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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디지털 감성작가’ 김동식 단편소설(1) 

기가 막힌 아이디어 


▎ 사진:김성태
폐지 줍는 김노인의 리어카가 구도심의 언덕을 오르는 건 쉽지 않다. 다행히 청년 두 명이 김 노인을 도왔고, 정상에서 김노인은 웃으며 굽신굽신 감사를 전했다.

“도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송구한지, 도와준 청년들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유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데요 뭐.”

“정말 고맙습니다.”

“아유 아니에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민망한 듯 자리를 뜨는 청년 둘은 자기들끼리 말했다.

“인상이 너무 선하시다. 진짜 착하신 분 같아.”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이게 문제야. 정말 착한 분들이 저리 힘들게 살아야 해?”

“안타까워. 그래도 저렇게 웃으실 수 있는 게 참 대단하시다.”

청년의 감상대로, 김노인은 누굴 만나든 웃었다. 상점가 사람들이 그에게 폐지를 내주는 이유가 그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노인의 그런 모습을 설마 상상도 못 했다. 한 남자를 보자마자 1초의 틈도 없이 튀어나온 그 모습을 말이다.

“이 개새끼! 꺼져 씨발!”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 박노인은 꺼지지 않고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김형. 얘기 좀 하지.”

“꺼지라고 씨발!”

김노인은 무시한 채 리어카를 끌고 지나쳤지만, 박노인은 계속 따라붙었다.

“왜 이러고 살아, 그렇게 기술이 좋은 양반이 말이야.”

“저리 꺼져!”

“이러고 살기에는 김형 아직 젊어.”

박노인이 끈질기게 따라붙자, 기어이 김노인은 리어카를 바닥에 쿵 내려치며 돌아보았다.

“나 사는 꼴 보면 몰라? 나 이제 그런 거 안 해.”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왜 이러고 사냐고.”

“배운 게 있어야지 뭘 하지 씨발! 몸도 걸레짝인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내가 기가 막힌 계획을 가져왔다니까?

김형은 똑똑하니까 일단 들어보면 무조건 된다는 걸 알 거야.”

“아~ 제발 꺼져 씨발 좀!”

폐지 줍는 김노인의 정체

김노인은 리어카에 매달린 검은 봉지를 들어 휘둘렀고, 박노인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김노인은 최대한의 속도로 자리를 떴고, 남겨진 박노인이 그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며칠 뒤, 김노인은 시내에서 리어카를 끌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 주차된 차량을 피하느라 차선을 침범하자, 리어카와 차선을 공유할 계획이 없었던 차들의 클랙슨이 울려댔다. 빵빵거리는 재촉에도 김노인의 속도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방향은 인도를 향했다. 빌딩 앞으로 리어카를 붙인 김노인은 잠시 멈춰 서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쉬던 그가 다시 리어카를 붙잡는 타이밍은 공교롭게도 빌딩 주차장 입구의 사이렌이 빨갛게 점멸하는 타이밍과 같았다. ‘삐이익~’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안 들리는 건지, 김노인의 리어카가 주차장 입구를 지나쳤다. 마침 튀어나오던 차량이 급히 브레이크를 걸었고, 김노인의 놀란 얼굴이 차를 돌아보았다. 충돌은 없었고, 욕설은 있었다. 차창문을 내린 남성의 욕설에 김노인은 아무 대꾸도 못 하고 리어카를 끌어 치웠다. 차는 입구를 빠져나갈 때도 잠시 멈춰 김노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김노인은 못 들은 척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차는 떠났지만, 김노인은 그 자리에 멈췄다. 박노인이 앞길을 막아섰기에 그렇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김형. 다 봤다고.”

김노인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딘가 들킨 얼굴로 말을 못 했다.

“왜 그러고 사나 했더니, 한 건 하려고 그런 거였어?”

“꺼져!”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자해공갈하려고 일부러 차 나오는 타이밍에 민 거 아니야. 역시 김형 머리도 참 좋아. 누가 망봐주는 사람 없어도 사이렌이 차 언제 오는지도 다 알려주네.”

“아니니까 꺼지라고.”

“이것 봐 김형, 어차피 폐지 줍다가 한탕 하려는 거잖아. 그거 한 한 달이나 주웠어? 동네에 불쌍한 영감으로 눈도장 좀 찍었고? 그래봤자겠지. 이것 봐 김형, 내가 김형 먹는 거 나눠 먹자고 찾아온 게 아니야. 진짜 기가막힌 아이템이 있어서 온 거라니까.”

“너랑 할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제발 좀 꺼져.”

“그만 좀 꺼지자. 나도 바쁜 사람이야 김형. 김형 말고도 할 사람 널렸어. 그래도 우리 옛정이 있어서 김형한테 기회를 주려는 거지 내가 진짜. 어? 내 얘기 들어보면 김형도~”

김노인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박노인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어차피 또 같이 자해공갈이나 하자는 거잖아! 그딴 거 안 한다고.”

“아니 왜 안 해? 무조건인데?”

“하!”

