝트’를 담당한 조준희 트레이닝 코치는 “생리학적으로 30대 후반을 넘어가는 선수의 신체적 쇠퇴는 돌이킬 수 없다고 배웠지만, 팀은 배구선수들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는 방법을 찾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다. 현대캐피탈이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2018년 5월 FA 전광인 영입 당시 보호선수로 여오현을 묶은 데에서 짐작할 수 있다. 40살 리베로를 지키기 위해 현대캐피탈은 스피드배구의 중추로 기능했던 세터 노재욱이 보상 선수로 이탈하는 것을 감수했다.

결과적으로 여오현은 46살인 2024년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뛰며 에이징 커브(aging curve, 나이가 들수록 선수의 운동능력이 포물선 모양으로 떨어지는 현상)를 역행(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에서 10개의 우승 반지를 수집)하고 있다. 여오현의 천부적 신체능력, 집요한 자기관리, 현대캐피탈의 특화된 훈련법과 영양 섭취 계획이 결합된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여오현이 V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600경기 이상을 소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훈련은 노동이 아니라 과학이다


▎현대캐피탈 허수봉은 임동혁(대한항공), 임성진(한국전력), 김지한(우리카드) 등과 함께 대한민국 배구 차세대 에이스로 떠올랐다. / 사진:연합뉴스
네트를 사이에 두고 몸끼리 부딪치지 않는 배구는 자동차 제조회사와 흡사한 구석이 있다. 센터(미들블로커), 세터, 아포짓, 아웃 사이드 히터, 리베로 등 전혀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들이 조합돼 하나의 팀을 이룬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일본 도요타의 TPS(Toyota Production System)가 낳은 ‘가이젠(改善, 비효율적 재고를 줄이고 생산 라인을 단순화해 효율 극대화를 꾀하는 방식)’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수행하는 역할이 다른 각각의 포지션 플레이어들을 동일한 카테고리 안에서 훈련시키는 현실이 타당한지에 대해 현대캐피탈 코칭스태프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들은 “포지션마다 요구하는 운동 기능이 저마다 다른데 왜 전부 똑같은 체력 훈련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를테면 같은 점프라고 해도 세터의 점프와 윙 스파이커의 점프는 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리베로는 유연성이 더 중요하고, 라이트는 근력에 가중치를 둬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현대캐피탈이 시도한 새로운 훈련법은 다 같이 산을 뛰어다니고, 극한의 지옥훈련을 정신력으로 견디는 종전의 방식을 거부했다. 관례적으로 지도자들이 선수의 체력을 측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지표는 체중과 체지방이다. 이는 많이 뛰는 유산소운동으로 향상될 수 있다. 현대캐피탈도 이를 경시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 배구선수의 몸 상태를 측정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기준에서 스포츠는 노동이 아니어야 했다. 그 대안으로 이 팀은 자발성과 선수 개개인에게 특화된 트레이닝을 제시했다. 포지션별로 지구력, 순발력, 근력 등 필요한 운동능력의 가중치를 달리 두려 했다. 배구선수는 포지션에 따라 특정 부위를 혹사시키는 직업이다. 체중, 체지방보다 어깨, 무릎, 발목의 강도와 상태가 더 중요할 수 있었다.

이 팀 코치진은 선수에 따라 도달 가능한 목표치를 제시했고, 그 추이를 관찰 추적했다. 그 기록은 SW21에 입력했다. 해당 선수는 물론, 감독과 코치들도 정보를 공유했다. SW21에는 선수들의 몸이 개선되는 변화를 기록한 사진을 업로드시켰다. 이렇게 데이터를 시각화하자 선수들이 한층 자극을 받는 환경이 조성됐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 노지 츠네요시가 [도요타 이야기]에서 “도요타의 생산 방식은 생각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작업자에게 적합하다”고 기술한 것처럼, 권한이 아래로 내려갈 때 불량품이 가장 적게 나올 수 있다.

배구단이 동남아에 캠프를 차린 까닭은?


