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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문기자 박정호가 만난 세상] '한식문화사전' 집대성한 주영하 교수와 하응백 대표 

“한입 가득 상추쌈밥, 조선 최고의 맛 아닌가?”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한국음식 2000년의 ‘거의 모든 것’ 훑어… 표제어 1094개, 도판 462개
“알면서 먹으면 더 맛있다”… 드라마·만화·소설 등 문화콘텐트 활용 무궁


▎[한식문화사전] 제작을 지휘한 하응백(왼쪽) 휴먼&북스 대표와 주영하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봄의 한복판이다. 농부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부들의 마음도 분주하다. 시골이든 도회지든 이맘때 가장 인기 있는 작물은 상추가 아닐까. 조금만 있으면 여름, 갓 따온 상추에 잘 구운 고기를 올리고 양볼이 터져라 한입 가득 넣어 먹는 맛은 그 어떤 즐거움에 비교할 수 없으리라.

옛사람들도 상추쌈에 흠뻑 빠졌나 보다.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을 남긴 조선 중기 문신 유몽인은 이런 글을 썼다.

“손바닥에 상춧잎을 올려놓고, 올벼로 지은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달짝지근한 붉은 장을 끼얹고, 거기에 잘 구운 밴댕이를 올려놓는다오. 상추쌈을 싸는데 (…) 입술이 째질 만큼 입을 좍 벌리기를 종루(鍾樓)에서 파루(罷漏·통행금지 해제) 후 숭례문이 활짝 열리듯이 한다오.”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올 것 같은 묘사다. 조선 후기 파격적인 문체를 시도하다 고초를 겪은 이옥이 상추쌈을 먹는 모습은 한층 더 생생하다. 한 편의 짧은 동영상을 보는 것 같다. 만화나 웹툰의 한 장면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마치 성이 난 큰 소가 섶과 꼴을 지고 사립문으로 돌진하다 문지도리에 걸려 멈추는 것과 같다. 눈을 부릅떠서 화가 난 듯하고, 뺨이 볼록하여 종기가 생긴 듯하고, 입술은 꼭 다물어 꿰맨 듯하고, 이[齒]가 빠르게 움직이니 무언가를 쪼개는 듯하다.”

전 세계가 가장 많이 검색한 ‘비빔밥’


▎주영하 교수(왼쪽)와 하응백 대표. 문화 콘텐트로서의 한식을 주목했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62)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입속에서 이루어지는 ‘곡물+반찬+침’의 비빔이 한국식 식사의 핵심이다. 간이 안된 밥과 간이 잘된 반찬 한 가지가 입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벼진다. 이것도 부족한 사람은 다시 숟가락으로 들어서 국물을 입속에 넣는다. ‘밥+반찬+국물’이 입속에서 무의식중에 마구 비벼진다.”

최근 출간된 [한식문화사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전’이란 그릇에 걸맞게 한국음식의 알파와 오메가를 1000쪽 가까이 담았다. 표제어 1094개에 도판 462개를 곁들였다. 한 손에 들기에 힘든 두께와 무게에도 갈피갈피에 스민 갖은 풍미 덕분에 금방이라도 입에 침이 고일 듯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의 문화유산론처럼 음식 또한 ‘아는 만큼 맛있다’라고 할까. 출출할 때 아무 곳이나 펼쳐도 잠시나마 허기를 잊을 것도 같다. [한식문화사전] 발간의 두 주인공인 주영하 교수와 하응백(63) 휴먼&북스 출판사 대표를 함께 만났다.

상추쌈밥이 조선 최고의 맛이라고 썼다.

주영하_ “상추에 밥과 반찬을 싸서 먹는 관습은 고려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고려의 상추는 품질이 좋아서 ‘천금채(千金菜)’라고도 불렸다. 조선 문인들도 상추쌈밥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다. 상추쌈의 절묘함은 일단 날것을 먹는 데 있다.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하응백_ “우리 민족은 쌈을 참 좋아했다. 배추든, 미나리든, 김이든, 모든 것을 싸 먹지 않는가. 심지어 사람을 보쌈하기도 했다(웃음). 상추쌈은 서민의 맛이다. 이번 사전에도 ‘상추는 빈한한 선비와 같아/ 담박하여 또한 위안이 된다네/ 손 씻고 편안히 밥을 싸 먹으면/ 걱정 없이 한 끼니 된다네’(조선 문인 이학규의 ‘상추를 먹으며’) 같은 시가 실렸다.”

