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농촌에서는 장리(長利)가 가장 흔한 이자율이었다. ‘장리’는 흔히 이율 50%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조금 더 높다. 그 시대에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수확기에 곡식을 장리로 계산해 받았다. 굳이 만기일을 따지면 약 9개월에 50%다. 월로 계산하면 5.56%, 연리로 계산하면 놀라운 숫자가 나온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본 사람은 소름이 끼칠 만한 숫자인 약 66%다.
당시 고리(高利)로 곡물을 빌렸다가 빚을 못 갚은 소작농은 노예가 되거나 감옥에 갔고, 처자를 팔아 갚거나 자살했다는 기록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669년에 백성들에게 빚 탕감과 이자면제 조치를 내렸다’는 내용이 있다. 669년은 고구려가 망한 다음해다. 당시 민간에서 고리대가 심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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