▎태국 원정 캠프에 성공한 현대캐피탈 배구단은 향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포괄한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시야를 넓힐 계획이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 차원에서도 이 지역의 인지도 증대가 절실하다. / 사진:현대캐피탈
2023년 9월 현대캐피탈은 태국으로 6일간 전지훈련을 떠났다. V리그 팀이 유럽이나 중국, 일본이 아닌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전훈을 떠난 건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현지에서 현대캐피탈은 태국 국가대표팀과 평가전도 치렀다. 현재 태국 대표팀 감독이 박기원 전 대한항공 감독이어서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실황 장면을 찾아보면, 현지 관중으로 체육관이 가득 찼다. K-콘텐트 효과로 동남아인들은 한국에서 온 배구선수들에게도 선망과 동경의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시류를 타고 V리그는 긴 난관 끝에 비로소 2023~2024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제를 도입하며 글로벌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한국의 V리그는 전형적인 내수 스포츠에 해당한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 남녀 불문 국제경쟁력은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평균 연봉은 각각 2억2600만원(남자부), 1억5200만원(여자부)에 달한다. 가뜩이나 마케팅 자생력이 없는 팀들은 국제경쟁력마저 바닥을 전전하자 ‘왜 투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모기업의 회의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위기 상황에서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제시한 ‘활로’가 배구 콘텐트의 해외 판로 개척이다. 현대캐피탈의 태국 전훈을 추진한 김성우 사무국장은 “배구는 본래 축구 이상으로 확장력이 강한 글로벌 스포츠다. 그 호환성을 극대화해서 모기업에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때”라고 노선의 전환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캐피탈 배구단은 2024년 이후 아시아배구연맹을 움직여 태국 이외에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대표팀들을 더 참여시키고, 다른 V리그 팀 혹은 일본 클럽팀까지 가세하는 형태로 판을 더 키울 방침이다. 동남아시아 시장은 젊은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동안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가 독주한 곳에서 현대자동차나 현대캐피탈이 진입하기 위한 토대를 배구단이 마련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입각한 포석이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시도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제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의 존재증명 방식이 달라지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국내 한정으로 모기업 홍보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이미지 사업 그 이상의 필연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수축의 길을 피할 수 없다. 스포츠팀도 ESG(환경·사회공헌·지배구조)를 탑재해야 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현대차그룹의 우산 안으로 들어온 시점은 2021년 9월이었다. 당시 최태웅 감독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에게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정 회장은 야구, 축구, 농구, 양궁 등 계열사 스포츠팀 감독들에게 리더십에 관한 책을 전했는데 배구단도 그의 시야 안에 들어왔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양궁과 같은 클래스 추구하는 현대차 스포츠단

정 회장은 2017년 KIA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축승회에서 선수단을 향해 큰절을 올렸을 정도로 스포츠 애호가다. 현대가(家)의 가업처럼 인식되고 있는 양궁에서도 정 회장(대한양궁협회장 겸임)의 전폭적 지지 속에서 정주영 창업회장~정몽구 명예회장을 거치며 여전히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 양궁 담당 기자는 “정 회장이 양궁 선수들 회식 자리까지 참석한 것을 봤다. 그 자리에서 선수들이 정 회장을 너무 편하게 대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는 목격담을 남긴 적도 있다. K리그의 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단이 2023년 4위로 떨어지자 이도현 대한양궁협회 사무처장을 단장으로 임명한 것도 정 회장의 의중이 담긴 파격 인사였다.

이런 기조에서 현대캐피탈이 지난해 12월 21일 최태웅 감독과의 9년간에 걸친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경질 결단을 내린 것은 일견 당연한 귀결이었다. 현대캐피탈은 2023~2024시즌 개막 이후 4연패를 비롯해 17경기에서 4승 13패(승점 16)로 6위에 그치고 있었다. 최고를 지향하는 명문구단과 배구 생태계를 존속시키는 두 가지 지향이 현대캐피탈 배구단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있기에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길은 멀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지만, 이 팀은 “야구 축구 농구는 불가능하지만 V리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놓지 않고 있다. “희망은 원래 있다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길이 되는 것”이라는 루쉰의 경구는 곧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정체성과 포개진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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