일부러 크게 코웃음을 친 김노인은 리어카를 내려놓고 정면으로 쏘아붙였다.

“넌 지금 80년대 사냐 90년대 사냐?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자해공갈 타령이야? 블랙박스가 나오고 자해공갈은 끝났어. 어떻게 뛰어들어도 다 찍히는 세상에 무슨 자해공갈 지랄을 해. 그래, 솔직히 말해서 6년 전만 해도 가망이 없지는 않았다. 애매하면 차보다 사람 손 들어줬지 그래도. 근데 이제 안 그래. 씨발, 너 한문철이 몰라? 이제 너 자해공갈 짓하면 인터넷에 박제돼. 그 짓 하며 몸 버려봐야 조롱만 듣는 세상이라고. 어디 저기 시골에서도 다 블랙박스고 다 CCTV고 그래. 넌 도대체 지금이 몇 년도인 줄 알고 사냐고 어? 자해공갈의 시대는 끝났어. 그걸 아직도 모르는 미련한 놈들이나 계속 그 짓거리 하려다 잡혀 들어가고, 조롱거리 되고, 어? 안 걸리려고 무리하다가 저세상 가고 하는 거다.”

“이건 진짜, 누구한테도 말해선 안 돼.”

김노인은 이만하면 박노인이 다 알아들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노인의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일단 내 얘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다를 거요.”

“시대가 변했다고 씨발!”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지금 이렇게 시대가 변해서 노났다니까? 세상이 천지개벽하다 보니까 우리가 노났다고.”

“뭔 소리야 씨발!”

고개를 흔든 박노인은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진짜, 누구한테도 말해선 안 돼. 그 정도 건수야. 그리고 내가 만약 이걸 말해주면, 김형은 무조건 나랑 같이 해야 해. 그거 약속하기 전에는 알려줄 수도 없는 얘기야.”

“너 내 말을 들은 거냐? 자해공갈의 시대는 끝났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알아. 그런데 이건 된다니까? 진짜 맹세코. 다 걸 수 있어. 뭐 걸까? 돌아가신 부모님이라도 걸까?”

“뭔…”

김노인의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기세는 수그러들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뭔가 정말 있다는 걸까?

“뭘 어쩌자고.”

“내가 설명해주면 무조건 같이 해야 해. 약속할 수 있어? 그리고 여기서 말할 게 아니라 조용히 둘이서만 은밀히 말하지.”

김노인은 짜증 나는 얼굴로 박노인을 보다가, 그냥 손해 볼 게 없다는 속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들어나 보자.”

“들으면 무조건이야. 아마 김형도 바로 감이 올 거야. 이건 된다고.”

“허이구 지랄…”

김노인이 앞장서고 박노인이 뒤따라 걸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근처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박노인은 품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참 한적하고 좋네. 담배 한 대 줄까?”

“됐으니까,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말해. 그래서 뭔데?”

길게 담배 한 모금을 뿜은 박노인이 눈을 빛내며 김노인에게 말했다.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해공갈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해공갈이 있어. 이거 좀 봐.”

박노인이 품속에서 신문을 꺼내어 김노인에게 보여주었다. 뭔가 싶어 들여다본 김노인이 중얼거렸다.

“샌프란시스코… 자율주행택시?”

“모르겠어? 자율주행차량! 운전자가 없이 운전하는 차량이다 이 말이야!”

김노인의 눈이 커졌다. 무슨 말인지 감이 올 듯했다. 그걸 본 박노인이 웃음을 흘렸다.

“자율주행 시범지구에서 자율주행차량에 뛰어드는 상상을 해 봐. 얼마나 쉬운 일이야? 그리고 아까 김형이 그랬지? 애매하면 차보다 사람 편을 들어준 시대는 옛날이라고. 그런데 인공지능이 사람을 쳤네? 그러면 사람들은 누구 편을 들까?”

“아!”

“내가 통계를 찾아보니까, 무인 자동차가 인간보다 85% 더 사고를 안 낸대. 근데 여기 아래쪽 기사 봐봐. 단 한 건의 무인 택시 사고만으로 이 대기업이 캘리포니아주 교통국에 영업정지를 먹고, 임원 9명을 해고했다는 거. 사람들은 자율주행 차의 사고를 절대 용납하지 않아.”

김노인의 얼굴에 서서히 흥분이 올라왔고, 박노인은 역시라는 듯 웃었다.

“김형, 시대가 아주 좋아졌어. 지금 한국에서도 자율주행 시범지구가 생기고 있다니까? 이 기회 놓칠 거야? 다신 안 올 천금 같은 기회를? 우린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고. 어때? 이래도 자해공갈의 시대가 끝났어?”

김노인은 끝내 박노인의 말에 동의했다. 이건 될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차량 과도기에 아주 잠깐, 무조건 될 수밖에 없는 기가 막힌 아이템이라고 말이다.

※ 김동식 - 1985년 성남 출생.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6년부터 서울 성수동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부터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2017년 12월 27일 초단편 소설집 [회색인간]을 내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8년 제13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사회 분야)을 수상했고, 강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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