주영하_ “상추쌈밥과 굳이 비교하면 비빔밥과 국밥은 사대부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양반 가문에서 기제사를 지내면 식수(食數) 인원이 1000명에 이르기도 했다. 나도 현장 답사를 하며 여러 번 참석한 적이 있다. 이때 많은 이들을 대접하기 위해 한여름에는 나물 넣은 비빔밥을, 한겨울엔 뜨끈한 국밥을 내놓았다. 상추쌈밥은 크게 보면 비빔밥의 형태지만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한식 하면 비빔밥이 먼저 떠오른다.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지난해 전 세계인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레시피(조리법)도 비빔밥이었다.

주영하_ “비빔밥은 ‘밥+반찬’이라는 한식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한국인에게 가장 일상적인 음식이다. 그런데 우리 문헌에서 비빔밥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0년대에 나온 한글 필사본 [시의전서]에서다. 또 요즘처럼 고추장이 들어간 비빔밥 요리법은 잡지 ‘별건곤’(1929년 12월 1일자)에 나온다. 재미난 사실도 있다. 전주의 시장에서 간단하게 팔기 시작한 전주비빔밥이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은 1980년대 이후 ‘향토음식전’ 같은 지역음식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면서부터다. 대표적 사건이 전두환 정부가 주도한 ‘국풍81’ 축제였다.”

문학·민속·역사학 등 전문가 15명 참여


▎[한식문화사전] 표지와 전통문화포털 안의 온라인 사전.
[한식문화사전]은 레시피 중심의 요리책이 아니다. ‘문화’라는 단어가 가리키듯 한식을 둘러싼 역사, 사건, 시문학, 그림, 민속, 인류학, 영양학 등을 아우른다. 예전에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각각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나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식생활 항목에 포함됐던 우리의 음식을 더욱 넓고 더욱 깊게, 나아가 더욱 맛나게 파고들었다. 사전류·전집류 등 대형 기획이 점점 쪼그라드는 요즘 우리 출판가에서 더욱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대형 사전 편찬은 지난한 작업이다. 작은 출판사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쯤 된다.

하응백_ “사실 국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문화체육부 공모 작업에 선정돼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원고료 1억5000만원 등에 사용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전통문화포털에서 온라인 사전(kculture.or.kr/brd/board/640/L/menu/735)을 미리 공개했고, 이번에 내용을 크게 보완해 종이 사전으로 선보였다.”

주영하_ “총 15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문학평론가 인 하 대표가 문학 관련 파트와 사진 자료를 책임졌고, 음식연구가인 제가 나머지 파트를 조율했다. 민족문화·민속대백과사전 제작에 참여한 경험도 도움이 됐다.”

하응백_ “이전에도 [창악집성] [소나무인문사전] [한복인문학사전] [울릉도, 독도 백과사전] 등 두꺼운 사전류를 낸 적이 있다. 인공지능과 영상매체 시대를 맞아 출판의 미래는 원천 지식이나 콘텐트를 제공하는데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음식 사전의 활용 가능성도 무한할 것으로 본다. 영화·음악·소설·웹툰 등 음식 관련 콘텐트 제작에 상당한 영감을 줄 것으로 믿는다.”

주영하_ “앞으로 네이버나 구글 등 포털 사이트에 연동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보다 많은 이들이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김치를 검색하면 우리 사전과 바로 연결됐으면 한다. 핵심은 활용성이다. 각 항목에 관한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 연계하는 것도 과제 중 하나다. 음식은 아무래도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일 테니까.”

한식의 전통과 다양성이 눈에 띈다. 사전인데도 읽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갖은 진미를 올려놓은 남도 지역의 한정식.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
하응백_ “저도 소설을 쓰지만 무엇보다 소설가, 시인들이 이 사전을 많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창작 과정에 숱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레시피 위주의 한식 책은 많다. 하지만 우리 음식과 문화를 설명하는 책은 적었다. 예컨대 설렁탕을 외국인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렁탕이 유래한 조선시대 선농단(先農壇)에 담긴 애민정신, 일제강점기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임신한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지 못한 김첨지 등을 인용하면 얘기가 얼마나 풍부해질 것인가. 음식은 스토리의 보고다. 이런 게 문화의 온기다.”

주영하_ “한식을 세계에 알린 대표적 드라마가 [대장금]이다. 벌써 2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후속작을 만든다는 소식도 들었다. 한류 확산에 불을 지핀 [대장금]의 효과가 대단했다. 하지만 논란도 있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음식을 조선 요리책에서 참고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중국 음식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선 요리책이긴 하지만 중국 문헌에서 가져온 항목 때문에 실수를 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전은 매우 한국적이다.”

한식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을까


▎조선시대 요리책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
모든 문화가 그렇듯 음식 또한 항상 변한다. 한식의 의미 혹은 정의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구촌 곳곳을 실시간으로 접속하는 글로벌 세상, 게다가 세계 각국의 음식이 밀려드는 이 시대에 한식 또한 과거에 멈출 수는 없다. 뿌리는 든든하되 가지와 잎은 다양한 한식의 앞날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한식 전문가만의 숙제가 절대 아닐 게 분명하다.

한식의 기본은 ‘밥반찬’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본 중 기본인 밥에 신경을 덜 쓰는 것 같다. 성의 없이 밥을 내놓는 식당도 많다.

주영하_ “맞는 지적이다. 오죽하면 돌솥밥이 인기가 있겠나. 그래도 쌀 품종이 다양해졌고, 밥맛에 정성을 기울이는 곳이 늘고 있다. 사회가, 그리고 식단이 서구화되면서 밥을 덜 먹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한식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인사동 한정식집이 하나둘씩 줄고 있지 않나. 사회 각계의 지혜를 모을 때다.”

하응백_ “한국의 수산물 소비가 세계 1위다. 일본이나 노르웨이보다 많다. 삼면이 바다인 까닭도 있겠지만 그만큼 입맛이 고급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육류 소비도 계속 증가세다. 한식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바뀔 것이다. 2000년 유구한 뿌리가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이번 책에 나오는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이 흥미로웠다.

주영하_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지은 글이다. ‘도문’은 푸줏간의 문, ‘대작’은 크게 씹는다, 즉 입맛을 다신다는 뜻이다. 조선 8도의 향토음식 134종이 실렸는데, 대부분 허균이 직접 맛보았던 각 지역의 미식이다. 실학자 서유구의 [정조지(鼎俎志)] 등 조선시대 요리사전은 사대부들이 직접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정리한 경우가 많은데 ‘도문대작’은 그런 점에 매우 가치가 있다.”

하응백_ “한창 봄철인데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어린 시절 강릉에서 먹은 방풍죽을 가장 먼저 소개한다. 이른 봄에 방풍으로 끓인 죽을 최고의 진미로 꼽았다.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해 사흘 동안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카카오톡 인공지능에 ‘도문대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음식은?’을 물었더니 ‘조선시대 문인 이규보가 쓴 한시(漢詩)로, 가장 먼저 나오는 음식은 국수[麵]’라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이규보는 고려시대 문인이다. 인공지능의 뻔뻔한 거짓말에 놀랐다. 그만큼 아직 인공지능이 접근하는 정보가 제한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털과의 정보 공유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대중문화가 이끌던 한류 열기가 이제 음식으로 옮겨갔다. 지난해 해와 한류 실태조사에서 K푸드의 브랜드지수가 66점으로 가장 높았다. 뷰티와 K팝을 제쳤다.


▎고구려 안악3호분의 벽화. 부엌, 방앗간, 우물, 푸줏간 등 고구려의 음식 문화를 엿볼 수 있다. / 사진:우리역사넷
주영하_ “비빔밥, 떡볶이, 치킨, 김밥 등 아직은 단품 위주로 소비되고 있다. 일본의 스시처럼 고급음식 단계까지는 오르지 못한 것 같다. 우리 기업들도 한식 문화 보급에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한다. 일본기업 아지노모토는 일찍부터 인문사회과학자들을 지원하며 세계 각국의 음식문화 책자를 펴내고 있다. 한식의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반드시 뒤따라야 할 작업이다. 한식 관련 정부 정책의 교통정리도 필요하다. 국가가, 기업이, 개인이 할 일이 뒤섞여 있다.”

하응백_ “매우 건설적인 제안으로 보인다. 한식은 결국 문화 콘텐트다. 스토리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대장금]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될 것이다. 지자체의 노력도 긴요하다. 예전에 영덕 대게축제에 간 적이 있는데 주최 측이 그 연원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영덕에 와서 게를 먹은 적이 있다’고 했는데, 역사적 증거가 빈약하다.”

사전은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이번 [한식문화사전]도 완성판이 아니다.

주영하_ “맞다. 한식문화에 대한 중간결산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이번에는 주로 1960~70년대 부분까지 정리했다. 2000년대 들어 달라진 모습, 현대문학과 회화, 그리고 대중문화에 나타난 음식문화 등도 다음에 반영해야 한다.”

하응백_ “결국 시간과 자본의 문제다. 증보판을 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온라인의 이점을 살릴 수도 있다.”

“인간은 함께 식사하는 동물이다”


▎김홍도의 ‘점심’. [단원풍속도첩]에서. 일꾼들의 밥먹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음식은 함께 먹는 즐거움이 크다. 밥상의 정신이 그렇다. 하지만 ‘혼밥’이 점점 늘고 있다.

주영하_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혼자 밥상을 받았다, 그때와 지금은 물론 차이가 분명하다. 예전에는 가부장 사회의 권력 비슷했다. 지금은 소외와 단절의 밥상이다. 인간은 함께 식사하는 동물이다. ‘함께 자주’ 즐기는 식사를 주장해 왔는데, 이를 위한 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이 절실하다.”

22대 총선이 끝났다. 음식은 정치이자 권력이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이 시장을 돌고, 서민 코스프레에 열심이다.

주영하_ “이번엔 ‘대파 파동’이 일었다. 한마디로 코미디였다. 평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의 언어, 행동은 꿀꿀이죽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여러 음식을 마구 섞어 먹은 한국전쟁 이후의 그 꿀꿀이죽 말이다. 1960년대까지 남대문시장에서 팔기도 했다.”

하응백_ “이번 사전에도 나오지만 조선시대 임금들은 자연재해 등 나라가 어려워지면 수라상 가짓수나 식사 횟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에 나섰다. 백성의 고통은 곧 왕이 덕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정신은 달라질 수 없다. 서로 먹는 것을 두고 시비를 거는 오늘이 더욱 볼썽사나울 뿐이다.”

[박스기사] 회덮밥은 한식일까 일식일까?


[한식문화사전]은 맛의 바다다. 어느 곳을 펼쳐도 맛깔난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심심한 맛부터 짭짤한 맛까지 우리 밥상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몇 가지 재미난 얘기를 무작위로 추렸다.

① 간장은 왜 봄에만 담갔을까?: 봄볕이 들기 시작하는 음력 정월 대보름 이후 공기 중에 미생물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우수(雨水) 이후에 공기압이 올라가 장독에 담긴 메주와 소금물 속으로 곰팡이가 내려앉기에 좋다.

② 회덮밥은 일본음식이 아니다: 회덮밥은 비빔밥이 진화한 결과다. 생선을 회로 쳐서 육회처럼 올려서 먹는 방식은 꽤 오래됐다. 생선에 갖은 채소와 초고추장, 참기름을 넣어서 먹는 지금의 회덮밥은 1970년대 초반에 생겼다. 일본인은 생선회 자체의 식감이 무시되는 회덮밥을 보고 무척 당황한다.

③ 밥그릇 뚜껑은 과학이다: 밥을 적게 먹으며 밥공기 크기도 줄어들었다. 예전의 밥그릇 뚜껑은 모양이 불룩했는데, 그 뚜껑에 쌀을 담은 다음 밥을 지으면 바로 그릇에 들어가는 분량이 됐다. 또 밥과 뚜껑 사이에 약간의 빈 곳이 생겨 밥이 쉽게 마르지 않았다.

④ 갈비탕에 당면은 왜 들어갔을까?: 1950~60년대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 정책을 시행하면서부터다. 1968년 9월 신문 기사에 따르면 곰탕과 갈비탕 등 탕류에 쌀 75%, 면 또는 보리 25%를 섞어 판매하도록 했다. 설렁탕에 소면이 들어가는 경우도 같은 배경에서다.

⑤ 시험을 앞두고 피하는 음식: 시험에 떨어지지 않도록 미끌미끌한 미역국이나 바나나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앞두고 게와 낙지를 멀리했다. 수험생들은 게의 한자어인 ‘해(蟹)’에 ‘해(解)’가 들어 있어 자신이 ‘해산(解散)’되는 것을 걱정했다. 낙지는 한자로 ‘낙지(落只)’ ‘낙제(落蹄)’ 등으로 썼는데, 시험에서 떨어지다는 뜻의 ‘낙제(落第)’와 발음이 비슷했다.

- 글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park.jungho@joongng.co.kr / 사진 박종근 비주얼실장 park.jongkeun@joongang.co.kr

202405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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